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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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받기전에 추리소설 걸작선을 읽고 있었다. 요즈음 주로 사회과학이나 교양서적을 위주로 읽다보니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정신을 쏙 빼놓는 이야기의 매력을 느끼고 싶었다고 할까. 그런데, 잘 읽히지 않더라. 잘 와닿지가 않았다. 사건에 빠져 몰입이 되기 보다는 생뚱맞게 관조의 시선이 되더라. 이 책에 실린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실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어쩌면 현실이 더 소설같은 시대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소설읽는 감성이 퇴화되어버린 것인지 여튼,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그래서, 이 책이 부담스러웠다. 우연치 않게 티스토리 대쉬보드를 보고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발이 되었지만, 하필 여러권 중에 이 책이라는게 난감했다. 공지를 늦게 확인하여 다른 책을 신청했으나 수량관계로 손에 들게된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소설 모음집이었고, 게다가 환상문학 단편선이었다.

환상문학을 접한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다. 누나의 서가에는 SF부터 추리소설까지 온갖종류의 소설이 꽂혀있었으나, 한번도 탐해본 적이 없었고, 블레이드 러너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읽지 않았다. 핑계일까. 멍석이 두텁게 깔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을 받아들었으니 서평이란걸 써야 하는데 그게 부담스러웠던 거였다. 책을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이유도 그것이고.

책은 쉽게 읽혔다. 두툼하게 10편의 소설이 실려있으나, 첫 작품을 읽고 다음 작품에 바로 손이 갔다. 물론 단편선집이다보니 모든 작품이 동일한 무게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편차는 있다. 평가의 차원은 아니고, 개인적인 호불호라고 해야겠다. 모든 작품의 소재가 신선했다. 소설적 공간을 구성해내는 번득이는 촉수는 다들 파릇하게 날이 서있었다. 어쩌면, 환상문학의 성패가 소재에 달려있지는 않은가 싶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실망스런 작품도 있었다. 아래 짧게나마 적어낸 글들은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다. 

'학교'는 영화시나리오를 연상시킨다. (그걸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구성은 많은 학원영화들에 빚지고 있다. 배틀로얄이 겹쳐졌고, 고사도 겹쳐졌다. 충격적인 결말은 에일리언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아이에 대한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 좀더 생각해보고 싶었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이긴 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이유는 학교가 가진 알레고리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 그리고 숲의 대비는 우리의 공포가 어디를 향해있는가를 보여준다. '학교'의 비극은 학교가 아닌 '숲'에 있다. 숲은 두려움의 대상이다가, 삶의 희망이 되었고, 결국은 다시 죽음의 공간이 된다. 결국 문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사이의 관계이다. 이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학교가 아닌 '숲'에 있다. 주인공의 죽음이 연민없이 다가온 까닭은 부적응의 관계가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다. 야비한 이야기이지만, 선택은 두가지이다. 적응하거나 저항하거나. 중간지대는 없다. 그들이 연명할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숲이고 학교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길이가 아쉬웠다. 흥미로운 소재였고, 이기적인 이타주의. 그 인간 군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으나, 많은 이야기가 남은채로 글이 마무리 되었다. 소재를 끌고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상했으나 쓰지 않은 것인지, 더 다듬어진 글을 쓰기위한 초고인 것인지 의문이다. 작가가 더 세밀하게 써주었으면 좋겠다. '천국'으로 가기 위한 선행이라는 것이 환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천국'을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대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행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현실에서, 천국에 가는 점수를 얻기위해 착한일을 하는 이들은 주변을 보듯 자연스럽다.

'노인과 소년'은 한편의 교훈소설이다. 논쟁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흠잡기도 어렵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머리 탁치는 가르침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같은 느낌이다. 꼭 노자 도덕경에 있을 것 같은 얘기. 환상문학이라는 장르가 혼란스러워진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얘기라고 할까. 너무 의도가 느껴져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표제작이기도 한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실험소설일까. 몇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변주된다. 변주되는 지점은 흥미롭다. 화자는 바뀌지만, 말하는 바는 동일하다. '왜' 반복하는가. '또'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름대로 답을 말하고 싶었으나 명확하진 않다. "현실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현실을 낳고, 그 둘은 서로를 낳으면서 우리의 삶을 만들었다"는 문장으로 힌트를 얻을 수는 있겠다. 이야기는 그렇게 변주되고, 수없이 반복되면서 현실이 되고, 현실은 다시 이야기가 된다. 그게 환상이 아니고 뭘까.

'은아의 상자'는 편지글 형식을 띄고 있다. 상자를 둘러싼 두 친구의 편지글인데, 상자를 놓아둔 친구와 그에 대한 감사 편지 두통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당연하게도 친구의 답신이다. 진수의 편지는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켜가며 선혜의 답신에서 '탁'하고 터진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은아의 상자는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은아의 상자는 보상이었을까. 은아의 상자가 없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글이 너무 길어진다. 가벼운 의무감으로 글을 쓰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심각한 표정으로 이 책을 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책장을 넘기며 작가들이 풀어놓는 환상의 공간, 그 이야기들을 즐기면 될 거다. 작가가 창조한 환상적 공간, 그 소재들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더더욱 좋을 듯. 단편선을 읽다보니 두툼한 소설책 한권을 읽고 싶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은 부담스럽고, 탄탄한 단행본 한권. 날도 추워지는데, 꽤 괜찮을 선택이 될 듯 하다.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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