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도 눈오던 날에...

from 생각창고 2006. 5. 22. 16:47

눈이 왔다...
아니 몰랐다...눈이 오는지...
하도 답답해서 창문을 보고있었는데...낮설은 뭔가가 날렸다...
처음에는 눈인지 몰랐다...아니 눈일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근데 눈이었다...정말 함박눈이었다...그날 밤에...
눈 내리는 걸 보고 아무것도 안했다...그냥 눈만 봤다...

한 시인은 눈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땅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자꾸만 날린다고...
내리고 싶고 땅에 스미고 싶지만 바람때문에...
아니 땅이 밀어내기때문에 내리지 못한다고...
근데 그날의 눈은 너무도 포근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다행이다...
제 자리를 찾아서 사뿐히 내리는 눈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잠이 다 뭔가...난 눈만 봤다...

눈은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지 않는다...
만지려하면 녹아버리는 無의 존재지만...
곁에서 바라보면 반투명의 흰색으로 반짝이는 큰 존재다...
눈은 내리면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자신을 기억하라고...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모습 그래로 조용히 내린다...
그런 눈이 너무 좋다...

눈같은 사랑이면 좋겠다...
나의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나의 사랑 그대로 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포근함...눈과 같은...
붙잡으면 사라지지만...그대로 바라보면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그런 사랑이면 좋겠다...

눈은 내린 자리가 어느 곳이었던 간에 혼통 순백으로 덮어버린다...
아파하건...힘들건...상처입건간에 눈이 내린 곳은 하얗게 변한다...
사랑도 그래야 하리라...
사랑하는 이가 어떤 모습이던지...아프던지 힘들던지...괴롭던지...
그에게로 향하는 나의 사랑으로 인해...
님은 편할 수 있어야 하리라...아프지 않아야 하리라...

하지만 눈은 결코 집착하지 않는다...
눈의 흰색은 변하지 않는 흰색이 아니다...
싱그런 해가 뜨면 또 지나칠 만한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기꺼이 녹여 하나된다...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내 사랑도 그래야 하리라...
결코 영원히 님의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님이 멀어지는 날 조용히 녹아...그 곁에서 떠나야 하리라...
님의 아픔과 괴로움만 내 맘속 깊이 두고...
난 떠나야 하리라...언제까지나 남아서는 안되리라...

눈이 그친 아침날...
해가 그리 맑은 이유는...
눈은 자신을 녹일 해마저 그냥 그렇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미워하지 않고...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도 날 미워하는 사람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도 맑을 텐데...
내 사랑은 그렇지 못하기에...
항상 불투명이다...항상 쇠소리가 난다...둔탁한...답답한...

★장마가 시작된다는 6월말에 일년전 눈이야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마비처럼 눈이왔으면하고 바라는건 미친짓일까?
갑자기 눈쌓인 학교 교정이 그립다...

20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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