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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詩作메모 (입속의 검은잎) - 기형도 3 2006.05.22
  2. 99년도 눈오던 날에... 2006.05.22
  3.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06.05.22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 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19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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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도 눈오던 날에...

from 생각창고 2006. 5. 22. 16:47

눈이 왔다...
아니 몰랐다...눈이 오는지...
하도 답답해서 창문을 보고있었는데...낮설은 뭔가가 날렸다...
처음에는 눈인지 몰랐다...아니 눈일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근데 눈이었다...정말 함박눈이었다...그날 밤에...
눈 내리는 걸 보고 아무것도 안했다...그냥 눈만 봤다...

한 시인은 눈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땅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자꾸만 날린다고...
내리고 싶고 땅에 스미고 싶지만 바람때문에...
아니 땅이 밀어내기때문에 내리지 못한다고...
근데 그날의 눈은 너무도 포근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다행이다...
제 자리를 찾아서 사뿐히 내리는 눈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잠이 다 뭔가...난 눈만 봤다...

눈은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지 않는다...
만지려하면 녹아버리는 無의 존재지만...
곁에서 바라보면 반투명의 흰색으로 반짝이는 큰 존재다...
눈은 내리면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자신을 기억하라고...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모습 그래로 조용히 내린다...
그런 눈이 너무 좋다...

눈같은 사랑이면 좋겠다...
나의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나의 사랑 그대로 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포근함...눈과 같은...
붙잡으면 사라지지만...그대로 바라보면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그런 사랑이면 좋겠다...

눈은 내린 자리가 어느 곳이었던 간에 혼통 순백으로 덮어버린다...
아파하건...힘들건...상처입건간에 눈이 내린 곳은 하얗게 변한다...
사랑도 그래야 하리라...
사랑하는 이가 어떤 모습이던지...아프던지 힘들던지...괴롭던지...
그에게로 향하는 나의 사랑으로 인해...
님은 편할 수 있어야 하리라...아프지 않아야 하리라...

하지만 눈은 결코 집착하지 않는다...
눈의 흰색은 변하지 않는 흰색이 아니다...
싱그런 해가 뜨면 또 지나칠 만한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기꺼이 녹여 하나된다...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내 사랑도 그래야 하리라...
결코 영원히 님의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님이 멀어지는 날 조용히 녹아...그 곁에서 떠나야 하리라...
님의 아픔과 괴로움만 내 맘속 깊이 두고...
난 떠나야 하리라...언제까지나 남아서는 안되리라...

눈이 그친 아침날...
해가 그리 맑은 이유는...
눈은 자신을 녹일 해마저 그냥 그렇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미워하지 않고...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도 날 미워하는 사람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도 맑을 텐데...
내 사랑은 그렇지 못하기에...
항상 불투명이다...항상 쇠소리가 난다...둔탁한...답답한...

★장마가 시작된다는 6월말에 일년전 눈이야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마비처럼 눈이왔으면하고 바라는건 미친짓일까?
갑자기 눈쌓인 학교 교정이 그립다...

20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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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NHK 방송을 보게 되었다...평소에는 그냥 다른 채널로 이동하는 와중에 지나치는 골목길 같은 채널이 그날따라 내 눈을 끌었던건...피터 폴 앤 메리의 노래 '꽃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이후 한시간 가량 방송된 그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놀랍게도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노래 한곡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반전곡으로서의 이 노래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이 노래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의 노래들이 겹쳐서 나왔고...한시간정도...수많은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피터 폴 앤 메리, 조니 리버, 조앤 바에즈, 킹스턴 트리오, 브라더스 포, 피트 시거...그리고 마리엔느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이렇게 읽는게 맞는지...-.-)의 노래들은...이미 아는 곡이었음에도 각기 다른 맛을 풍겨주고 있어서 참 아름답게 다가왔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탓에 완벽히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지만...짧은 영어실력으로 대강의 인터뷰와 화면등을 훑어볼 수 있었다...그렇게 흘려보았지만...프로그램의 짜임새나 집중력...구성등이 놀라울 만큼 탄탄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노래를 찾아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자료를 찾고...현재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인터뷰 하고...또 적절한 흥미를 유발하는 문제를 제시해가면서 재미있게 꾸려가는 다큐였다...




이 노래는 피트시거의 작품이라고 한다...방송에서는 그가 90에 가까운 나이에도 집회에 참석해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그래서인지 그의 노래는 아직도 원시적 냄새가 난다...(끝부분에서 이 노래의 가사가 '러시아'소설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잠깐 나왔는데...여기는 인터뷰도 러시아어여서 전혀 부정확함...-.-) 근데 재미있는건 그가 곡을 만들고 쓴 것은 Gone for soldiers everyone의 세번째 단락까지였다고 한다...나머지 두부분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덧붙여 졌다는 말도 했다...말하자면 구전가요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데...내가 생각할때 이 노래를 빛나는 반전곡...에서 더 나아가 동양적 사유를 보여주는 명곡으로 만든 것은 뒤의 두부분이라고 생각한다...(방송내용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잠깐 비췄던것 같다...) 유치하지만 도식화 해보면...flowers - young girls - husbands - soldiers - graveyards - flowers 이렇게 될수 있는데...결국 전쟁에서 숨진 젊은이들의 묘지는 다시 꽃으로 되돌아간다...세계의 아픔...전쟁의 비극등이 비극 그자체에 그치지 않고 다시 꽃으로 승화하는 그 순간...여기에서 순환...혹은 연기의 사유관을 볼수있지 않을까? 이것은 60년대 반전운동...히피들이 도가 사상이나 인도사상 같은 동양적 사유에 심취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듯 하다...비틀즈의 렛잇비가 無爲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리라...

곡 한곡으로 한시간 프로그램을 만드는 구성도 대단했지만...이 한곡에서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점들이 그리도 많다는 것...60년대 반전운동에서 이 노래가 차지한 부분이 그리도 많다는 것을 알고나니 이 노래가 다르게 들렸다...단지 이 노래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미국'적 상황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닐수도 있겠지만 곱씹어보면 보편적인 인류애, 자연애를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나 좋은 프로그램을 너무도 우연히 보게되어서 참 기뻤다...또 하나 기뻤던 점은 마리엔느 디트리히라는 여배우의 목소리였다...전혀 모르던 그녀...그녀의 입에서 나오던 또하나의 독일어판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Sag Mir Wo Die Blumen Sind'는 색다른 매력을 주었다...(이 노래는 다음 글에 붙여놓겠습니다...) 강한 독일어에서 나오는 노래는 샹송이나 팝에서 느끼지 못하는 맛을 주었다고 할까?

내가 포크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와같은...소박함에 감추어진 단단함...강인한 삶이 숨겨져 있는 까닭인듯 하다...내지르고 터뜨리고 저항하는 락의 강렬함은 느낄 수 없지만...그 안의 가사에는 분명 더 진한 감동과 힘이 담겨져 있다...그래서인지 그 힘은 참 오래 가슴에 남는다...

2001.2.23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Pete See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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