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발칙한 한국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J 스콧 버거슨과 친구들 (은행나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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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나의 감상보다 먼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두명의 인터뷰를 옮겨본다.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었을때의 당혹감(한국인이라는 나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주었던)과 비슷했다. (한국에 여행온 것이 아닌) 한국에 살고있는 엑스팻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들이 차가운 타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이를테면 애정어린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한국이나 한국문화 중에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자기를 외국인에게 맞추려 하는 게 좀 거슬린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성씨를 '박 Bak'이라고 하는 대신에 '팍 Park'이라고 하는게 정말 싫다. 한국 음식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도 싫다. (중략) 사람들이 외국 사람에게 영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다. "한국이라고, 그냥 한국어로 말해요!" 사람들은 "제 이름은 현수예요. 하지만 뭐라고 불러도 좋아요."라고 하는데, 그건 웃긴 일이다. 완벽하게 훌륭한 이름이 있는데! 그냥 자기 이름 써야지, 왜 그걸 바꾸는가? 외국인에 맞춰 바꿀 필요가 있나? 왜 "한국말은 배우기 어렵죠? 그냥 영어 써요. 우리가 영어 배울 테니!"라고 할까? 자기 유산에 대해 좀 더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외국인들이 똑바로 따라할 때까지 자기 이름을 25번 정도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걸 말할 수 없다는 건 변명 아닌가? 한국인들을 그 사람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 

p141 Ceda Bough Saeji 시이달 새지 (미국)

"한국의 전반적인 개발 형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이곳에서는 개발이 나라의 발전에 '좋다'거나 '이롭다'는 식으로 맹종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차라고나 할까. 가령 청계천 공사는 2년 만에 해냈지. 대체로 심미적인 감각에 대해 고심하지 않은 채 개발을 위한 개발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있나? 아니, 그저 지루한 고층 건물을 또 하나 올릴 뿐이다. 종로1가처럼 역사적인 동네조차도 그저 '새로운' 것이 좋다는 듯 밀어버린다. 콘크리트로 만든 거면 다 좋다는 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된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강남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맛골 같은 곳은 그저 '더러운 동네'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그들은 그곳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어버린다. 마치 자신들은 결코 가난했던 적이 없었다는 듯,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듯.

p182 Matt VanVolkenburg 매트 밴볼켄버그 (캐나다)

시이달은 우리 안의 문화 사대주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땅에서 영어 못하는 것은 부끄럽고, 열등감을 느껴야할 일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외국인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말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이 보기에는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것이다. 여행서적에 '여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정확한 영어를 병기하는 것과 나의 이름을 외국인이 부르기 편하도록 바꾸는 것은 다르다. 외국인을 배려한다는 마음가짐 속에 우리 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글로벌 스탠더드, 세계화라는 허상. 그녀 말대로 우리는 그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 울림이 크지 않은가.

아나키스트라 소개된 매트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 개발이데올로기에 대해 반성하게 해준다. 심미적인 감각에 대한 고민없이 개발을 위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는 얼마나 날카로운가. 지금도 도처에서 행해지는 개발을 위한 개발의 시선은 옛것은 부끄럽고 더러운 것이고, 그런 역사를 '마치 그런 역사가 없었다는 듯이' 깨끗이 밀어버리는 천박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른바 '민속지'를 남기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개발대상인 그곳의 많은 역사는 지워지고 말 것이다. 그걸 안타까워하는 엑스팻의 시선이 고맙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했다.

서로 고착화된 문화적 배경으로 자라온 사람들이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스테레오타입을 걷어내고 이해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거다. 외국인 노동자. 영어강사, 미군, 보따리 장사 등등등. 그런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더 고착화 되어가는 듯 하다. 그런 인식의 벽에 막혀서 서로의 진솔한 교류나 이해가 가능하겠는가. 

한국인이 같은 외국인을 놓고 보는 시선부터 차별적이다. 백인을 보는 시선과 중동이나, 아시아 지역 외국인을 보는 시선은 말하지 않아도 다르다. 서양의 차별적 시선을 경험한 우리가 그런 서구화된 시선을 통해 외국인을 본다는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스콧 버거슨이 지적하듯이 백인 영어교사에 대한 시선도 그러하다. 성욕과잉이거나, 마약을 먹거나, 난잡한 생활을 한다는 시선들. 마찬가지로 엑스팻들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 또한 차별적이다. 오랫동안 거주한 이들은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들도 한국 사회에 대한 고정되고 왜곡된 시선을 거두기 쉽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양방향의 왜곡과 편견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알아채기 어렵지 않다. 머리는 그렇게 간다고 해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아름다운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엑스팻들은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거침없이 한국사람이라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공유되고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의 3장을 보면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문화적 접점은 다양해야 한다. 문화는감염되어야 하고, 영향 받아야 하고, 그 경계가 흐릿해져야 한다. '국수'란 죽은 것이다. 열려있어야 하고, 영향받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적으로 동등한 자신감으로 마주해야하고, 이식이 아니라 어울림이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외국인들이 어떤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지,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도 좋겠다.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탓에 일관된 메시지를 읽어내긴 힘들지만, '경험'해본다는 차원에서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 난 이 땅에 살고있는 외국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그들이 뿌리내려 오래도록 살아가길 원한다. 한국이 그들이 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때론 그들로 인한 부정적인 감염도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 줄 것이라 믿는다.

몇가지 덧붙이자면, 첫부분의 소일담은 차라리 뒤로 뺐으면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책의 무게감을 도리어 해치고 있는 듯 하다. '엇! 이건 아닌데'하며 책을 덮을 뻔했다. 그리고 스콧 버거슨의 촛불집회관련한 얘기는 '그냥 패스'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정도로만 정리하는게 나을듯. 이 아저씨 조선일보를 너무 열심히 본 것 같다. 신화로 감춰진 이데올로기, 민족주의적 전체성을 촛불집회에서 읽어내려 하는 것 같으나, 그 분석이 지극히 일면적이고 내재된 의미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원인분석에서 '숨겨진 음모'를 가정하는 것도 동의할 수 없다. 그가 이 책을 펴내면서 결국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4장이었을까.  

이 책의 백미는 한국이라는 땅에서 삶을 이뤄가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진솔한 엑스팻들의 인터뷰였다. 그리고 3부의 이야기들도 그러하다. 읽으며 그들의 삶과 생활을 깊이있게 포착한 책을 만나고 싶었다. 스콧 버거슨은 싫고, 또 다른 진지한 엑스팻이었으면 좋겠다.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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