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꺼내든 아이팟터치에서 '고스트뉴스' 실행하고, 언론사의 뉴스피드를 읽다가 한 칼럼에 눈이 멈췄다. 경향신문 기사목록.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대근 칼럼. (용산 테러리스트) 읽고나서 쉼호흡을 하고 다시 읽었다. 좋은 글이다. 용산사태를 다룬 글 중에서 이렇게 진실되게 철거민을 이야기한 글은 처음이었다. 간만에 좋은 글을 읽었다.

피디수첩의 특종보도로 '수사같지도 않은' 수사를 하고 어물쩡 뭉개려했던 짜증스런 상황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웃기는건 다른 언론사에서도 이 장면들을 미리 찍어놓았다는 것.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몰랐던 것인지 모르지만 반성좀 해야 한다. 검찰 수사를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제껴두고 그저 누가 불을 질렀는지 발화지점만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상황. 제대로된 수사를 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검찰에 뭘 기대한건 아니지만, 이건 심하다 싶을 정도의 수사상황들. 유가족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칼럼을 읽으며 눈을 뗄 수 없었던 문장. "그러나 마지막 방법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그들이 망루로 올라갈 때는 이유가 있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원인은 망루의 불이 아니라, 이들이 망루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그 위에서 경찰(및 용역깡패)과 대치해야만 했던 그 저주같은 상황이었다. 불이 누구때문에 났느냐가 중요한가. 이걸 다들 알면서도 직시하기에는 '너무 슬픈 이야기'라서 그런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또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며 필요에 따라 그들을 '도심의 테러리스트'로 쉽게 덧칠하고 있다.

언론이 가진자, 힘있는자의 목소리만을 말하는 시절이다. 6개월만에 KBS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고 (시청료 거부운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조중동은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다. 이 막장의 와중에서도 이런 칼럼을 읽을 수 있어 고맙다. 힘이들 때 자신을 이해해주는 목소리가 하나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기에 이 글을 유가족분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용산 테러리스트

이명박은 민주화 시대에 어느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느냐고 했다. 민주화 시대 모든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 했고, 이명박 정권도 그랬다. 다만, 이명박 정권이 더 노골적이고 그 방법이 좀더 거친 것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맞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사는 일 중심으로, 일 잘하는 사람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왜 그렇게 못했는지 그 이유를 들으려 사람들이 TV 앞에 앉은 것일 텐데 말하지 않았다. 분단 60년 중 1년의 경색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마치 자신이 59년간 남북 화해 잘하다 딱 1년만 안된 것처럼 주장하는데 정확히 하자. 그의 취임 이후 1년 내내 경색되었다. 오래지 않아 남북협상할 거라고?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그는 현안들에 대해 제대로 변명하지도, 자기 논리에 따라 효과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했다.

불교계로부터 그렇게 혼나고도 ‘하나님의 소명’ 운운하고, 오바마처럼 화합하면 어떻겠느냐는 주문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미국수준이면 좋겠다며 비웃었다. 옛날엔 자동차 타고 가다가 신문에 장관이 잘못했다고 나오면 전화해서 ‘어이 내보내’ 그런 식이었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그런 요구를 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아마 그는 자기에 대한 고언을 종종 이렇게 오해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조언과 지적 때문에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불평하는 사람들-특히 그의 주변 사람들, 여당 사람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그만 입 닫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죽은자에 사과는커녕 모독만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군주가 현명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군주가 정말 현명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조언자들 덕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견해이다. 군주의 지혜가 좋은 조언을 낳는 것이지, 좋은 조언이 군주의 지혜를 낳을 수는 없다.’ 이명박의 말대로 조언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

SBS TV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는 안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을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 특히 용산 참사 이야기 때 그랬다. 그는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 빈 말로나마 미안하다고 슬프다고도 하지 않았다. 철거민, 그들은 누군가. 30년 넘게 장사한 거리에서 쫓겨나 다 잃고, 결국 그 자리에서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칠순의 노인이었다. 외환위기로 일식집 문을 닫은 뒤 다시 살아보자고 복어집을 낸 지 3년 만에 그 꿈은 거품처럼 꺼지고, 살아갈 기운을 잃은 쉰여섯의 가장이었다. 이 거리를 떠나야 했기에 물과 전기 없는 천막집을 짓고 노점상, 막노동을 하며 철거된 인생을 살다 뜨거운 불속에 사라져야 했던 쉰 살의 가난한 아저씨였다. 땀 흘려 일군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고,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이렇게 다 빼앗긴 이들이 자비를 베풀기를 기대했는가. 권력과 재벌과 건물주의 욕망을 위해 온순한 양처럼 순순히 물러날 것 같았는가. 미국 연수 때 가족과 국립공원에 놀러갔다가 곰 출현 경고판을 본 적이 있다. 충분한 거리가 아니면 달아나지 말고 손을 벌려 크게 보이도록 하라. 그래도 안 물러나면 소리를 내고….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방법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그들이 망루로 올라갈 때는 이유가 있었다.

누구는 그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부동산 부자인 청와대 부대변인이라는 이는 그들의 죽음이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은 법질서를 잡으려면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죽음은 법질서의 제단에 바쳐지기 위해 이렇게 재해석되었다. 죽은 자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명백한 이 사건을, 너무 슬픈 이 이야기를 그들조차 외면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국가와 시민간 사회계약은 깨져

그러나 큰 죄를 진 재벌총수를 죄다 용서함으로써 법이 정의와는 무관한 기득권 보호 장치임을 전 국민에게 학습시켰을 때 법질서는 이미 무너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철거민들은 벌써 법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고,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테러리스트였다는 선전으로는 무너진 법이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법의 정신이 이 정권에 의해 너무 많이 훼손되었다. 어쩔 텐가. 이제는 국가의 이름으로,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없다. 국가와 시민의 사회계약은 거의 깨졌다.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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