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 설치 (20100126)

from 일기창고 2010. 1. 26. 10:44
집안에 거의 방치상태인, 더구나 아이팟 터치를 영접한 이후로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잊어버리는 구형 노트북에 ubuntu를 깔았다.  (K가 친구들과 저녁약속만 없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거다) 유행병처럼 가끔은 리눅스의 손맛이 그리워질때가 있어서 ubuntu 홈페이지를 뒤졌는데, 넷북리믹스라는 배포판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넷북에 맞게 (저사양 노트북에도 맞게) 튜닝된 버전이겠거니 싶어서 냉큼 USB에 넣어서 설치.

랜선을 물려놓으니 설치과정에서 apt를 통해서 업데이트를 받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설치시간은 길어졌다. 셀러론급 2003년 노트북이라 별 기대하지 않고 깔았는데 의외로 쓸만하다. 물론 ubuntu가 리눅스 배포판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가볍진 않은 탓에 쾌적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하지만, XP에 비해서 부팅 속도가 빠르고, 웹 창을 띄울때까지의 체감 속도도 만족스러웠다.

월요일이라 날밤을 세울수는 없어 새벽2시까지 가볍게 만지작 거렸는데 윈도보다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 ADSL을 쓰던 시절에는 랜카드 잡고 네트웍 잡는데만 몇날을 날려먹기도 했었는데, 게다가 한글입력까지 맞추고 그럭저럭 쓰려면 웹 문서를 이잡듯이 뒤져야 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비하면 ubuntu는 (예전 7이나 8버전때에 비해서도) 최적화가 잘 되어있는 정말 쓸만한 버전이 되었다. 이 정도면 윈도와 멀티부팅으로 리눅스를 사용하는 것은 '모험'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좀더 생각해보면 이런 쾌적함은 배포판의 영민함에 있기도 하지만, PC의 사용환경이 웹 중심으로 이동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강력한 웹어플리케이션이 널려있으니 굳이 설치파일을 로컬에 다운받아 인스톨할 이유가 사라졌다. 집 PC에 윈도 재설치를 해도 오피스를 깔아본게 언제였던가. 설치하는 어플이라고 해봐야, AIMP나 아이튠하고 몇가지 트윅어플 뿐인듯 하다.

그러니 ubuntu를 깔건, 윈도를 깔건 파폭을 여는 순간, OS는 잊게되고, 기억할 필요도 없다. 웹에 연결되고 웹자원을 더많이 사용하게되면 PC는 결국 '단말'의 형태가 될 것이다. 웹 환경이 강력해지면서 MS가 위태위태한 이유도 비슷하다. 가까이는 크롬 OS에서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 모바일 컴퓨팅의 확산도 그런 큰 흐름안에 있다. 바꿔 말하면 맥을 사용하더라도 별다른 부적응이 없을 거란 생각이다. 사파리만 있다면.

ubuntu를 깔고 추가적으로 설치한 리눅스 어플은 BMP와 smplayer 두개 뿐이다. 게임을 전혀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일외에는 로컬 프로그램이 필요치 않았다. NTFS마운트가 쉽게 되니 그저 열기만 하면 되더라. 이러니 쳐박아둔 구형 노트북도 다시 손안에 들어왔다. 일단, 구형 노트북 먼지를 깨끗이 털고, 리눅스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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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간 (20100122)

from 일기창고 2010. 1. 22. 13:17


16층 빌딩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분주히 전화를 하고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볼때면 마음 한구석 갑갑해질 때가 있다. 익숙해졌다 생각해도 좀처럼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풍경.

가끔 14층을 간다. 텅비어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바글대는 서울 한복판, 바글대는 고층빌딩. 피곤하고 지겨운 풍경. 14층 비어있는 공간을 보면 그나마 맘이 편해진다. 처음 봤을때 긴 시간 내륙의 기차를 타고 내려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시원함을 아주 잠깐 느꼈다.

오전 햇빛이 아름답다. 영화 빅이었나.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주인공이 텅빈 아파트에서 천진하게 뛰어노는 장면이 생각난다.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때에서 보였던 통유리창의 뉴욕 아파트도 생각난다. 한번도 만져본적 없는 그 고즈넉함. 언제쯤 와줄까. 

눈 앞에 쫙 갈라지듯 텅빈 공간, 처음엔 압도당했지만, 이내 친근해졌다. 열려있고 비어있는 탓이다. 딱 뒹굴기 좋은 곳이다. 햇빛을 맞기에도 좋고. 바닥에 누워 쇄도하는 햇빛을 맞고 싶다. 돌아서는데 문득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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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출근길 눈이 내린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폭설'은 이런 것이다라고 증명하듯이 눈이 쏟아졌다. 그래도 갈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종종 걸음을 쳤다. 눈은 계속 쏟아지지만, 눈을 '치워야'하는 이들은 묵묵히 제설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치워도 쌓이는 눈 앞에서 당장은 무의미해 보인다.


오늘 아침 창밖 풍경.



눈앞의 풍경이 생경하다. 눈이 덮어버린 길. 서울 도심이 아니라 몇미터씩 눈이 쌓이는 일본의 설국 풍경. 무사히 출근을 마친자의 헛소리겠지만, 이런 눈발 앞에서 출퇴근 걱정이 아니라 눈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좋을텐데 싶다.

새해 벽두부터 쌓이는 눈. 그냥 계절이 그렇고, 자연이 뜻하여 내리는 눈이겠지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눈은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기형도의 눈은 아닌것 같다. 오히려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의 눈이 더 맞겠다 싶다. 그래서 다시 읽어본다. 엄혹한 시절의 최승호에겐 굵은 눈발은 백색의 계엄령이었다. 눈보라의 군단이 엄습하는 풍경. 기어코 단절시키고야 말겠다는 해일같은 눈.

이 시를 여러번 읽어봤지만 들이치듯 쏟아지는 눈을 보니 더 가깝게 읽힌다. 좋은 시다. 최승호가 이 시를 쓰던 날도 오늘처럼 눈이 왔겠지. 엄혹한 80년대가 아닌 2010년 벽두에 읽는 이 시. 시절이 하수상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 - 대설주의보(大雪注意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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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09년 (20091231)

from 일기창고 2009. 12. 31. 16:27

5월23일. 사진의 출처를 알고싶다.


2009년은 잊지 말아야할 기억 하나를 던져주었다. 절대 잊지 않고 곱씹어야할 고통스런 기억. 내리쬐는 태양만큼이나 강렬하던 분노. 2009년 마지막 날 다시 새긴다. 그 분노와 울분이 잊혀지기를 바라는 자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2009년을 통과하는 나에게 그것은 너무도 명확한 희망이 되어버렸다.

2010년을 끝내 살아내지 못한 2009년의 노무현. 2010년을 향해가는 나에겐 기억이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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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크리스마스라니. 추운 날씨, 언 손에 찬 입김을 불어대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내게 크리스마스를 기억할 자격이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무겁게 누른다.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그렇다. 기억하지 않겠다 마음먹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잘 지나가지 않던가. 무덤덤하게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흘러가면 그만인 것이다. 기억하기에도 짧은 그 며칠, 발 아래 툭툭 치고 묻어놓는게 어쩌면 더 익숙하다.

K가 방 한켠에 작은 트리를 켜두었다. 불빛이 환했다. 여느 겨울과 다름없던 날들이 촉촉하게 반짝인다. 힘겹게 켜놓은 그 마음을 알겠기에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맙다. 기억하고 축복하자는 마음이 되었다. 발랄한 캐롤은 아직 버겁고, 마음을 느리게 쓰다듬어주는 캐롤을 찾아듣는다. 소박하디 소박한 그런 크리스마스면 좋겠다.

허민의 피아노가 참 좋다. K손을 붙잡고, 작고 밝은 그래서 따뜻한 카페에 기어들어가 착한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 피곤함 내려두고, 음악을 듣고 싶다. 잡은 그 손 놓지 않을거다.

메리크리스마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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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K와 저녁을 먹으러 대학로 근방을 서성이다 건조한 회벽에 힘없이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봤다. 무방비로 내 눈앞에 펄럭이던 다섯 글자. '안녕 노무현'. 늦은 퇴근 탓에 목구멍까지 넘어 오던 허기를 꾸역꾸역 삼킬 만큼, 플래카드는 눈 앞에서 거칠게 흔들렸다.

그게 8월 한여름이었다. 입술 꽉 깨물며 잊어야만 한다는 단호함이라면 차라리 나을 것을. 생생히 기억하려해도 자꾸만 지워지는 기억이 야속하다. 어떤 맘으로 살고 있는가. 죽음 앞에 '안녕'이라는 말조차 건네고 싶지 않았던 5월의 기억. 하루하루 지나치며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이미 그를 멀리 보낸건 아닐까. 머리를 쥐어 뜯는다.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참여정부는 어떤 정부였나. 추억과 울분이 아닌, 역사의 이름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자를 두고 울컥해지는 마음은 어쩌지 못하겠다. '빠심'이라고, 감상주의라고 해도 좋다. 도저히 냉정해지기 힘든 것도 있는 법이다. 눈물은,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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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굿 (20091008)

from 일기창고 2009. 10. 8. 13:27

날이 선선하니 사랑시가 읽고 싶어진다. 언제나 계절이 바뀌는 시절의 바람은 생경하고 낯설다. 한여름을 지나 불던 바람은 시원해 좋았는데, 지금의 바람은 차갑고 날카롭다. 바람은 달라지지 않은 듯 한데, 이상하다. 살갗에 닿는 결이 몸을 움추리게 만들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언제쯤이면 환절기에 익숙해질까. 언제나 계절은 불현듯 다가오고, 우린 준비없는 상태에서 계절을 맞이한다. 계절이 바뀌니 맘이 바빠지고, 변한 시절에 당황한다. 무섭게 흘러버린 시간에 흠찟 놀라기도 하면서. 달력이 넘어가는 것보다 계절이 바뀌는 건 더 두렵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계절은 이렇게 바뀌어가는데 어쩌나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이 땅에 사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한결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새삼 궁금하다. 환절기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람을 혹은 시간을 맞이할까. 가끔 그려보는 지중해 시절. 한해에도 몇번씩 환절기를 경험해야하는 이 피곤함에 지칠때면 가본적 없는 지중해가 그리워진다.

옷깃을 여며야 하는 바람 탓인지 따뜻한 사랑시가 아니라 차갑고 매몰찬 사랑시를 읽는다. 그냥 그렇게 있고 싶은 날이다. 


그대는 단 하루도
나의 섬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적이 없다

끝없는 어둠에 밀려
암초에 부딪쳐도
새벽을 피해
어둠으로 숨어든다

무덤의 
세월 속에서
잠깐 동안
나의 꿈이었던 
그대

잊어버림만이
최선이니
내가 그대를 잊기 전 
떠나라

사랑굿 146 - 김초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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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그래도 그 연휴의 첫날이 지나간다. 명절을 앞둔 한주간 참 많이 바빴다. 신규업무 적용으로 인한 시스템 메가 릴리즈가 있었고, 그 메가 릴리즈에 끼어 큰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작업도 있었다. 필요이상으로 분주했고, 긴장했다. 그 탓인지 연휴를 앞두고 일이 좀 진정되어 마무리 되어가는 것 같아 심적으로 편안하다. 다음주 월요일과 화요일 변수가 남아있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큰 문제없이 마무리 될거라 기대하고 있다.

당연하기도 하고, 또한 신기한건 시스템 변경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때, 릴리즈전 수행한 테스트가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테스트의 중요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신기하다고 말한 이유는 테스트에 투여된 물리적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심리적 태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테스트를 수행하면서 애초에 설계나 분석과정에서 문제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해 근본적인 수정이 가해지는 케이스는 나에게 그다지 많이 발생하지 않는 듯 하다. 내가 꼼꼼하게 일해서 그렇다는게 얘기가 아니라, 변경을 진행하면서 가능한 많은 발생케이스를 생각하며 일하는 습관 때문인것 같다. 다시 말해 내가 생각하는 테스트는 릴리즈 여부를 결정짓는 최종테스트와 동일한 무게감을 지닌다고 하면 비슷하다. 

테스트 단계는 완벽한 상태를 또 한번 검증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건 일의 습관의 차이인것 같은데, 어떤 사람은 테스트를 개발 과정의 일부로 생각하기도 한다. 얼개를 맞추어 놓고, 테스트를 통해 수정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허나 나에게 테스트는 '최종검증'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그래서 테스트 과정에서 근본적인 오류가 발견됐을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큰일이 난 것 같은 불안함도 때론 느낀다. 게다가 그것이 애초의 설계나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라면 더더욱.

이런 상황에서 테스트에 들인 노력, 관심이 있었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지극히 심리적인 것으로 "뭐, 이정도 했는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천운'이 없어서 그런거야." 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여튼, 관심이 적었던 업무는 꼭 문제가 생겼다. 업무가 업무인지라 잘못된 릴리즈가 대형사고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업무'이다보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보다 덜 위험한 업무는 관심을 덜 쓰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완전히 소홀히 하다가 한방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탓에 이번처럼 메가 릴리즈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업무가 더 걱정이 된다. 더욱더 엄밀하게 테스트를 진행해야했으나, 검증이 미진했기 때문이다. 미신적인 얘기일지 모르나, 좀더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 업무는 '하늘'도 도와주는게 아닐까 싶다. 좀 우스운데, 일종의 '보상'이 이뤄지는거란 생각. 그나저나 이런 변경이 있을때마다 사실 긴장되고 잘 될까 걱정되는게 장난이 아니다. 때로는 위험수당도 요구하고 싶을 만큼.

추석연휴 시작날 늦은 시간에 업무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배부른 저녁식사 탓인거다. 명절에 포식하면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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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에서 (20090903)

from 일기창고 2009. 9. 4. 00:26

출근길에 오랜만에 151번 버스를 탔다. 이사하고나서는 103번 버스를 이용했었는데, 확실히 전용차로를 달리다보니 출근시간은 많이 단축이 된다. 103번은 확실히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150번이나 151번에 비해 15분정도 더 소요가 된다. 앞으로는 졸려서 쓰러지는 지경이 아니라면 가급적 103번을 자제해야겠다. 근데 될지 모르겠다.

출근길에 같은 버스를 타면 마주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마주치다가 우연이 길에서라도 보면 아는 척을 하게될 때도 있다. 워낙 얼굴이 익숙해서 그렇다. (실제 그런적이 있다.) 그중에 151번을 탈때마다 나와 같이 남대문쯤에서 내리는 분이 있다. 다리가 불편하신 젊은 분인데, 항상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일어나서 서 계신다. (롯데백화점 정류장 부근이다.) 처음에는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왜 한 정거장 미리 서계시나 의아해 했었다.

처음엔 왜 그럴까 싶게 쳐다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미리 일어서는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은거다. 다리가 불편하시다보니 아무래도 정류장에 도착해서 일어나면 출구까지 걸어나가는데 시간소요가 될 것이고, 뒤에 내리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조금의 텀이 생길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게다가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니 다들 기다려주겠지만, 이 분은 그런 불편조차도 주지 않기 위해 한 정거장을 미리 서 계신것 아닌가 싶었다. 그 마음이 짠한거다. 가뜩이나 대중교통 이용하기 녹록치 않으실텐데 (게다가 버스기사분들의 급정거 급출발이야 워낙 악명 높지 않은가) 그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싶어서.

좋은 맘일까, 불편한 맘일까. 한편으로는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한 정거장 먼저 일어나야만 한다는 상황이 씁쓸했다. 차가 멈추고 그 분이 불편한 걸음을 천천히 걸어 출구에서 내려설때까지. 그 짧디 짧은 그 시간마저도 우리의 시선은 거칠지 않았을까 싶었다. 혹여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싶어 맘이 불편하더라.

충분한 시간동안 멈춰서고, 내릴 사람들은 차가 멈춰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고, 걸음이 불편하신 분들은 먼저 내리도록 배려하고 이런게 드물어진 시절이다. 곡예하듯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적어도 반 정거장 앞에서 일어서야 하고, 다 내리기 바쁘게 기사분은 문을 닫는 스위치를 켜고, 삑삑 경고음이 들리고. 이게 일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분이 한 정거장 미리 일어설 수 밖에 없는거다. 같이 사회를 꾸려가고,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서로를 보기는 커녕 제 앞만 보기 바쁜 삶이다. 참 팍팍하고, 팍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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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 (20090831)

from 일기창고 2009. 8. 31. 13:31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물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 네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 줄는지. 아무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 다섯이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 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김경미 <비망록> -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

한해가 빨리간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4달 남았구나. 날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이 시가 생각났다. 서른 세해째의 가을은 어떤 말소리로 찾아올 것인가. 뭐든 기록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내가 남기는 흔적들은 때로 너무 지저분하다. 나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요 며칠했다. 언젠가 내가 끄적이는 모든 것들. 실낱처럼 가볍고 싶을때 그것들이 하나둘 무게처럼 달려있을까 싶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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