2012년 아델이 있다면, 2002년에는 노라존스가 있었다. 아델의 19, 21앨범도 너무나 훌륭하지만, 아직까지 늦은밤 손이 먼저가는 건 노라의 것이다. 따스함, 포근함. 그런 것들. 말할 수 없이 나긋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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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열여섯해.

from 음악창고 2012. 1. 6. 23:49
내가 매년 기억하는 죽음이 얼마나 될까. 1996년 1월 6일. 내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1996년 겨울에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면 학전 소극장에 들러 그의 공연을 보겠노라 생각했었다. 그게 대학가서 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100회를 넘어갔던 그의 소극장 공연을 한번도 내 눈으로 보지 못한게 한이 되어 그의 죽음뒤 그의 음반을 사고, 그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이야기, 인생이야기 앨범은 술한잔 마신 날이면 늘상 플레이 되었고 담겨있던 공연 멘트중에서 어느 60세 노부부의 이야기는 애잔하고 또 애잔했다.

삶에 지치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나이를 먹으며, 뭐든 자신이 없을때 그의 노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거리감 있는 충고가 아니라 술잔 너머 앉아있는 어느 친한 형의 위로 같은 것이었다. 나이가 먹어 들어도 여전히 그 따스한 온기가 식지 않아 다행이다.

그의 죽음을 추억하는 것이 벌써 열여섯해째가 되었다. 난 그보다 오래 살아 올해로 서른 여섯이 되었지만 여전히 삶은 쉽지 않고, 그럴때마다 그의 노래를 꺼내듣는다.

그립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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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왔으면 하는, 눈 오는 출근길. 짜증을 뒤로 하고 자리에 앉아 듣는 노래. 최근 발매된 Lisa Ekdahl의 Give Me That Slow Knowing Smile앨범. 그중에서 I'll Be Around가 끌린다. 그녀를 처음 알게된건 (아마도 선물받았을) Sings Salvadore Poe 앨범이었다. 오묘한 목소리가 호오를 갈랐지만, 나에겐 무척이나 좋았다.

그게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벌써 10여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그 목소리로 노래 불러주어서 새삼 고맙다. 71년생이니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그러나 나이의 무게가 무색하게, 여전히 그 모습인 것도.

노래 들으며 외친다. 오 나의 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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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급하게 나를 찾는다. 
귀에 물려준 이어폰에서는 차분한 노래 한곡이 흘렀다.
생각의 여름의 '골목바람'

누워 여러번 들어보다가, 멈출수 없어 몇번이고 들었다.
'추스를 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세차게 바람'
반복된 그 부분이 귓가를 떠나지 않고 웅웅거린다.

바람은 언제나
추스를 틈도 없이, 추스를 틈도 주지않고 불고 또 분다.
야속하거나 혹은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노래를 들으며 추운 겨울바람이 아니라 결이 깨끗한 봄바람을 생각했다.
곧 봄이 올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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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산울림.

from 음악창고 2010. 1. 22. 14:31
산울림의 가사에 처음 '사랑'이 등장한건 8집 '내게 사랑은 너무 써' 부터이다. 데뷔부터 일곱장의 앨범을 낼때까지 그 많은 노래를 펼쳐놓으면서도 김창완은 '사랑'이라 끝내 말하지 않았다. 사랑을 '사랑'이라는 언어로 개념화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일까.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그 순간 더이상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라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난무하는 (사랑이라는 언어없이는 노래가 안될 것같은) 사랑타령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말로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 이전에, 그 말을 내뱉기 전에 이미 느껴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손쉽게 '사랑'이라는 말을 쓴다. 사랑을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사랑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사랑은 '사랑'이라는 언어 아니면 안될 것처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랑'이라는 말로 확인하려하고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로 인해 빛이 바래고 그 언어는 더이상 진정성을 담지 못하는 듯 하다. 너무 쉽게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 때문에 아무도 '사랑'이라는 말의 떨림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는 '둘이서'라는 소품같은 곡이 수록되어있다. 2분 30초짜리 짧은 노래는 흔한 '사랑'을 한번도 속삭이지 않지만, 그 둘 사이의 정경만으로도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다. 그 둘 사이의 밀도, 숨 막힐듯한 떨림. 찬찬히 눈을 감고 그려보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시계 소릴 멈추고 커튼을 내려요
화병 속엔 밤을 넣고 새장엔 봄날을
온갖것 모두다 방안에 가득히
그리고 둘이서 이렇게 둘이서
부드러운 당신 손이 어깨에 따뜻할 때
옛 얘기처럼 쌓여진 뽀얀 먼지 위로
은은히 퍼지는 기타소리 들리면
귓가엔 가느란 당신 숨소리

역설적으로 들리겠으나 '사랑'이라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피했기에 산울림은 주옥같은 사랑노래를 남겼다. 명확하지 않으나 어떤 의도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고민들. 산울림의 바래지 않은 생명력과 펄펄뛰는 표현은 사랑을 '사랑'안에 가두지 않았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말에 쉽게 기대어 우리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건 아닐까.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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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싱글중에 하나.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오지은 2집. 올해 참 많이도 들었다. 그새 2집의 매끄러움이 익숙해졌는지 그렇게 좋아했던 1집은 오히려 손이 잘 닿지 않았다. 앨범이 다 좋았다. 그 중에서 이 노래는 처음 들었을때부터 귀에 남았다. 오지은의 가사는 김창기가 썼던 '잊혀지는 것'의 서늘함과 닮아있다. 참으로 날카로워 참으로 씁쓸해지는 사랑의 한 모습이랄까. 차이는 있겠지. 오지은은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토로하는 느낌에 가깝다면, 김창기는 사랑이 끝난후 쓸쓸하게 돌아보며 토로하는 정서에 가깝지 않나.

김창기는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사랑이라 말하며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는" 그 사랑을 노래로 만들었고, 오지은은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다는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건 아닌지" 라고 사랑을 다시 묻고 있다. 둘다 착찹해지는건 마찬가지이지만, 김창기는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더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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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 사랑했네

from 음악창고 2009. 11. 26. 16:48


세련되게 빠진 달큰한 사랑노래보다, 절절함이 더 다가왔던 노래. 눈뜨고 코베인의 그 자식 사랑했네. 생생하게 튕기는 가사탓이다.

"요약하자면..." 하고 주저하며 말하는 짧은 침묵. 그 뒤에 터지는 "그 자식 사랑했네"라는 외침은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수백가지 댈 수 있으나) 결국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성에 대한 자기 고백일거다. 너바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뽕짝을 좋아하는 그 자식. 그래도 좋았던 이유, 어쩔 수 없는 마음들.

소리는 촌스러워 진솔하다. 노래가 아닌 친구의 지긋지긋한 연애담같은 느낌. 깜악귀의 비음섞인 외침이 흘러나오는 지점에서 (내가 그러했듯이) 이런저런 기억에 낮은 한숨을 토해낼 수도 있겠다. "요약하자면..." 할말이 왜 없을까. 사랑은 공감하고자 하나, 공감할 수 없는 그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일테니. 누군들 이런 불일치의 경험이 없겠는가. 너바나를 좋아한다며 뽕짝을 좋아하던 그 자식. 

상처주고, 상처받고. 차이를 이해하고 보듬기가 어디 쉬울까. 그걸 알면서 사랑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 자식 사랑했네..." 결국은 과거형으로 토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아쉬움과 자기위안이 뒤범벅된 심정.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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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타이밍이 늦은 것 같지만, 그날 찍었던 몇장의 사진과 간략한 후기 남겨본다. 축제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소감을 얘기하자면, 이런 경연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맘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풍성했으며, 그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대중음악씬의 수준을 느껴볼 수 있었다. 포크, 재즈, 라틴기타, 사이키델릭, 일렉트로니카, 락, 발라드... 어디 한곳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함이랄까. 보는 내내 기분 좋았다.

사실 헬로루키로 선정된다고 해서 한국 대중음악의 오버씬에 충격파를 던질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이 소중했던 것은 EBS의 헬로루키가 가진 지향점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진지한 자세로 음악을 하는 친구들, 이 무대가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뮤지션을 발굴하고자 하는 의도. 그들이 좋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자 하는 의도. 그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 가져주어야 겠다.

현장에서 아폴로18이 대상자로 호명되었을때, 결과에 실망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앵콜공연도 보지 않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많았고, 때려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폴로18의 앵콜공연에 무대앞으로 나와 진지하게 지켜봐준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그들의 시디를 구매하는 사람도 많았다. (공연 끝나고 시디사러 부스에 갔을때 아폴로18은 품절이었다는)

다들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도 박주원과 흠의 연주는 신선하고 매혹적이었다. 이런 큰 무대에서 자주 보기 힘든 음악들이니. 특히나 박주원의 기타연주는 그 많은 관객을 일순 침묵하게 할 만큼 기량면에서 독보적이었다. 특별상이라도 받았으면 했다. 아폴로18은 상받았으면 했으나, 감히 줄 수 있을거라 생각지 못했기에 놀라웠다. 받은 500만원으로 밀린 월세 깔끔하게 갚고 더 좋은 음악 들려줬으면 좋겠다.

스크롤 압박이 있지만, 무보정 리사이즈로 올려본다. 당겨 찍어보려고 200mm망원을 들고 갔는데, 주변이 어두워서 흔들린 사진이 많다. 그래도 기록 차원에서.


펜싱경기장, 날이 추웠다



음악은 제대로 들어본 적없었던 노리플라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아폴로18이 이들의 대상을 점칠정도로. 10여년전 전람회를 기대해도 될까.



한음파의 무대.





거침없이 나와버린 브로콜리너마저. 내가 있던 자리 근처 무대로 등장에서 가까이 찍을 수 있었다. 안녕을 불렀었나, 여튼 보편적인 노래가 두번째였다.



이번엔 잔디가 백보컬을 했는데, 여전히 조금 불안정했다. 그래도 좋았다.



진행을 맡았던 장윤주의 무대. 주변에 계신 여성분들이 많이들 따라불렀다.



비눈물을 부르고나서 합창하는 장면.



인디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혹은 몸담고 있는 이들의 진행이라 중간중간 꾸미지 않은 애정이 느껴졌다.



왁짜한 분위기를 단번에 압도해버린 라틴기타. 손가락이 신들린듯 움직일때 환호가 터져나왔다. 주목해야할 뮤지션 박주원.



이날의 주인공. 아폴로18. 무대 가득 펼쳐지는 화면과 음악의 매칭이 절묘했다. 텁텁한 무대 분위기를 스산하고 차가운 산자락으로 몰고갔다.



조금은 멀리서. 세명이 만드는 음악이었지만, 무게감은 대단했다.



뒤이어 나온 검정치마의 무대. 좋아해줘와 antifreeze를 불렀다. antifreeze는 여전히 명곡이었다.



국카스텐. 연말 공연에 가볼까 고민중. '거울'과 '꼬리'를 불렀다. 이펙터에서 나오는 기타리프. RATM의 라이브 무대를 보며 놀랐던 그 기분이었다.



호응도로는 단연 최고였던 '좋아서 하는 밴드' 작년 쌈싸페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상큼한 무대를 보던 기억이. 완벽한 연주는 아닐지라도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날의 심사위원단. 심사결과에 박수쳐주고 싶다. 지향이 명확한 경연이 되었으면 한다.



뒤이어 이어진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싸구려커피 한소절과. 그 남자 왜를 불렀다.



이날의 미미시스터즈는 이러고 나왔다. 댄디한 장기하 및 얼굴들과 키치적인 미미시스터즈가 주는 충돌과 불협이 언제나 재미있다.



인기가 대단했던 노리플라이의 무대. 김동률과 성시경을 잇는 감성 아티스트로의 가능성이 옅보인다.



이런 뮤지션이 이 무대에 설 수 있을 만큼, 풍성했다. 흠의 연주 무대.



이건 좀더 가까이.



신인들의 무대가 끝나고 피아의 노래와 함께 등장한 이승환. 역시나 화려했다. 10명에 가까운 브라스를 데리고 왔다.



사실 이날 좋았던 부분중에 손꼽자면 출연자들이 잼형식으로 모여 만든 무대였다. 탄탄한 연주와 실력을 가진 이들로 꾸려서인지, 보는 내내 감탄했다.



나름 감동이었던 김수철의 무대. 등장만으로도 감사했던게 사실이다.



일곱색깔 무지개를 열창하는 중.



김씨는 김수철의 무대가 이어지지 참지 못하고 진행석에서 붕붕 뜀박질을 했다. 이러저러한 세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줘 고마웠다. 김수철이라는 거장이 생소한 이들도 있었을테니.



젊은 그대 떼창이후. 그런 생각을 해봤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하고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인기상을 수상한 '좋아서 하는 밴드'



특별상을 수상한 텔레파시.



대상을 받은 아폴로18



뒤이어 이어진 아폴로18의 앵콜무대. 이때는 스탠딩석이 널럴해져서 앞으로 와서 봤다.



처절하게 연주하는 열정이 아름다웠다.



기타는 대단했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조 세트리아니의 명반 Surfing With The Alien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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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의 목소리

from 음악창고 2009. 11. 2. 18:40




계피 목소리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담백하면서도 진한 맛이 난다. 보통 여운이 남는다고 말하면 적절하다. 노영심의 목소리가 겹쳐지지만, 계피가 보다 더 깔끔하다. 둘다 모나지 않은 목소리이지만, 노영심에 비해 똑부러진 야무짐이 배어있다. 나른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여백이 있지만 엉성하지 않다. 연애를 하고, 결국에는 돌아선 후, 남겨진 미련을 다루는 방식이 노영심과는 다르다.

앵콜요청금지를 통해 계피 목소리를 처음 만났을때 멍하니 느껴지던 충격. 복고는 현대적인 의미망 안에서 복고라 불리울 수 있다. 회고가 아닌 복고는 그래서 트렌드가 된다. 장기하가 그렇고, 문샤이너스가 그렇다. 계피의 목소리가 더더욱 소중했던 이유가 그것 만은 아니다. 복고의 신선함을 걷어내더라도 그녀 목소리를 지렛대 삼아 인디음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계피의 목소리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갈증을 주었다. 몰랐으면 지나쳤을 갈증 탓에 많은 음악을 찾아들었고 또한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보드카 레인의 시원한 보컬과 함께 부른 숙취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노래의 생명력은 감정선의 어느 지점을 건드리는 순간 느껴진다. 그건 가사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멜로디 혹은 연주에서 오기도 한다. 이 노래로 말하자면 당연하게도 계피의 목소리일 것이다. 브로콜리 너마저로서는 섭섭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젠'전' 보컬이 되어버린 계피의 부재가 너무도 아쉽다. 덕원의 예민한 감성을 콕 집어 전달해주던 계피의 목소리. EP를 들으면서, 1집을 들으면서 아쉬워한다.

뭔가 뚝뚝 떨어져 내릴것만 같은 노래를 듣는다. 앵콜요청금지를 좋아하는. 그리고 유자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따뜻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따뜻한 차한잔으로 멀리 달아날 한기라 믿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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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have been loved, Sia

from 음악창고 2009. 10. 15. 17:39



날이 서늘해져서가 맞다. 듣다가 끄적이는 이유가. 그러고 보니 음악얘기가 참 오랜만이다.

땀띠나게 더웠던 지난 여름, 홍대에서 열린 이장혁 공연에 갔었다. 소규모 카페였다. 자기 노래가 이런 더운 여름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서도 노래를 들려줬는데, 아이스커피 한잔 들으며 듣는 노래도 괜찮았기에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요며칠 이장혁 2집을 다시 들으니 아닌 것 같다. 그의 노래가 스며드는 느낌이 다르다. 계절에 맞는 노래. 계절이 오면 듣는 노래. 계절이 오면 쌓이는 노래는 분명 있는 것 같다.

Sia의 앨범도 그렇다. 특히 You have been loved는 더더욱. Sia의 앨범은 올봄부터 틈나는대로 찾아들었는데, 이 계절, 음이 다가오는 느낌이 참 다르다. 절절하게 부르는 후렴부, 그리고 깔리는 피아노와 현이 애잔하다. 사랑의 뒤안길. 그 쓸쓸함 탓일까 싶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만은 아닌게 분명하다. 오히려 귀로만 듣는 음악은 소모적이고 도구적이지 않나. 음의 울림이 닿는 지점. 떨림. 음이 흔드는 기억들. 그런 것들이 외려 듣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은 음악은 쌓이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적어도 다시 찾아듣게되는 음악. 듣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은 그 음악을 온몸으로 들었던 그 기억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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