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티드를 봤다. 마틴스콜세지의 이름값, 오랜만에 보는 레오의 연기를 기대하며 망설임없이 선택했는데 역시나 무간도의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하는것 같다.
미국식 갱영화로 생각하면 그다지 나쁠것도 없고, 오히려 스토리에 신선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도몰래 무간도와 비교 매핑해보는걸 보면 원작을 뛰어넘을 힘은 없는 것 같다. 역시 이 이야기는 어느 시공간에서도 들어맞는 보편성을 지닌게 아니라 (적어도 나에게는) 홍콩이라는 공간적, 시간적 배경에서 빛을 발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보면서 느낀 점은 이야기구조가 너무 느슨하다. 무간도 특유의 긴박감이나 압박은 느껴지질 않고, 맥빠진 후일담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잭 니콜슨의 연기도 냉혹함이나 야비함이 없는 '늙은이 발악'에 불과한것 같고, 대사 또한 계속 이어지는 욕설, 거슬리는 목소리들로 인해, 원작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비장비를 오히려 망쳐놓은것 같다. 이게 마틴스콜세지의 의도라면 할말없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없다. 차라리 드라마 소프라노가 더 낫다.
그리고 레오의 모습도 아쉽기 그지없다. 그의 눈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예전의 잔상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를 이렇게 기름기낀 장년의 아저씨로 만들어놓은 세월의 무상함이 야속하기만 하다. 배스킷볼 다이어리나, 토탈이클립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볼살이 부풀어오른 그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의 수확은 무간도의 진혜림역으로 나오는 '베라 파미가'이다. 처음 멧데이먼과 마주치는 엘리베이터 씬도 그렇고, 이후의 모습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가을분위기가 물씬 난다. 영화에서 이지적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연약한, 그래서 연민을 자아내야 하는 역에 적절한 것 같다. (그에 비해 진혜림의 모습은 좀 '못되 보인다'고 할까. 목소리는 아니지만)
모습이 부드럽고, 보기에 부담가지 않는다. 무간도의 진혜림보다는 훨씬 '상담받고싶은' 모습인듯. 73년생이라서 그런지 세월의 깊이도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어쩐지 보호받고 싶은 연약함도 엿보인다.
IMDB에서 필모를 보니 '맨츄리안 캔디데이트'가 보인다. 약혼녀인가로 나왔던것 같다. 한 배우가 이렇게 다른 임팩트를 줄 수 있다니. (아님 내 감정구조에 걸려들었거나) 디파티드 이후 촬영중이거나 예정인 영화가 몇편 보인다. 그 중에 Never Forever이라는 영화가 눈에 띈다. 한국인 영화감독(Gina Kim)이 만드는 영화인데, 이 배우, 앞으로 눈길좀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