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오랜만에 151번 버스를 탔다. 이사하고나서는 103번 버스를 이용했었는데, 확실히 전용차로를 달리다보니 출근시간은 많이 단축이 된다. 103번은 확실히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150번이나 151번에 비해 15분정도 더 소요가 된다. 앞으로는 졸려서 쓰러지는 지경이 아니라면 가급적 103번을 자제해야겠다. 근데 될지 모르겠다.
출근길에 같은 버스를 타면 마주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마주치다가 우연이 길에서라도 보면 아는 척을 하게될 때도 있다. 워낙 얼굴이 익숙해서 그렇다. (실제 그런적이 있다.) 그중에 151번을 탈때마다 나와 같이 남대문쯤에서 내리는 분이 있다. 다리가 불편하신 젊은 분인데, 항상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일어나서 서 계신다. (롯데백화점 정류장 부근이다.) 처음에는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왜 한 정거장 미리 서계시나 의아해 했었다.
처음엔 왜 그럴까 싶게 쳐다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미리 일어서는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은거다. 다리가 불편하시다보니 아무래도 정류장에 도착해서 일어나면 출구까지 걸어나가는데 시간소요가 될 것이고, 뒤에 내리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조금의 텀이 생길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게다가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니 다들 기다려주겠지만, 이 분은 그런 불편조차도 주지 않기 위해 한 정거장을 미리 서 계신것 아닌가 싶었다. 그 마음이 짠한거다. 가뜩이나 대중교통 이용하기 녹록치 않으실텐데 (게다가 버스기사분들의 급정거 급출발이야 워낙 악명 높지 않은가) 그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싶어서.
좋은 맘일까, 불편한 맘일까. 한편으로는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한 정거장 먼저 일어나야만 한다는 상황이 씁쓸했다. 차가 멈추고 그 분이 불편한 걸음을 천천히 걸어 출구에서 내려설때까지. 그 짧디 짧은 그 시간마저도 우리의 시선은 거칠지 않았을까 싶었다. 혹여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싶어 맘이 불편하더라.
충분한 시간동안 멈춰서고, 내릴 사람들은 차가 멈춰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고, 걸음이 불편하신 분들은 먼저 내리도록 배려하고 이런게 드물어진 시절이다. 곡예하듯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적어도 반 정거장 앞에서 일어서야 하고, 다 내리기 바쁘게 기사분은 문을 닫는 스위치를 켜고, 삑삑 경고음이 들리고. 이게 일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분이 한 정거장 미리 일어설 수 밖에 없는거다. 같이 사회를 꾸려가고,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서로를 보기는 커녕 제 앞만 보기 바쁜 삶이다. 참 팍팍하고, 팍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