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벚꽃놀이

from 영화창고 2009. 4. 7. 23:38

4월 이야기
감독 이와이 슌지 (1998 / 일본)
출연 마츠 다카코, 타나베 세이이치, 루미, 가토 카즈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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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이번주 절정이라는, 다급함을 재촉하는 말을 듣고 생각났던 영화. 4월이야기. 우산을 써야 할정도로 쏟아지듯 내리던 벚꽃 탓인지, 이 장면은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봄풍경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보면서 그 거리를 한번쯤 '걷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장면들. 그래서일까. 지금같은 봄날, 봄철이 되면 한번쯤 꺼내어 보게된다. 내러티브보다는 이미지로 더 깊이 남아있는 영화. 기억이나 추억따위가 그러하듯이. 

벚꽃, 봄비, 우산, 이사, 들판, 연, 신입생, 입학식, 서점, 동아리, 설레임... 봄날의 풍경이 촘촘히 박혀있는 사랑스러운 영화. 되돌아 생각해도 아름다운 그 풍경. 오늘 다시 꺼내보며 갈무리 해본다. 어쩌면 아프고 시린 기억들은 도려내어버린 이 비현실적인 영화가 그래서 요즘같은 시절에 꺼내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휴일에 가면 사람반, 벚꽃반일게 분명한 벚꽃축제를 찾아다닐 것 같지는 않다. 오며가며 벚꽃이 또 그렇게 지는구나, 언제나 짧았지만 올해도 짧구나.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아쉬워하겠지. 그래도 아쉬우면 렌즈로 담아낼지도. 나만 아는 벚꽃길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래서 걷다보면 같이 걸었던 사람들이나, 기억들이 떠오르는. 마츠 다카코같은 아이와 걸었던 기억이라면 더 좋겠지.

이 영화 다시 보면서, 이 아름다운 벚꽃으로 혼자 벚꽃놀이 해본다. 그 숱한 봄날의 기억들도 같이 불러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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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ty Bites...I'm Nuthin'

from 영화창고 2009. 2. 4. 15:52

청춘 스케치
감독 벤 스틸러 (1994 / 미국)
출연 위노나 라이더, 에단 호크, 벤 스틸러, 조 돈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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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생각하면, 웬지 모르게 너바나가 생각난다. 1994년도라는 영화의 개봉년도 탓일 수도 있고, 수많은 얼터너티브 혹은 모던락, 혹은 포크락 등등등...명곡을 담고 있는 이 영화의 OST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고등학교때 밴드하던 녀석이 빌려준 너바나 공연실황 비디오에서 커트 코베인이 심드렁하며 The Knack의 My Sharona를 '명곡'이라 칭했던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My Sharona는 앨범의 첫 곡이다.) 여튼, 이 영화의 OST는 그 당시 헤비메틀의 무거움과는 다른 그래서 새로운 락음악에 목말랐던 나에게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이 앨범을 통해 알게된 뮤지션들도 많다. 특히 빌보드 차트에서 메가히트를 기록했던 Lisa Loeb & Nine Stories의 Stay는 '영롱한' 기타 전주만 들어도 아직 맘이 설렌다. (이거 사실이다.)

청춘을 이야기하는, 이제 막 사회와의 불화를 경험하는 그들의 사랑과 젊음. 고등학교 시절에 볼때는 그런 고민과 부딪힘조차 참 부러웠었다. 물론, 대학시절 다시 볼때는 다른 느낌이었지만...졸업식에서 "the answer is 'i don't know"라고 레이나가 한 말은 솔직해서 울림이 있었다. (지금은 상업적 소비로 말 자체가 좀 진부해졌지만) X-generation을 규정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러므로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구나 답은 있으나 그 답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는 패배주의도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 해답은 없고, 또 그건 알 수 없는 것이니 우리에게 해답을 기대하지 말라는 외침에 가깝다. 그런 젊음을 말하고 있기에 Reality Bites는 '반항'과 '전복'의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유통기한은 나에겐 꽤나 길다.

누나가 사놓은 OST테잎을 참 많이도 들었다. 10주년 기념앨범이 재발매되기도 했을 만큼 명작 컴필레이션이다. 한국에서는 Big Mountain의 Baby, I Love Your Way가 참 많이 들려졌었다. 아마도 UB40의 곡과 함께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레게음악이 아니었을까. 물론 수록된 모든 곡이 좋았지만, Stay와 U2의 All I Want is You는 베스트 트랙이다. 보노 특유의 목소리의 호소력이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다시 들으면 에단 호크가 불렀던 I'm Nuthin'이 귀에 들어온다. 날것 그대로의 으르렁거림, 꾸밈이 없이 불러제낀 에단 호크의 목소리 탓일거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젊음, 청춘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일거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건, 너희들이 날 그렇게 보기 때문인거다. 그렇다. 청춘은 함께 그 시절을 통과하는 이들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청춘은 언제나 시대와 불화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영화속에서 거친 목소리로 노래부르는 에단호크. 멋지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Ethan Hawke - I'm Nuthin'

I got a pothead mama, got a cokehead dad.
I'm an ultramodern version of the American man.
I don't feel good, but don't feel bad.
Cause me you see, I'm nuthin
Ain't no republicrat, no demmican, they ain't nuthin in between.
I'm sick of people talking about American dreams -that's all gone.
Ain't nothin there for me cause me you see I'm nuthin.
I ain't left, I ain't right.
People say I'm wrong before I was born.
It was all gone.
Don't even make sense that I wrote this song.
Cause me you see I'm nuthin, I'm nuthin...
Don't want no big TV or no flashy garage, never would cut it in no corponate job.
People see me coming - they say look at that slob cause me you see

I'm nuthin, I'm nu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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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그동안 미뤄놨던 영화들을 꺼내봤다. 본래는 여러편을 보려고 했는데, 맘 같지가 않아서(집중력 결여) 1980년작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와 1971년도 '베니스의 죽음'을 봤다. 너무 심각해서 보는 내내 집중 또 집중해야 하는 영화는 엄두가 안나서 먼저 골라놓은게 아메리칸 지골로였다. 리차드 기어가 처음으로 자의식을 가지고 접근한 영화라고 하는데, 나에겐 영화 자체보다는 리차드 기어와 주변 인물들이 뿜어내는 스타일이 더 인상적인 영화였다. 말이 필요없다. 인트로만으로도 그 스타일을 느껴볼 수 있다.




인상적이지 않은가. 뭔가 좔좔 흐르는 느낌. 제목의 Gigolo가 '기둥서방'이라는 것만 빼면 어느 잘나가는 재벌 2세쯤의 생활이라고 할만큼. 팔팔한 리차드 기어의 세련미도 눈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 개봉시에는 아메리칸 플레이보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는데, 기둥서방과 플레이보이는 엄연히 다른 만큼 적절한 제목은 아니었던 셈. 기둥서방은 직업이고, 플레이보이는 취향이랄까. :)

블론디(Blondie)의 Call Me는 귀를 사로잡는다. 데보라 해리의 농염한 목소리가 야릇한 상상을 하게 한다고 할까. 음악을 담당한 조르지오 모로더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 음악감독으로 부상하게 된다. 디스코풍의 Call Me는 가벼운 팝음악이지만, 묘한 분위기로 영화 전반을 규정한다. 시원스런 고속도로를 달리는 벤츠세단, 바람에 날리는 수트도 영화적 현실을 구축한다.

몇가지 재미있는 얘기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줄리앙이 입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수트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의상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에 등장한 아르마니 수트는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게 된다. 몇벌인지 세어보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갈아입는 리처드 기어의 수트. 정말 지금 가져다 입고 싶을 만큼 스타일이 살아있다. 정장 수트의 단정함과 딱딱함에서 벗어나 섹시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리처드 기어가 입은 수트를 세계를 뒤흔든 10벌의 수트중에 하나로 꼽았다. (마오쩌둥의 수트가 제일 먼저 올라있다.) 타이틀롤에서는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성공으로 그는 메이저로 진입하게 된다. 영화에는 리처드 기어의 전라가 한번 등장한다. 정사신 후의 다이얼로그 장면인데, 지금이야 불교에 귀의하신 분위기있는 영화배우시지만, 이 당시 섹시가이로서의 아우라를 조금은 느껴볼 수 있다.

1980년 미국. 기름기 좔좔 흐르는 팜스프링이 배경인 이 영화. 세세한 망원경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레이건이 들어서던 그 무렵의 미국. 그 터질듯한 경제적 풍요가 느껴진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요즈음 시절을 떠올리면 '그 시절, 참 좋았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만큼. 종반부, 얼굴에 기름때 묻히고 누명을 벗기위해 동분서주하던 그가 처참해 보였던 건 그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그 뒷맛은 그래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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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진다. 워낙 사는게 팍팍해서인지, 즐거운 일들도 저기 가슴 깊숙히 가라앉아있는 것만 같다.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다. 보면서 잊지못할 장면들을 몇개 꼽아봤다. 고르기 쉽지 않았다. 볼때마다 울림을 주는 장면들이 너무도 많은 영화중에 하나이기 때문일거다.

이 영화를 보고나와 같이 보았던 사람의 손을 꽉 쥐어주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수만큼 다양하고, 또 같은 사랑을 하는 것 같지만 모두들 자신에게만 특별한 사랑을 한다는걸 알려준 영화. 만나고, 헤어지고, 아파하고, 가슴떨리고, 슬프고, 안타깝고, 설레이는...사랑을 하는 이들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는 영화. 리처드 커티스가 자신이 앞으로 만들 사랑 영화의 이야기를 한편에 담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연인, 가족, 부모, 친구...우리가 매일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얘기가 아름답게 담겨있는 보석같은 영화가 바로 러브 액추얼리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흘러나오는 휴 그랜트의 나레이션. 멋진 인트로. 히드로 공항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했다고 한다. 생생한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도 있는 그런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어 절절하다. 누구든 헤어지지 않았을까. 또 누구든 반가운 얼굴 마주하고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빚어내는 표정들. 짦은 인트로로 깊은 울림을 주는 한 장면이다.




샘은 조안나라는 미국 여자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 아이를 사랑을 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아들 샘과 나누는 한마디. "내 사랑도 걔 하나 뿐이에요" 이제 사랑을 시작한 당돌한 아이가 하는 얘기치고는 울림이 있다. 샘은 모르겠지만, 살면서 더 많은 조안나를 만나, 많은 사랑을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랑하고 있는 그 순간. 그건 언제나 유일하고 단 하나인거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포르노영화의 상대역으로 만난 그들. 서로 알아가기도 전에, 마음을 느끼기도 전에 무미건조하게 몸을 부대껴야 하는 그들. 한국 개봉당시에는 삭제되었지만, 나중에 이 장면을 다시 보고는 극장에서 보지못했던게 참 아쉬웠다. 왜 하필 이 장면을 삭제했을까. (나쁜 놈들) 그들의 사랑이 난 참 애틋하고 좋았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좋아해도 마음 드러내기 쉽지 않을 상황. 헤어지기전 "제가 크리스마스에 바라는 건 당신 뿐이에요"라는 말에 감격하는 그가 참 순수해보였다. 그들이 서로의 맘을 확인하고 나눈 키스 한번이, 수차례 했을 포르노 장면보다 더 떨림이 있었다는거. 사랑은 그런거다.




너무나 유명한 에피소드. 친구의 아내를 좋아하는 마크. 좋아하는 맘을 숨길 수밖에 없어 줄리엣에게 필요이상으로 쌀쌀맞게 대할 수 밖에 없다. 남편의 베스트프렌드인 마크와 잘 지내고 싶어 바나나파이 사들고 찾아간 줄리엣. 그리고 발견한 결혼식 테잎. 모조리 줄리엣만 찍어놓은 비디오를 보며 그제서야 마크의 마음을 알아챈 줄리엣. 어색한 관계. 마크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먼저 집을 나선다. 다이도의 음악이 깔리고...아, 정말 안타까웠다. 그 사랑이, 숨길 수 없었던 그 사랑이. 이 장면에서 키이나 나이틀리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패셔너블한 모자, 바나나파이를 들고 웃는 마음.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드레스입은 모습들. 그래서일거다. 마크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던 이유가.




그렇게 끝날줄 알았던 에피소드. 씁씁한 뒷맛만 남기고, 모든 해선 안될 사랑을 하는 사람의 아픔으로만 기억될 줄 알았던 마크. 그는 다시 돌아온다. 아마 며칠을 잠 못자며 고민했을 아름다운 시퀀스로. 가장 인상깊은 사랑고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장면으로 말이다. 머리 뜯으며 괴로워한 그가 선택한 방법. 후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래 이걸로 충분해"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그가 참 쿨해 보였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그 앞에서 "우리는 그럴 수 없어요"하고 휙 돌아서지 않고, 그의 입술에 키스해주는 줄리엣이 참 고마웠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 동생과 아내의 외도에 충격을 받은 제이미는 글을 쓰기 위해 마르세유로 떠나고, 거기에서 포르투갈 출신 파출부 오렐리아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잊지 못한 제이미. 떠들석한 오페라의 한장면처럼 차려진 시퀀스에서 제이미는 이렇게 말하며 청혼한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말 하는거 우습지만, 때론 눈에 안 보여도  확실한 일들이 있잖아요." 그래 맞다. 눈에 안보여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오히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그 사랑을 확신할 수 있었을지도. 서로 이해하기 위해 서로의 말을 배우는,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겠지. 



사랑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해야할 러브 액추얼리. 그 많은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고 다시 영화는 히드로 공항을 보여주며 끝이난다. 만나고, 헤어지고, 우리는 사랑을 한다. 사랑할 사람이 없어 힘들다가도, 사랑때문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임에 감사해 하기도 하고 말이다. 또다시 아프기 싫어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 결국 혼자라는 걸,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았을때, 사람이 참 그리워졌던것 같다. 


세상사는것이 울적해 질때면
나는 공항에서 재회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증오와 탐욕속에 산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디에나있다.
굳이 심오하거나 특별한것이 아니어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아내와 남편...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오랜벗...
무역 센타가 비행기 테러로 무너졌을 때
그곳에서 휴대폰으로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증오나 복수가 아닌,
모두 사랑의 메세지였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 보면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영화의 시작에 흘러나오던 나레이션. 사랑은 어디에나있다.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해도. 이렇게 따뜻하지만은 않다고 해도. 언제나 사랑은 내 곁을 비켜가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추워지는이맘때 보면 참 좋을 영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다들 사랑하며 살자. 그게 어떤 사랑이든, 괜찮을거다.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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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Stranger!

from 영화창고 2008. 11. 4. 01:49






고백하자면, 사실 이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다. 셀수도없이 쌓여가는 영화파일. 피시 한구석에 언제 챙겨놓았는지도 모르는 '클로저'라는 이름을 클릭했던건 아마 잠 안오는 늦은 밤이었을거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흘러나오던 노래 하나가 내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알게된 목소리 Damien Rice. 그리고 그의 노래 The Blower's Daughter. 노래가 너무 좋아 영화를 다보기도 전에 첫장면을 다시 보았었다. 귀를 사로잡은 이 영화의 시작은 결국 눈과 마음까지 흔들어놓았다.
 
Damien Rice의 목소리만 들으면, 특히나 그의 앨범 O를 들으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클로저'의 오프닝 시퀀스. 전처럼 영화를 열심히, 치열하게 보지 않는 요즘. 뭐랄까, 인상적인 시퀀스로 영화의 느낌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나름대로의 영화일기랄까. 때론 그 한 장면이 영화이고 그렇게 기억되기도 하니까. 고이고이 모셔놓은 클로저 릴파일을 잘라내 올리다보니 플레이를 멈추기 힘들었다.

천천히 횡단보도를 걷는 댄.(주드로) 그리고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앨리스 혹은 제인(나탈리 포트만). 마주보며 다가서는 그들. 서로의 시선이 부드럽게 멈출거라 믿고 싶을 만큼 아늑한 장면. 그런데 그들은 서로 응시하며 지나치지 못하고 파열음을 내며 부딪힌다. 영화내내 그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처럼. 화면을 가득채운 댄의 부드러운 표정이 순간 놀라 일그러지는 찰나. 댄은 앨리스쪽으로 달려들고, 카메라는 위에서 누워있는 앨리스를 비춘다. 팽팽한 긴장감. I can't take my eye off you. 안타까움이 스쳐간다. 댄은 앨리스를 흔들고 앨리스는 작은 미동으로 얼굴을 돌린다. 그리고 터지는 한마디. Hello, Stranger...

영화의 시작. 낯설었던 그들, 우연처럼 만나는 그들. 서로 사랑을 하게된다. 댄과 앨리스, 래리, 안나가 만들어가는 관계. 이해하려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솔직하려 하지만 진실을 숨길 수 밖에 없는 관계. 몇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처럼 그들은 그래서 마음을 열어 다가설 수 없다. Closer...가까워지려하지만 다가갈수 없어 다시 Stranger가 되어버리는 그들은, 돌아서면 타인이 되는 우리들의 관계를 닮아있다. 애처롭고, 씁쓸하다. 영화의 처음. Hello, Stranger...라는 앨리스의 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기대감은 지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혼자이고, 고독할 수 밖에 없으니. 

그래서일거다. 이 장면이 그리도 스산하고, 불안한 이유가.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불안함을 모른채 하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낯선 존재에게 다시 손 흔든다는 점. 댄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앨리스처럼 밝은 미소로 Hello, Stranger라고 말하면서...그게 인간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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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자신의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 주변도  나와 관계맺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바꿔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도 자신의 관계망 안에 존재한다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걸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된다. 비극적인 것은 부여잡으려 발버둥을 쳐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있다는 점이다. 죽음. 그 앞에서는 모든 집착도 無化된다. 

삶이 아무리 아름답다해도,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행복도 죽음 앞에서는 영원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이 숙명처럼 지니는 굴레와도 같은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실존'이 가치를 지니는 것 아니겠는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의 삶에 의미를 찾기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상식의 차원. 삶이 무한하다면 삶이 왜 소중할 것인가. 또 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가진 죽음의 숙명 탓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생겨나는 애틋함과 아쉬움, 삶에 대한 그리움은 죽음의 이미지가 투영하는 그림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 내면엔 언젠가는 만나기를 갈구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만남이 불가능하다면, 만남에의 기대가 없다면 기다림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다림이 성립하지 않는 현실이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앞에서는 어떠한 기다림도 용납되지 않는다. 실낱같은 희망도 바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죽음은 항상 슬픈 체념의 빛깔을 띈다. 하지만 그런 슬픔과 체념은 가슴 한 구석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한다. 바로 현재 우리가 딛고 있는 삶, 언젠가는 사라질 삶, 지금 느끼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조용하다. 영화속에서 느닷없이(물론 정원의 행동이 십분 이해되지만) 등장하는 경찰서 장면의 소란스러움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놀라게 만들 정도로 이영화는 정적이다. 단순한 스틸 사진같은 화면. 영화의 대부분의 화면은 리드미컬한 음악도 많지않고, 격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도 없다. 단지 초원 사진관이라고 허름하게 적힌, 전화번호도 없는 간판이 걸린 작은 가게와 그 주변의 평범한 거리가 주 무대다.(엔딩 자막을 봐서는 군산인 듯 하다. 물론 결말에서 보듯이 극중에서는 공간적 배경이 서울의 성북구이지만...)

이런 단순한 미장센은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화 스모크의 일상 사진 같은 느낌. 주변의 일상을 몇십년간 담아온 사진들. 같은 거리, 하루의 같은 시간을 담지만 각각의 사진이 독특함을 주는 것처럼(같은 사람이 같은 거리에 잡혀도 느낌은 사뭇 다르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거리 또한 시종일관 한번도 동일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다림이 정원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진관에 돌을 던질 때 그 거리는 사랑의 아픔과 한없는 그리움의 깊이를 보여주고, 끝장면의 눈이 내린 (혹시 크리스마스인지도 모를) 거리는 그리움의 대상은 잊혀질 수 밖에 없지만 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남아있을 수 있는 환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난 정원이 말하는 사랑도 추억이 된다는 것은 죽음을 사이에 두고서 만이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나는 사랑은 겨울이 주는 쓸쓸함 때문에 더욱 가슴아프다고 하던가? 그래서 인지 이들의 사랑도 가슴아프다.

그리 길지 않은 아니 매우 짦은 이들의 만남은 한 여름에 시작된다. 매일 주차 단속 사진을 현상해야 하는 다림과 그 사진을 현상하는 정원.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이들의 만남도 우연적이기는 하다. 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랑인지도 모르게 이들은 가까워진다. 다림이 '왜 오늘은 반말을 해요?'라는 말처럼 그들은 스스로도 모르게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들의 감정사이로 문득 문득 잊지말라고 관객에게 전해주는 정원의 아픈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냥 이들의 산뜻한 사랑이 기쁘게만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주지만 이들의 만남은 나에게 풋풋함과 깨끗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결코 꾸며진 산뜻함에 이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새로이 시작되는 사랑을 조용히 바라보는 편안한 느낌으로 말이다. (여기에는 시종일관 관조하는 듯한 객관적 카메라가 일조한다.)

하지만 죽음이 주는 이미지는 정원에게 너무도 강렬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막 사랑을 시작하는 정원의 마음에는 서서히 안타까움이 자리하게 된다. 결국 정원의 병은 상태가 더욱 심각해진다. 하지만 다림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그는 이미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우연히 찾아온 다림에게 그의 운명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정원 자신이 떠나갈 사람이기에 가슴 아프도록 후회할지모 르지만 다림이 자신의 인생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여행객이기를 바랬던 것이다.

사실 나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장면은 정원이 병원을 다녀온 후 어느날 밤에 이불을 덮어쓰고 흐느끼는 장면이었다. 어찌보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정원은 죽음에 대해 훨씬 담담할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다림이라는 긴시간을 필요로하는 사랑 때문에 죽음에 대해 저항한다. 아니 저항이 아니라 아파한다. (저항은 의미가 없으므로) 하지만 그는 주변사람에게 조차 자신의 죽음을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있는 시간에 자신의 죽음 이후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준비한다.

착해보이는 정원이 아버지에게 리모컨 조작법을 설명하면서 짜증을 내는 이유는 이런 괴로움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가 없는 이후를 그는 너무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도 착하다. 이런 그이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북받쳐 오르는 아픔을 이불을 둘러쓰고 이슥한 밤에 흐느끼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것은 분명 죽음을 앞둔 인간의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그들 만남의 깊이 때문인지 인연을 두지 않으려는 정원 때문인지 그들은 다시 만날 끈을 남기지 못한다.

너무 허무하게도 (영화에서는 정말 허무하게 죽는 것이 너무도 드물다.) 정원이 자신의 모습을 찍는 장면이 영정 사진으로 디졸브되면서 그의 죽음은 관객에게 놀랍게 다가온다. 이러한 죽음은 얼마전 본 Spitfire Grill을 연상시킨다.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얼마나 허무하게 죽는가? 처음에는 이러한 죽음 장면 때문에 많이 서운했었다. 난 솔직히 더 멋있게 더 많은 것을 남겨주고 죽길 바랬는데, 내가 그 주인공에게 너무도 빠져있었기 때문에, 어색하게도 그냥 죽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그 장면이 우리네 삶을 더욱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영화적 현실이 현실적 영화로 탈바꿈 하는데도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얼리즘, 꾸미지 않는 솔직함, 감정을 절제하고 안으로 끌어안는 슬픔이 난 더욱 슬프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죽음은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대입하고 거기서 더 큰 감동을 얻는다.

어쨌든 이 영화도 그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난 더욱 슬펐다. 눈 내린 어느날 정원의 아버지는 정원이 소중하게 적어준 조작법을 잘 익혀서 출장을 나간다. 그 후 다림은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이 때의 모습은 청순하지 않고 아름답다.) 사진관에 나타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림은 출장중이라는 팻말을 보고 정원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된 것 같다. 어찌보면 불행이지만 정원이 보내려고 했던 다림의 사진이 사진관 장식벽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기뻐한다. 감독은 여기서 영화를 접는다. 그도 그 이후가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다림이 반드시 느낄 수 밖에 없는 정원의 부재를, 그래서 너무도 가슴아파할 다림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관객을 배려해서인지 모르지만 영화는 밝게 웃는 다림의 모습으로 끝이난다.

다림은 정원의 짦은 인생이 정지화면처럼 녹아있는 사진관의 벽면을 장식하게 됨으로써 정원에게 언제까지나 남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존재가 되었다. 반면 영화중간에 보여지는 정원이 사랑하던 옛 여인의 사진은 장식벽에서 사라져버려, 아직도 남아있는 존재가 아닌 옛날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다림의 사진이 자리하기전 놓여있는 옛 여인의 사진은 그의 마음속을 너무도 확실히 표현한다.) 하지만 다림에 대한 사랑은 정원 그가 이미 추억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또 다시는 다림의 사진을 치울 사람이 없기에(적어도 사진관이 사라지기전에는) 정원에게서 영원한 사랑으로 남았다.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감독은 낙관주의자이다. 감독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렸지만, 또 정원의 죽음으로 결코 마음편하게 돌아설수 있는 결말이 되지는 않았지만, 난 이 영화를 이렇게 이해하기에,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진한 해피엔딩을 느낄 수 있었다. 작위적인 헐리웃의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속에 담겨져 있는 깊은 의미의 해피엔딩,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에게 영원히 남겨질 수 있는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후 난 너무도 행복했다. 새로이 발견한 기쁨으로 잠시 멍해졌다. 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난 죽음의 의미를, 죽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 삶은, 사랑은 그래서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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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내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하나.

원제는 "자동차 연료가 다 떨어져가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번역된 제목이 영화의 느낌과 더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소문을 듣고 이 영화를 구해보기 위해 집주변 영화마을 가게를 뒤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세상이 좋아져 이제는 DVD가 내 책상 한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용기내고 싶을때 참 힘이 되었던 영화.
리버 피닉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그리고 표현할 수 있었던 대니의 삶. 가치. 인생.
처음 릴을 구하고 방방뛰면서 좋아하는 장면을 캡쳐하고 음성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중에 볼때마다 가슴 벅차게 만드는 감동적인 사랑고백 씬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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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의 진실을 알게된 후. 몰래 만나던 그 곳.


사랑하는 로나에게 마이클이 아닌 대니로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진솔한 말, 울먹이는 리버 피닉스의 고백이 영롱하게 빛난다. 또, 그가 그립다.



I'm a liar.

My name isn't Michael. It's Danny. My parents are Arthur and Annie Pope. They're in trouble with the FBI for blowing up a napalm laboratory in 1971. There was a man who was almost killed - a janitor who wasn't supposed to be there.

We put "Sam" on the birthday cakes - on all the birthday cakes because we change our names every time we move.

I've been doing this since I was two. I don't know any other way. I just wanted to tell you that I was sorry.

I wanted to explain why I can't talk about a lot of things, like college. I can't go to college, I can't leave them. And I wanted to tell you, why I couldn't be with you - not without you knowing, I didn't want to lie to you.

Now, I have no right in telling this to you. It's dangerous for you and it's dangerous for them. I'm sorry, I just couldn't stop myself. You can do what you want to. You can tell your dad anything - I don't care.

I just needed you to know.... I don't know what I'm doing.

And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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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심하고 덜 가다듬어진 이야기. 첫부분이 다시 끝에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펄프픽션 처럼)인 탓에 영화에 몰입하기에도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마이클 클레이튼이 뒷처리 전문인 탓인지 모르나 겉만 말쑥할 뿐 잘빠진 벤츠 세단은 '빌린 차'이고, 그는 동생이 저질러놓은 돈을 갚기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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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쑥한 정장을 빼입고, 냉철하게 사건을 분석하여, 숨이 꽉막히는 법정에서 황홀한 변론을 이어가도 모자랄 조지 클루니를 데리고 이 영화는 갈팡질팡한다. 아서는 "진실이 주는 스트레스"로 고민하다가 마주친 뉴욕 한복판에서 바게뜨빵을 한아름 들고 친구 마이클과 이야기 한다. 살인을 사주하는 유노스의 카렌은 극도의 긴장으로 겨드랑이에 찬 땀을 닦아내는가 하면, 사건이 터지면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조바심내고 어쩔줄 모른다. 영화의 캐릭터들, 현실같다. 다들 멋지게 꾸며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핵심은 유노스사의 비리를 둘러싼 긴박한 법정 투쟁이 아니다. 그와는 조금 멀찍이 비켜서 있다. 그렇다고 에린 브로코비치같은 거대독점기업의 횡포를 고발하고 배상을 이끌어내는 통쾌한 사회정의 실현과도 거리가 있다. 나에겐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 역설의 해답은 당연히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마이클 클레이튼이 가지고 있다.

[Flash] http://www.silentsea.pe.kr/tt/flv/mediaplayer.swf?&file=http://gscdn79.mncast.com/2008/0301/10061777920080301131641.flv



2007년 최고의 엔딩씬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롱테이크로 이어진 마지막 엔딩씬을 보라. (간만에 캡처를 해봤다. 버퍼링의 압박이 있겠지만, 큰소스를 올렸다. 음성씽크가 조금 어긋난듯...) 우리들 그렇지 않은가? 끝까지 고민하고, 안절부절하고, 평범하고, 힘들어하고, 그렇지만 옳은일을 했다는 자신감은 남아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막막하고, 택시에 올라타서도 수많은 생각들로 복잡해하는 그런 삶, 그리고 그런 인간.

영화는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 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인상적인 엔딩씬은 영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삶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화면을 가득채우는 마이클 클레이튼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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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프만 때문이었을까? '이터널 선샤인' 만큼의 충격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감잡기 어렵고 따라가기 벅찬 독특한 미쉘 공드리의 상상력에 감탄했던 '수면의 과학'. 그중 적어두었던 몇마디.

Stephane to Stephanie: Will you marry me when you are seventy and have nothing to lose?
멋드러진 프로포즈는 아니지만, 더이상 기대도, 잃을 것도 없는 그 즈음에 하는 결혼. 나쁘지 않겠지. 루저의 힘없는 고백.

Stephane: The distraction is an abstraction for construction.
이 영화의 한줄 요약이 아닐까? distraction과 contruction의 묘한 변주. construction을 위해서는 어떠한 distraction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요즈음의 분위기. 괜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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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로저 에버트 (회사 영어회화 선생님한테 이 책 얘기를 했더니 첨엔 못 알아듣다가 '이버트'라고 정정해주었다.ㅡ.ㅡ)가 쓴 '위대한 영화1,2'를 구입했다. 1,2권이 묶여 책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게되었다. (초판에는 10편의 영화가 제외되어있다가 이번판에 다시 실려 초판 구입자들의 공분을 샀다고 하는 뒷얘기가 있다. 제외한 이유가 그 10편은 도저히 필름을 구해볼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이런...)

두툼한 박스셋, 깔끔하게 묶여있는 제본, 인상적인 머리말 덕분인지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은 기대감이 마구 들었다. 스포일러에 대한 두려움에 이미 본 영화들에 대한 리뷰만 조금 읽어보았는데, 읽으면서 혹은 읽고나니 이미 봤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솔솔 난다. "아, 그랬나?" "음, 그렇게 볼수도 있겠군" 정도의 공감...머리아프게 영화를 난도질하는 분석은 없지만, 딱 영화를 볼때 놓치면 아쉬운 부분들을 푸근하게 짚어주는 것 같아 맘에 든다. 영화를 텍스트차원에서 분석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반면, 같이 영화보고 나서 맥주한잔 마시며 나누는 편한 이야기같은 평론은 찾기 힘들다. 내 눈높이에서 아니면 그 보다 조금 위에서 동감하며 "네 말이 맞긴 하지만...이렇게 보는 건 어떨까?"라고 얘기해주는 푸근함이 이 책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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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Winter / Getty Image (http://www.time.com/time/arts/article/0,8599,1636520,00.html)


가끔 AFKN을 틀면 이 아저씨와 또다른 아저씨가 나와 영화 설명을 해주고는 했는데, 시금털털해보이는 아저씨가 최신 영화를 설명해주는 언밸런스 함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손가락 하나로 영화관계자들을 좌지우지 했던 "Two Thumps Up!!"의 주인공이라고 하니 내공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을듯 하다. (로저 에버트에 관한 위키자료) TV에 얼굴을 자주 비추고, 최신영화들을 설명해주다보니 흔히 생각할때 그저 "출발비디오 여행"류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아저씨가 오래 몸담아온 시카고 선타임즈의 리뷰(http://rogerebert.suntimes.com)들을 살펴보면 그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의 책 '위대한 영화'는 이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엮은 책이다. 최근에 그가 쓴 위대한 영화 기사에 "바벨(2006)"이 있는 것을 보고 참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이 아저씨가 쓴 글 중에는 올드보이에 대한 글도 있다.) 이미 보았던 영화에 대한 글을 다 읽고나서 사실 책을 잠깐 놓아두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니 영화보기에 대한 일종의 갈증같은 것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에버트 아저씨가 소개한 영화들 중에서 가능한 한 구할 수 있는 영화들은 보고나서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처음 실려있는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의 내쉬빌...어제 러닝타임 159분에 이르는 영화를 끝냈고, 두번째 실려있는 Network는 시간내서 볼 예정이다.

아직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두툼한 영화에 대한 소개만으로 소원해진 영화보기에 대한 즐거움와 의욕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 아저씨의 취향 (Ebert's favorite film is Citizen Kane. His favorite actor is Robert Mitchum and his favorite actress is Ingrid Bergman.)이 나와 그리 어긋나지 않는 것 같다는 '동질감'도 그 이유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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