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산울림.

from 음악창고 2010. 1. 22. 14:31
산울림의 가사에 처음 '사랑'이 등장한건 8집 '내게 사랑은 너무 써' 부터이다. 데뷔부터 일곱장의 앨범을 낼때까지 그 많은 노래를 펼쳐놓으면서도 김창완은 '사랑'이라 끝내 말하지 않았다. 사랑을 '사랑'이라는 언어로 개념화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일까.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그 순간 더이상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라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난무하는 (사랑이라는 언어없이는 노래가 안될 것같은) 사랑타령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말로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 이전에, 그 말을 내뱉기 전에 이미 느껴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손쉽게 '사랑'이라는 말을 쓴다. 사랑을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사랑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사랑은 '사랑'이라는 언어 아니면 안될 것처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랑'이라는 말로 확인하려하고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로 인해 빛이 바래고 그 언어는 더이상 진정성을 담지 못하는 듯 하다. 너무 쉽게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 때문에 아무도 '사랑'이라는 말의 떨림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는 '둘이서'라는 소품같은 곡이 수록되어있다. 2분 30초짜리 짧은 노래는 흔한 '사랑'을 한번도 속삭이지 않지만, 그 둘 사이의 정경만으로도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다. 그 둘 사이의 밀도, 숨 막힐듯한 떨림. 찬찬히 눈을 감고 그려보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시계 소릴 멈추고 커튼을 내려요
화병 속엔 밤을 넣고 새장엔 봄날을
온갖것 모두다 방안에 가득히
그리고 둘이서 이렇게 둘이서
부드러운 당신 손이 어깨에 따뜻할 때
옛 얘기처럼 쌓여진 뽀얀 먼지 위로
은은히 퍼지는 기타소리 들리면
귓가엔 가느란 당신 숨소리

역설적으로 들리겠으나 '사랑'이라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피했기에 산울림은 주옥같은 사랑노래를 남겼다. 명확하지 않으나 어떤 의도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고민들. 산울림의 바래지 않은 생명력과 펄펄뛰는 표현은 사랑을 '사랑'안에 가두지 않았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말에 쉽게 기대어 우리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건 아닐까.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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