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되었고, 11월 5일을 기점으로 카드값 청구 기간도 지나고 해서 사려고 맘먹었던 시디를 고르고 있다. 그 날만 지나면 뭔가 사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마음이 달뜬다. 이 놈의 카드값 인생.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엔 뭘 손에 넣을까 심사숙고 하고있으려니 한숨이 나온다. 사고싶은 시디는 계속 늘어나고 그렇다고 다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매번 채워지지 않는 허기랄까. 요즘은 책보다는 시디에 더 손이 간다. 책 읽는 속도도 참 더디 가고 있어 아직 사놓고 안읽은 것들만 읽어도 올 한해는 휙 가버릴 것같다. 다행이지. 책마저 질렀다면...

최근의 관심이 우리 인디음악이니 당연히 골라놓은 것들도 그쪽 음악들이 많다. 가장 먼저 장바구니에 등록해놓은 것들은 장세용의 2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일곱날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Goodbye Aluminium. 스웨터의 Highlights. 눈뜨고코베인의 Pop to the People. 손지연의 3집. 등등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확정 리스트는 아닌게 당연하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을것 같다.




여기에 더해 가장 최근에 추가된 앨범이 바로 어른아이의 B TL BTL이다. 2006년에 나온 앨범인데 2년이 지났는데 아직 새앨범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 음반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 걱정이다. (정보가 많지 않아서 그저 짐작이다) 최근에 알게되었다. '상실'이라는 노래 때문에. 이 노래를 듣고 바로 구매목록에 어른아이의 앨범을 넣어두었다. 황보라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다. 이런 어쿠스틱 사운드가 요즘엔 귀에 잘 들어온다. 홍대의 이소라라고 하던데. 게다가 매력적인 여성보컬이라면 더더욱. 스산한 가사의 느낌도 그렇고. 한곡 들었지만, 앨범 전체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면 구매를 망설이기가 힘들다. 그저 연약한 포로가 될뿐. ;)

사랑후의 상실. 온기가 사라진 수척해진 얼굴이 노래에 그려지는 것만 같다. 꼭 나 때문은 아닌데 내가 있어도 너에겐 그저 귀찮기만 할뿐. 너를 놓쳐버리는건 나를 잃어버리는 것. 노래 중간에 느껴지는 '공백' 때문인지. 목소리와 기타의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 특히나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간 기타 스트로크, 그리고 잠시의 멈춤 후에 "기억이 안난 내가 행복했던 이유들"이 부분은 특히나 벅차다. 아, 하고 탄성이 나온다. 그저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잠 뒤척이는 새벽에 어울릴 노래. 특히나 생각하는 그 사람을 볼 수 없거나, 잊어버려야 할 때. 어쩌면 끝모를 상실감에 낮은 불빛 하나 켜두고 괴로워할지도 모르겠다.



어른아이 - 상실

1,2
1,2,3

오늘은 피곤해 보이는 너의 얼굴
아무말도 없었지
무슨일 있었던 걸까
종일 한숨만 쉬고 있어

모든게 귀찮을뿐야
귀찮기만 하다고 내 자신 너무 싫단 말
엉망이야 소용이 없어
지금 그에겐

잃어버렸어 나를
어딘지도 모르게
놓쳐버렸어 너를
따뜻했던 말 그날의 온기는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내 영혼

모든게 귀찮을뿐야
귀찮기만 하다고 내 자신 너무 싫단 말
엉망이야 소용이 없어
지금 그녀에겐

잃어버렸어 나를
어딘지도 모르게
놓쳐버렸어 너를
따뜻했던 말 그날의 온기는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내 영혼

기억이 안난 내가
행복했던 이유들
놓쳐버렸어 너를
따뜻했던 말 그날의 온기는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내 영혼
차갑게 식은 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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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음악이라 해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물론 한번 듣고서도 '꽂혀버리는' 노래가 있긴 하지만, 우릴때마다 짙은 맛을 내는 세작처럼, 진짜 참맛을 느끼려면 여러번 들어야 한다. 익숙해지니 좋다는게 아니라, 좋으니 익숙해지는 거랄까. 처음 듣고 귀에 솔깃하다가도 금방 질려버리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처음 들을때는 그저 그랬다가도 듣다가 어느 순간 확 다가오는 음악도 있다. 당연하게도 좋은 음악은 들으면 우려낸 진한 차처럼 깊은 맛을 주는 음악이다. 그런 음악은 시간을 함께 하는 법이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음악은 전형적인 '우려먹으니 맛이 느껴진 편'에 속한다. 처음 알게된 건 회사 후배의 아이팟에서였다. 흔히 얘기하는 '애플빠'였던 그 친구는, 1세대 아이팟을 목숨처럼 애지중지하고 다녔다. 플래시메모리 형태의 mp3플레이어가 대세였던 그때, 하드디스크 타입의 아이팟에 엄청난 음악을 채워넣어 날 놀라게 했던 그때. 그 녀석의 아이팟 리스트에 생소한 이름이 보여 플레이 했던게 바로 에리카 바두의 센세이셔널한 데뷔앨범 Baduism이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Rainism 생각이...비, 너란 놈은 대체 뭐냐)

에리카 바두의 음악이 한번 들으면 꽂힐 음악은 당연히 아니므로, 첨 듣고선 소개해준 그 녀석이 머쓱할 정도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들려준 곡이 당연히 On & On이었을텐데, 그냥 '목소리는 빌리 할러데이 같다. 꽤 들을만 하네'라고 아이팟 휠을 휘리릭 돌렸었다. 그리고선 한번 더 들어보라고 앨범을 줬었는데, 리핑해놓고 놔두었다. 그러다, 듣다듣다 물린다 싶어 다른것좀 들어보자고 에리카 바두의 앨범을 듣다가, 듣다가, 그래, 듣다가 그 짙은 맛을 느끼고야 말았다.

다른 네오소울 음악을 많이 들어본건 아니라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에리카 바두의 음악은 흑인음악, 소울음악임에도 끈적함이 덜하다. 이렇게 말하는게 소울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그닥 좋지 않게 들릴지 모르지만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담백하고, 청아한 맛이 있다. 흔히 느끼게 되는 소울 음악의 감정과잉, 꾸밈이 덜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지릿하게 찌르는 느낌이 아니라 톡톡 건드려주는 느낌이랄까. 계속 들으면 조금씩 배어나오는 음악이다. 

리듬은 조용히 받쳐주고 살짝 어깨들썩일 흥겨움과 그루브를 준다. 잘개쪼개진 리듬이 목소리와 불협하지 않고 목소리를 밀어주고 당겨준다. 잘 어울린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게다가 노래를 잘 뜯어보면 디지털스러운데도, 전체적으로는 아날로그적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전적으로 그녀 목소리의 다양한 변주, 탄탄함 탓임은 당연하다. 디지털은 끊임없이 아날로그를 지향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음악에 있어서 아날로그가 느껴지지 않는 디지털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

들으면 깊은 맛을 주는 이 앨범, Baduism은 그렇게 끊임없이 내 곁에서 플레이되고 있는 중이다. 2000년 발매된 Mama's Gun도 있고, 2003년 EP World Wide Underground도 있다. 그리고 올해는 New Amerykah라는 더블앨범도 발매되었지만 (읽어볼만한 인터뷰), 아직까지는 이 멋진 데뷔앨범이 제일 큰 울림을 준다. 우울하지만, 슬프고싶진 않을때. 그럴때 들으면 더없이 좋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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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녹음해놓은 통파일을 각 노래별로 분리해서 올려본다. (내가 이런 것까지 한다는 데에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좋긴 좋은가 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꼽고 싶은건 '흥겨움'이다. 음반 수록곡 한곡만 들어도 웃음이 빙그레 지어지고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된다. 그 가사가 루저의 한탄, 혹은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비참함, 애걸복걸이라고 해도 그 저변에는 흥겨움과 발랄함, 번뜩이는 재치가 있다. 뭐랄까, 지극히 한국적이라고 할까. '한국적'이라는 개념이 실체없이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렇게 규정짓고 싶어진다.

세련되지 않았으나, 그 꾸미지 않은 음악과 어우러지는 가사는 철저히 계산된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세련미가 느껴진다. 의도적인 촌스러움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장기하라는 아티스트의 음흉함이 드러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특히나 공연을 보면 그리 큰 돈을 들인것 같지 않은 손짓이나 행동들이 몇배의 관객 호응을 끌어낸다. 재기발랄하고 머리좋은 아티스트라는데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관객의 반응을 정확히 예측한 의도적 장치라고 할까. 그런 설정들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레 호응을 끌어낸다.

너무 신이난다. '달이 차오른다'에서 보여주는 날개손짓,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나를 받아줘'의 미미시스터즈와의 앙상블은 보는 내내 함박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신기한 것은, 이들이 연주한 곡들을 몰랐더라도 듣고나면, 아니 들으면서 자연스레 따라부르게 된다는 점이다. 듣는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이 결코 '쉬운 음악'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이들의 앞으로 음악활동이 참 기대되는 까닭이다.

올려놓은 공연실황을 찬찬히 들어보면, 그리고 노래와 노래 사이에 던지는 멘트들을 들어보면 이들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거다. (음질이 저질이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지 않나...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멘트를 놓치지 않고 찬찬히 들어보면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도 관객과 가수가 함께 어우러진 그 유쾌한 난장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래 올려둔 사진은 공연순서로 찍어놓은 것들이니 찬찬히 실황을 들어보면서 사진 몇장 본다면 더욱 좋을것 같다. (원래 이렇게 사진만 올려놓는게 '스타일'은 아닌데 뭐라 달아놓을 코멘트도 없다. 노래를 듣는 수 밖에) 노래마다 변함없이 터져나오는 떼창이 자연스러울 만큼, 이들의 GMF공연은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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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전야제를 다녀왔다. 전야제라고는 하지만, 나에겐 미선이의 출연으로 인해 메인 스테이지만큼의 무게를 주었던 날. 미선이 공연에 대한 글은 따로 정리해서 포스팅할 생각이다. (녹음을 했는데, 음질이 '개판'이라 속상하다. 아쉬워 죽겠다) 그리고, 관심을 가졌던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도 따로 포스팅할 생각. 이건 녹음한 게 그나마 들어줄만하다. 먼저 그날의 분위기를 몇장의 사진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너른 공간, 무엇보다 여유있는 마음가짐. 돗자리를 펴고 안자있어도 아티스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공간적 가까움. 그런 것들이 맘에 들었다. 아기자기하게 배열된 각종 상점들, 음식점들도 맘에 들었고. 그리고 아티스트당 대략 40분에서 60분내외의 공연시간은 단독공연 만큼은 아니지만 풍성한 밥상이 되어주었다. 앵콜이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그로 인해 정해진 타임테이블이 지켜져 계획을 세워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해주는 아티스트들이 있다는게 제일 행복했다.

자, 그날의 사진들 올라간다. 함께하시라.


입구를 찾아 가는길에 늘어서있는 라인업 포스터들.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미미시스터즈.


페스티벌 레이디인 이하나의 포스터. 둘째날에 출연한다고 하는데 볼수없어 아쉬운 공연중 하나.


포스터를 보자마자 가슴이 덜컹거려 주체할 수 없었던 미선이의 사진. 근데 이게 언제적 사진인가. 대략 10년이 넘은듯한 빛바랜 사진.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사진한장.


일년동안 열리는 각종 뮤직페스티벌을 다 참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부스. 책도 팔고, 공연정보도 놓여있는 곳이었다.

메인무대였던 민트브리즈스테이지.


시디마켓부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60여개팀의 시디를 팔고 있었으니, 왠만한 시디가게 수준. 나라고 참을 쏘냐. 인파를 뚫고 두장의 앨범을 샀다.


미뤄놨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앨범과 오지은의 앨범을 구매하고 잔디에 늘어놓고 한 컷. 오지은의 앨범은 자켓을 볼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자의식 강한 에고가 느껴진다. 노래도 그렇고.


무대한켠에 마련된 휴식공간. 잔디가 넓고 편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웠던 날씨로 태양을 피하는 사람들 몇몇이 앉아있었다.


꽤나 신뢰감을 주었던 타임테이블. 이거 없으면 제대로 페스티벌을 즐길 수 없다.


얼굴을 가렸어야 하는건지 살짝 고민스럽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시리라 믿고. 이 분의 깃발이 공연내내 나부꼈다. 마지막 델리스파이스 공연때 기차놀이의 선두에 섰던 분. 이런 분들이 있어 더 즐거워진다.


이렇게 편히 앉아서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쌈싸페의 밀도에 익숙해져있는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블러섬 스테이지. '짙은'이라는 이름의 가수였다. 나중에 타루의 공연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오래 듣진 않았지만, 나름 감성적인 필을 가지고 있는 듯.


민트브리즈 스테이지의 '불나방스타소시지클럽' 이 분들은 이 공연을 마치고 잔디밭에 앉아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을 내내 구경하셨다. 드럼, 베이스 조차 없는 단촐한 구성이었지만, 웨스턴 키치 필은 충만했다.


민트 브리즈 무대.


드뎌 미미시스터즈 등장. '무슨 지들이 스타인줄알아'라고 말씀하시면 곤란. 이미 이들은 스타다. 장기하의 무대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거다. 김태희를 눈앞에서 본 느낌으로 필받아 한 컷.


앞으로가 기대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 미선이를 위해 가져간 mp3로 시험삼아 녹음을 했는데 이 밴드는 무지 깔끔하게 잘 됐는데. 미선이가 그렇지 않아서 아쉽다. 재기와 익살. 너스레. 감각. 구성. 모두 주목할 만한 밴드. 뭔가 유쾌하게 공연을 즐기게 하는 매력이 있다. 노래도 따라 부르기 좋고. 즐거웠던 시간.


단촐한 조명시설. 그래도 좋았다.


미미시스터즈와 장기하와 얼굴들의 합동공연. 이게 2부의 첫곡이었을거다. :)


블러섬 무대의 느낌은 조촐한 열정이랄까. 스탠딩의 밀집.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무대였다.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을 마치고 빠져나오니 진행되고 있었던 크라잉넛의 공연. 지금은 얌전히 연주하고 있지만,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고 말달리자로 달려주셨다.


여전히 악동같은 크라잉넛.


형제의 열정적인 연주가 인상적이어서 찍어본 한 컷. 같은 길을, 같은 밴드로 함께 가고 있는 형제.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서서 지켜봐도.


맨발로 잔디의 촉감을 느끼며 음악을 즐겨도.


춤추며 서서 뛰면서 즐겨도.


남들은 다 서있어도, 떳떳하게 나란히 앉아서 공연을 즐겨도 행복한 페스티벌. 그게 음악축제다.


타루의 공연. 밸런스 탓인지 목소리보다 드럼이나 베이스의 소리에 목소리가 조금 뭍히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짙은'이라는 가수와 함께 부른 자작곡이 좋았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 카메라를 보며 부르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


W & Whales의 무대. 앨러니스 모리셋의 'Hand In My Pocket'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들의 노래 'R.P.G'는 CM에 삽입된 탓인지 익숙했다. 공연이 끝나고 시디를 사고 싶었는데 다 팔렸다. 공연을 보고나니 얼마전 발표한 이들의 '하드보일드'앨범도 자연스레 구매 목록에 올랐다.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내리쬐는 공연장.


강한 조명을 거두고, 몇개의 텅스텐 빛 밑에서 공연을 즐겨도 좋을 만큼, 소품같은 느낌. 소리가 나를 흥분시켰다.


말해 무엇하랴. 미선이의 공연. 튜닝마져 행복해하며 기다렸던 이들의 한시간 공연.


윤석님의 수줍은 모습. 파노라마를 부를때의 모습.


이들이 이 곳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공연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곳에 있는 이유는 충분했다.


공연 클로징을 맡은 델리스파이스의 공연. 이들은 충실히 준비했던 만큼.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항상 엔진을 켜둘께'가 울려퍼질때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구르는 장관이 펼쳐졌다. 나도 물론.


긴 시간 공연이 이어졌지만, 끝이 아쉬웠다.


환호하는 이들,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들. 뭔가 동류의식. 같은 음악을 그 곳에서 함께 한다는 동시성. 그 터질듯한 감성.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웃을 수 있는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델리스파이스의 앵콜곡 '차우차우'를 끝으로 17일 전야제의 공연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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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포크음악, 손지연

from 음악창고 2008. 10. 16. 19:23




새로운 가수를 알게되는것. 특히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를 알고, 찾아듣고, 좋아하고, 기억해주는 것. 그건 어쩌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옅은 의무가 아닐까 한다. 음반시장이 불황이라고 하지만, 셀프 프로듀싱 앨범을 만들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들도 많이 있다. 그들이 이런 '약속없는' 음반을 내고, 힘든 무명의 길을 가는건 단지 '성공'이라는 이름 때문은 아닐거다.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그 노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게 아닐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픈 어쩌면 소박한 바램이 당장은 더 크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더 오랜 시간동안 귀 기울이게 된다.




손지연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주찬권의 공연에서 그녀를 발견한 사람이 있고, EBS공감을 통해 알게된 사람들도 있다. 난, 철지난 뉴시스의 기사를 통해 그리고 그 길로 달려간 그녀의 홈페이지를 통해 그녀를 알게됐다. 이제 세번째 앨범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양병집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소개글. 홈페이지를 들려보면 그녀가 얼마나 사람들과 이야기 하려하는지, 자신의 노래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오래전 시화전의 그림들처럼 사진위에 얹어놓은 노래가사를 보고 있자니, 그 아날로그 감성에 눈길이 멈춘다.
 

실화

너의 집 앞을 맴돌다 사랑에 만취돼 우는 난 주정뱅이
하늘을 흐르는 구름처럼 흐르고 흘러도 너에게로

그렇다 할 소원도 너에게 약속한 바람도 못 이루고서
하루종일 잘난 척 하다 보낸 오늘을 또 나는 후회해

작은 기대 하나 이룰 수 있는 반 시간만 내게 있었다면
똑 같은 이유로 널 괴롭혀 떠나게 하진 말았을 텐데

그립다 네게 말하면 너 내게 다시 돌아올 꿈을 꿀까 봐
너를 위한 노래는 절대로 부르지 않게 되길 맹세해

너는 멀리 떠날 준비를 다하고 내게 이별을 고하지만
나는 멀리 떠날 널 붙잡을 핑계로 아직까지 힘들어

사랑을 잃어 외로운 바보가 된대도 서로 멀어만 가고
어차피 영원하진 않을 텐데 내가 널 미워하는 것도


그녀의 노래중에서 '실화'라는 노래를 찾아 들으며, 이 가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중독성에 멈칫 멈칫 했다. "그립다 네게 말하면 너 내게 다시 돌아올 꿈을 꿀까 봐 너를 위한 노래는 절대로 부르지 않게 되길 맹세"하지만, 결국 너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가수의 감수성. 맘을 붙잡는다. 70년대의 포크 느낌이 배어나오지만, 그 '촌스러움'이 익숙함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낯설다는 점에서 손지연의 포크음악은 '다르게 말하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든 경험한 사랑노래를 하고, 노이즈없는 기타소리에 그 흔한 리버브도 없는 투명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지만, 이 시절 이런 포크음악은 그렇기에 낯설게 느껴진다.




자신의 얘기를 자신의 노래로 이야기하는 이런 '언더그라운드'의 가수들이 올곧게 서서 끊임없이 노래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오버로 나와 아티스트로서의 '성공'이라는 열매를 가져도 좋겠고, 그게 아니더라도 꾸준히 음악을 하며 자신의 아우라를 가지며 음악활동을 해나갔으면 한다. 음반을 사고, 공연을 보러가고 싶은 공감하고픈 가수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것. 참 소중하다. 손지연이 없었다면, 그녀의 '실화'라는 노래가 없었다면, 스산한 가을에 마음 차분히 다독여주는 그녀의 독백이 없었다면, 마음 한자락 위로 받을 수 있었을까. 작고 소중한 것들은 곁에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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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에서 열린 10회 쌈싸페를 다녀왔다. 처음 쌈싸페를 간건 2003년에 이대에서 열린 5회부터 갔으니 벌써 6년째 매년 가는 거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부담스럽지 않은 공연들. 무엇보다 즐길 수 있는 축제라는 것이 매년 가는 주요한 이유일 거다. 많은 한국의 락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당연히 가장 큰 이유라는건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이번 10회는 여러모로 실망스럽기도 했다. (뭐, 작년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왔지만, 올해는 10회라는 관록이 무색하게도 전반적으로 공연의 관점에서 실망스러웠다)

올해는 음악을 즐기면서 틈틈히 사진으로 기록해보자는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찍어온 사진이 꽤 된다. 근데, 번들 망원렌즈의 밝기의 한계로 인해 어두워진 후의 사진의 질은 '봐주기힘든'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름 기록이라는 차원에서는 만족할만하다. 일단 그 사진들은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올리도록 하고, 어제 '미친 뜀박질'로 인한 피로감을 일거에 상쇄시킬 만한 가슴뛰는 공연 유앤미블루의 사진들 몇장을 올리려고 한다.

아, 이 글귀가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사실 올해 쌈싸페가 그리도 기다려졌던건 유앤미블루의 공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80년대의 어떤날이 있다면, 90년대에는 유앤미블루라는 남성듀오가 있어 행복했다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음악은 하나의 상징이다. 특히나 2집은 필청을 넘어, 일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날의 2집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공연의 딜레이로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 지난 11시경에 무대에 오른 그들. 사실 그들이 나오기만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몸이 예전같지 않아 슬램이 난무하는 무대 중심부는 기피하고 있었으나 이들이 나오는 차례가 되자 난 쏜살같이 카메라 하나 메고 거침없이 무대앞으로 다가갔다. 내 주변에는 나처럼 이들을 기다렸을 사람들이 쉴새없이 유앤미블루를 외쳐대고 있었다.

다행이 피아나 스키조의 무대와같은 '난장'이 없었다는게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올려놓은 사진들도 그나마 건지지 못했을거다. 아마 카메라가 박살이 났을 수도 있었을 거다. 노래를 즐기고 싶어서 공연초반에만 몇장의 사진을 찍어놓았고, 나머지 공연시간에는 미친듯이 소리지르며 그들의 '귀환'을 맘껏 환영해주었다.




비록 4곡이었고, 무대 앞에서 들으니 소리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거에 무척이나 감사를 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소리도 내지르면서, 방준석 님이 '그날'을 부를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 뻔했다. 그날의 공연을 녹음해놓으신 고마운 분이 계시니 들어보면 느낌이 조금 올 것 같기도.

주로 승열님이 스팟라이트를 받다보니 그를 찍은 사진이 많았다. 준석님은 무대뒤에 샌님처럼 서서 조용히 노래와 기타연주를 하고 계시더니 나중에 '앨범 내주세요'라는 한 남자 팬분의 질문에 '예. 내야죠'라는 폭탄발언을 내놓으셨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정말 가슴속에 남아있는 미약한 힘까지 내지르며 환호를 했다. (득음할뻔했다)




승열님의 카리스마와 특유의 목소리의 힘은 무대를 압도할 만했고, 세션에는 눈이 별로 가질 않을 만큼 두 명을 번갈아 바라보기 바빴다. 어쩌면 유앤미블루의 재결성(?)은 이승열의 활발한 솔로활동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찌됐든, 그들의 음악이 흩어진 옛음악이 아니라 다시 살아숨쉬는 음악이 되어간다는게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4곡중 1집의 곡들이 3곡이었다. 올려놓은 곡의 순서가 쌈싸페에서 연주한 순서일거다. (자신은 없다.) 아무래도 쌈싸페라는 무대의 특성상 그루브있는 곡들을 선정한게 아닐까 싶은데, 2집의 매력적인 곡들을 한곡 더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2집의 '지울수 없는 너'하고, '천국보다 낯선'은 꼭 듣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뭐 단독공연을 하면 다 들을 수 있으니 기다려볼거다.

노래들으랴, 환호하랴, 카메라들고 찍느랴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날의 공연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집에 가는 발길을 돌릴 수 있었으니 기다린 만큼 행복했다. 제일 아래 누가 벌써 올려놓은 6분짜리 공연실황이 있으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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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프랑스 여가수의 노래를 들어본다. 난 사실 남자가수가 부른 샹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고...) 유명한 몇몇곡을 제외하고는 별로 '찾아서' 들어본 기억도 없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제인 버킨을 좋아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듣게되는 세르주 겡스부르가 있다.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인지 '샹송 = 여성보컬'의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도식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몇 명 특히나 좋아하는 가수를 열거하자면 아까 말한 제인 버킨, 그리고 그녀의 딸 샤르롯 갱스부르, 프랑소아즈 아르디, 아나이스, 거의 팝가수라고 해도 이상이 없을 빠뜨리샤 까스 (특히 그녀의 라이브 음반) 요상하고 도발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밀렌 파르메르 정도가 되겠다. 이 리스트는 당연히 중고등학교 시절 자연히 형성된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73년생 프랑스 여가수 엘자(Elsa Lunghini)가 있다.


이쁘다. 이 자켓을 보면서 나를 위해 노래를 속삭여주는 상상을 했었드랬다.


예전에 엠티비 물결을 타고 한국에서도 뮤직비디오라는 것이 각광을 받게 되었을 즈음, 아니 그 이후 암튼 지구촌 영상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월간 잡지로도 발간되었다) 음반을 사모으는 게 부담되던 쪼들리던 중고등학교 시절이라 이때 틈틈히 보여주던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 금요일 7시인가 방영했던 그 프로그램을 꼬박 시청하고는 했다.

어느날 처럼 티비를 보다가 시선을 멈추게 하는 화면이 나왔다. 화면에는 한 여름의 백사장(미국의 LA쯤 되어보이는)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한 놈(이라고 하면 너무 심하겠지만 그땐 그런 맘이었다)과 아주 매력적이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가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있는 뮤직비디오였다. 한놈은 글렌 메데이로스(Glenn Medeiros)였고, 다른 여자아이는 엘자였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반짝이 팝가수라고 하면 서운해하겠지 다 알겠지만 하와이출신 가수로 약관 17세에 조지 벤슨이 불렀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리메이크해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이다.




그 노래가 영어로는 Friend, You Give Me a Reason이었다. (불어로는 Un Roman d'amitie) 그 풋풋하고 예쁜 목소리가 깔리고, 그 위로 하얀 백사장을 뛰어다니던 엘자라는 여자가수는 그날 저녁 내 시선을 붙잡았다. 괜히 그 곁에 서있던 글렌, 그 놈을 못내 구박하면서(지금도 흥분을...) 엘자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그 이후로 이리저리 그녀의 음악을 찾아다니다가 친척형 집에서 그녀의 1집 테잎을 빌릴 수가 있었다. (그리곤 안돌려줬다. 미안해 형) 다 좋아했지만, 거기에 있었던 Mon Cadeau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었다. 소녀적인 감수성이 뚝뚝 떨어지는 노래. 가사와 함께 들어보자.




참 예뻤다. 그녀의 노래, 아니 목소리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어의 발음이 주는 이질감과 달콤함이 더 강했던 것 같지만 팝음악(물론 음악적으로는 프렌치 팝이지만)에서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목소리에 더 끌렸던 것 같다. 게다가 청순미, 내 또래 아이가 불러주는 것 같은 느낌에 그 당시 내 감정선이 심하게 튕겼을 수도 있다.

그 뒤로 결정적으로 엘자라는 여자가수를 내 마음의 아이콘으로 삼게된 한곡의 노래가 있다. 지금은 김민석(이라고 쓰고 김민새라고 읽는다)부인으로 살고 계실 김자영이라는 아나운서가 KBS2 FM에서 11시에 하던 프로그램. 드물게 제3세계 음악을 소개해주곤 하던 그 방송의 특집이 바로 엘자였다. 

프로그램 중간인가 끝부분쯤 엘자의 가수 데뷔곡이라고 하면서 노래 한곡을 소개해줬다. 그녀가 13세에 ‘Ia femme de ma vie’ (내 인생의 여자)라는 영화의 삽입곡을 노래했는데, 지금 틀어주는 판이 아주 구하기 힘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이야 베스트 음반에서 쉽게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제인 버킨이 출연해서 잊지않고 있는 그 영화에 삽입된 곡. 아무튼 그 노래는 T'en va pas였다.





'아빠, 떠나지마세요'라는 제목의 곡. 들어보면 알겠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래. 더구나 13살에 부른 노래라는 묘한 매력이 겹쳐지면서 (이상한 상상은 아니다...) 난 엘자라는 여자아이에 푹 빠졌다. 곁에 있던 카세트데크에 녹음테잎을 넣고, 나중에 부랴부랴 이 노래를 녹음해서 들었다. (비극적인 것은 앞부분 시작이 짤렸고 게다가 끝부분에는 김자영 멘트가 들어있었다는 점. 그때 녹음해서 들을때는 빈번한 일이었다. 특히 김기덕의 2시에 데이트는 그 중 최고)




뭐 사실 말해서 엘자를 좋아하게된 기간은 길지않다. 그 강도야 말할 필요없을 정도로 강렬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이런 소녀적 감수성의 음악은 더이상 날 사로잡지 못했다. 게다가 음악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의 아이돌의 느낌이 줄어들다보니 노래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문득문득 기억나긴 했지만 그녀 목소리에 떨리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라고 해야 정확할거다. 그녀의 인기는 적어도 한국내에서는 판을 거듭할 수록 사그러 들었다. 전체적으로 팝음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이런 3세계 음악에 대한 소개와 관심은 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3집의 독특한 노래 Supplice chinois의 Toop too-too toop하고 시작하던 부분은 그녀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도 해주었다. 어쩌면 그녀가 이런 식으로 어필해나갔다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나 혼자만 생각한다 (에로틱하고 끈적한 느낌이랄까. 소녀적인 감수성을 언제고 가질 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 모습의 엘자는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도 매력적임을 부인하긴 힘들다.





내가 왜 갑자기 엘자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엘자의 옛 베스트 앨범 (Elsa - LEssentiel 1986-1993)을 들으니 예전 생각이 나서 그랬다. 그녀는 지금 뭐하고 있는지 새삼 궁금하기도 하고...참, 엘자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선수였던 리자라쥐와 결혼해서 2002년에 남편과 함께 내한하기도 했다. 노래 들으니까 예전에 1집을 빌려와서 더빙했던 그 스매트 60분짜리 테잎도 기억난다. (그게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때 아니면 중학교 초반때였으니까 꽤 된 셈이다.)

예전에 많이 들었던 노래를 간만에 들으면 너무 많은게 떠오른다. 마음이 심난하거나 슬프거나 외로울때 그런 기억이 많이 새겨져있는 노래를 듣는건 금물이다. 물론 때로는 그걸 즐기기도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니까. 하지만 오늘 듣는 엘자는 아주 상큼한 기억들로 수놓아져 있어서 참 다행이다. 더빙 테잎 보물처럼 쥐고, 맘 설레며 노래 들었던 그 시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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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앤 세바스찬의 부클릿에서 스미스를 알게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그들의 송 라이팅은 스미스를 닮아있었고, 그들은 그걸 감추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크렌베리스, 블러, 그리고 오아시스까지. 브릿팝의 영역에서 스미스의 자장은 꽤 넓다. 벨 앤 세바스찬의 앨범을 들으면 들을수록 스미스의 곡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벨 앤 세바스찬의 본류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스미스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한 것은 아니지만 스미스는 얼터네이트 락의 가장 중요한 아이콘이고, 그 영향력 면에서, 그리고 그 스타일면에서 80년대 중요한 밴드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은 뭐하고 있는지 꽤나 궁금한) 성문영의 글들이 아니었다면 스미스의 노래를 들어볼 생각은 안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벨 앤 세바스찬이나 스미스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이 평론가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 성문영의 브릿팝에 대한 애정, 특히나 스미스에 대한 애정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들의 모든 곡을 번역했고, 관여한 잡지마다 그들의 특집기사는 빠지지 않았다. 훌륭한 스미스 팬사이트인 onthesidewalk을 방문하면 확인할 수 있다.




앨범으로서 스미스와의 첫 만남은 95년 발매된 Singles였다. (이 인상적인 앨범 커버의 주인공을 알고싶다면 이 곳을 들려보면 된다.) 대표곡들이 망라되어있는 앨범이라 스미스를 듣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처음 플레이를 했을때 모리시의 다소 부담스런 목소리, 그리고 어쩌면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을 단촐한 연주는 그닥 호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처음 자니 마의 기타와 모리시의 노래를 듣고서 스미스의 음악을 '무자극 낭만주의'라 불렀다. 심심하고, 붕떠있고, 가슴을 찌르는 멜로디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밸 앤 세바스찬 탓이었을까. 스튜어트 머독의 목소리는 모리시 보다는 감미로웠고, 이소벨의 첼로는 자니 마의 기타보다 매력적이었다. 그땐 벨 앤 세바스찬의 포크락. 그 세련, 처절한 멜랑꼴리가 날 꽉 채우고 있어서였을거다. 지금이야 스미스 특유의 낭만적인 멜랑꼴리를 좋아하고, 어느 시대든 존재하는 '인간전형'을 노래한 시니컬한 가사를 사랑하지만 말이다.

처음 스미스의 가사가 눈에 들어온 건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를 들으면서였다. 냉소라고 해야 할까. 인간관계에 대한 체험적 발언일까. 정말 내가 살거나 죽거나 내가 누군인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시간을 주어야 하나. 내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내어줄 시간도 충분치 않은데 말이다.


In my life
Why do I give valuable time
To people who don't care if I live or die ?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계망이 촘촘해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시기에 스미스의 이런 노래는 루저의 한탄일 수도, 사회를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즈음의 인간관계는 (나에게 관심이 있던 없던)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들 하니까. 그게 인적자본이라고 얘기를 하니까. 하지만,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걸 알아가면서, 그리고 외로움 같은 것에 힘들어 하면서 '그래, 그까짓 것' 하면서 공감을 하게 됐다. 나에게 관심조차 없으면서 그들은 나를 왜 힘들게 하는가. 왜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그들에게 내 감정을 낭비해야 하나 하는 분노같은것.

벨 엔 세바스찬의 빨간앨범(If You're Feeling Sinister)의 첫번째 트랙 "The Stars of Track and Field"의 가사에서도 이런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죽으면 내가 너를 위해 레퀴엠을 쓸 수 있을까. 너와 나의 관계란 어떤 것일까.


Could I write a requiem for you when you're dead?

밴드 이름인 The Smiths는 모리시의 말로는 "지극히 평범해서 어디에나 있는 이름"이라 선택했다고 한다. 평범하게 노래하고 평범하게 기타치고 평범한 가사를 쓴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자니 마의 피킹기타는 경쾌해서 질리지 않고, 모리시의 가사와 목소리는 이슈를 제기하고, 폐부를 찌른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솜뭉치에 감춘 비수'라고 할까. 비수는 스미스의 가사에서 나오고 솜뭉치는 보컬과 담백한 연주에서 나온다.




요 며칠 스미스의 곡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허전한 마음을 위무해줄 수 있는 친구들. 엘리엇 스미스나, 데미언 라이스, 또 벨 앤 세바스찬은 너무 처절해서 선뜻 손이 가질않고, 스미스는 가벼움이 느껴지는 토닥임이라 그럴거다. 스미스의 곡들은 전주가 무척 짧다. 때로는 모리시의 목소리를 기준으로 좌우로 정렬한 느낌이 든다. 기타도 그렇고. 느끼하고 밋밋하다는 느낌이 오히려 편하고 공감을 준다. 무자극의 낭만주의, 시니컬한 스미스의 멜랑꼴리는 견딜만 하다.

가장 좋아하는 트랙인 Girlfriend in a Coma를 듣는다. 목을 졸라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친구가 심각하다고, 회복될 수 있겠냐고 '파렴치범'스런 얘기를 하는 시니컬한 80년대의 스미스를 싫어할 수 있을까. 혼수상태의 여자친구를 사랑하기는 한걸까? 아, 이들은 왜 그리 빠르게 해체해 버린걸까.

혹시 유튜브를 가서 스미스의 곡을 듣더라도 최근의 모리시의 라이브 실황은 삼가는게 좋을것 같다. 한때는 뭇 게이 남성들을 졸도시켰던 모리시. (아래 올려놓은 그 당시 실황을 보면 Where are the female fans?라는 코멘트에 적극공감하게 된다.) 그도 세월은 비켜가지 못했다. 그 목소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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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앨범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Getz / Gilberto. 이 앨범은 자주가던 종로 타워레코드 (지금은 파스쿠치 커피점이 되어버렸지만)에서 Bill Evans의 Waltz for Debby앨범과 같이 산 기억이 난다. 재즈음악을 의욕적으로 듣고 싶어 입문용으로 샀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딱 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많이 구입하지 않은 재즈앨범 중에서 이 두 장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Getz / Gilberto앨범이 너무 좋아 나중에 Stan Getz와 Charlie Byrd가 함께한 Jazz Samba앨범도 구입했는데, 역시나 Getz / Gilberto앨범 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했다. 그래도 첫 트랙인 Desafinado와 세번째 트랙인 O, Pato에는 찰리 버드의 기타가 매력적으로 맺혀있다.





Getz / Gilberto에 있는 모든 곡이 보사노바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역시 Girl From Ipanema일거다. (위키피디아에는 이 곡과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곡은 유명세 탓에 수많은 버전이 있고, 무수한 아티스트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리메이크 했지만 당연하게도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짧은 생각엔 '앙상블'이 아닐까한다.

그 첫번째는 조앙 질베르또(João Gilberto)와 아스트러드 질베르또(Astrud Gilberto)가 만들어낸다. 속삭이는 조앙의 목소리처럼, 그의 기타는 튀거나 지나치지 않게 조용히 아스트러드의 노래를 지켜봐준다. (찰리버드의 기타와 비교했을때) 현란한 기교는 느껴지지 않지만, 절제된 기타 선율로 노래를 감싸고 있다. 리듬과 멜로디를 다 보여주고있는 그의 기타. 리듬은 경쾌하지만 그 기타의 음색은 고독하고 나긋하다. 두번째는 스탄 겟츠와 아스트러드 질베르또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다. 아스트러드 목소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때로는 먼저 달려나가 손을 잡아끌기도 하고 뒤에서 지긋이 밀어주기도 하면서 노래를 이어간다. 혹자는 스탄 겟츠의 색스폰이 보사노바의 경쾌함을 깎아먹었다고 평가하는데, 그 두 목소리의 앙상블은 고급스럽고, 울림이 깊다.

이 곡의 앙상블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좋을 곡이 하나있다. 조앙 질베르또와 아스트러드 질베르또가 헤어지고 나서 조앙 질베르또가 미우샤(Miúcha)와 결혼하여 낳은 딸 베벨 질베르또(Bebel Gilberto)가 부른 Girl From Ipanema이다. 이 곡은 케니지의 음반에 수록되어있는데 플레이를 하자마자, 스탠더드 팝 냄새가 물씬 풍긴다.





글쎄, 아스트러드의 목소리보다는 맑고 감미로운 느낌이다. 아쉬운 점은 어쩐지 아스트러드 목소리에 묻어있는 고독의 느낌이 휘발되었다는 점이다. 뭐랄까 짙은 커피향이 나지는 않는다고 할까. 물론 스탄 겟츠와 케니지의 색스폰 음색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차이는 아까 말한 앙상블에 있지 않을까 싶다. 기타를 치고 화음을 넣던 조앙 질베르또와 아스트러드 질베르또의 사랑, 그 둘의 애틋함이 베벨의 노래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Ipanema Beach " Charles Briscoe-Knight / Getty Images


브라질의 리우에 있다는 이파네마 해변. 조빔의 노래가 이파네마 해변의 모든것을 담아내진 못했겠지만, 사진을 보니 그 햇빛, 모래, 그 위를 걷는 여인의 모습은 담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에게 이 곡과 어울리는 서울의 풍경을 찾으라면, 늦은 오후 퇴근길 한강대교 버스위에서 바라보는 한강둔치를 꼽고 싶다. 길게 늘어진 해가 맑게 부서지는 강변. 사뿐사뿐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면서 다소 여유있게 집으로 향해가는 시간. 그 풍경을 바라보고 듣는다면 꽤 잘 어울리지 않을까.

유튜브에서 들어볼만한 Girl From Ipanema 버전들을 찾아봤다. 첫번째는 영화에 나온 스탄 겟츠와 아스트러드 질베르또의 모습 (음질이 좋지 않은데, 새로 곡을 입힌 영상도 있지만 원본의 느낌이 나지 않아 그대로 올렸다.) 두번째는 앤디 윌리암스와 조빔이 함께한 영상. 세번째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조빔이 함께한 영상. 네번째는 엘라 핏제랄드 (Ella Fitzgerald)가 부른 버전이다. 이제 다가올 가을, 하루쯤 보사노바에 취해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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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하면 아침방송이 나온다. 8시 전까지는 대부분 클래식 공연실황을 틀어주는데, 차분히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없다는게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클래식을 즐겨듣지 않다보니, 그리고 내 나름의 상쾌한 하루 시작을 위해 내 컴퓨터에 담긴 음악을 켜놓는다. 그런데 오늘은 사라 맥라클란의 미러볼 라이브실황이 나오는 거 아닌가? 눈을 들어 보았을때 그녀가 기타를 매고 Building a mystery를 부르고 있었다. 기분좋았다. 오늘 그녀 음악을 찾아 들었던 이유.



1997년 발매된 그녀의 Surfacing앨범. 누나가 음악을 많이 들었던 탓에 가끔 누나방의 CD를 뒤져보다보면 못보던 음반이 보이곤 했다. 그렇게 알게된 음악들이 제법된다. Blur, Suede, RATM, Smith, Better than Ezra, Cure, Korn, Collective Soul...등등. (아마 더 될거다) 고백하자면 내 음악취향의 3할은 누나방의 CD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 취향이 어긋나는 지점이 있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얘기로 작은 말싸움도 하기도 하고, 서로 들어보라고 권해주기도 하고 그랬다. 며칠전 집에 들러 CD를 확인해봤더니 EMI레이블의 클래식 CD가 늘고있더라. 그래서인지 누나는 보자마자 포레의 CD를 들어보라고 강권해주었다. (물론 외면했다)

(얘기가 좀 샜는데), 사라 맥라클란의 Surfacing앨범은 1997년경 누나방에서 발견한 보석이었다. 앨범 자켓이 맘에 들어 (또 여가수를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도 있었고) 들어보았다가 익숙함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앨범을 듣고, Jewel의 앨범도 손에 쥐었고... 제니퍼 원스의 Famous Blue Raincoat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내 취향을 생각해본다면 두 여가수의 목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는 훤한 일이다. 앨범의 모든 곡들이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했던 트랙은 Adia였다. 물론 제일 많이 알려진 빅히트송은 Angel일거다. 이 곡이야 뭐 "한국인의 입맛에 딱맞는"곡 이니 뭐. 여튼, Adia로 시작하는 노래의 처음은 휘파람소리처럼 경쾌했고, 도입부의 피아노도 긴장감을 주는 듯 매력적이다. 특히나 'Cause We're born innocent'라고 내뱉는 부분은 스산하면서, 애절하게 느껴진다. 추워지는 늦가을쯤 들으면 딱 좋을 곡이다.  

글을 쓰기 위해 디스코그라피를 검색해보았는데,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는것 같다. (올해 낸 싱글까지) CD자켓은 점점 화려해지는 느낌이고. 다들 얘기하는게 전작에 비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많은 것도 같다. 내가 들어본 앨범이라고는 미러볼 라이브앨범과 Surfacing 앨범 두장뿐이니, 이 매력적인 여성보컬의 목소리는 사실 Surfacing 한장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호소력있는 목소리는 지금 들어도 울림이 꽤 깊다.



Sarah Mclachlan - Adia

Adia I do believe I failed you
Adia I know I let you down
Don’t you know I tried so hard
To love you in my way
It’s easy let it go...
Adia I’m empty since you left me
Trying to find a way to carry on
I search myself and everyone
To see where we went wrong
’cause there’s no one left to finger
There’s no one here to blame
There’s no one left to talk to, honey
And there ain’t no one to buy our innocence
’cause we are born innocent
Believe me adia, we are still innocent
It’s easy, we all falter
Does it matter?
Adia I thought that we could make it
But I know I can’t change the way you feel
I leave you with your misery
A friend who won’t betray
I pull you from your tower
I take away your pain
And show you all the beauty you possess
If you’d only let yourself believe that
We are born innocent
Believe me adia, we are still innocent
It’s easy, we all falter, does it matter?
Believe me adia, we are still innocent
’cause we are born innocent
Adia we are still innocent
It’s easy, we all falter ... but does it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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