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릭 졸리오-퀴리 부부, 그들의 집에서, 파리, 1944, HCB1944001W0084AC//8



초상사진만큼 의도성을 배제한 채 찍어야 하는 사진도 없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인공 방사성 원소를 발견했던 유명한 물리학자 부부 이렌과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를 방문했을 때, 일이 순탄치 않으리란 사실을 직감했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벨을 울리자 부부가 문을 여는 순간 그는 대번에 '장면'을 찍었다. 부부 두 사람이 함께 대문간에 서 있었는데, 수도원 분위기가 풍기는 어슴푸레한 박명 속에 중세의상을 연상시키는 차림새였다. 어색한 표정으로 수줍어서 손을 튀틀고 있었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사진작가를 기다렸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본인들의 장례식에라도 참석하는 듯이 완연한 사색이었다. 표정이나 뒤편으로 보이는 실내 풍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들 부부의 어렴풋한 실루엣이 자아내는 장엄함으로 인해 부부는 마치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 상인 부부 초상화를 연상케 했다...

문제의 사진은 마치 다른 시대에 사는 듯한 사람들의 풍모를 보여주는 만큼, 모든 예의범절의 관념이 배제돼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부부가 문을 여는 순간 본능적으로 눈을 카메라의 접안구에 대고 셔터를 눌렀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러고 나서도 형식적으로 사진을 몇 장 찍는 시늉을 했다. 부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찍고 싶었던 사진은 이미 카메라 안에 담겨 있었다. 사실상 첫인상이나 처음 대하는 태도만큼 솔직한 순간은 없는 법이다...

"...졸리오 퀴리 부부는,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앞으로 닥칠 일을 예감하면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잔뜩 긴장해 있다. 그들의 눈은 보이지 않는 줄에 의해 카메라 렌즈에 묶여 있는 듯 하다. 수태고지 천사가 등장하는 그 어떤 옛 그림도 이토록 불안한 표정을 보여주는 예는 없다..."

세기의 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평전, p256, 피에르 아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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