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편지에 모든 생을 담았다 
새가 날개를 가지듯 
꽃이 향기를 품고 살아가듯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별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생의 비밀을 적었다 
아이의 미소를, 여인의 체취를, 여행에 깨우침을 
우체통은 간이역이었다 
삶의 열차가 열정으로 출발한다 
나의 편지를 싣고 가는 작은 역이었다 

그래 그런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낙엽에 놀라 하늘을 올려다 본 어느 날이었다 
찬바람 몰려왔다 갑자기 거친 바람에 
창문이 열리듯, 낙엽은 하늘을 듬성듬성 비어 놓았다 
그것은 상처였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간이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아 
종착역이 되었다. 모두들 바삐 서둘러 떠나고 있다 
나의 우체통에는 낙엽만 쌓여 가고 
하늘은 상처투성이의 어둠이었다 
밤엔 별들이 애써 하늘의 아픔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 
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주소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 원재훈

블로그에 뜸했다.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거두고, 삼키고 그랬다. 읽던 책 얘기, 본 영화 얘기, 들었던 음악얘기, 내 주변의 일상들 적고 싶다가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다 거두곤 했다. 써지지 않았다기 보다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끄적임이었으니 몇줄 적어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터. 그래도 말은 해야겠기에 가벼운 맘으로 재잘거리려 마이크로블로그도 기웃대보았지만, 잘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공간에 말할거리, 쓸거리를 채우기 위해 읽고, 보고, 듣고 하진 않았을까. 내가 살아있음을, 멍하니 지내지 않음을, 한줌의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글 쓰진 않았을까. 그게 그렇게도 불안했을까. 일상의 나와는 다른, 그들은 모르는 내가 드러낼 곳은 여기 뿐이었으니. 그게 문제였다. 일상의 나와는 다른 나를 드러내는 것. 

편지쓰고 싶어 안달하던 때가 생각난다. 쓰던 편지에 생의 비밀을 적던 시절. 아니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몇통의 편지를 쓰느라 밤을 세우곤 하던 때. 긴 편지는 너에 대한 내 관심의 표현이었고, 매일 보내는 편지는 너를 잊지 않고 있다는 외침이었다. 좁은 방, 열나는 브라운관 PC앞에서 안부를 묻고, 하루일을 적으며, 너의 하루를 묻고, 답장을 바라며 끝맺곤 했다. 혼잣말이었으나 또 대부분은 질문이었다. 말이 하고 싶었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만나는 사람마다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블로그의 글은 수취인이 정해지지 않은 편지였다.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든 편지의 수취인이라 생각했다는게 맞겠다. 적어도 그런 맘이었다. '그런 기대'라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좋았으나 점점 어렵다.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지만, 아무 말이나 적을 수 없어서 어렵다. 드물게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블로그 얘기를 할때마다 쉬이 민망해지곤 했다. 일상의 나와 블로그에서 보이는 모습의 '표리부동'을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 어쩌다 알려주었던가...후회도 했다. 나라꼴에 대해 끄적이다가, 돌아서면 퇴근후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자괴감도 그랬다. (이건 나라꼴 탓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블로그 한다고 달라지는건 없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블로그라는게 이상도 하여 자꾸 나를 피할 수록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차라리 편지였다면 읽는 너에게만 변명하면 그만이었겠지만, 블로그는 접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고 중간은 없는 것 같더라.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 정도는 될 듯 싶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고, 내 곁을 지나가지만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는,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는 원재훈의 심정에 마음이 닿는다. 

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 
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어렵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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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운다 (20090529)

from 일기창고 2009. 5. 29. 13:57

노란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샛노란 것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어쩔 수 없이 비슷한 걸로 골랐다. 잘 다려진 셔츠를 준비하고 타이를 매는 심정이 착잡했다. 사무실 한켠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내내 시청광장에 가있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약속있다고 얘기하고 그 곳에 잠깐 다녀왔다. 멀리서 전광판으로 보느라 영결식을 잘 보진 못했는데, 돌아와 자리에 앉아 이 사진을 본다. 마우스 위에 올린 손을 들어 눈가를 비벼댄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분노의 기억들 새기고 새겨, 잊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잊을 것만 같아 속상하다. 군중심리라고 나불대는 녀석들에게 두고보라고 이 악물고 싶다. 슬퍼할 줄 아는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이 세상을 바꿔왔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왔다고 믿고싶다. 이렇게 모두들 슬퍼한다고 떠나는 그에게 한마디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 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김대중 '잠언집' 中

지금시각 14:00. 조금 있으면 그의 몸이 내가 일하는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 뒤에 서서 그를 배웅하러 간다. 

어제 서울역 분향소에서 난 이렇게 적었던것 같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바꾸려했던 그 대한민국에서 함께 숨쉴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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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싶지 않지만 믿어야한다는게 괴롭다. 하이에나같던 그들은 진정 이런 결말을 바랬던 것인가. 참기힘든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할퀼곳을 찾아 치명상을 입히려 달려들던 XXX들. 벼랑까지 몰렸던 노무현 전대통령은 결국 서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뛰어내렸다. 짧은 유서한장 남기고.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그랬기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했던 노무현 전대통령.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제발 그 길만은 편안했으면 한다. 검찰도, 한나라당도, 조중동도,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없는 조용하고 편안한 길이길.

그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다시 본다. 몇년전 내가 끄적였던 그를 위한 변명을 다시 읽어본다. 미칠것 같다. 그가 열어놓았던 가능성은 이미 다 닫혔고 더이상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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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고향을 떠나 멀리 만주국 장춘에서 외로운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서른 무렵의 백석. 좁은 방안에서 외로움에 잠 못이루던 그는 휑한 바람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으리라. 좁다란 방, 팍팍한 생활을 잊으려, 누우면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을 바람벽에 온갖 생각을 그려놓는다. 차가운 현실을 잊으려 추운 겨울 김치를 담그는 어머니를 떠올리고(아마도 그를 먹이려했을), 그 옆에 마주앉아 저녁을 먹는 아내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그의 과거이며, 아내는 그의 미래일테다. 팍팍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통로는 과거와 미래 뿐이다.

한줄한줄 백석이 마주했을 바람벽의 무게가 느껴진다. 지친 몸을 뉘이면 엄습할 듯 다가오는 흰 바람벽. 그 고단함을 잊기 위해서는, 잠 한숨 자려면 무엇이든 그 흰 바람벽을 칠해야 했을거다. 뭐든 투영하지 않으면 견뎌낼수 없었으리라. 하여 백석의 흰 바람벽은 긴 낮잠으로 잠이 오지 않아 떠올리는 공상의 가벼움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할퀼 듯 다가오는 삶의 무게를 견뎌내려는 절실함, 절박함이다. 그래서일까 옷깃 여며주고 싶을 만큼 애잔하고, 또 애잔하다.

백석처럼 잠자리에 누워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기억에 야속해하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터.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겹쳐진다. 백석처럼 타향살이의 그리움으로 잠 이루기 힘든 시절은 없었으나, 사랑의 아픔에 뒤척이던 시절은 있었으니. 그때 이 노래를 들으며 꼬박 날 세우기도 했다. 그 때 텅빈 내 방 천정은 흰 바람벽의 다른 이름이었다.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에 괴로워하던 시간. 떠올리고 싶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우려해도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새벽기운이 밝아오곤 했었지.

외로움은 백석처럼 우리도 여전히 느끼는 것이다. 백석의 흰 바람벽은 이젠 비좁은 컴퓨터 모니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것도, 인터넷을 무작정 떠도는 것도, 잠 안오는 밤 흰 바람벽에 채워넣은 그림이 아닐까. 좁은 방 바람벽은 나를 바깥과 유리(遊離)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좁다란 방은 항상 춥고, 외롭다. 잠깨면 또 다시 마주하는 것이 현실이고, 잠들때까지도 잊을 수 없다. 그 흰 바람벽을 마주하는 불면의 밤은 언제나 너무도 길고, 힘겹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안에 가득 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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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빈자리

from 일기창고 2009. 5. 8. 18:51

2002.02.09

며칠전 동생이 군대를 갔다. 그래서 그런지 늦은 밤이 되면 가끔 빈자리가 느껴지고는 한다. 아마도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일 없는 듯이 지내겠지만. 지금은 술먹고 늦게 들어와 싸한 소주냄새를 풍기던 그놈의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동생이 나와 견줄만큼 커버린 다음부터 난 나와 동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 주변을 꾸려가는 방식이 나와는 너무도 달라, 어느 순간부터는 동생 삶에 대한 내 조언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보이는 순간순간 아쉬운 부분을 말하려 하면 대뜸 나와 다름을 강조하는 그 놈의 말투에서 난 '충고'를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부터 난 동생으로부터 많은 것을 빚지고 많은 것을 얻고는 했다. '형'이라는 어줍잖은 위치 때문에 그 놈 앞에서 항상 머리쳐든 모양새였지만 돌아서서는 내내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다. 짧은 내 삶속에서, 정확히는 내가 그 놈과의 '연'을 인식하게 된 이후부터 난 빚진 것이 참 많다.

동생이 재수할 때 대학생 형인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뭐하나 도움되는 일도 못했다. 가끔 작정하고 물어보는게 분명한 질문에 시큰둥하게 응하거나 오며가며 '공부 잘돼?'라는 마음 숨긴 인사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생하는 그 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한게 못내 미안해서 하루는 동생을 찾아갔다. 수능이 임박한 늦가을에 동생이 공부하는 시립도서관이었다. 찌든 열기로 텁텁해진 실내공기를 휘휘 저어 머리숙이고 책에 찌든 그 놈을 건져냈다. 그리고는 도서관 앞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참 이상하게도, 뜨거운 순대국을 맛있다며 털어넣는 동생이 왜 그렇게 애잔해 보였는지. 그때의 그 점심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황지우의 '종로, 어느 분식점에서 아우와 점심을 하며' 라는 시가 생각났다.

동생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얼굴 마주 보는 모습보다는 얼굴 발갛게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된 것 같다. 대학생활, 동아리 생활, 그리고 동생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항상 울려대던 동생의 전화벨. 나에겐 그것이 동생 몸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남에게만 향해가는것 같아 그걸로 언젠가 후유증이 오래가는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싸우고 나서 많이 후회했지만 그보다 더 속상했던건. 내가 너무도 협소하고, 바보같고, 어리석었다는 후회 때문이었다. 감정이 격해지고 마음을 할퀴는 말들이 오고가고 나서 동생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항상 형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었노라고 말했다. 한번도 자기 입장에서 이해해주지 않았다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렇게 토해내듯 뿜어내는 동생의 언어 앞에서 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 일을 전후로 아마 난 동생에게서 '어린'이란 말을 지워버렸던것 같다.

춘천훈련소 가는 입석 기차 승강장에서 동생은 오른편 난 왼편의 차창에 섰다. 각기 맞은편 풍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서로 한참을 아무말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난 그것이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말들 때문에 그러했다는 것을 안다. 기차에서 내려서 부대로 갈때까지 기회있으면 난 히죽대며 웃었다. 어울리지 않은 농짓거리에 동생도 쓴웃음으로 응답했다.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 나와 동생에게는 너무도 어색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입대식이 끝나고 동생과 나는 손을 맞잡았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형이라고 내 손을 간절히 움켜잡는 그 따스함이 난 못내 고마웠다. 동생은 얼굴 돌려 점점 멀어져가고 난 안타깝게 오른손을 높이 들고 뒷걸음질 쳤다. 동생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날 찾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에 멀리서 흰잠바를 입은 동생의 오른손이 용케 나를 보며 올라갔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난 자꾸만 좌우로 손을 크게 흔들었지만 동생은 자꾸 이제 그만 가라고 손바닥을 앞뒤로 작게 흔들었다. 어두운 표정으로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돌아서서서 계단을 내려서는데 그 잔상때문에 울컥했다. 그 모습. 거친 손을 앞뒤로 흔들며 가라고 손짓하던 그 모습이 내내 가슴에 박혀 참 많이도 아프게 했다. 

돌아오는 경춘선 열차 안에서 벨 앤 세바스찬의 시디를 들었다. 들으며 딱히 머물곳 없는 멍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서있는 승강장 맞은편에 동생이 없다는 것으로 난 그놈의 '부재'를 느끼고 있었다. 감정이 그러하듯이 시간이 지나면 빈자리도 채워질거다. 하지만 늦은 밤에 그 놈 누워자던 방 한구석을 보면 앞뒤로 손 흔들던 모습이 생각나 그냥 마음이 짠하다. 

요즘 내 주변에 빈공간이 많이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만 채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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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케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때우고 자전거에 올랐다. 날이 조금 쌀쌀해 외투를 걸처입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행선지는 집근처 구립 도서관. 반납할 책들을 배낭에 넣고 바람을 가르자니 허벅지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지금은 도서관 책상. 문득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시설내에 와이파이가 되는 탓에 가지고온 아이팟터치로 포스팅 하는 중이다. 모르면 그만이지만 알면 참 좋은 세상이란걸 새삼 느낀다. 생각보다 보유장서가 많다. 신간도 쏠쏠하고. 이렇게 도서관을 이용할때면 그래도 매달 세금 내는 가슴 쓰림이 조금은 용서가 된다.

대출할 수 있는 제한 권수가 3권인 탓에 보고 싶었던 책들을 골라 책상위에 쌓아 두었다. 미리 책들을 적어두었지만 그 책들을 찾으려 서가를 지나다보면 읽고 싶은 책들이 스물스물 눈에 띈다. 서가의 매력이라고 할까. 대학 때도 이렇게 서가를 걸으며 읽고싶은. 혹은 읽지못할 책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내 손에 쥐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풍성해 했었던 것같다.

그리하여. 서가를 한시간쯤 뒤져 지금 내 곁에는 다섯권의 책이 놓여있다. 고종석의 어루만지다. 스티글리츠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김수영 전집 중 산문. 한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루돌프 센다의 욕망하는 몸. 어떤 책을 들고갈진 모르겠다. 매번 그렇듯 어려운 일이 될테지.

날이 흐리고 자전거를 가져온 탓에 비가 오기전까지 읽다 갈거다. 읽다가 비는 이미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을 만큼 손에 쥔 책이 마음에 든다.

-- Post From iP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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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꽤 내렸다. 날은 또 서늘해졌다. 후배의 연애후일담을 듣고나니, 맘까지 서걱거린다. 답이 없는 이야기를 듣고있는 건 여전히 힘이 든다. 마음 아파하는걸 보니 안쓰럽다가도 그런 생채기가 다행이다 싶다. 뭐든 가벼운 시절 아닌가. 그 녀석 얘기들으니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처음 영화를 봤을때 도무지 아름답게 포장할 줄 모르던, 너무도 건조하여 바스락거릴 것 같던 이야기가 어찌나 야속했던지. 그랬다고 말하면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얼굴로 '그게 삶이고 사랑 아니겠어'라고 말하던 사람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즈음 씨네21에 실렸던 노희경의 글을 봤을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상우를 피하는 은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때,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라는 노희경의 말은 너무도 거칠고 차가웠다.

다시 노희경의 글을 읽는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몇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봄날은 간다'를 본다면 그 느낌은 어떠할까. 여전히 상우의 순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은수의 일상이 야속하고 미울까. 아니면 은수를 이해하게 될까. 철없이 순수했던 상우를 안쓰러워할까. 선뜻 답할 수 없는 망설임. 그게 '순수한' 후배의 후일담에 해줄말이 없어 우물거렸던 이유인 듯하여 맘이 짠하다.


'라면이나 먹자', '자고 갈래'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은수의 말을 이해 못하고 정말 라면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상우는 어쩌면 처음부터 은수에겐 버겁게 순수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날긋하게 닳은 여자에게 순수는 반갑지 않다.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 사랑이 운명이나 숙명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는 대개의 경험있는(상대를 바꿔가며 사랑의 열정을 몇번씩 반복해서 느껴본) 사람에게, 순수는 정돈된 일상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 사랑을 좀슬게 한다. 상우의 순수가 은수의 일상을 방해하고 사랑을 버겁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곳곳에 있다. 

늦잠을 자고 싶은데 상우는 제가 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새벽녘 서울에서 강릉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포옹을 요구하며, 맨정신으로 약속을 하고 찾아와도 안 만나줄 판에 술 취해 급작스레 찾아와 철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다, 게다가 엉엉대며 울기까지. 그 대목에 이르면 은수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은근슬쩍 짜증이 인다. 저만 아프고 저만 힘들지. 어린 남자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은수가 상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현실적인 가치기준의 잣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봉에 초라한 개량 한옥에서 사는, 홀시아버지와 매서운 시고모를 옆에 두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모셔야만 하는, 정말 누가 봐도 최악의 결혼조건을 가진 그 남자와 연애는 몰라도 결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계산이 은수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에 반박한다. 은수는 그 남자의 처지보다 순수가 버거웠을 것이다. 사랑이 변하고, 권태가 일상이 되고, 키스도 무료해지고, 생계가 치명적인 걸 이미 아는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남자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상우처럼 묻는 남자가 내게 온다면, 나 역시 은수처럼 당연히 그 남자를 피해갈 것이다. 아직도 사랑이 안 변한다고, 사랑이 전부라고(직장마저 그만둘 만큼) 생각하는 남자와 격한 인생의 긴 여정을 어찌 헤쳐나가겠는가. 은수와 상우의 결별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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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던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허수경 - 不醉不歸
(혼자 가는 먼 집, 1992)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이면 항상 이 시가 떠오른다.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라는 첫 문장 탓일거다. 마음을 놓아버렸던가, 아닌가.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끝끝내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고 단언하는 시인의 否定은 눈물겹다. 마음을 보냈으나 결국에는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되돌아왔을 마음. 그래서 결국 보낸 기억만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시인의 상처는 지독했던가보다. 어쩌랴, 기억만 없다 아무리 말해도 마음을 놓아보냈던건 돌릴 수 없고, 헝클어져 돌아온 마음은 끝끝내 추스릴 수 밖에 없는 것을. 결국 '몽생취사'할 수 밖에. 

시 읽다보니 술이 나를 불러, 못 이긴 척, 술 한 잔 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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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마도 천변풍경의 배경설명쯤 되려나. 아무렴 어때. 
그냥 가볍게 산책을 하려했다. 한낮의 햇살만 아니었다면.

아파트 한켠 자전거보관소로 간다.
방치된 것이 분명한 먼지쌓인 자전거들이 을씨년스럽다. 어울리지 않는다.
내 자전거를 찾아 꺼낸다. 카메라를 뒷좌석에 끈으로 동여멘다. 떨어지지마.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민을 한다. 그냥 셔플.

집근처 벚꽃. 여의도 만큼은 아니겠지만 꽤 괜찮게 핀 천변도로를 지난다.
복잡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만큼의 사람들.
지나치며 한번씩은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다들 행복해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그늘을 찾아 앉는다.
모자를 깜박 잊었다. 햇살이 이럴줄은 몰랐다. 4월의 햇살치고는 지나치다.
팔을 걷어부치고 병에 담아온 결명자 한모금을 마신다. 벌써 데워졌다.

숨좀 돌리고 시선을 멀리 던져 셔터를 누른다.
광각이면 좋으련만. 50m 프레임에 보이는 분절이 맘에 들지 않는다.
다 담고 싶지만, 담을 수 없는 상황은 여전히 익숙하다. 
그래도 한낮의 뜨거운 해만큼은 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고 싶다.

몇장을 찍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첫 페달에서 느껴지는 무거움마저 달갑다.
바람이 불어온다.
이렇게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을줄 알았다면 오전에 나올 걸.
귀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페달을 돌린다.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그랬던가. 페달을 밟으며 땅의 진동이 다리에 닿는 것 같다.
자전거는 어떤 원초적인 행위가 맞는 것 같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가 나온다.
음악소리에 묻혀 이런저런 포근한 소리들이 함께 들려온다.
곡과 곡 사이, 짧은 순간에 새소리가 들린다.
녹음을 하고 싶었다. 갑자기.
잠안오는 밤에 꺼내어 들으면 좋을텐데.

버릴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버려야 할 것이 많은 요즘이다.
난 아직 버릴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머물지말고 가버려라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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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시는 아직도 나를 거부하는 듯 했고
이상하고 설득되지 않을 듯한 풍경은 마치 내가 없는 듯 어두워졌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 조차도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골목길은 가로등까지 찌를듯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다.
저쪽에 보이는 방 하나, 따뜻하고 깨끗한 등불이 켜져있었다.
난 이미 이곳에 함께있는 듯 했다.
그들은 그걸 알았고, 그리고는 덧문을 닫았다.

위대한 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래 굵은 글씨)

 
낯선 도시. 따뜻한 등불이 보인다. 어쩌면 난 그들과 함께일지도 몰라. 몸 기댈곳 없는 차가운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등불. 그들과 내가 하나임을 생각한다. 혹시 날 반겨주지 않을까. 낯선 풍경, 외로움, 소외감, 고향상실, 이방인. 그 모든 차가운 것들이 소실되어가는 것 같던 그 순간. 발걸음이 밝혀진 불빛을 향한다. 저런, 안돼. 마주친 눈빛은 차가워지고, 그들은 그걸 알고 덧문을 내려버린다.

그런 것이지. 뭘 기대한걸까. 산다는건 몸은 더 차가워지고, 열려있는 덧문 따위는 굳게 닫혀야 하는거야. 하루하루 닫는 법을 배우지. 사람사이의 체온이란 느낄 수 없어. 그저 우린 걸어닫은 덧문으로 마찰할 뿐이지. 소외는 우리들에게 본래적인 것. 알고있잖아. 

그래도 친구. 제발. 덧문을 열어줘. 내가 가고 있잖아. 
너의 숨이 부드럽게 내 얼굴에 다가오도록, 네 웃음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말야.





Die Große Nacht - Rainer Maria Rilke

Oft anstaunt ich dich, stand an gestern begonnenem Fenster,
stand und staunte dich an. Noch war mir die neue
Stadt wie verwehrt, und die unuberredete Landschaft
finsterte hin, als ware ich nicht. Nicht gaben die nachsten
Dinge sich Muh, mir verstandlich zu sein. An der Laterne
drangte die Gasse herauf: ich sah, dass sie fremd war.
Druben - ein Zimmer, mitfuhlbar, geklart in der Lampe -,
schon nahm ich teil; sie empfandens, schlossen die Laden.
Stand. Und dann weinte ein Kind. Ich wusste die Mutter
rings in den Hausern, was sie vermogen -, und wusste
alles Weinens zugleich die untrostlichen Grunde.
Oder es sang eine Stimme und reichte ein Stuck weit
aus der Erwartung heraus, oder es hustete unten
voller Vorwurf ein Alter, als ob sein Korper im Recht sei
wilder die mildere Welt. Dann schlug eine Stunde -,
aber ich zahlte zu spat, sie fiel mir voruber. -
Wie ein Knabe, ein fremder, wenn man endlich ihn zulasst,
doch den Ball nicht fangt und keines der Spiele
kann, die die andern so leicht an einander betreiben,
dasteht und wegschaut, - wohin -?: stand ich plotzlich,
dass du umgehst mit mir, spielest, begriff ich, erwachsene
Nacht, und staunte dich an. Wo die Turme
zurnten, wo abgewendeten Schicksals
eine Stadt mich umstand und nicht zu erratende Berge
wider mich lagen, und im genaherten Umkreis
hungernde Fremdheit umzog das zufallige Flackern
meiner Gefuhle -: da war es, du Hohe,
keine Schande fur dich, dass du mich kanntest. Dein Atem
ging uber mich. Dein auf weite Ernste verteiltes
Lacheln trat in mich ein.

Rainer Maria Rilke, Uncollected Poems, 1913-1918;


The Vast Night - Rainer Maria Rilke

Often I gazed at you in wonder: stood at the window begun
the day before, stood and gazed at you in wonder. As yet
the new city seemed forbidden to me, and the strange
unpersuadable landscape darkened as though
I didn't exist. Even the nearest Things
didn't care whether I understood them. The street
thrust itself up to the lamppost: I saw it was foreign.
Over there-a room, feelable, clear in the lamplight-,
I already took part; they noticed, and closed the shutters.
Stood. Then a child began crying. I knew what the mothers
all around, in the houses, were capable of-, and knew
the inconsolable origins of all tears.
Or a woman's voice sang and reached a little beyond
expectation, or downstairs an old man let out
a cough that was full of reproach, as though his body were right
struck-, but I counted too late, it tumbled on past me.-
Like a new boy at school, who is finally allowed to join in,
but he can't catch the ball, is helpless at all the games
the others pursue with such ease, and he stands there staring
into the distance,-where-: I stood there and suddenly
grasped that it was you: you were playing with me, grown-up
Night, and I gazed at you in wonder. Where the towers
were raging, where with averted fate
a city surrounded me, and indecipherable mountains
camped against me, and strangeness, in narrowing circles,
prowled around my randomly flickering emotions-:
it was then that in all your magnificence
you were not ashamed to know me. Your breath moved tenderly
over my face. And, spread across solemn distances,
your smile entered my heart.

(trans. Stephen Mitchell, from The Selected Poetry of Rainer Maria Rilke,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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