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한 600장 넘는 사진들을 '기계적'으로 담다보니 조금은 지치지 않았나 싶다. 가끔 찍고 싶을땐, 펜탁스 필름카메라를 들고 털레털레 다닌다. 그래서인지, 한롤을 찍는데도 꽤 오랜시간이 걸린다. 아직 셔터를 아낄 때는 아닌것 같은데, 필름셔터 앞에서는 조금 망설여진다.

지난 초여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정리했다. 모두 내 사랑하는 펜탁스KM으로 담아둔 것으로, 4번째 롤쯤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찍은 것도 있고, 효진이랑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도 있다. '와'하는 탄성은 나오지 않을지라도 필름은 '샷의 무거움' 때문인지 그 시간을 단단히 붙잡는 힘이 있다. 프레임 안에 그때의 이야기를 담아놓는 느낌이랄까. '아날로그'인 피사체를 '아날로그'로 기록하는 본질적인 유사성, 디지털 비트로 변환하지 않은 '그 느낌 그대로'를 필름사진에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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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하얏트 호텔 로비 입구에 놓여져있었던 꽃. 꽃이름이 무얼까 궁금해진다. (국화종류가 아닐까) 호텔을 많이 가본건 아니지만, 햐얏트 호텔은 로비의 고급스러움, 번잡스럽지 않은,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이 있어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다. 햐얏트 로비의 다소 어두운 조명 탓에 밝고 화사한 느낌은 나지 않지만 길게 놓여져있는 꽃이 싱그러움을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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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표정. 디지털의 매끄러움은 아니지만, 밝은 형광등 불빛이, 확산조명을 비춘 것처럼 부드럽게 나왔다. 제대로 된 조명을 비추고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투명한 느낌, 표정속의 천진함이 담겨있어 맘에든다. 이런 표정만 지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게 삶이고, 생활이겠지. 하지만 그 삶과 생활의 무게를 함께 덜어낼 수 있다는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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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티섬플레이스. 주문하고 있는 효진이를 담았다. 신촌에 있는 티섬플레이스는 자주갔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서 매장내에 컴퓨터가 놓여져있어 좋았는데... 대학로 걷다가 반가워 들어갔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진열창에 탐스런 케익들이 기억난다. 디지털처럼 화이트밸런스 조절이 되지 않아 붉은빛이 많이 들어갔지만, 그래서인지 따뜻한 느낌이다. 어두운 부분의 그레인, 포근한 텅스텐 빛, 내가 필름을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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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즈음에, 오전에 남산 산책로를 걸었다. 서울 한복판 남산이라도 있어, 그나마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다. 아담하게 꾸며진 공원이 마음까지 깨끗하게 만들어주었다.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그 향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한컷 찍어보았다. 꽃망울이 예쁘게 맺혔다. 코를 대면 향이 날 것만 같다. 2007년 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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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길. 리움을 지나쳐 밥을 먹기 위해 걸어내려왔는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한산했다. 해밀튼 호텔이 있는 쪽보다 한결 한적해 구경의 즐거움은 덜하지만, 걷기 좋다. 그녀가 왜 웃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놓치지 않고 그 웃음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뭐 대단한 것이겠는가. 내 눈앞에서 잠깐 스쳐지나가 영원히 잊혀질 무엇인가를, 짧은 셔터로 분절해 사각 프레임에 담아내는 것. 그게 사진이 가진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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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천'이라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한컷. 창가의 햇볕이 화분에 쏟아져내리는게 예뻐보여 찍었는데, 조리개를 좀더 열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햇볕이 강하지 않았던건 아닐까. 어두워 화분의 초록에 눈길이 더 간다. 한낮의 햇빛, 한참 더워질 여름을 향해가는 2007년 초여름의 햇빛. 나의 사진은 2007년 초여름을 이렇게 기억하고, 프레임에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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