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는 한시간 반정도 버스를 타고 다녔던 학교가 이제는 30분도 안걸리는 지척이다. 오래걸리는 등하교길을 핑계로 가끔 수업을 빼먹기도 했었고, 학교근처에서 술 먹다가 막차시간 다가와 엉덩이 털면서 야속해하기도 했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 학교랑 더 가까워졌다는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감정적인 거리감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졸업하고나서 좀더 가까워졌을까?)

볕이 좋은 토요일에 차를 몰고 가다가 문득 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딱히 어딜 가고자하는 곳이 없었던 까닭이 90퍼센트 정도는 되었겠지만, 손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로 좋든 싫든 횟수로 7년을 몸담았던 공간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무슨 상념이 파고들 공간도 없고, 이 곳이 이렇게 변했네라고 할만큼의 시간도 아직은 쌓이지 않았지만, 한번쯤은 이런 저런 생각에 잠시 쉴수있는 곳이 되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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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제기시장 맞은편쪽에 세워두고 뚤린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 정문을 향해갔다. 이 작은 골목길은 여전히 사람 두세명 지나갈 공간을 열어두고 있었다. 1,2학년때 자주 지나다녔던것 같은데, 그다지 남아있는 기억은 없다. 대부분은 술에취해있었거나, 아니면 너무 어두웠거나, 아니면 앞만 바라봤기 때문이겠지. 학교 앞 정문쪽의 후줄근함, 그래도 흔적은 남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렌즈로 다시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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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들어가기전 정문 담벼락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학교때는 사진에 관심이 없었으니, 사진기를 들고 여기에 서본 것은 처음이었다. 좀 잘 찍어보고 싶어 서서 렌즈 초점과 조리개를 만지작거리며 뷰파인더를 보고 있으려니 신호대기에 걸려 지나가는 차들의 시선이 느껴져 화끈거렸다. 사진을 찍었던때가 부처님오신날 무렵이어서 근처 개운사에서 달아놓은 연등들이 바람에 날렸다. 내가 필름 사진의 느낌을 사랑하는 이유는 며칠전 찍어도 마치 오래전 찍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의 느낌' 때문이다. 그때의 그 시간, 그 느낌을 가장 잘 담아줄 수 있는 것은 필름이 아닐까 라는 '착각'이 DSLR보다 필름SLR을 손에 쥐는 이유인 듯 하다. 쨍한 볕에 흔들이는 연등과, 옆에 버티고 서있는 돌 담의 세월 탓에 내 기억에 남아있는 한컷을 꺼내놓은 것 같아, 이 사진이 맘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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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들고 교문에 들어서면서 셔터를 누를 곳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다녀봐도 담고싶은 곳은 별로 없었다. 먼데서 여행온 사람처럼 기념사진을 누르듯이 대강당 옆에 서서 서관을 찍어봤다. 무슨 학교 홍보캘린더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서인지 한장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 학생들 등록금, 아니면 기업 기부금을 긁어모아 학교를 뜯어고치는데 여념이 없는 재단이라서 그런지 예전부터, 지금도 여전히 못보던 건물이 올라가고, 길이 생기고, 멋드러진 조경이 꾸며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옆 동네 경영대의 '상전벽해'를 입벌리고 보다보니, 유행가 가사같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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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고대신문을 훑어보려 홍보관에 들렀다가 눈에띄는 포스터가 있어 찍어봤다.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과 경계' 여러번 읽어봐도 선뜻 와닿지 않는 제목에, 맑스의 캐리커쳐가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보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도대체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란 뭘까? 총학생회 20주년 기념강좌라니 한번 들어보면 도대체 뭐라고 할까 순간 궁금해졌다. 정말 뭐라 답을 해줄까? 이런 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학교 한구석에 자리잡은 사회과학 강의 포스터가 나에게도 생뚱맞아 보이는 걸 보면 주변이 변했다는걸 실감하게된다. 아직까지 이런 포스터가 이곳에 남아있다는게 대견했지만, 아직도 의미있는 담론일까라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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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출해져 학교때 자주갔던 후문식당에 들렸다. 백반보다는 오징어덮밥을 시키곤 했었는데, 이 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찬으로 '떡볶이'를 내어주고 있었다.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서 밥을 먹은 이유가 떡볶이였던것 같다...)  분명 1인분 주문을 했는데, 밑찬은 2인분스럽게 나와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입학하고 500원밖에 오르지않은 밥값에 골고루 감사히 먹었다. 10년이 넘었지만 500원남짓 오른 밥값, 그래도 식당은 계속 문닫지 않고 버텨온걸 보면 학교밖 물가만 천정부지로 뛰었나보다. 복학을 하고 서는 학교에서 혼자 밥먹는 일이 곧잘 있었는데, 학교근처 식당에서 혼자 밥숟갈을 뜨고 있으니, 졸업을 앞두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그 답답함이 잠깐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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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도 많이 달라져 예전의 열람실이랑 구조가 다 바뀌어 버렸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은 변화를 느낀 곳. 출입가능한 학생증도 2005년에 이미 만료가 되어버려 평일에 와서 갱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출입을 하게 해준다니, 그간 꼬박꼬박 바친 등록금이 아직은 조금은 남아있나 싶어 순간 고마워 할 뻔했다. 도서관을 돌아나가니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있던 돌들을 한켠에 치워놓고, 새하얀 대리석으로 치창할 모양새였다. 이 돌들이 어디로 갈지, 학교 한켠 자리를 잡을지 모를일이지만 공사판 옆에 세월이 켜켜이 쌓인 돌들이 흉물스럽게 치워진걸 보니 씁쓸했다. 학교발전이 건물 리노베이션으로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학교를 스쳐간 사람들의 기억들도, 그 안에 담긴 추억들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스러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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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하고보니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서관뒷편 벤치에 앉아 천원짜리 생과일 주스를 쭉쭉 빨아대며 고즈넉함을 즐기다가 렌즈를 들어 한컷 찍었다. 한쪽에는 너댓명의 여자아이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 잠시 당황했다. 갖은 포즈를 취하며 깔깔대며 웃어대는 그 아이들을 학교뒷편에서 마주하는 이질감. 머리를 들었는데, 내 위에 드리워진 하늘과 그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나뭇잎의 푸르름이 너무 좋아 셔터를 눌렀다. (조리개를 좀더 조여줄껄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뒷편의 흐려진 나뭇잎들도 운치있다.) 필름의 따스함이, 코닥 골드의 노란색 감도는 초록이 아름답게 맺혔다.

잠시 이곳에 앉아있다가 다시 교양관 뒷편 문으로 나왔다. 차안은 열기로 후끈거려, 필름이 녹아버릴 것 같아 시트밑에 놓아두었다. 가끔은 산책 겸해서 학교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다. 철저하게 타자인 채로 그냥 근처 공원을 가듯이 한바뀌 돌아보기에 '꾸며진 모교'는 그런대로 훌륭하다. 괜히 기억, 세월, 변화, 읽던책, 걷던길, 사람들 떠올려봐야 가슴만 답답하고, 돌아서는 뒷모습만 쓸쓸해질 뿐 아니겠는가.

렌즈의 객관적인 거리, 필름의 따스한 기록이 고맙다. 내 눈은 너무 주관적이고, 내 기억은 너무 날카로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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