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 마종기

from 책글창고 2006. 5. 22. 17:16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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