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나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읽었을때의 감정이 휘발될까 싶어 바로 적어두고 싶었는데...조금 아쉽다. 마그리님의 글에서 최인훈의 광장 서문을 발견하고 주의깊게 읽어봤다. 그 서문의 쓰여진게 1960년이니 새시대에 대한 감격, 공화국에 대한 기대가 물씬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광장'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이 들어섰기 때문임을 당당히 고백하고 있다. 건조할 거라 생각했던 광장의 서문이 이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이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새벽', 1960년 10월 -

내년이면 최인훈의 등단 50년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 '광장'이 태어난지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발표한 뒤 6번이 넘게 개작했고, 작가가 아직도 다시 써야할 소설이라는 '광장'. 4.19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그 서문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갑갑하다. 빛나는 4월. 그가 보람을 느꼈다던 그 시절. 막 발표한 소설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5.16이 벌어졌고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서문에서 얘기한 민중이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그 구정권을, 어쩌면 더 악랄한 정권이 대신해 들어섰다. 광장을 꿈꿨던 최인훈은 벌어진 역사적 사실앞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운명이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하며,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그 현장에 있으려한 명준은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올해 여름, 짧은 광장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뜨거웠던 광장이 지나가고, 떠나간 그 자리, 그 광장에는 여전히 풍문만 구구한 것 같다. 그 풍문의 지층은 작가가 50여년 전에 말했던 것처럼 두텁고 무겁다. 어쩌면 두터운 퇴적이 이뤄진 것처럼 단단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4.19의 설레임, 80년 봄, 2002년 대선, 2008년 촛불까지. 그 빛나는 기억들. 새로운 기대감이 움트던 그때. 우리는 광장에 서있지 않았나. 그러나, 광장에는 풍문만 가득하고 여전히 우리는 자유를 살지 못하고 있다. 광장의 서문을 읽으며 도저히 떨치기 힘든 무력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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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보면서 울컥해서 감상 몇줄. (원글출처 http://eniac90.egloos.com/4690483) 난공불락이라고만 생각했던 코스피 1000포인트선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원달러환율은 1500원대를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작년 이맘때,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가 터지고나서 증시의 대표적인 비관론자라는 한분이 코스피 1600을 얘기했을때, 난 코웃음을 쳤다. "에이, 설마 조금 흔들리긴 하겠지만, 그렇게야 떨어지겠어." 라고 생각하면서... 미국경제가 당장은 타격이 있겠지만 우리증시와 경제가 미국경제와 '디커플링'될 정도로 튼실해졌다는 믿음이 팽배해있었다. 우리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일거라고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부터 연초 주가가 잠시 주춤했을때, 저가매수의 기회라며 비중확대를 권하는 증시관계자들의 입방아를 많이 들었다.


지금 따지자면 뭐, 대강 이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무슨 좀비영화 스토리도 아닌데,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주변상황이 처참하다. 자고 일어나니 좀비 바이러스가 휩쓸고 가버린 폐허에 혼자 남아있는 윌 스미스처럼. 어떻게 이 상황을 견뎌야 하나 두려움이 앞선다. 벌써부터 실업을 걱정하는 직장인이 늘었다는 통계수치도 보인다. 금융경제도 실물경제도 그리고 경제주체들의 심리도 더이상 최악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당장 회복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은 듯 하다.

개그경제 2기를 우연히 봤다. 보는 내내 기발함과 싱크로율 100%에 웃기는 했지만, 정말 웃고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람들이 많을거다. 정말, 모든 사태의 원인을 '리만브라더스'로 귀결시킬 수는 없을거다. 어쩌면, 그들은 마이너한 원인제공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직도 그들이 '잘 대처했으며, 앞으로도 잘할거라 믿고있으며,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태는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세계경제가 그러니까 어쩔수 없다고 방관하고 있다. 그저 불구경이다. 그리고 선제적 대응이 아니라 그저 땜질식 처방, 임시방편만 난무하고 있다.

정말, 이제 스스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왜 세금내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요즈음의 상황들. 인류를 구원하는 처방약을 찾아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라, 한 몸 건사해야 할 각개격파, 생존게임이라는 느낌이 엄습한다. 언제는 안그랬나 싶다. 갈수록 팍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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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MBC

from 생각창고 2008. 10. 13. 09:09

MBC, 대통령 라디오 연설 방송 취소

몸과 마음이 무거운 월요일 출근길. 책상머리에 앉아 뉴스를 보다가, 상큼한 소식하나 발견. 안그래도 혈압오르는 일이 많은 요즘 시대에, 그의 '뻘소리'를 한명이라도 덜 듣는게 정신건강은 물론 경제회복에도 큰 도움이 될거다. (라디오 연설이 초래할 생산성 저하를 생각해보라) 루즈벨트 리더쉽, 노변담화를 흉내내고자 하는 단세포적인 발상이야 눈 딱감고 참아주겠지만, (아마도 청와대 핵심관계자라고 쓰고 이동관이라고 읽는다의 생각 아니었을까) 뉴스가치 조차 없을 그 허접한 멘트가 내 주변을 윙윙거라고 다녔다면 귀를 틀어막았을 터. 그냥 그 분의 라디오연설은 몇몇 지지자 분들이 찾아가 들을 수 있도록 청와대 홈페이지, 어느 한 구석에나 올려놓았으면 좋겠다. MBC의 용단을 깊이 환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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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시사경제 포스트. 열이 나서 몇자 써본다. 안쓰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몇몇 분들의 재주는 타고난게 아닌가 싶다. 어제 뉴스를 보다가 황당뉴스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기사를 봤다. 대략 환율이 널뛰고, 달러부족이 생각보다 심각하니 "달러모으기"운동을 하자는 국회의원님들의 말. 이런 말씀을 하신 분중에 한 명은 공천헌금 의혹으로 물의를 일으킨 양정례씨도 포함되어있다. 이 분 1차 공판이 끝난걸로 알고있는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찾아보기도 귀찮다.) 이 분 제발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 국회의원 뱃지 달고 개인적인 영달을 누리는건 (세금 아깝긴 하지만) 욕 몇번 해주고 참겠는데, 이런 뻘소리로 열받게 하는 건 참아주기 힘들다. 안그래도 열받게 하는 인간들이 많은데, 이 분까지 끼어들어서 난리 부르스를 춰대고 있으니.


오늘 이시간까지도 환율은 가파르게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달러 사재기가 최고의 재테크가 될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 발언을 하는 '키치적 발상'에 놀랄 따름이다. 그 발언의 저변에는 10년전 금모으기 운동의 '성공적' 성과가 있을거다. 난 그때도 이런 순정주의적인 금모으기 운동에 회의적이었다. 그저 감정적이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운동의 느낌. 물론 20억달러의 외환보유고 확보로 위기극복에 큰 기여를 했을지 모르지만, 그게 외환위기 극복에, 외환보유고 확보에 주요한 동인은 아니었다. 이런 금모으기 운동은 그 자체로 위기극복의 심리적 효과는 할지 모르지만, 이런 '운동'이 일종의 책임전가, 물타기의 역할을 한다는게 더 큰 문제다. 즉, 잘못한 놈 따로 있는데,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국민의 쌈지돈으로 메워주는 상황인 거다. 외환위기 이후에 원인제공자인 대기업의 경제적 집중이 더욱 심해졌다는 기사를 보면 짐작이 갈거다. 뭐 이걸 이용해서 돈놀이 한 놈들도 있으니.

미국 납세자들의 반대를 등에 업고 (결국 통과되긴 했으나)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미국 하원의 결정은 "사고친놈 따로 있는데, 왜 우리가 메꿔줘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닌가. 결국 '공멸'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진 못했으나, 미국은 아마도 위기를 초래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책임을 물을 것이고,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유럽을 넘어 아시아에까지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현 경제체제에 대한 반성과 개혁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위기를 초래한 경제주체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묻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리만브러더스-리명박+강만수의 삽질에 대한 책임 추궁은 필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덮치고 있지만, 유독 원달러환율만 맥을 못추며 폭등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10년전 쌈지돈을 모아, 생업에서 쫓겨나는 피눈물나는 고통을 겪으며 경제를 회복해놓은 우리 국민을 향해서 벌써부터 '달러를 모으자'는 말을 해대는 그들에게 뭐라 해주어야 하나. 왜 그 분들은 글로벌 위기는 글로벌하게 전세계를 덮치고 있지만, 왜 원달러 환율만 이리도 불안정하게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는지 묻지 않는 걸까. 불과 1년전만 해도 누구도 실현되기 힘들거라 예상한 원달러환율과 코스피지수의 '그랜드 크로스'를 취임 몇개월만에 달성하신 '리,만 브러더스'의 정책적 실패는 지적하지 않는걸까. 근본원인과 책임추궁, 개선대책에 대한 얘기는 전무하고, 또다시 국민을 향해 희생하라고 얘기하는 그 저의가 괘씸하고 열불이 난다.

격하게 공감한 김종배님의 글을 읽어보면 더 명확히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이번엔 '달러 모으기 운동' 인가? 그래, 정말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달러 모으자고 하자는 건가? 몰랐던건 아니지만,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들이 없다. 양정례씨의 허무맹랑 개그에 강만수 장관은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하긴 어렵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지금 이런 허무맹랑 중언부언 문답이 국정감사에서 오가는 중이다. 그 사이 환율은 불안을 틈탄 기대심리로 계속 오르고, 민생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10년전 침몰했던 그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가고있는건 아닐지 이젠 진심으로 걱정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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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분의 사진을 올려 의도하지 않은 불쾌감을 드린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말씀을 전합니다. 보도 사진이라는게 짜고치는 고스톱이 많다는 걸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 한장의 사진으로 현정부의 수준과 한국언론의 수준을 여실히 확인 할 수 있겠네요. (보자마자 3초간의 썩소와 함께 단발마의 욕이 튀어나왔다는...)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4일 오전 재래시장인 서울 중곡동 제일시장을 방문, 장바구니를 끌며 물가 체험에 나서고 있다


정치인이란 족속들이 기자들이 와주지 않으면 아무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어떤 촌스러운 앵글이라도 일단 얼굴부터 들이밀어야 하는 생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래야 뭐좀 한다고 생각들하니까) 뭐 그런 본능에 몸부림치는 만수씨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는 않네요.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벌어졌을 주변상황들이 괘씸하고 씁쓸한 겁니다. 역대정부라고 이런 액숀들을 안했을리는 없을 겁니다. 또 제가 현 정부에 더욱 까칠한 까닭에 이런 짓이 더 고깝게 느껴졌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치만, 요즘 상황에 이런 액숀을 한다는 그 사고방식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략 이런 시츄에이션이었겠죠. 

장관님, 추석도 됐는데 물가도 심상치 않으니 재래시장 한번 가시죠? 기자들 몇명도 부르고, 직접 재래시장 상인들하고 포즈 취해주시면 괜찮을 겁니다. 국민들에게 좋은 시그널을 줄 수 있겠지? 허허허 이쁘게 찍히면 '아, 장관이 추석민심에 신경을 쓰는구나' 서민경제를 위하는 분위기가 날겁니다.

거시 경제를 책임지는 장관이 (국회의원이 이랬다면 강도는 덜했을까?) 추석 장바구니 들고 포즈 취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요? 물론, 그동안 몰랐던 삽겹살 1인분 가격을 확실히 확인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셨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게다가 처음 재래시장을 활보하며 바구니를 끌어보신 '체험 삶의 현장'을 만끽하기도 했을테구요. 이런 전시성 행정, 너무도 쌍팔년도스러워 손발이 다 오그라드네요. 그에 충실히 장단 맞춰주시는 우리나라 언론과 기자들도 한심스럽긴 마찬가지구요.

정말, 언제까지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분들의 이런 '빽투더 80년대'스러운 쑈를 봐줘야 하는걸까요. 지금 스스로 뭘해야 하는지,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짜증만 유발하는 저질 쇼를 앞으로 몇년 더 봐줘야 하는 겁니까. 그런 쇼가 쑈로 끝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지네요.

덧) 갈치 및 각종 해산물,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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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왜 휴일엔 눈이 일찍 떠지는건지...) 오바마의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동영상을 봤다. 화려하고, 열정적이고, 한편의 잘짜여진 쇼처럼 진행되더라. 연설문 잘쓰고, 연설 잘하기로 소문난 오바마이다 보니 더 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라 대선관련한 시시콜콜한 이슈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솔직히 큰 관심은 없다.  

우리나라 언론은 미국대선을 중요한 이슈로 취급하고 있지만, 오바마가 되느냐, 메케인이 되느냐는 사실 우리에게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거다. 왜냐하면 그들 둘다 미국의 정치인이고,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이건 너무도 당연한데 이 땅의 정치인들은 정반대로 움직이니 참으로 기이한 족속들이다) 미국내 이슈에 대한 정책적 차이는 극명할지 몰라도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차별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게 사실이다.

뭐, 파병이 걸려있는 이라크, 아프칸 문제나 우리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의 차이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온도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또 희대의 악동 부시가 저질러 놓은대로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뻘짓을 한다면야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한번 호되게 악몽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또 그같은 뻘짓을 눈뜨고 봐줄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기대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다)

오바마의 연설을 보면서 부러웠던건 앞에서 얘기했듯이 오바마의 당선이 '한국에 어떤 콩고물이 떨어질까?'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그런건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그가 미국인들에게 심어주고 싶어하는 가치, 꿈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국가를 이끌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자신의 비전을 펼치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과연 어떻게 해나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줘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나라에 사시는 누구처럼 '747', 국민소득 몇만불,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허울만 그득한 레토릭으로 국민을 호도할 문제가 아니란 말씀이다. 적어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라면 말이다. 아무런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레토릭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하고 있는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바마는 수락연설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이 이루려하는 국가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자신의 약속에 대해서 말이다.


What is that promise?
 
It’s a promise that says each of us has the freedom to make of our own lives what we will, but that we also have the obligation to treat each other with dignity and respect.

Ours is a promise that says government cannot solve all our problems, but what it should do is that which we cannot do for ourselves? protect us from harm and provide every child a decent education; keep our water clean and our toys safe; invest in new schools and new roads and new science and technology.
 
Our government should work for us, not against us.  It should help us, not hurt us.  It should ensure opportunity not just for those with the most money and influence, but for every American who’s willing to work.
 
That’s the promise we need to keep.  That’s the change we need right now.  So let me spell out exactly what that change would mean if I am President.


오바마는 얘기한다. 정부는 우리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일해야 하고, 우리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기위해서 일해야 한다. "Our government should work for us, not against us.  It should help us, not hurt us." 이 말을 듣고서 무척이나 씁씁해졌다. 과연 지금 우리의 정부는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우리가 아니라 그들 일부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가. 뜨거웠던 6,7월의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정부의 모습. 많은 사람들이 자문하지 않았었나 '그들은 과연 누굴 위해 일하고 있는가'라고

오바마는 포장된 언어가 아니라 나름 진실한 언어로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려하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렇게 느끼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말은 없다. 감동, 진실, 상식, 약속. 그것이 실천의 형태로 실현될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만, 적어도 그런 오바마의 연설에서 미국인들은 어떤 희망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오바마가 말하는 약속은 가령 이런 것이다. 정부가 모든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건 시민을 보호하고, 모든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물을 깨끗이 하고, 장난감을 안전하게 하고, 새로운 학교, 새로운 도로, 새로운 과학과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에 굵은 글씨) 깨끗한 물, 안전한 장난감. 그냥 그런게 정치이고, 비전이고, 우리가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일게다.


Tonight, more Americans are out of work and more are working harder for less.  More of you have lost your homes and even more are watching your home values plummet.  More of you have cars you can’t afford to drive, credit card bills you can’t afford to pay, and tuition that’s beyond your reach.
 
These challenges are not all of government’s making.  But the failure to respond is a direct result of a broken politics in Washington and the failed policies of George W. Bush.

끝으로 쓴소리 한마디. 부시정부를 비판하면서 얘기한 오마바의 말을 청와대의 그분과 그 일당들에게 해주고 싶다.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이 모든 경제위기가 정부가 만들어낸 것은 아님에 분명하다. 하지만 연일 삽질을 계속하고 있는 현 정부의 대응 실패는 여의도 정치와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정책 탓이다. 당연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백번 더 잘하겠다고 조아려도 부족한 이 판국에 한 청와대 수석은 우리 경제가 지난 6개월간 선방했다는 따위의 혈압올라가는 망발이나 하고 있으신 중이다. 젠장.)


연설 전문 및 동영상
http://my.barackobama.com/page/community/post/samgrahamfelsen/gG5l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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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번 올림픽 개폐막식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인데 문화적 세련은 돈이나 인력 치장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구나 싶다. 수천의 군중을 동원해서 물량공세를 펼치는 중국의 쑈가 입이 다물어지게 하는 것은 분명 있으나 뭔가 부족하다. 중국 기예단 공연을 보면서 감탄을 하지만 가슴을 울리거나 짙은 감동을 받진 못하는 거와 비슷할까 싶다.

폐막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런던올림픽을 홍보하는 8분이었다는 우스개를 중국인들이 들으면 가슴아프겠지만, 솔직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떼거지로 나와 매스게임하듯이 국력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문화적 빈곤을 느꼈다면 지나친 걸까? 중국이 보여줄 수 있는것은 '유구한 역사'와 '엄청난 인구'이 두가지였다는 씁쓸함.

중국 수천명의 곡예보다 베컴의 손짓, 지미페이지의 기타, 경쾌한 사이클이 '와~'하는 신선한 탄성을 주었다는 것. 이른바 문화자본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준다. 그게 베이징 / 런던의 현재진행형의 차이일 것이다. 형성된 이미지의 단단함.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어쩌면 중국이 그토록 극복하기를 원했을 시니피에의 간극은 여전하다는 사실.

순간 문화사대주의가 아닐까 싶은 '기우'가 들기도 한다. 그런걸까? 어쩌면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나에게 남아있는 스테레오타입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리 빗나간 생각은 아닐거 같다.

부르니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 곡 참 좋다. (순간, 자칭 월드스타 '비'를 비롯한 중궈가수들이 대규모로 등장했던 '워 아이 베이징 (我愛北京)'의 난감함이 스쳐간다) 이런 퍼스트레이디를 가진 국가, 그리고 풍겨져 나오는 세련미, 품격. 비단 중국뿐이랴. 우리코가 석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arla Bruni - Lady Weeping At The Crossroads
(No Promises (2006)

Lady, weepinng at the crossroads,
Would you meet your love
In twilight with his greyhounds,
And the hawk upon his glove?

Bribe the bird then on the branches,
Bribe them to be dumb,
Stare the hot sun out of heaven
That the night may come.

Starless are the nights of travel,
Bleak the winter wind;
Run with terror all before you
And regret behind.

Run until you hear the ocean's
Everlasting cry;
Deep though it may be and bitter
You must drink it dry,

Wear out patience in the lowest
Dungeons of the sea,
Searching through the stranded shipwrecks
For the golden key,

Push on to the world's end, pay the
Dread guard with a kiss
Cross the rotten bridge that totters
Over the abyss.

There stands the deserted castle
Ready to explore;
Enter, climb the marble staircase,
Open the locked door.

Cross the silent empty ballroom
Doubt and anger past;
Blow the cobwebs from the mirror,
See yourself at last.

Put your hand behind the wainscot,
You have done your part;
Find the penknife there and plunge it
Into your false heart





Carla Bruni - L´amour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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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라는걸 믿고 싶지 않지만) 이번 올림픽은 한국시간과 비슷해서였는지 새벽녘에 일어나는 수고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꽤 많은 경기를 보았고, 같이 즐겼고, 환호하고, 행복해했다.

올림픽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일부러 혹은 어쩔 수 없이 한국사회의 많은 이슈를 외면한 '원죄'가 스물스물 솟아나오려는 걸 보니, 나의 기억도 다시 일상적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시간은 꽤 걸릴것이다. 올림픽 이전의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괴로워 투명한 경쟁, 아름다운 모습들에 더 빠져들었던 보름간의 축제. 나 뿐만아니라 이 땅의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으리라.

오늘 시청에서는 환영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아침 출근길 시청광장에 설치되고 있는 무대를 보면서 정신이 번쩍났다. 제발, 제발 '관제행사'의 추레함으로 선수들의 열정을 가리는 일은 없었으면...하고 기도하고 싶다. 어쟀든 열전은 끝이났고, 선수들도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복귀할 것이며, 아직 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지만 어쨌든 "잔치는 끝이 났다" 서글프게도... 아직도 TV를 켜면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선수들의 모습, 땀이 어린, 눈물 범벅된 삶의 현장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이번 올림픽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난 '반성의 올림픽'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반성을 해야할 만큼 형편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스스로 반성했다는 의미에서 '반성의 올림픽'이다.

올림픽 금이라는게 하늘이 도와야 한다고 하지만, '종합대회 컴플렉스' 운운하는 찌라시 기자들을 가볍게 웃어제끼며 들어올린 장미란의 바벨 앞에서 느꼈던 '절대실력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 안될거라는 체력적 한계, 패배주의를 유쾌하게 넘어서버린 박태환. 심장이 머질것 같은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래서 지는 모습도 아름다웠던 남현희. '불굴'이라는 말은 너무 무거워 어울리지 않은 하지만 부상을 안고 얼굴 찡그리며 발차기를 날렸던 황경선. 등등등...

그들의 치열함을 보면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반성을 많이 했다. 목표를 향해서 치열하고 끈질기게 준비한 그들. 4년이라는 시간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아갔던 그들. 멋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뭔가 뜨거운게 가슴속에서 솟아나와 가슴을 치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 그렇게 삶을 위해 치열해본적이 있었던가라는 자문을 하고는 했다. 그들이 세웠던 4년을 노력한 목표가 쉽게 달성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올림픽은 현실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삶은 현실이 아닌가. 현실의 무게를 이기고 당당하게 올림픽 무대에 올곧게 선 그들의 두발이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맙다. 그들 모두에게.

한국 여자 핸드볼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장면을 올려본다. (두 방송사의 감격을 모두 올려본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 노장선수들의 투혼. 땀방울을 보면서 울컥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들의 퇴장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그들이 따낸 메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 그 세월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라. 팍팍한 각각의 생활. 다들 한보따리씩의 사연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을 거고, 또다시 그 무대에 서야 하나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을 게다. 그걸 이기고 최선을 다해 뛰는 그들의 뒷모습이 나에겐 너무도 무거운 숙제였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자, 이기려하지 말라" 이 글귀를 적어 책상앞에 붙여둔다.



MBC중계



KBS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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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었다. 싫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권력을 이용해 이런 짓을 서슴지 않는 유아적인 정권에 기가찰 따름이다. 그래 이제 누굴 KBS사장으로 앉힐 것인가. KBS노조는 누구를 사장으로 맞이할 것인가. 스스로 주어진 독립언론, 공영방송의 가치를 스스로 밟아놓고 어쩌자는 것인가.


동지들을 뒤로 두고 떠납니다
 
KBS 동지 여러분
 
5년 여 전인 2003년 봄, 초록의 생명력이 차고 넘치던 여의도의 KBS에 발을 들여 놓던 때가 떠오릅니다. 엊그제 같기도 하구요.
 
그 날 저는 ‘독점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으로’ ‘집중에서 분산으로’ ‘폐쇄에서 개방으로’라는 세 가지 시대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시대정신을 KBS에서 실현하기 위해 ◇ KBS 사장의 제왕적 권력을 해체하고 ◇ 회사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는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와 경직화된 관료주의 조직의 폐쇄성을 없애는 한편 ◇ 일선 직원들의 독창력과 창의력을 억압하는 과거의 틀을 깨고, 자율과 자유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지난 5년여 동안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KBS 조직구조를 수직적 위계질서에서 수평적 관계로, 자율과 자유가 제약받지 않는 조직문화로 바꿔, 그 속에서 보도에 성역이 없어지고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된 것만으로도 제 소임의 상당부분은 성취되었다고 보고, 지난 5년여를 행복하고 보람된 제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간직한 채 이제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 거센 광풍으로 휩싸여 있는 공영방송 KBS를 둘러싼 이 엄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90년 방송민주화 투쟁 이후 그동안 여러분들이 보여준 공영방송에 대한 치열한 의식과 열정과 헌신을 믿기에, 지난 5년 여 동안 여러분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키워온 자율과 자유의 정신을 믿기에, 그리고 광풍이 휘몰아 쳐도 그 속에서 굳건하게 공영방송의 독립을 지키려는 여러분들의 굳건한 의지를 믿기에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제 떠나려 합니다.
 
제 문제를 둘러싸고 그 동안 회사 내에서 있었던 일부 갈등과 분열을 이제는 모두 극복하고, 오로지 방송독립을 위한 선한 싸움에 모두가 단결된 모습으로 나설 것으로 믿습니다. 언론의 자유, 이를 구체적으로 지키기 위한 필요조건인 방송의 독립,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아니 그 보다도 공영방송인의 자존심과 긍지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쳐 이 광풍을 헤쳐나가리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제로 ‘해임’된 뒤 사장실에서 농성을 하면서 계속 싸워볼까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공영방송 독립을 간절하게 원하는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정권의 퇴행적이고 파괴적인 방송 장악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그런 생각을 접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공영방송 KBS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영방송 KBS를 지키는 일에 저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문제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동안의 견해 차이와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년여를 되돌아보면, 가슴 아픈 일도 많았고, 터무니없는 비난과 음해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난과 음해를 통해 오히려 더 강해지고 여유로워지는 역설도 경험했으며, 조악한 권력집단이 되어버린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있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가슴 아픈 일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민경삼 기자를 비롯하여 유명을 달리한 여러 사우들과의 이별이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한없는 평안이 깃들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을 보살피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8일 공영방송 KBS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침탈되고 유린되는 현장을 보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저미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날 여러분들이 3층 복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사장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보았습니다. 혼자 많이도 울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분노와 절규는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마다 가녀린 촛불 하나씩 들고 회사 앞을 지켜온 그들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떠나려 하니 이제는 많은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2월 말 한겨울 칼바람 추위 속에 해발 1,200m 고지에 있는 화악산 송신소에 올라 그곳 직원들과 함께 소주잔을 주고받으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냉혹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그 콘서트 연습장 모습, 마음에 드는 30초짜리 장면을 찍기 위해 30분 이상을 쏟아 붓는, 드라마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드라마 촬영 현장, KBS 드라마가 모든 장르에서 싹쓸이 1등을 한, 불가능을 성취했던 2004년 가을 이야기, 이달의 기자상을 휩쓸어온 보도본부의 경이로운 변화와 성취, KBS WORLD 채널의 중국 진출을 위해 4년 동안 마셨던 술이며, 그 많은 토론과 중국 관리들과의 만남, 수원 센터에서 열렸던 간부 대토론회, 팀제 도입과 지역국 기능조정을 위해 1년여 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진행했던 토론과 힘들었던 사내 의사 취합 과정, 방송법 개정과 공공기관특별법 관련한 온갖 싸움들, 수신료 인상을 위한 노력과 이를 둘러싼 회사 안팎의 갈등과 비판...이제는 그 모든 일들이 그냥 아련한 시절의 사진첩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의 후반부에서 폭포수 같은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지난 5년여 동안 KBS에서 참으로 좋은 벗들, 참으로 훌륭한 동지들을 많이 만났다는 점입니다.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이 축복만으로도 참 행복하답니다. 앞으로 저의 삶은 그만큼 풍족해질 것이며, 그만큼 덜 외로워질 것입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비록 몸은 KBS를 떠나지만 마음은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 것입니다. 밖에 있으면서 그동안 방송 독립을 위해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법정에서 확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며, 글과 활동을 통해 언론의 자유, 방송의 독립,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KBS 동지 여러분
 
지난 5년 여러분과 함께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12일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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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이사회가 사장 해임안을 가결했다고 한다. 그렇게 눈에 가시였을까. 불과 한달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민을 위협하고, 압박하고, 거짓으로 희롱하는 정부. 촛불앞에 겸손하겠다며,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그리고 소통하겠다며 머리숙인 자신을 그는 기억이나 하고있을까. 의도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린 정부.

거세게 몰아치던 촛불이 잠시 사그라들고, 한차례 소나기가 오고, 한여름 폭염이 다가오면서 본색을 드러내는 상황들. 이렇게 지나가는 거라면, 이런 분노, 기억이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체화되지 못한다면...생각만으로 끔찍하다. 기대할 게 없는 이 나라. 이렇게 키보드 앞에서 분노하며 그져 몇줄 끄적일 수밖에 없는 내 상황도 한심스럽다.

변할거라는 기대없이 나아갈 수 있을까? 마르틴 뉘멜러의 글이 섬뜩하다. 나도 이 시에서의 'me'가 될 것 같아서. 나는 KBS와는 상관없으니까.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이들과는 다르니까. 살기도 힘든데 뭘. 순간순간 솟아오르는 자기위안이 나를 내리칠 것만 같은 두려움.

1996년 대학시절 이후로 하지 않았던 이런 고민을, 2008년의 한국사회는 왜 강요하고 있는가. 발끝에서부터 분노가 밀고 올라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artin Niemoeller's poem inscribed on a stone in New England Holocaust Memorial (from wikipedia)



맨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그들을 변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그들을 변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은 가톨릭 교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그들을 변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가톨릭 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그리고 그 무렵에는 나를 변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When the Nazis came for the communists,
I remained silent;
I was not a communist.

When they locked up the social democrats,
I remained silent;
I was not a social democrat.

W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I did not speak out;
I was not a trade unionist.

When they came for the Jews,
I remained silent;
I wasn't a Jew.

When they came for me,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out.

http://en.wikipedia.org/wiki/First_they_c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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