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감독 강이관 (2008 / 한국)
출연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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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미안해서 내뱉는 말임이 분명하지만, 또 미안한 마음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표현'하기 위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에 그 말은 일종의 자기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미안해 하고 있으니 나를 그렇게 미워하지말아줘, 혹은 원망하지 말아줘라는 당부 내지는 부탁. 미안하다는 말보다 그 말을 건네면서 상대가 그 말에 고개 끄덕여줄때 비로서 나는 나의 미안함을 용서 받는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대놓고 화를 낼 수 없으니.  

이런 미안하다는 말이 설익은 상태일때, 다시 말해 미안하다는 말로 서로 감정을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안하다'는 말은 도리어 핑계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말이면 다야'라는 반응. '진짜 미안하긴 한거야'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그래서 진심어린 사과가 아닐때는 미안하다는 말은 날카로운 말보다 더 차갑고 비겁한 것이된다. 사과하다, 용서하다라는 것의 매개로서 '미안하다'는 말에는 어떤 타협이 있는 것이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자 내뱉는 '미안하다'와 상대의 진심이 느껴지는 '미안하다'는 서로 인정할 수 있는 지점이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남녀의 관계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관계의 지속으로서의 미안하다와 관계의 단절로서의 미안하다이다. 상대가 내미는 미안하다라는 말 자체로는 언뜻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관계의 지속으로서의 미안하다라는 말로 이해하다가 결국 그것이 단절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됐을때 상처는 쉽게 치유할 수 없게 된다. 상대가 미안하다라고 했을때 '그래,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내 마음. 그건 너에게 아직 돌아서지 못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더이상은 안되겠어. 이제 그만하자. 그 차가운 말이 남기는 생채기는 지독히도 오래 간다. 사랑의 지속이 아닌 단절로서의 미안하다는 말은 결코 미안한 맘을 전달하기위한 말이 아니라 그저 너의 자기 위안의 말일 뿐이다. 설령 너의 본심이 그게 아니었다 해도, 나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없다.

민석이 이미 결혼한 현정 앞에서 그때 헤어지지고 해서 미안했다는 말. 현정에게 거짓말하고 구미로 내려와버린 상훈의 미안하다는 말. 민석과 다시 만나며 건조한 키스를 나누고 난 뒤 미안해, 그만하자라는 현정의 말. 끝장면. 이혼서류를 만지작거리고 침대맡으로 찾아든 상훈에게 미안해라며 속삭이던 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 말끝의 침묵. 체념하는 표정들. 결국 그 말 뿐인 것을. 달라질 것 하나없는, 풀 수 없는 매듭을 앞에두고 칭얼대는 일인 것을.

사과. 200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 서늘하고, 차갑다. 그 이유는 현정의 사과가, 상훈의 미안하다는 말이, 민석의 미안했어라는 말 모두가 관계의 단절을 예비하는 지점에서 터져나오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건 상대에게 미안함을 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위안으로서의 사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 이미 마음은 떠났고,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의미없는 지점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공허한 울림이 된다. 그 말은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지점에서 나오고,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은 어떤 뜨거움 없이 무기력하다.

어쩌랴, 미안하다고 말해야하는 그 순간에는 이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을. 그것이 비록 이제 그만하자라는 의미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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