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의 크기

from 생각창고 2006. 11. 9. 00:08

그 마저도, 그래도,
월마다 꼬박꼬박,
내 손에 쥐어지는게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그 대답뒤에 남는 상대적박탈감의 그늘은...
쉬이 걷혀지질 않는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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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전화를 받았다. 1주일만의 늦잠을 방해한 그 목소리는 딱딱한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황금같은 금요일에 나를 9시까지 붙잡아둔 어제 작업. 구성한 데이터가 잘못됐단다. 결국 토요일에 회사를 나왔다.

지금 넓은 사무실에는 나 하나 뿐이다. 8개월 이 사무실에 일하면서 시계의 초침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항상 톡톡거리는 키보드 소리, 수많은 전화목소리로 가득찬 이 공간에 이런 침묵과 고요가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책상에 가득 붙어있던 사람들이 없다는건 이곳을 무척이나 낯설게 만든다.

어바웃 슈미트를 보면 첫장면에 사무실 시계가 클로즈업된다. 퇴직을 앞둔 슈미트가 6시를 기다리며 얼굴가득 '난해한 표정'을 지으며 있던 그 장면...잭 니콜슨은 얼굴 표정하나로 많은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는 퇴직을 앞둔 그 순간에도 생명처럼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좁고 항상 분주한 공간에 들어서면서 사무실 시계가 가속을 내서 달리길 기다린다. 시간이란게 언제나 상대적이지만 사무실 공간을 통과하기 전과 통과한 후의 체감 속도는 그 차이가 크다. (잠들기전에 나는 나에게 남아있는 좁쌀만한 가용시간이 무한대로 늘기를 간절히 바라곤 한다.) 때로는 정신없는 일때문에 시간가는걸 느끼지 못할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더디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빠르게 시간이 가길 바란다.

오늘은 그래서 낯설다. 저 시계의 움직임, 고요하게 들리는 사무실 시계의 초침소리가 날카롭지 않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창밖에는 눈이 오고, 조금은 크게 노래를 들으며 여유있게 이글을 쓰고 있자니 저 딱딱한 시계가 흘러내려 물처럼 흐르는것 같다.

이 공간의 낯설음, 그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내 휴일의 한부분 도려낸 것이 그렇게 아깝지 않다...

20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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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던날,1002번버스창문


늦은 시간에 학교를 나섰다...
저녁 먹는 것도 썩내키지 않아 약간은 허기진 채로 걸어나왔다...
해가 짧아져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 이내 어두워진다...
어둑해진 길을 나서는건 포근함을 준다...
도서관 불빛아래서 짧은 시간 책을 읽었는데 눈이 시렸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찬바람 맞으며 시린 눈을 껌벅껌벅...
눈을 감는 것도 뒷목이 땡기는 것처럼 힘겨웠다...
차가워진 바람에 계절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가을이 가고 있는거구나...
정말 '가을'일까 생각한 적도 없는데...
또 그렇게 계절은 가나보다...
가방 끈속에 양 손을 끼워넣고 몸을 움추린다...바람이 매섭다...

계절의 변화는 버스에서도 느낄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1002번 좌석 버스에 털석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데...
오랜만에 다리를 감싸고 도는 따스한 공기...
벌써 버스 안에는 스팀의 열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놀라움과...떠나는 가을에 대한 서글픔...
스팀 때문인지 창밖이 더 추워보였다...
호호 입김을 불면 창 한가득 성에가 낄것 같은...
마포대교위에서 보는 한강이 얼어버릴것만 같았다...

계절에 적응하고 싶다...
매번 떠나버린 계절을 아쉬워하고 앞으로 다가올 계절에 설레지 않도록...
익숙한 구두처럼 단단히 적응된 그런 계절...
이제 겨울이 오면 난 또 무얼 준비해야 하나...

계절은 먼저 버스안으로 온다...


200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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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le software development

from 생각창고 2006. 9. 7. 13:48
우연히 zdnet기사를 읽다가 요즘 각광받는 소프트웨어방법론이라고 해서 위키를 뒤져보았다...아직 완전히 읽어본건 아니어서 다 이해한건 아니었지만, 점점 정형화되고 비인간화되어가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에서 나온듯 하다...

예전에 산업사회학을 수강할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노동으로부터의 '인간소외'를 개선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개량된 노동방식에 대해 리뷰했던 적이 있었다. 인간이 노동활동에 '개입'하여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편입'되어, 일과 일의 결과물 모두에게 '소외'되는 이중고...

프로그램개발이 몇몇 천재들에 의해 이뤄지던 가내수공업방식에서 벗어나 대규모 기업형 개발형태가 주류를 이뤄가면서 이러한 고민들은 점점 더 많아 질것 같다...(몇년 안에 sw기업이 4~5개로 정리될 것이라는 기사도 있다.) 지식노동의 이미지가 점차로 퇴색되어가고 그 자체로 기능적인 일의 반복에 가까워져가면서, 점점 그런 위기감이 새로운 방법론,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 스스로 리뷰해보기 위해 위키에 실린 The Agile Manifesto를 일부 번역해본다...

agile 방법론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하나의 접근이 아니라 개발 진행에 일부이다. 2001년 에자일 방법론의 영역에서 17명의 유명인사들이 유타의 스노버드 스키리조트에 모여 그들의 방법론의 토일된 테마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에자일 선언을 만들었고, 그것은 애자일 방법론과 부가되는 에자일원칙에 대한 권위있는 정의로 여겨지고 있다. 에자일 선언의 몇가지 원칙은 :

Agile methods are a family of development processes, not a single approach to software development. In 2001, 17 prominent figures in the field of agile development (then called "light-weight methodologies") came together at the Snowbird ski resort in Utah to discuss the unifying theme of their methodologies. They created the Agile Manifesto, widely regarded as the canonical definition of agile development, and accompanying agile principles. Some of the principles behind the Agile Manifesto[1] were:

  • Customer satisfaction by rapid, continuous delivery of useful software
    유용한 소프트웨어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공급에 의한 고객만족
  • Working software is delivered frequently (weeks rather than months)
    작업중인 소프트웨어는 월단위보다는 주단위로 공급된다.
  • Working software is the principal measure of progress.
    작업중인 소프트웨어는 진행단계에 대한 기초적인 평가이다.
  • Even late changes in requirements are welcomed.
    요구사항에 대한 심지어 늦은 변경도 환영된다.
  • Close, daily, cooperation between business people and developers
    현업과 개발자간의 친밀한 데일리 협업
  • Face-to-face conversation is the best form of communication.
    대면 대화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장좋은 형태이다.
  • Projects are built around motivated individuals, who should be trusted
    프로젝트는 신뢰받는 동기부여된 개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 Continuous attention to technical excellence and good design.
    기술혁신과 좋은 디자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 Simplicity
    단순함
  • Self-organizing teams
    자율적으로 조직되는 팀
  • Regular adaptation to changing circumstances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정기적인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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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감작업...

from 생각창고 2006. 9. 7. 10:54
이런 곳에서 누워 일하고 싶은 요 며칠간이었다...



8월의 마감작업이 끝났다...한달간 처리된 수백만건의 데이터 검증작업이 쉬울수는 없겠지만 이번달은 너무 힘들었다...시스템으로 모든 데이터를 룰에 근거에 처리한다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들어서 항상 예외적인 케이스는 존재하고 그게 항상 매월 문제가 된다...

아무리 시스템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인간이 하는 일을 좀더 쉽게, 편리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시스템이기 때문에 언제나 비정규적인 db업데이트는 존재하고, 예외적인 처리도 항상 내재할 수 밖에 없다...그걸 100% 통제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이런 고민이야 그 일이 끝나고 나서 하는 생각들이지, 실제로는 데이터에 치여 하룻밤을 꼬박세우고, 다음날 5시에 퇴근하면서 '잠...잠...잠...'만 생각하는게 현실이다...내가 하는일이 너무 소모적으로 보여, '일'에 대한 내 나름의 의미부여가 엷어지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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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살아가면서 불평등한 현실에 울컥한게 한두번도 아니지만, 손문상 님의 오늘 만평을 보면서 잠시 울분을 토하게 된다...유엔이라는 기구, 안전보장이사회라는 기구는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헤즈볼라라는 무장테러단체가 자국의 병사 두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민간인에게 무차별적 폭격을 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행태를 보면 과연 그들이 기독교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예수그리스도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그들에게 종교라는게 있기나 하는건지 회의가 든다...

간디가 그랬다고 하던가..."난 예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크리스챤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파워를 등에업고 사실상 상대국에 상응하는 피해만큼만 보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레바논은 초토화되고 있고, 단 두명의 병사를 억류한 이유로 수백만의 국민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그 사이 미국은 적극적인 중재노력은 커녕 이스라엘의 깡패행위를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군사행위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했으면 하지만 장관인선으로 '지들만 관심있는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

힘과 자본이 절대권력인게 나라밖이든 나라안이든 통용되는 진리라는게 하루이틀 아니지만 폭격에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자는 삶의 터전을 떠나 피난을 떠나야 하는 레바논 사람들을 보면 참 뭐라 할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정말 만평처럼, 내가 아는 예수라면 지금 레바논의 무고한 사람들을 한손에 업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탱크를 향해 돌이라도 던질것 같다...적어도 지금 그들은 예수를, 또한 평화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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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from 생각창고 2006. 7. 11. 09:33

아침에 출근하는데 하늘이 모처럼 맑아 기분이 상쾌했다...두눈은 피곤에 절어 가누기 힘들정도로 나를 내리누르고 있었지만...그래도 모처럼 창창한 햇살은 출근길의 나를 계속 두드렸다...

우리집 베란다에서는 멀리 북한산이 보이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바깥을 보니 북한산 정상부근의 구름띠도 확연히 구별할 정도였다...남부지방에 피해는 많았던 태풍이지만...가끔 이렇게 태풍이 쓸어내버리는 것도 일종의 자연의 순기능이 아닐까 한다...

아침 뉴스를 듣는데, 북한의 미사일 실험의 파장이 날로 커지는것 같아서 걱정이다...주변국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정교한 외교적 계산보다는 눈앞의 두려움에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본의 행태도 우려스럽다...아베신조 관방장관은 그 위기 결정판의 발언을 했는데...대략 핵심은 다음과 같다...

"북한 미사일을 막을 만한 수단이 없다면, 합법적인 자위적 차원에서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할수 있다."

이 발언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때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로부터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선제공격의 당위는 충분하다"라는 논리와 꼭 닮아있다...(누가 미국의 개가 아니랄까봐...)

문제는 이라크는 우리와 저 멀리 떨어져있는 물리적 위험의 대상이 아니었던 반면에...북한미사일과 일본발언은 우리 삶에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뜯어보면 일본의 선제공격론은 명백히 (실질적인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아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선언이다...그리고 그것은 합법적 정당한 테두리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제적 비난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합법적'이라는 말에서 현재의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일본 극우망령의 판단이 서려있다는 점이다...이는 일본 극우의 정치적전략이 노출되어있는데, 북한 미사일이라는 안보성 호재를 통해 그들의 숙원인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 전환을 일거에 획득하려는 치졸한 전략이다...그들은 일본 사회의 여론지지를 얻기 위해 계속 위기를 강조하려 들 것이다...

답답하다...자칫 우리의 편안한 삶에 큰 영향을 줄수도 있는 (물론 그렇게 되서는 안되겠지만) 상황들인것 같다...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사안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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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째 연속출근...

from 생각창고 2006. 6. 10. 12:17

오늘도 출근했다. 요일감각도 무뎌지는거 같다. 금요일이 됐는데도 주말기분이 안난다. 토요일에 아침 6시에 출근하는 기분, 하루 세끼 회사근처에서 밥을 먹는 일 이제좀 낯설어 졌으면 좋겠다.

어제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월드컵 축구도 다음날 조기 출근의 압박때문에 전반까지만 봤다. 다른 날 같았으면 맥주한잔 기울이면서 쿠션에 몸기대고 침흘리면서 봤을텐데 누릴수 없는데서 오는 아쉬움이 무척이나 크다.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왔다. 최종 테스트 후 시스템 오픈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지 않는한, 12일에 예정대로 진행된다. 전산시스템이라는게 유기체와 같아서 머리는 바꾸지 않고, 몸만 통체로 바꾸는데도, 리스크가 크고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금융전산시스템이라면 더욱 그렇다. 레거시 시스템을 변경하는것은 사회변혁이나, 의식변화만큼이나 더디고 저항도 크다.

익숙함과 결별하는것, 그리고 새로운것에 적응하는 것은 해야하지만 누구도 선뜻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가 더 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일에서 긴장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테스트를 진행하고 오픈이 가까워오면서 가끔 가슴한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난다.

집에서 차분히 먹는 저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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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년간 쌓아놓은 책중에 계급이론관련 서적의 어디쯤을 뒤적거리면 자본주의내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실패'한 까닭중의 하나는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이들이 많아진 까닭이라고 설명하는 책이 있을거다. (있을것 같다...)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식'이 엺어지고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꿈꿀만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등장. 스스로를 노동자,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그 보다 조금 위쯤 어딘가의 '중산층'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 이들은 결국  계급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이라는 규정하기 힘든 모호함 때문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국사회의 70~8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규정한다는 서베이도 본적이 있다. 도대채 누가 중산층일까? 단지 경제적인 풍요로움, 부족하지 않은 소비를 기준으로 중산층을 나눌 수 있을까? 아님 퇴직할때가 되어 당장 먹고살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소유를 기준으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민식, 1961년 부산

의문은 중산층이 위와 아래의 중간지점이라는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나온다. 사회의 계급모순은 그대로 이지만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조금더' 나아졌다면, 그래서 사회 하위계층의 삶이 10년전 그런대로 먹고살만한 사람들의 수준과 동등해졌다고 해서 그들을 현시점에서 중산층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차이'는 고스란히 존재하는데 말이다.

차 한대 끌고, 아파트 한채 있고, 당장 짤리지 않는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으로 불린다는 것은 넌센스다. 차는 몇 CC인지, 외제인지 국산인지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고, 아파트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 평수는 얼마인지, 브랜드 네이밍이 있는 아파트 인지의 차이는 '천양지차'이며 연봉은 얼마인지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의 차이는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차이보다 크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일종의 중산층 마취의식이, 오늘 당장 물건이 널려있는 이마트에서 카트 가득 먹을것을 사고 차 트렁크에 가득채워 돌아올 수 있다는 순간적 최면이 그런 엄연한 차이를 가리고 있다. "그래도 이정도면 살만한거지 뭐..."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불철주야 뛰고 달리나는 언론의 '협박'에 "그래 잘살자는 건데 뭐..."라고 호응하는 우리들.

레드몽키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간극'이 이해가 간다. 아마도 그 자리의 교수와 제자라는 계급적 차이 만큼이나 중산층과 그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민식, 1976년 부산. 자갈치 시장


맑스주의자들은 '중산층 허위의식'이라고 표현 하던가? 요즘처럼 그런 의식이 팽배한 적이 없었던것 같다. 이 정도면 살만한 사회라고 자위하면서... 그러면서 우리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엺어지고, 사회는 점점 우로만 향해 가고 있다.  서로서로 중산층이라고 위로 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참 암담하기 이를데 없다...

이 순간 직장에서 일하는 나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면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상류층'의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참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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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유감

from 생각창고 2006. 6. 1. 08:11

드뎌 나에게도 핸드폰이라는게 생겼다...어디서나 삐리릭 울리는 소리와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할말만을 쏟아내는 사람들의 경박함을 비웃고는 했는데...이제 내가 그 경박함의 중심에 서 게 된 것이다...전적으로 나의 필요에 의해서 장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호를 받고 전화기를 손 에 들면서도 맘 편하지 않았다...남들 다가지고 있는 것을 나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 고, 없음의 홀가분함을 맘껏 즐겼던 것이 아쉽기도 하고 그랬다...

요즘은 연락해야하는 사람이 핸드폰이 없으면 무척이나 불편해한다...우리 사회가 즉각적이고 빨리 빨리의 사회라서인지 몰라도...전자우편 만큼의 기다림도 참지 못할만큼 빠른 상대편의 반응을 요 구한다...핸드폰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무슨 상황인지를 잠깐의 가장과 덮어둠 이 없이 홀라당 내보이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가끔 필요에 의해 핸드폰으로 연락하면서도 가장 꺼리끼는 것은 내 전화로 인해 상대편이 감수해야할 갑작스러움과 전화받을 상황이 아님에도 전화를 받게되는 상태때문이다...편지를 내가 확인하는 것은 내가 편지를 읽겠다는 의지가 실행에 옮겨졌을때 가능하다...그래서 내가 누군가에 게 보낸 편지를 그 사람이 읽어보는 것은 그 사람이 편지를 받을 상황이며 또 편지를 읽고싶은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편지가 내게 주는 편안함은 이런 매체적인 특성에서 나온다...그래서 편지 안에서는 하지 못할말을 할수도 있고 해선 안되는 말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조심스레 내뱉 을 수도 있다...

며칠 전화기를 소지하면서 내겐 아주 웃기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간혹 지하철 안이나 버스안에서 앉아있을때...주변에서 울려대는 삐리리 소리에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그렇게 울 려대는 소리에 신경을 쓰이게 되면서 내 안에서 핸드폰의 존재감을 항상 확인하게 되어버렸다...아 직까지 정확하게 내 소리를 인식하는 득음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탓인지...난 도대체 어떤게 내 전 화기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모르겠다...전에는 당연히 내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누가 나 를 찾는 것이 아닐까 가방속을 뒤적거리게 된다...

그중에서도 핸드폰을 지닌 며칠동안 제일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점은...가는 차안에서나 오는 차안 에서나 큰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외출시 나의 가장 필수적인 품목은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이다...이 자그마한 기계에다가 오늘 제일 듣고 싶은 시디를 껴놓고 외출하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 중의 하나다...사실 내가 음악을 듣는 두가지 주요한 수단은 하나는 컴퓨터에 오래 앉아 있다보니 자연스레 많이 듣는 엠피스리와 외출시에 오고가는 중에 듣는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이 다...버스를 타면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귀로는 상쾌한 때 로는 무척 신나는 음악을 듣는것이 외출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런데...핸드폰을 지니면서는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고 음악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주춤해져버렸 다...사실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이 열손가락으로도 세고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이고 또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그 시간에 전화를 할리도 만무하지만 나의 어색한 핸드폰은 그 몇가닥의 가능성을 품고서 날 자극하고 있다...버스안에서 혹은 지하철 안에서 음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은 핸드폰 이 가져다준 아주 좋지않은 결과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건...'문자메시지'라는 부류의 핸드폰 서비스이다...이건 분명히 핸드폰의 맹점과 개선방안을 연구한 탁월한 아이디어맨의 결과물일 것이다...나에게는 전화와 편지간의 타협점이라 는 생각이 든다...편지가 주는 비동시성의 편안함과 글이주는 따듯함, 전화가 주는 동시성과 즉각 성을 교묘하게 접합시킨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몇번 문자메시지라는 것을 보내면서 손가 락에 땀이나도록 타자를 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몇 자안에 내가 할말을 구겨 넣어서 보내는(마치 일본의 하이쿠처럼) 단어의 취사선택도 흥미로운 일이다...혹시 모르겠다...이게 점점 문학적인 성질을 지니게 될지도...^^

핸드폰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다...주된 이유도 얼마전부터 하게된 일과(집에있을때 수정해야하 거나 급하게 해야할 일이 있을때) 또 단말기 보조금이라는게 없어져버린다는 현실적인 금전적 이 유이다...하지만 기왕 손에 쥐게된것...내 스스로 핸드폰의 불쾌함을 줄이면서 편리함을 늘릴 수 있 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싶다...익숙해질때까지 한참을 주변의 기계음에 민감해야하겠지만...순간의 느낌을 문자메시지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접점을 의미하는 것 같다...

분명 편리한 도구이다...하지만 위험성도 많이 가지고 있다...편한만큼 조심스러워야한다...난 편지가 훨씬 좋다...앞으로도 핸드폰은 절대로 편지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종이편지가 이메일 로 대체되어버린 지금 생각해보면...새로운 매체가 나에게 익숙해지기 위해선 그 전까지의 이미 익 숙해져버린 것을 새로운 것이 닮아야 한다...그런 점에서 나의 핸드폰도 이메일을 닮아갔으면 좋겠 다...

그것이 새로움에 대한 나의 대처방식이다...

20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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