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편지에 모든 생을 담았다새가 날개를 가지듯꽃이 향기를 품고 살아가듯나무가 뿌리를 내리듯별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생의 비밀을 적었다아이의 미소를, 여인의 체취를, 여행에 깨우침을우체통은 간이역이었다삶의 열차가 열정으로 출발한다나의 편지를 싣고 가는 작은 역이었다
그래 그런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낙엽에 놀라 하늘을 올려다 본 어느 날이었다찬바람 몰려왔다 갑자기 거친 바람에창문이 열리듯, 낙엽은 하늘을 듬성듬성 비어 놓았다그것은 상처였다언제부턴가 내 삶의 간이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아종착역이 되었다. 모두들 바삐 서둘러 떠나고 있다나의 우체통에는 낙엽만 쌓여 가고하늘은 상처투성이의 어둠이었다밤엔 별들이 애써 하늘의 아픔을 가리고 있었다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그들의 주소를 알 수가 없다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그들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 원재훈
블로그에 뜸했다.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거두고, 삼키고 그랬다. 읽던 책 얘기, 본 영화 얘기, 들었던 음악얘기, 내 주변의 일상들 적고 싶다가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다 거두곤 했다. 써지지 않았다기 보다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끄적임이었으니 몇줄 적어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터. 그래도 말은 해야겠기에 가벼운 맘으로 재잘거리려 마이크로블로그도 기웃대보았지만, 잘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공간에 말할거리, 쓸거리를 채우기 위해 읽고, 보고, 듣고 하진 않았을까. 내가 살아있음을, 멍하니 지내지 않음을, 한줌의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글 쓰진 않았을까. 그게 그렇게도 불안했을까. 일상의 나와는 다른, 그들은 모르는 내가 드러낼 곳은 여기 뿐이었으니. 그게 문제였다. 일상의 나와는 다른 나를 드러내는 것.
편지쓰고 싶어 안달하던 때가 생각난다. 쓰던 편지에 생의 비밀을 적던 시절. 아니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몇통의 편지를 쓰느라 밤을 세우곤 하던 때. 긴 편지는 너에 대한 내 관심의 표현이었고, 매일 보내는 편지는 너를 잊지 않고 있다는 외침이었다. 좁은 방, 열나는 브라운관 PC앞에서 안부를 묻고, 하루일을 적으며, 너의 하루를 묻고, 답장을 바라며 끝맺곤 했다. 혼잣말이었으나 또 대부분은 질문이었다. 말이 하고 싶었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만나는 사람마다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블로그의 글은 수취인이 정해지지 않은 편지였다.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든 편지의 수취인이라 생각했다는게 맞겠다. 적어도 그런 맘이었다. '그런 기대'라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좋았으나 점점 어렵다.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지만, 아무 말이나 적을 수 없어서 어렵다. 드물게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블로그 얘기를 할때마다 쉬이 민망해지곤 했다. 일상의 나와 블로그에서 보이는 모습의 '표리부동'을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 어쩌다 알려주었던가...후회도 했다. 나라꼴에 대해 끄적이다가, 돌아서면 퇴근후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자괴감도 그랬다. (이건 나라꼴 탓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블로그 한다고 달라지는건 없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블로그라는게 이상도 하여 자꾸 나를 피할 수록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차라리 편지였다면 읽는 너에게만 변명하면 그만이었겠지만, 블로그는 접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고 중간은 없는 것 같더라.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 정도는 될 듯 싶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고, 내 곁을 지나가지만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는,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는 원재훈의 심정에 마음이 닿는다.
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어렵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