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창고'에 해당되는 글 24건

  1. 대포항 새우튀김 16 2009.06.21
  2. 지난 겨울 눈 풍경 4 2009.04.30
  3. 아마도 천변풍경 10 2009.04.14
  4. 이태원 뒷골목을 거닐다 6 2008.09.23
  5. 풍경은 언제나 2008.09.15
  6. 어느 비오던 날 2008.06.28
  7. 조카, 규은이 2 2008.05.26
  8. 2007년의 술한잔이 그립다 2008.01.23
  9. 2007년, 초여름의 기억들 6 2007.09.22
  10. 나의 모교, 고려대학교 19 2007.06.09

대포항 새우튀김

from 사진창고 2009. 6. 21. 12:19

며칠전 짬을 내서 양양에 다녀왔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몸도 지치기도 했고, 번거로운 일들을 치르느라 힘들어 했을 K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아직 성수기는 아니라 한산해서 다행이었다. 7,8월 이곳은 상상하기도 겁이 났다. 사람이 없어 스산하지도 않고, 사람에 치여 시달리지도 않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기억하기위한, 떠나기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저 눈감고 쉬는데만 열중했다. 

숙소 근처에는 별달리 먹을게 없어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저녁에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속초의 대포항으로 갔다. 대포항에서 다녀온 다음날 꽤 비싼 자연산 도다리 회도 배불리 먹었고, 그 전날에는 강원도 한우도 몇점 먹었는데, 돌아와 생각하니 이상하다. 그날 저녁에 대포항에서 더운 김 호호 불어가며 먹었던 새우튀김이 계속 기억이 난다. 워낙 저렴한 입맛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두마리에 3천원하던 바로 튀긴 큰새우 튀김. 기름 뚝뚝 떨어지는 비닐봉지에 담아와 강원도 밤바다 옆 주차장 벤치에서 바람을 맞으며 먹었다. 새우 머리까지 한꺼번에 튀겨낸 강원도 대포항 새우튀김. 머리부터 한입 베어물었더니 입안가득 신선한 새우향이 가득 퍼졌다. 이런게 바다냄새고, 펄떡거리는 신선함일까. 그게 아니면 별다를 것 없는 새우튀김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을거다.

돌아오는 길에 출출할때마다 K와 새우튀김 얘기를 했다. 정말 맛있지 않았냐고 얘기하면서. 대포항에 일렬로 늘어선 새우튀김 가판대는 어느 풍경보다 장관이었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 늘어선 가판대 사진을 보자니 침이 다시 고인다. 어떤 아름다운 바다풍경보다, 사람냄새 진동하는 그 대포항 튀김집 가판이 더 장관이었고,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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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눈 풍경

from 사진창고 2009. 4. 30. 13:58

이년을 넘게 쓴 핸드폰. 번호가 019로 시작해서 가끔 '지독하다'는 타박도 듣는 2G폰. 물건을 사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 습성 탓에 내 평생 3번째의 전화기다. 2000년에 처음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으니 매번 3년이상씩은 써왔나보다. 자주 바꾸는 친구들이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전화와 문자외에는 쓰는일이 거의 없어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처음 살때는 micro-sd를 사서 노래도 담아놓고 썼는데 어느샌가 사라졌고 (아마 카메라에 들어갔으리라) 오늘은 드디어 내장메모리가 꽉 찼다는 메시지를 토해냈다. 덕분에 가끔 찍어두었던 핸드폰 사진들을 정리했다. 

작년 겨울쯤인가. 퇴근길 버스에서 내려 흐드러지게 내리는 눈발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장 찍어두었다. 지난 겨울, 가장 아름다운 겨울 풍경으로 기억되어있는 순간. 충분히 내려 쌓여있는 풍경보다 막 내리기 시작하는 눈은 거칠고 당당했다. 세상을 다 덮을 것 같은 기세로 쏟아지던 눈. 눈인지 비인지 구별이 쉽지 않지만, 쏟아지는 눈은 풍경을, 그리고 시선을 '압도'하고 있었다. '와...'하는 탄성과 동시에 핸드폰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회사근처를 산책하고 나니 등쪽에 땀이 흐른다. 내 불길한 예감대로 계절은 이대로 여름을 향해가는 듯 하다. 흐름을 바꿀 순 없고 지난 겨울, 눈의 서늘함을 기억해두고 싶어 올려둔다. (사진 질은 고려치 마시길) 지나간 혹은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겨울에는 여름을 그리워했고 이제는 겨울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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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천변풍경

from 사진창고 2009. 4. 14. 21:28

얼마만의 사진포스팅일까. 거의 8개월이 다되어간다. 여름쯤 현상하려했던 사진을 덜컥 맡겼다. 3롤쯤 된다. 작년 여름부터 지난 일요일까지의 사진들이 촘촘히 박혀있더라. 곱씹어 보고싶을때 한장씩 꺼내서 '說' 풀어볼지도 모르겠다. 1년여의 시간동안 묵혀두었던 사진이라 더 늦게 보아도 상관없었지만, 지난 일요일 찍어둔 봄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의 햇볕은 꺼내놓지 않으면 사라질것 같았다. 또 오는 것이 봄인데 올해는 유난히 조급해진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당연하게도 모두 펜탁스 KM으로 찍었고, 필름은 후지오토오토(아직도 많이 남았더라. 언제 다 찍나), 렌즈는 50mm, 조리개는 2.0에서 5.8사이일거다. 뇌출계로 찍는 탓에 그때그때 감으로 돌리다보니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뭘 바래) 햇빛이 이렇게 강할 줄 알았다면 조리개를 더 조일걸 그랬나 싶긴하다. 이렇게 하이라이트가 날아가버리다니. 근데 펜탁스 KM의 완전수동식 바늘 노출계는 언제나 적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건전지 넣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야. 크크. 클릭해서보면 그나마 낫다. 어디까지나 그나마.

필름사진은 '담에는 그냥 디지털로 찍어야지'하고 마음먹다가 현상해서 눈으로 보고나면 나도 모르게 비어있는 카메라에 다시 필름을 끼워넣게 된다. 사진결과물은 언제나 그저 그렇지만, 이유없이 약간 설레이는 맘이 된다고 할까. 어쩐지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 같기도 하고. 여튼 묘한 매력이 있다. 그때도 말했지만, 아날로그를 아날로그로 담아내는 것은 여전히 디지털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아니면 셔터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 탓일 수도 있고. 그게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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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찍어놓은 이태원 사진들을 만지작 거려본다. 공간과 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아 천천히 움직이면서 사진 한컷 찍는걸 좋아하는데, 요즈음은 걷는 시간이 참 많이 부족했다. 자연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꽤 추웠던, 봄을 기다리던 늦겨울 쯤이었을거다. 겨울치고는 가벼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다 감기에 걸렸을만큼 바람이 매서웠다. 



녹사평역 맞은편 초등학교가 자리잡은 언덕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생활공간으로서의 이태원을 만날 수 있다.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랄까. 몇걸음 걷다보면 터키음식점부터, 사진에서 보이는 호주관련샵, 인도음식점, 이슬람가게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을 지나면서 꽤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잘 차려진 가게들은 아니지만 소소한 이국의 정취를 맞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문화를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꾸며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상이 '고국'의 동포들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진솔하다고 할 수 있을거다.



거리를 걷다가 예쁜 간판을 보면 나도 모르게 셔터에 손이 간다. 참을 수 없는 셔터 본능이랄까. 위의 호주샵을 지나 조금 걷다가 발견한 가게였다. 강남이나 삼청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느낌의 가게일지도 모르겠으나 이태원 뒷골목에 위치한 곳이라면 들어가서 한끼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중해의 비스트로라니, 왠지 태양볕이 가득해야 더 어울렸겠지만, 이날 그늘이 드리워져있었고, 날은 꽤 쌀쌀했다.



이태원을 걷다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용산구에있는 쓰레기관련 경고문에는 3개국어가 인쇄되어있다는 것. 한글, 영어, 아랍어. 아랍어가 인쇄되어있는 경고문이라니. 무미건조한 경고문인데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살고 있는 거다. 삶으로 말이다. 일본어와 중국어가 없다는 게 이상했지만, 당연하게도 이 공간은 관광지가 아니라 거주지 아닌가. 구청도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랍어를 적어두었는데(내용이야 어찌됐든), 우리의 이명박 정부는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알 수 없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다.(갑자기 울컥) 소통은 이해와 노력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거 아닌가. 



까사벨라, 매종, 비발디, 티파니, 일마레, 켄트, 카르멘. 그리고 꽃과 나무. 벽이 낡아 칠해놓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지만 이태원이기에 그 언어는 울림이 있었다. 로즈 스트릿이라니. 이태원 거리를 걷는 소소한 기쁨.



이태원 뒷골목을 걸어내려와 조금 걷다보면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있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태원을 걸어도 항상 한남동쪽 리움주변이나 아니면 해밀턴호텔 주변을 걷다보니 모르고 있었는데, 독특한 느낌의 앤틱 상점들이 꽤나 많이 늘어서있다. 그저 구경만 하고 지나친다면 나쁘지 않을것 같은데 마음에 들어 구입하고 싶다면 꽤 비싼 비용에 고개를 흔들게 될것 같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아놓고 핸드폰 번호를 적어두었는데, 사러온 사람이 적어서 그렇기도 하겠고, 사지도 않을 사람들의 서성임이 싫어 그럴 수도 있겠다. 문은 걸어 잠궜지만 쇼윈도를 마주하고 찬찬히 둘러보면 고풍스러운 유럽의 안방, 혹은 거실을 느껴볼 수 있다. 이 곳을 둘러보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며'가 생각났다. 고양이 백작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



화려한 촛불도 있고, 샹들리에도 있고, 옛스런 유럽풍 가구도 있고, 흠집마저 아름다운 책장도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이 단단한 가방이었다. 족히 몇십년은 되었을 법한 낡은 가방. 다락방에서 열어보면 추억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이야기가 잔뜩 쌓여있을 가방이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뭔가 추억할 거리를 차곡차곡 넣어두고 싶었다.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아서였을까. 이태원 유흥골목은 스산했다. 시장근처 맥주집에는 오후인데도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는 흑인 몇몇이 있긴 했지만, 오픈을 준비하는 술집들은 오랫동안 닫혀있던 것처럼 어둡고 침울했다. 누구에게는 불온한 해방구였을수도 있고, 말초적인 본능이 부딪히는 공간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내 눈에는 이 공간도 점점 밀려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 걸었더니 배가 고팠다. 해밀턴 호텔 옆에 자리잡은 '마이 타이'라는 태국음식점. 홍석천이 운영하는 가게라고 하는데 꽤 잘되는지 볼 때마다 사람이 많다. 성적취향으로 인한 차별을 심하게 겪은 사람이기에 이런 사업적인 성공이 반갑다.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사회 동성애자의 권리향상에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 음식맛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하던데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닥 땡기진 않는다. 이 주변은 굳이 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않아도 테라스있는 가게들이 많아 길 쪽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볕이 좋은날에는 샌드위치에 커피한잔을 마시고 앉아있어도 꽤 근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밥을 먹고,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고민없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스타벅스야 어디나 다 똑같지 않겠냐마는 (심지어 음악마저 본사에서 제공하니) 이태원의 스타벅스는 장소탓에 외국인이 많아 이질감이 조금 더 느껴진다. 내외국인의 비율이 60/40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게 커피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많다. 하긴 그들에게는 익숙한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니. 근데 우리는 왜 외국에 가면 한정식집보다 오히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가 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미국식 스탠더드가 물밀듯이 파고들다보니 그게 이미 로컬이 되어버린거다. 커피와 머그가 촘촘히 쌓여있는 풍경은 내 눈에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라, 그걸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맘이 편안해진다.  



이태원 메인도로변은 화려한 레스토랑이나 음식점, 세련된 옷을 파는 곳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아직도 '짝퉁'을 파는 가게들도 많고, 뻐꾸기처럼 불러대는 호객행위를 피해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다양한 옷가지나 가방, 신발들을 구입할 수 있다. 이 골목은 세련과는 조금 다른 이태원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에서 찍어봤다. 문은 다 닫혀있었지만, '대학과 잠바'라는 가게이름에서 보듯이 이 곳에서 오랜 세월 머물렀던 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낮이 되면 미국대학의 로고부터 각종 대학의 문양을 달아놓은 옷들을 볼 수 있다. 



이태원 뒷골목모습. 정확히 어디쯤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이태원 대로변에서 조금 떨어진 낡은 주택은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태원, 한남동쪽 지금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있을 그 공간도 재개발이 되고, 재건축이 되면 다른 사람들로 대체될 거다. 그때 쯤이면 이 곳의 모습도 꽤나 달라져있겠지.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있는 서울의 재건축, 재개발은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거주민의 재정착율이 채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만을 봐도 그렇다. 그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다르지 않을거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밀려나 다른 곳으로 쫓겨간다.



이태원을 걸었던 그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고민스럽네. 너무 예뻐 담아본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알게모르게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고있다. 단군아래 한민족은 동일한 핏줄을 가진다는. 일종의 순혈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일본의 귀화정책에 대해서는 격분하면서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눈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같은 외국인인데도 서구와 비서구를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이태원은 분단이후 미군주둔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공간이다. 그 후 반세기가 지나며 많은 외국인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면서 우리들만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을 다양성을 지닌 공간이 되었다. 조금만 둘러보면 느낄 수 있을 만큼 이태원은 독특한 문화적 가치가 있다. 이 사진의 아이가 우리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에 힘들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충분히 열려있으면 이태원은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 언어, 인종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을거다. 이태원은 그럴 가치가 충분한 공간이고 삶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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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언제나

from 사진창고 2008. 9. 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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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빛바랜 사진은 몇 십년전 시골풍경 같지만, 올 초에 아버지 고향 동네(전남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를 찍은 사진이다. 어떻게 찍었냐고 혹시 묻는 분이 계시다면...할말이 없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이런!)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아버지 고향쪽에 있어서 부모님을 모시고 새벽에 차를 타고 내려갔었다. 어스름 새벽에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만 눈에 들어와 잘 몰랐었다. 해가 뜨고 서울보다 몇 배는 따사로운 햇살이 옛 동네 구석구석을 비춰주고 나서야 알아버렸다.

희미한 옛기억을 더듬어 봤다. 어린시절 몇 번 와보고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그 곳은 그대로 였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변한게 없다니...어떻게 그럴 수가있을까. 오히려 예전보다 쇠락한 느낌의 그 곳은 내 맘까지 애잔하게 했다. 인적도 드물고, 보이는 사람들도 구부정한 허리춤에 손을 대고 힘겹게 걷는 어르신 뿐이었다. 균형발전은 허울이고, 오히려 이 땅이 죽어버릴까봐 아니 이미 죽어버린건 아닐까라는 생각. 풍경은 그리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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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쪽에서 하얏트 호텔을 거쳐 한남동으로 내려가는 남산길은 참 좋다. 남산도서관쯤에서 용산쪽을 내려다 보는 경치도 그만이고, 양쪽 가로수길이 시원하게 뻗어있고 길도 적당히 다이나믹 해서 운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간에 차를 세워두고 남산공원을 잠깐 걸어도 도심한복판의 느낌은 이내 사라져 버릴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이 풍경은 시청쪽을 등지고, 햐얏트 호텔 입구를 마주하고 있는 삼거리 길이다. 항상 하얏트와 이태원길로 들어서려는 고급차가 즐비하고, 손님을 태운 혹은 태우려는 택시로 북적거린다. 처음 이 길에 섰을때 알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었다. 남산주변은 너무도 익숙하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임에도 어쩐지 '그들만의 공간'이라는 느낌. 후암동과 이태원동이 극명하게 나뉘는 도시 경계선을 바라볼때도 같은 감정이었다. 공존하지만 섞이지 않는 두터운 경계. 길은 어디든 열려있지만 길이 닿는 공간은 언제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엄연한 현실. 이 사진은 그런 느낌없이 무미건조하다. 풍경은 언제나 제자리 그대로이니까.

덧) 사진 올리고 몇마디 끄적거려놓고 보니 별로 좋은 사진도 아닌데다가 쓸쓸하기까지 하네. 다음엔 시원하게 달려나가는 풍경사진을 올려놓아야지. 제주도 초원아니면 교토가는 기찻길 풍경. 사람냄새는 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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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오던 날

from 사진창고 2008. 6. 28. 15:08

필름사진이라 정확히 며칠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치고는 꽤 많은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무심히 창밖을 보았는데, 까치 두마리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육중한 변압기 아래 좁은 공간에서 위태롭게 나란히 앉아있는 까치 두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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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는 날씨에 전신주에 앉아있는게 안락한 거처는 아니었을거다.
그 좁은 공간에서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지,
계속 머리를 움직이며 서로를 응시하기도 하고, 반대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 좁은 공간에 들어앉아 비를 피하고 있는 까치 두마리의 생존.
모습이 이뻐보여 셔터를 눌렀는데, 지금보니 참 대견하다.

자주 찾아오는 곳이었는지, 거세지는 비를 피하기 위한 임시거처였는지 모르겠지만,
무섭게 쏟아지던 비를 피해 그 전신주 안에 앉아 비를 피하는 센스라면
그 녀석들 지금도 어디쯤에서 거친 야생의 서울생활에 적응하며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요즘 같이 비오고 비바람부는 세상에서,
잠시 비 그칠때까지 쉬어갈 공간조차 없이 내몰리는 사람들 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문득 몹쓸 체념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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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규은이

from 사진창고 2008. 5. 26. 23:44




조카, 규은이. 태어나면서 부터 내 렌즈에 들어온 기특한 녀석. 틈틈히 찍어 모아놓은 사진이 제법 된다. 뜬금없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앉아 그동안 찍어두었던 몇장의 조카 사진을 정리해본다.

렌즈를 마주한 아이의 표정이 자연스러운건 아이는 렌즈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일게다. 그저 조카의 눈에는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수한 사물들 중에 하나일 뿐. 자신을 드러내야하는 "보다 - 보여지다"라는 관계가 사라진 자연스러움. 그래서 이 아이를 마주하고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쉽게 셔터에 손이 간다.

조카가 바꾸어놓은 많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 바꿀 많은 관계들.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살아가면서 배우고 느끼지겠지만, 건강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랄거란 기대를 해본다. 이모부로서 지켜봐줘야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조카 규은이를 언제나 지금처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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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시니컬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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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 두시쯤, 거실에 내리쬐는 햇살이 참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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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깨끗한 아이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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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효진이는 조카를 보면 언제나 이런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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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제법 숙녀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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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만지작거릴때는 대단한 집중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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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사이에서 사랑받는 모습. 제 손으로 아이를 먹일때 부모는 가장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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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쯤 부서 송년회 자리. 오랜만에 GX-10에 50mm 수동렌즈를 끼워넣고 부딪히는 술자리 사이로 셔터를 눌러댔었다. 한해의 끝을 한해를 시작하는 이즈음 기억하는 건 어쩌면 참 바보 같고 무기력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새로 시작하는 한해가 무겁고, 힘에 겨워 차라리 흘러가버린 지난해를 추억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한 20일 넘게 지내본 2008년은 뭐 그리 큰 희망도 즐거움도 의욕도 주지 못하고 있다. 내 마음가짐이 어때야 할지 그 방향성 조차 잡지 못한 채로 하루 하루 달력을 넘기는 건 분명 내 주변의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닌걸 알면서 그렇게 보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술자리의 술은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냥 그런 사람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술로 풀어보려는 건 이 또한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술자리가 아니라 한해를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함께 생활한 파트 사람들과의 술은 그 자체로 기분 좋고 부드러운 법이다. 회사 회식에서 좀처럼 누리기 힘든 강요하지 않는 술자리이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알탕 사진과 줄지어 늘어선 술병, 그 사이에 흘렀을 이야기들, 웃음들, 힘겨운 미소들을 보고 있자니 2007년이 벌써 그립다. 술한잔이 간절해진다. 두손 쳐들고 달려가야 할 2008년의 술한잔이 아니라 한해 마무리 짓는 푸근한 두손으로 기워올린 술한잔이 간절해진다. 이제 한달도 지나지 않은 2008년의 출발선에서 2007년의 마지막, 그 술자리를 기억하는 나는 분명 '과거지향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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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한 600장 넘는 사진들을 '기계적'으로 담다보니 조금은 지치지 않았나 싶다. 가끔 찍고 싶을땐, 펜탁스 필름카메라를 들고 털레털레 다닌다. 그래서인지, 한롤을 찍는데도 꽤 오랜시간이 걸린다. 아직 셔터를 아낄 때는 아닌것 같은데, 필름셔터 앞에서는 조금 망설여진다.

지난 초여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정리했다. 모두 내 사랑하는 펜탁스KM으로 담아둔 것으로, 4번째 롤쯤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찍은 것도 있고, 효진이랑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도 있다. '와'하는 탄성은 나오지 않을지라도 필름은 '샷의 무거움' 때문인지 그 시간을 단단히 붙잡는 힘이 있다. 프레임 안에 그때의 이야기를 담아놓는 느낌이랄까. '아날로그'인 피사체를 '아날로그'로 기록하는 본질적인 유사성, 디지털 비트로 변환하지 않은 '그 느낌 그대로'를 필름사진에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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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하얏트 호텔 로비 입구에 놓여져있었던 꽃. 꽃이름이 무얼까 궁금해진다. (국화종류가 아닐까) 호텔을 많이 가본건 아니지만, 햐얏트 호텔은 로비의 고급스러움, 번잡스럽지 않은,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이 있어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다. 햐얏트 로비의 다소 어두운 조명 탓에 밝고 화사한 느낌은 나지 않지만 길게 놓여져있는 꽃이 싱그러움을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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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표정. 디지털의 매끄러움은 아니지만, 밝은 형광등 불빛이, 확산조명을 비춘 것처럼 부드럽게 나왔다. 제대로 된 조명을 비추고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투명한 느낌, 표정속의 천진함이 담겨있어 맘에든다. 이런 표정만 지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게 삶이고, 생활이겠지. 하지만 그 삶과 생활의 무게를 함께 덜어낼 수 있다는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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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티섬플레이스. 주문하고 있는 효진이를 담았다. 신촌에 있는 티섬플레이스는 자주갔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서 매장내에 컴퓨터가 놓여져있어 좋았는데... 대학로 걷다가 반가워 들어갔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진열창에 탐스런 케익들이 기억난다. 디지털처럼 화이트밸런스 조절이 되지 않아 붉은빛이 많이 들어갔지만, 그래서인지 따뜻한 느낌이다. 어두운 부분의 그레인, 포근한 텅스텐 빛, 내가 필름을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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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즈음에, 오전에 남산 산책로를 걸었다. 서울 한복판 남산이라도 있어, 그나마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다. 아담하게 꾸며진 공원이 마음까지 깨끗하게 만들어주었다.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그 향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한컷 찍어보았다. 꽃망울이 예쁘게 맺혔다. 코를 대면 향이 날 것만 같다. 2007년 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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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길. 리움을 지나쳐 밥을 먹기 위해 걸어내려왔는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한산했다. 해밀튼 호텔이 있는 쪽보다 한결 한적해 구경의 즐거움은 덜하지만, 걷기 좋다. 그녀가 왜 웃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놓치지 않고 그 웃음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뭐 대단한 것이겠는가. 내 눈앞에서 잠깐 스쳐지나가 영원히 잊혀질 무엇인가를, 짧은 셔터로 분절해 사각 프레임에 담아내는 것. 그게 사진이 가진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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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천'이라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한컷. 창가의 햇볕이 화분에 쏟아져내리는게 예뻐보여 찍었는데, 조리개를 좀더 열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햇볕이 강하지 않았던건 아닐까. 어두워 화분의 초록에 눈길이 더 간다. 한낮의 햇빛, 한참 더워질 여름을 향해가는 2007년 초여름의 햇빛. 나의 사진은 2007년 초여름을 이렇게 기억하고, 프레임에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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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는 한시간 반정도 버스를 타고 다녔던 학교가 이제는 30분도 안걸리는 지척이다. 오래걸리는 등하교길을 핑계로 가끔 수업을 빼먹기도 했었고, 학교근처에서 술 먹다가 막차시간 다가와 엉덩이 털면서 야속해하기도 했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 학교랑 더 가까워졌다는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감정적인 거리감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졸업하고나서 좀더 가까워졌을까?)

볕이 좋은 토요일에 차를 몰고 가다가 문득 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딱히 어딜 가고자하는 곳이 없었던 까닭이 90퍼센트 정도는 되었겠지만, 손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로 좋든 싫든 횟수로 7년을 몸담았던 공간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무슨 상념이 파고들 공간도 없고, 이 곳이 이렇게 변했네라고 할만큼의 시간도 아직은 쌓이지 않았지만, 한번쯤은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쉴수있는 곳이 되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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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제기시장 맞은편쪽에 세워두고 뚤린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 정문을 향해갔다. 이 작은 골목길은 여전히 사람 두세명 지나갈 공간을 열어두고 있었다. 1,2학년때 자주 지나다녔던것 같은데, 그다지 남아있는 기억은 없다. 대부분은 술에취해있었거나, 아니면 너무 어두웠거나, 아니면 앞만 바라봤기 때문이겠지. 학교 앞 정문쪽의 후줄근함, 그래도 흔적은 남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렌즈로 다시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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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들어가기전 정문 담벼락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학교때는 사진에 관심이 없었으니, 사진기를 들고 여기에 서본 것은 처음이었다. 좀 잘 찍어보고 싶어 서서 렌즈 초점과 조리개를 만지작거리며 뷰파인더를 보고 있으려니 신호대기에 걸려 지나가는 차들의 시선이 느껴져 화끈거렸다. 사진을 찍었던때가 부처님오신날 무렵이어서 근처 개운사에서 달아놓은 연등들이 바람에 날렸다. 내가 필름 사진의 느낌을 사랑하는 이유는 며칠전 찍어도 마치 오래전 찍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의 느낌' 때문이다. 그때의 그 시간, 그 느낌을 가장 잘 담아줄 수 있는 것은 필름이 아닐까 라는 '착각'이 DSLR보다 필름SLR을 손에 쥐는 이유인 듯 하다. 쨍한 볕에 흔들이는 연등과, 옆에 버티고 서있는 돌 담의 세월 탓에 내 기억에 남아있는 한컷을 꺼내놓은 것 같아, 이 사진이 맘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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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들고 교문에 들어서면서 셔터를 누를 곳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다녀봐도 담고싶은 곳은 별로 없었다. 먼데서 여행온 사람처럼 기념사진을 누르듯이 대강당 옆에 서서 서관을 찍어봤다. 무슨 학교 홍보캘린더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서인지 한장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 학생들 등록금, 아니면 기업 기부금을 긁어모아 학교를 뜯어고치는데 여념이 없는 재단이라서 그런지 예전부터, 지금도 여전히 못보던 건물이 올라가고, 길이 생기고, 멋드러진 조경이 꾸며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옆 동네 경영대의 '상전벽해'를 입벌리고 보다보니, 유행가 가사같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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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고대신문을 훑어보려 홍보관에 들렀다가 눈에띄는 포스터가 있어 찍어봤다.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과 경계' 여러번 읽어봐도 선뜻 와닿지 않는 제목에, 맑스의 캐리커쳐가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보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도대체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란 뭘까? 총학생회 20주년 기념강좌라니 한번 들어보면 도대체 뭐라고 할까 순간 궁금해졌다. 정말 뭐라 답을 해줄까? 이런 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학교 한구석에 자리잡은 사회과학 강의 포스터가 나에게도 생뚱맞아 보이는 걸 보면 주변이 변했다는걸 실감하게된다. 아직까지 이런 포스터가 이곳에 남아있다는게 대견했지만, 아직도 의미있는 담론일까라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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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출해져 학교때 자주갔던 후문식당에 들렸다. 백반보다는 오징어덮밥을 시키곤 했었는데, 이 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찬으로 '떡볶이'를 내어주고 있었다.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서 밥을 먹은 이유가 떡볶이였던것 같다...)  분명 1인분 주문을 했는데, 밑찬은 2인분스럽게 나와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입학하고 500원밖에 오르지않은 밥값에 골고루 감사히 먹었다. 10년이 넘었지만 500원남짓 오른 밥값, 그래도 식당은 계속 문닫지 않고 버텨온걸 보면 학교밖 물가만 천정부지로 뛰었나보다. 복학을 하고 서는 학교에서 혼자 밥먹는 일이 곧잘 있었는데, 학교근처 식당에서 혼자 밥숟갈을 뜨고 있으니, 졸업을 앞두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그 답답함이 잠깐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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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도 많이 달라져 예전의 열람실이랑 구조가 다 바뀌어 버렸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은 변화를 느낀 곳. 출입가능한 학생증도 2005년에 이미 만료가 되어버려 평일에 와서 갱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출입을 하게 해준다니, 그간 꼬박꼬박 바친 등록금이 아직은 조금은 남아있나 싶어 순간 고마워 할 뻔했다. 도서관을 돌아나가니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있던 돌들을 한켠에 치워놓고, 새하얀 대리석으로 치창할 모양새였다. 이 돌들이 어디로 갈지, 학교 한켠 자리를 잡을지 모를일이지만 공사판 옆에 세월이 켜켜이 쌓인 돌들이 흉물스럽게 치워진걸 보니 씁쓸했다. 학교발전이 건물 리노베이션으로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학교를 스쳐간 사람들의 기억들도, 그 안에 담긴 추억들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스러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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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하고보니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서관뒷편 벤치에 앉아 천원짜리 생과일 주스를 쭉쭉 빨아대며 고즈넉함을 즐기다가 렌즈를 들어 한컷 찍었다. 한쪽에는 너댓명의 여자아이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 잠시 당황했다. 갖은 포즈를 취하며 깔깔대며 웃어대는 그 아이들을 학교뒷편에서 마주하는 이질감. 머리를 들었는데, 내 위에 드리워진 하늘과 그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나뭇잎의 푸르름이 너무 좋아 셔터를 눌렀다. (조리개를 좀더 조여줄껄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뒷편의 흐려진 나뭇잎들도 운치있다.) 필름의 따스함이, 코닥 골드의 노란색 감도는 초록이 아름답게 맺혔다.

잠시 이곳에 앉아있다가 다시 교양관 뒷편 문으로 나왔다. 차안은 열기로 후끈거려, 필름이 녹아버릴 것 같아 시트밑에 놓아두었다. 가끔은 산책 겸해서 학교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다. 철저하게 타자인 채로 그냥 근처 공원을 가듯이 한바뀌 돌아보기에 '꾸며진 모교'는 그런대로 훌륭하다. 괜히 기억, 세월, 변화, 읽던책, 걷던길, 사람들 떠올려봐야 가슴만 답답하고, 돌아서는 뒷모습만 쓸쓸해질 뿐 아니겠는가.

렌즈의 객관적인 거리, 필름의 따스한 기록이 고맙다. 내 눈은 너무 주관적이고, 내 기억은 너무 날카로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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