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도려내어 삼청동에 다녀왔다. 차분히 걸어다니며 셔터를 눌러대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지만, 언 손을 후후 불어가며 삼청동 곳곳을 훔쳐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물론 예전만큼의 감동을 주기에는 삼청동은 이미 '내가 기억하는 삼청동 답지 않게' 변해버렸지만, 어쩌면 그게 이제부터 내가 기억해야 할 삼청동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충분히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내 사진기가 바삐 움직인 까닭도 그때문이다. 독특하지 않으면 이곳에 존재할 수 없다는게 일종의 불문율이라도 되는 것처럼 길변에 늘어서있는 가게들 모두 삼청동만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 뷰파인더에 잡힌 삼청동의 모습들은 이러했다.

Scene #1.
삼청동 골목에 들어가기 전에 마주하게 되는 미술관의 모습.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느낌의 건물과 장식적인 영어는 차분히 돌담길 걸어온 나에게 시각적인 이질감을 주었다. 옆에서 지켜볼 수는 있지만 왠지 들어가기 꺼려지는 단절감이랄까. 아쉬웠다. 경복궁 입구쪽 동십자각 건너편의 금호미술관의 모습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금호미술관'이라는 다섯글자가 친근함을 준다. 게다가 건물 전면에 보이는 그 여백의 미란, 창이없는 전면은 안에서는 답답할지 모르지만 바라보는 이에게는 깨끗하고, 시원함을 준다.


GX-10, 50-200, ISO 800, f/5, 1/15


GX-10, 50-200, ISO 800, f/5, 1/6


GX-10, 50-200, ISO 800, f/45, 1/125

Scene #2.
삼청동 입구에 도착했을때 날이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삼각대없는 상태로 한장도 제대로 담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한 중국음식점의 등불 아래서는 쉬이 발길이 떠지지 않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紅빛'을 잡아내고 싶은 욕망. 내 눈에 부딪히는 그 느낌 그대로를 렌즈에 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얼마나 많이 찍어야 빛을 이해할 수 있을까.

늦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홍등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음식점 이름이 '공리'인 것은, 그리고 이 음식점의 문 앞에 아름다운 홍등이 걸려있는 것은 그녀가 주연한 영화의 차용이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잠시나마 그 에로틱한 자태에 눈길을 뺏기는 것이.


GX-10, 50-200, ISO 800, f/5, 1/25


GX-10, 50-200, ISO 800, f/5, 1/15

Scene #3.
삼청동 골목가게들은 뭔가를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꽃도 팔고, 옷도 팔고, 구두도 팔고, 음식도 팔고, 악세사리도 팔고, 책도 판다. 예전에는 군데군데 '이곳이 사람사는 동네구나'라는 느낌을 주었던 쌀집, 세탁소, 목욕탕, 구멍가게 들도 보였는데, 지금은 아주 정성스레 시선을 두어야 그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언젠가 보았던 주민들의 이야기. 삼청동이 유명해지면서 오히려 생활은 불편해졌다는 말. 마을버스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래서 삼청동의 휘황한 불빛과는 다르게 힘들고, 고달파 보인다.


GX-10, 50-200, ISO 800, f/5, 1/10

한복도 팔고, (느껴지는 포스로 봐서는 혹시 판매를 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한복 갤러리인가?)


GX-10, 50-200, ISO 800, f/4.5, 1/20

구두도 판다. (여기서 사진찍으려다 안에서 찍지말라고 소리치길래 길 건너서 200mm로 쭉 땡겨 찍었다. 근데 잘 안나오더라. 쩝)


GX-10, 50-200, ISO 800, f/4.5, 1/30

하지만 지금 이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골목이 유명해지면서 정작 그곳에서 삶을 살아야 했을 사람들은 그 골목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번잡한 골목을 돌아 조금은 한적한 뒷골목에서 살고있는 사람들도 이미 떠날준비를 하고있지 않을까. 그들이 다 떠나버리면 이 곳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다. 여하튼, 밀려드는 차량의 행렬은 할머니의 귀가길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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