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삶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에어컨이 아니면 늦은밤을 견디기 힘든 그 여름에,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서울 거리 한켠에서 아저씨는, 녹슨 철제통 안에 팍팍한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찬바람이 곁을 스치는 겨울밤이었다면 통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반갑고 따스해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여름으로 향해가는 더운 서울거리에서 고구마를 굽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은 물없이 먹는 군고구마처럼 막막하고, 답답해보였다.


Pentax KM, Kodak Gold 100, 50.4, 2007/5



"몇.개.나 팔릴까?"

씁쓸한 생각이 스쳐갔지만, 썰렁하게 그 길가에 서 있는 그 아저씨도 왜 그걸 모르겠는가. 두꺼운 골판지에 군고구마 2000원을 써내려간 심정은 어떠할까. 어쩌면 타오르는 통안의 불빛은 아저씨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절박함에 지난 겨울 쓰던 군고구마통을 꺼내 나왔을지도 모를일이다. 삶은 위대하다. 아니 삶은 눈물겹도록 강하다. 더운 여름 달궈진 통에 군고구마를 구워야 하는 이유, 내가 매일아침 힘겨운 눈을 비비며 본능처럼 버스에 올라타는 이유, 꿈은 잊혀지는 것이고 현실은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걷는 이유, 다 삶에 대한 맹목때문이 아니겠는가. 삶은 위대하다.

아저씨의 모습을 멀찍이 사진에 담으면서 "너무 푸근해보여서요"라는 말을 건넸는데, 돌아와 다시 보니 이런 생각만 든다. 천지인의 '청계천 8가'의 가사가 떠오른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네 삶을 위하여"

PS : 공감가는 이야기인 김대리의 직딩일기를 같이 붙여본다. 사람들은 참 다른 삶을 살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있는지도 모르겠다.



11월 22일-CD·DVD 수집에 목숨거는 시시한 내 청춘

30년 가까이 살면서 사유재산을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장난감, 내 옷, 내 여자 등. 대부분 부모의 것이거나,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 뿐이었다. 어쨌거나 돈을 벌게 되면서 DVD와 CD를 미친듯이 사모았다. 월급통장은 부모님께 맡겼으니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이제내 방 한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저 DVD와 CD들을 볼때면 나는 풍성해진다. 그래도 내가 지옥같은 사무노동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들을 찾는다.

대학때 소설을 써보겠다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는데 일주일 후 나는 미련없이 취업원서를 넣고 양복을 맞추러 다녔다. 28년간의 꿈을 단칼에 베어버린채, 나는 복제된 스미스 요원이 되어 ‘그저 회사원’으로 대한민국 일반 남성들의 삶속으로 섞여 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학대를 하듯 CD와 DVD를 사 모은다. 결국, 그저 그런 월급쟁이가 되어 무언가를 끝없이 사모으는 짓은, 허다한 소부르주아로 제 인생을 마감하는 게 전부일 뿐이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언제나 덜 불행한 길들만 택했다. 시시한 청춘이다. 대한민국 스미스 요원들에게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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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첫롤의 설레임

from 사진창고 2007. 4. 22. 20:31

필름을 펜탁스 KM에 넣고, 나름 쉽게 셔터를 눌렀다. 펜탁스 수동카메라에 찍힌 모습들이 궁금해서. 이런 기다림은 디카를 쓸때는 느낄 수 없는 느린 템포, 그래서 어색했는지도 모른다. 36장을 다 찍어내는데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다시 지울수도 없고, 되돌려 다시 찍을 수 없는 필름이기에 충분히 생각했고, 충분히 망설였다.

36장을 다 찍고나서 서툰 솜씨로 다시 필름을 감았다. 천천히 이미 기록된 시간을 되돌려 감는 기분.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 드르륵 거리는 필름 소리. 참 편안했다. 디지털은 절대 아날로그를 재현할 수 없다는 걸 점점 깊숙히 느끼고 있었다.

한롤을 현상 + 디지털스캔하는데 1500원을 받는 놀랍도록 저렴한 코스트코. 막히는 동부간선을 예상하고 일요일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맡기고 이런저런 것들을 구경하다가 1시간후에 결과물을 받아들었다. 설치된 피시에서 썸네일을 잠깐 보았는데, 독특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집에 돌아와 피시를 켜고, 시디에 담겨진 사진들을 훑어보면서 필름이란 이런것이구나, 필름의 느낌이란게 이런 것이라는걸 한장, 한장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 나이보다 오래된 펜탁스 KM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한컷은 지금 그 어느 디지털도 재현해낼 수 없는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대견했고, 행복했다.

피사체를 보는 감각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수동필름 카메라의 느낌은 그걸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후지 오토오토 200이 만들어내는 필름색감은 진득하고, 디지털의 쨍함이 날려버린 편안함과 따뜻함을 되살려주고 있었다. 신기한 것이, 내가 찍는 주변사람들의 표정과 느낌도 DSLR을 대할때와 달랐다. 그들도 자연스럽고, 그 프레임 안에서 편안했으며 그래서인지 그 안에 이야기까지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마져 받았다.

디지털과 필름이 굳이 반대편에 서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 또한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사진을 알게해준 필름 카메라가 고맙다. 사진이 기록의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대한 관심, 빈곳을 채워주고, 나의 감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디지털이나 필름이나 같은 곳을 향해있는 거 아니겠는가. 다른 느낌으로, 다른 감성으로.

아래 사진들은 모두 스캔된 이미지 그대로이다. 이 느낌에는 어떤 후보정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슬슬 한장 한장 조심스레 인화를 해서 집 한구석에 사진벽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겠다.


책상앞에서 처음 필름을 끼우고 찍었던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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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결혼식이 끝나고 선릉역의 카페데베르에서 몇장 찍었다. 바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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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동기 모임의 맏형. 기동형. KM의 인물느낌을 보여주려, 초상권의 압박을 무릅쓰고 올려본다. 노이즈가 아닌 필름그레인의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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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안 풍경. 아이맥의 테크놀러지도 옛날 기계의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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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맞은편 찻집이라서인지, 그쪽에서 근무하는 남정네들이 이 분을 좋아라 했다. 필름 50mm화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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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서있는 커피 사진. 의미없는 막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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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한컷. dslr의 무거움이 때론 영민하게 시간을 조각낸다면, 필름카메라는 그때의 느낌을 편안하게 이어준다. 영화의 한장면 같은 자연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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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안의 공간감. 백열등 빛이 예쁘게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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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 전에 카페 앞에서 한컷. 묵직하고 진득한 색감때문인지 시간이 프레임 안에 멈춘 것 같은 착각마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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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거의 떨어져가는 목련꽃을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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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 주차장 석벽. 벽을 타고 흘러내였을 물기. 깊은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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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낮이었는데도, 놀이터에 아이들은 없었다. 가끔 그네타는 아이들이 있긴 했었는데, 항상 이곳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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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그네. 하지만 쇠사슬의 단단함. 아직은 비워질때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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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봤는데, 하루밖에 안지났는데도 더운 날씨 탓인지 한뼘은 자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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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을 사면서 별 고민없이 투번들 셋을 구입했었다. 표준줌과 망원렌즈인데 나에겐 버겁고 더없이 훌륭한 렌즈이지만 최소조리개 3.5수준의 어두운 렌즈인 탓에 실내에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밝은 단렌즈가 눈에 자꾸만 아른거려 장터도 기웃거려보고 삼성에서 35.2 렌즈가 나왔을때는 구매 직전까지 가기를 서너번 했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아직 장비에 눈돌릴때가 아니라며, 허벅지 꼬집기라는 고전적인 욕망억제술로  자기최면을 걸었다.

얕디 얕은 심도표현, 실내에서 부담없이 찍을 수 있는 단.렌.즈. 그렇다, 간절히 원하면 얻는 거 아닌가?

몇달전부터 카메라 사고나서 조카 백일이다, 명절이다 카메라 들고 설치는 내가 눈에 들어오셨나보다. 오래된거라 쓰지도 못할거라며 관심있으면 장농에 넣어둔 카메라 가져가라고 며칠전에 말씀하셨다. 마침 기억이 나서 들린 나에게 건네주신 카메라는 팬탁스의 KM카메라와 딸려있는 50mm 표준 줌렌즈였다. 펜탁스 마운트 카메라인 GX-10을 가진 나는 그 카메라에 새겨진 '아사히 펜탁스'를 확인하자마나 소리를 질렀다.

행.복.그.자.체.

쓰지 않는 수동카메라라고 하셨을때는 니콘이나 캐논일 거라며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게 펜탁스 카메라일 줄이야. 손에 든 펜탁스 카메라를 보고서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최소조리개가 1.4인 탓에 이런 표현까지 가능하다. 저녁 먹으며 한컷.


관리도 잘 되어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렌즈며 카메라를 깨끗이 닦고 조심스레 렌즈를 꺼내 GX-10에 마운트 해보았다. 유격도 없이 잘 끼워졌다. 뭐니뭐니 해도 테스트 샷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바디를 M모드로 맞추고 MF모드로 변경했다. 그리고 조리개도 수동조절하는 렌즈라 조리개링을 1.4로 맞추고 감도 400으로 변경. 숨을 죽이고 초점링을 서서히 돌려가며 셔터를 눌렀다. 결과는 대만족. 바디에 디지털미리보기를 할 수 있어 노출맞추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한장한장 내 손의 조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 AF렌즈와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렌즈의 색감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맘에 들었고, 평소 연습해보고 싶었던 심도를 확인해보기 위해 내 방 책장을 테스트 삼아 몇장 찍어보았다. 조리개 수치는 1.4아니면 2.0정도로 한스탑 줄였을 것이다. 초점은 사진을 보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주변부의 흐려짐이 번들과는 차원이 다른 얕은 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리개 1.4



조리개 2.8


별다른 광원없이도 1/50정도의 셔터스피드로 무리없이 실내에서 촬영이 가능했다. 매뉴얼 포커스라는 단점과 노출 계산이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 조차 불편하지 않고 행복해지는 걸 보면 점점 사진찍는게 내 삶의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건 아닌가 한다.

또하나의 즐거움은 수동필름카메라를 갖게된 것이다. 펜탁스 KM기종인데, 완전수동필름카메라이다. 셔터, 조리개, 포커스, 필름감기를 모두 촬영전에 해주어야 한장의 사진이 가능하다. 세월의 때가 묻어있지만 앞으로 많이 사랑해주고 싶다. 이 놈의 몸안에 집안에 남아있는 필름을 넣어주고 한두컷 찍어보았다. 당연히 36장의 필름이 다 돌아가야 결과물을 확인해볼 수 있겠지. 그래서인지 한장한장 누르는 느낌이 신중하고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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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의 질감, 완전 기계식의 아날로그가 날 사로잡는다. 이 놈으로 내 삶을 담아볼거다.


드디어 나도 1:1바디를 소유하게 되었다. 또 갖고싶었던 필름카메라까지. 필름을 감고 눌러보는 둔탁한 셔터의 느낌. 대학때 이후로 참 오랜만에 해본 필름 넣기. 드르륵 거리는 필름의 느낌이 참 좋다. 당분간 사진찍으러 갈때 두 놈 모두 들고 다닐테다. 디지털로 충분히 찍어보고 최적의 설정으로 한장한장, 눌러야지. 벌써부터 내가 찍은 필름을 보고 싶은 조바심이 난다.

뜻하지 않게 삶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너무 흥분한 탓인지 글이 정말 두서가 없다.
"그리도 좋냐"라고 묻는다면 대답할거다. "너무 좋아 죽겠다"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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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점심시간에 '무엇'을 하기란 참 힘든일이다. 전쟁처럼 밥을먹고, 잠시잠깐 눈을 붙이고, 눈치보지않고 인터넷서핑을 즐길 수 있는 찰나의 시간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 잠깐의 여유를 위해 음식을 먹는 시간은 점점 짧아져 이젠 채 10분도 되지 않는다. 남미나 스페인처럼 느긋한 점심과 휴식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들과 즐겁게 얘기하고, 책을 읽고, 잠깐 주변을 걷고나서 낮잠을 청할 수 있는 여유만 된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다. 그렇게 하더라도 지금과 달라질건 없을 것 같은데, 우리네 삶은 너무 팍팍하다. 그리고 이젠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두어번 미뤄졌던 친한 회사동료들과 점심약속. 카메라를 흔들며 뛰어가 서소문 김가네에서 나눠먹을 김밥 몇줄을 샀다. 시립미술관 앞뜰에서 점심을 먹고, 때마침 주변을 채워넣고 있는 봄 빛에 기꺼이 렌즈를 내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마시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빛도 너무 좋았고, 그들이 즐기는 벚꽃의 송글송글한 느낌이 마음에 알알이 맺히는 것 같았다.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좁은 책상에 앉아 힘겨운 휴식을 취하기 보다는 그렇게 걸으며 이 봄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
꽃은 지금이 절정이다. 내 눈 앞에 피어있는 그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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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빛 좋은 주말. 평창동 주변길을 걸으면서, 하늘을 담고 싶었다.
쏟아지는 햇살속을 걸으며 렌즈를 바라보는 벅찬 경험. 그 푸르름을 고스란히 담을 수만 있다면.

무거운 카메라 들어 올려다보는 시선은 시원하게 내달리고 싶었겠지만,
어디를 쳐다봐도 거미줄처럼 뻣어있는 전깃줄이 답답하고, 매케했다.

그래도 그 사이로 빛은 여지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하늘은 그 푸르름을 나에게도 조금 허락하고 있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을 사이, 조각난 하늘.
그렇게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며 하늘 아래 살고 있었다.

GX-10,18-55,1/1600,f6.3,ISO200




GX-10,18-55,1/250,f10,ISO125



GX-10,18-55,1/1000,f11,ISO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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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18-55,1/1000,f11,ISO200



GX-10,18-55,1/2500,f5.6,ISO200



GX-10,18-55,1/200,f16,ISO200



GX-10,18-55,1/2500,f5.6,ISO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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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巢本能

from 사진창고 2007. 3. 29. 00:31

GX-10,18-55,f/5.6,1/10,ISO1000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카메라를 들고 멍하니 길을 응시하다.
어디론가 가라고 길은 온몸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태어날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터벅터벅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귀소본능, 그 무서운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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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파고드는 찬바람에 놀라, 장농에 넣어두었던 코트를 다시 꺼내입었다. 나의 성급함을 질타하며...

계절은 그리 쉽게 가고, 또 그리 쉽게 오는것은 아닌데
오는 계절에 설레 잊어버렸던 환절기 기억을 채워넣고 있다.
썰렁한 기온탓인지 한겨울 그랬던 것처럼 아랫입술 살짝 물며 현관문을 여는 요 며칠이 다시 익숙해진다.

2월의 어느 주말, 빛이 너무 좋아 오는 봄을 렌즈가득 담으려고 길 나서던 날 찍었는데,
지금 창밖에 날리는 눈을 보니 일러도 너무 일렀던 것 같다.

볕이 그립다. 걷어올린 팔뚝에 떨어지는 따스한 햇살 새기며 셔터를 눌러보고 싶다.
올 겨울이 남기는 이 마지막 자취만 사라지면, 금방 봄이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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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50-200, f/4.5, 1/320, ISO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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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18-55, f/5.6, 1/60, ISO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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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50-200, f/5.6, 1/160, ISO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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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50-200, f/5.6, 1/125, ISO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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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50-200, f/5.6, 1/160, ISO160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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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포스팅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바쁠건 없는데도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은 없는건가. 지난 휴일에 카메라 어께에 매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지금은 많이 따뜻해졌는데, 그때는 아직 봄기운보다는 겨울 끝의 집착같은게 남은 날들이었다. 뭐든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간결하다.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유난히 골목길을 찍은 것들이 눈에 띈다. 아직 배우는 터라 얕은 공간감이 느껴지는 사진들을 선호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난 소박한 골목길을 좋아했던것 같다. 번잡스러운 길보다는 한적하고,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골목길.

동물원의 혜화동 가사에는 '어릴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엔 다정한 옛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30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좁은 골목길의 추억이 있으리라. 나역시 세상모르고 뛰놀던 그 비좁은 골목길에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다. 지금 서울거리를 걸으며 어린시절 골목길을 찾는것이 쉽지는 않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눈여겨 걷다보면 가끔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른다. 꼭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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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1/160, f/5.6, ISO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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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1/100, f/4, ISO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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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1/25, f/4.5, ISO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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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1/100, f/4.5, ISO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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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1/30, f/4.5, ISO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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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집으로 가는길

from 사진창고 2007. 2. 1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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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X-10, 50-200, ISO400, f/8, 1/30


명절이 마냥 좋을때가 언제였더라. 오랜만에 못봤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동안 서먹했던 친척들을 다시 본다는 기쁨. 그런 달뜬 마음에 설레고 기분좋고 그랬던때.

나이가 한살 두살 먹어가면서 넙죽 절하고 세뱃돈을 챙기던 기억은 엷어지고, 빨간날이 다가오면 하얀 봉투에 부모님 얼굴 그리며 세뱃돈을 준비해야 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명절은 어릴때처럼 '그냥 기쁘고 좋은날'이 아니라 신경쓸게 많아지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날이 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김포집에 들렸다. 배 꺼지기가 무섭게 다시 차려지는 음식들에 항복을 하고 산책할 겸해서 카메라 들고 잠깐 나왔는데 이제 막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 모습이 어찌나 천진하고 경쾌하게 느껴지는지. 할머니 만나러 가는걸까? 엄마, 아빠 손 붙잡고 가는 그 길이 얼마나 신이 나고 즐거울지 짐작이 간다.

모두들 걱정, 근심은 막히는 길가 어디쯤에다 붙들어 놓고...설날, 집으로 가는길은 아이처럼 경쾌한 발걸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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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을 도려내어 삼청동에 다녀왔다. 차분히 걸어다니며 셔터를 눌러대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지만, 언 손을 후후 불어가며 삼청동 곳곳을 훔쳐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물론 예전만큼의 감동을 주기에는 삼청동은 이미 '내가 기억하는 삼청동 답지 않게' 변해버렸지만, 어쩌면 그게 이제부터 내가 기억해야 할 삼청동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충분히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내 사진기가 바삐 움직인 까닭도 그때문이다. 독특하지 않으면 이곳에 존재할 수 없다는게 일종의 불문율이라도 되는 것처럼 길변에 늘어서있는 가게들 모두 삼청동만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 뷰파인더에 잡힌 삼청동의 모습들은 이러했다.

Scene #1.
삼청동 골목에 들어가기 전에 마주하게 되는 미술관의 모습.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느낌의 건물과 장식적인 영어는 차분히 돌담길 걸어온 나에게 시각적인 이질감을 주었다. 옆에서 지켜볼 수는 있지만 왠지 들어가기 꺼려지는 단절감이랄까. 아쉬웠다. 경복궁 입구쪽 동십자각 건너편의 금호미술관의 모습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금호미술관'이라는 다섯글자가 친근함을 준다. 게다가 건물 전면에 보이는 그 여백의 미란, 창이없는 전면은 안에서는 답답할지 모르지만 바라보는 이에게는 깨끗하고, 시원함을 준다.


GX-10, 50-200, ISO 800, f/5, 1/15


GX-10, 50-200, ISO 800, f/5, 1/6


GX-10, 50-200, ISO 800, f/45, 1/125

Scene #2.
삼청동 입구에 도착했을때 날이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삼각대없는 상태로 한장도 제대로 담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한 중국음식점의 등불 아래서는 쉬이 발길이 떠지지 않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紅빛'을 잡아내고 싶은 욕망. 내 눈에 부딪히는 그 느낌 그대로를 렌즈에 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얼마나 많이 찍어야 빛을 이해할 수 있을까.

늦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홍등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음식점 이름이 '공리'인 것은, 그리고 이 음식점의 문 앞에 아름다운 홍등이 걸려있는 것은 그녀가 주연한 영화의 차용이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잠시나마 그 에로틱한 자태에 눈길을 뺏기는 것이.


GX-10, 50-200, ISO 800, f/5, 1/25


GX-10, 50-200, ISO 800, f/5, 1/15

Scene #3.
삼청동 골목가게들은 뭔가를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꽃도 팔고, 옷도 팔고, 구두도 팔고, 음식도 팔고, 악세사리도 팔고, 책도 판다. 예전에는 군데군데 '이곳이 사람사는 동네구나'라는 느낌을 주었던 쌀집, 세탁소, 목욕탕, 구멍가게 들도 보였는데, 지금은 아주 정성스레 시선을 두어야 그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언젠가 보았던 주민들의 이야기. 삼청동이 유명해지면서 오히려 생활은 불편해졌다는 말. 마을버스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래서 삼청동의 휘황한 불빛과는 다르게 힘들고, 고달파 보인다.


GX-10, 50-200, ISO 800, f/5, 1/10

한복도 팔고, (느껴지는 포스로 봐서는 혹시 판매를 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한복 갤러리인가?)


GX-10, 50-200, ISO 800, f/4.5, 1/20

구두도 판다. (여기서 사진찍으려다 안에서 찍지말라고 소리치길래 길 건너서 200mm로 쭉 땡겨 찍었다. 근데 잘 안나오더라. 쩝)


GX-10, 50-200, ISO 800, f/4.5, 1/30

하지만 지금 이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골목이 유명해지면서 정작 그곳에서 삶을 살아야 했을 사람들은 그 골목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번잡한 골목을 돌아 조금은 한적한 뒷골목에서 살고있는 사람들도 이미 떠날준비를 하고있지 않을까. 그들이 다 떠나버리면 이 곳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다. 여하튼, 밀려드는 차량의 행렬은 할머니의 귀가길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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