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세이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4 / 미국)
출연 진 핵크만, 신디 윌리엄스, 앨렌 가필드, 엘리자베스 맥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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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면. 넓은 광장에서 도청이 이뤄진다. 귀에 거슬리는 기계음, 단절되고 분절되어 들리는 대화. 모두에게 열려있는 광장, 그와 대비되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도청. Bird's-eye view 앵글에서 타겟으로 슬슬 좁혀지는 카메라는 눈을 잡아끈다. 인상적인 도입씬이다.

제목은 Conversation이지만, 정작 대화는 없다. 너무 조용하다. 대화는 의미 교환이 아니라 일방적이다. 누군가는 말하고, 그 말하는 것을 누군가는 몰래 훔쳐들어야 한다. 듣는 것과 다르게 '옅'듣는 것은 항상 은밀하다. 그러니 대화는 있지만, 진짜 대화는 없다는게 정확하겠다. 모든 대화는 무기력하다.

도청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해리 콜은 대화를 은밀히 듣고 그걸 의뢰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지만, 자신은 그 누구와도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인물이다. 대화는 비밀이 보장될 수 없고, 무의식적으로 흘린 이야기가 흉기가 되어 자신을 헤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안다. 타인의 들리지 않는 대화조차 테크놀러지의 힘을 빌어 들어야만 하는 콜이지만, 타인이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할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도청을 해야하는 그로서는 '도청당하지 않기 위해' 고독을 품안에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감추지 않으면 들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혼자이다. 영화속에서 혼자이거나 혼자가 아니어도 둘이거나 혹은 셋이다. 그때에도 건조한 대화가 이어진다. 박람회를 마치고 그의 작업실에 여러명이 모여있을때에도 콜걸을 데리고 작업장 한켠 조용한 구석으로 간다. 그의 답답하고, 고독한 삶이 애처롭다. 파편화된 소리들, 낮게 깔리는 재즈음악, 스피커를 앞에두고 연주하는 테너 섹스폰 소리, 공간은 달리 채울 수 있는 것이 없다.

대부시리즈에 비하면 7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코폴라의 소품같은 느낌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도청기계들은 지금으로 보면 '장난감'수준의 조악함이 보이지만, 옅듣는다, 옅들으려한다, 감춘다는 그 행위의 비밀스러움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청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되고, 도청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밀스럽게 얘기를 해야만 한다.

사장의 의뢰로 넓은 광장에서 남녀의 대화를 옅듣는 해리 콜. 여자는 사장의 아내였고, 남자는 아내의 정부였다. 도청을 옅듣고 그걸 복원하면서 사장이 그 둘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된다. 자신의 도청으로 인해 이뤄질 결과에 괴로워하면서 그 장소에 있지만, 결말은 예상과 다르게 빗나간다.

넓게는 워터게이트 이후의 미국사회의 충격이 만져진다. 영화를 보며 9.11이후의 미국사회가 겹쳐지고,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었던 수많은 도청 및 감청사건이 떠오른다. 옅듣는 것은 그 자체로 은밀한 행위이지만, 그걸 공개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겹쳐진다면 그것은 파괴력을 가진다. 극중 해리콜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도청으로 인해 타인의 삶을 파괴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 그것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한다.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끊임없이 도청사건이 터지고, 감청이 횡횡하는 사회. 넓은 광장에서, 아니면 왁자한 카페에서 떠들면서도 문득 주변을 볼 수 밖에 없는 시대. 휴대폰도 옅들을 수 있는 가능성. 점점 개인으로 수렴하는 삶을 살고 있으나, 테크놀러지로 인해 그 은밀함도 까발려질 수 있는 공포. 내가 인터넷공간 어딘가에 로깅한 흔적이 어느 순간 흉기가 되어 나를 헤칠 수도 있는 상황. 매체는 타인을 향해 열려있으나 결코 나를 보호할 수 없다.

반전의 충격보다, 길게 남아있던 고독과 허무한 대화, 말하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기억에 남는다. 테크놀러지가 열어놓은 가능성, 매체의 확장이 가져올 그 이면의 공포를 포착해낸 예민함. 그래서 30년전 칸은 황금종려상의 수상작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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