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ss

from 그림창고 2008. 10. 1. 13:02



미술관을 가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 가끔 인사동에 들어선 가나아트센터는 오며가며 들러보긴 하지만 그건 동선에 따라서 들리게 되는 것이니. 정말 그림을 보고 싶어서 시간과 장소를 알아서 찾아가는 건 참 오래된 듯하다. 일부러 찾아간 성곡미술관이 마지막이 아닐까. 그림을 보면서 난감한 경우도 있고, 담겨진 감춰진 이야기에 힘겨울때도 있지만 잔잔하게 보고 있으면 맘이 가라앉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 보면 내가 처음 대출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빳빳한 책표지, 알싸한 새 책의 냄새. 기분마저 좋아지는 경험이었다. '뭉크뭉크'라는 제목의 책도 그랬었다. 1판 1쇄가 2000년 11월. 학교 도서관에서 뽑아들었었다. 빽빽히 책이 꽂힌 서가 곁에서 이 책을 건져올렸던 이유는 표지의 '마돈나'였다. 어딘가 아픈, 불안한, 분열적인, 어두운 그의 그림들. 그래서 뭉크의 그림은 현대인의 고독이 녹아있다.


예술은 자연과 대립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오직 인간의 내면에서만 생겨난다. 예술은 인간의 신경, 심장, 두뇌, 눈을 통해서 창조된 영상인 것이다. 자연은 예술에 양분을 주는 영원히 위대한 왕국이다. 자연은 그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내적인 영상이다.

책 뒤 적혀있던 뭉크의 말이었다. 예술이 단지 자연의 '미메시스'가 아니라, 인간을 통해 창조된 영상으로 본, 또 인간 영혼의 내적인 영상으로 본 그였기에 그의 그림속에 현대인의 불안함, 아픔이 묻어있었을 거다.


The Kiss, 1897, Oil on canvas, 99 x 81 cm



그래서 일까. 사랑을 나누는 두사람을 표현한 '키스'라는 그림에도 어딘가 모를 불안함과 곧 헤어질것만 같은 절박함이 느껴진다. 따스한 불빛이 아니라 어두운 커텐 뒤에서 나누는 그들의 입맞춤은 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는 이들의, 혹은 금기의 사랑을 하는 이들의 입맞춤 같다. 따스한 불빛아래 열정적으로 나누는 키스보다 더 애처로워보이고 안타까워보이고 사랑스러워보인다.
 

In my art I have tried to explain to myself life and its meaning I have also tried to help others to clarify their lives. - E.M


뭉크가 말한 것처럼, 그가 설명하고자 했던 삶과 삶의 의미가 그들이 나누는 키스에는 있는지도 모른다. 키스가 언제나 달콤하고, 달뜨는 것일 수는 없으니. 때로는 비극적이고 불안하고 키스를 나누는 순간에도 한없이 불투명한 키스도 우리 삶에는 있는 것이다. 꾸며지지 않은 우리 내면의 모습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로뎅의 키스같은 불안한 이야기가 뭉크의 그림에도 담겨있는 것만 같다.



The Kiss,1901-4,Le Baiser, Pentelican marble, object: 1822 x 1219 x 1530 mm, 3180 kg, scul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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