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행, 백낙천

from 책글창고 2009. 3. 30. 17:55

주말에 큰맘먹고 집에있는 데스크탑을 정리했다. 이것도 봄맞이 대청소의 일환인데, 정작 집은 치우지 않았다는... (흠) 작업은 디렉토리 정리. 하드 파티션 재분류. 파티션별 사이즈 조정 등등등이었다. 몇시간 투닥거리고나니 많이 쾌적해졌다.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던 다큐멘터리들도 당장 보지 않을것들은 삭제해버렸다. 꽤 많은 파일이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EBS의 '세계테마기행'이다. 

그냥 모조리 지우기는 맘이 너무 아파 꼭 보고 싶었던 칠레관련 다큐를 아이팟으로 보기위해 컨버전했다. 비행기로만 30시간이 걸린다는 그 곳을 내 발로 가보는 것은 나의 오랜 바램이기도 하니 내칠수가 없었다. 세계테마기행 칠레편은 소설가 성석제씨가 다녀왔는데, 그 긴 길을 주파하기에는 좀 힘에 겨워하는 느낌이었다. 좀더 길었으면 좋았을텐데. 4편에 담기에는 너무 좁다. 여튼, 1편의 끝에 그가 칠레의 장관을 앞에두고 읊은 시가 한구절 나왔는데, 이 글이 눈을 사로잡았다.

모두 다 아득히 먼 곳을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

만남과 헤어짐, 인연에 대한 시인의 말이 곱씹어 볼 수록 혀끝에 맴돌았다. 메모를 해두었다가 구글링해봤다. 이 시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의 '비파향'의 한 구절이다. 성석제의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비)>에 두번째로 수록된 단편 '천애윤락'(天涯淪落)에도 수록되어 있단다. (제목이 시의 한 구절이다) 전문을 읽어보니 과연 그가 칠레의 '초현실적인' 장관을 앞에두고 기억해냈을만 하다 싶게 절창이다. 그때 그 정경이 눈앞에 그려질듯이 생생하다. 칠레를 여행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물가에 배띄워두고 동동주 한잔을 하고 싶어지다니. 

당나라 백낙천(白樂天)이 심양에 귀양가 있을 때에 밤에 강 위에서 비파소리를 들었는데, 비파 타는 그 여인은 장안(長安)의 기생으로 상인(商人)에게 시집와서, 남편이 장사하러 간 사이에 비파로 시름을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백낙천이 시를 지어 주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비파행(琵琶行)이다. 한국고전번역원

시인에게 이런 시상을 떠올리게 한 걸 보면 그 여인의 시름이 그리도 깊었나 보다. 하긴 그 여인의 비파소리가 구슬퍼 모두를 눈물짓게 하였으니 말해 무엇할까. 늦은밤, 비파소리 애절하게 흐르고, 듣는 이들 모두 서로의 인연을 떠올리며 외로움에 슬피울던 풍경. 이렇게 긴 호흡으로 시를 따라 읽는 것만으로, 잘 익은 술 한병이 그리워진다.



비파행 琵琶行   - 백낙천(白樂天)


-?陽江頭夜送客 楓葉荻花秋瑟瑟。
심양강 머리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니
풍엽적화에 가을바람만 쓸쓸하구나.

-主人下馬客在船 擧酒欲飮無管絃。
말에서 내려 손님의 배로 오르니 
술을 들어 마시려하나 흥을 돋울 음악(管絃)이 없도다.

-醉不成歡慘將別 別時茫茫江浸月。
취해도 즐겁지 않고 (석별의 정으로)장차 마음 아프게 이별하려 하나니
이별의 강은 망망하고 달은 물위에 잠긴 듯 하구나.

-忽聞水上琵琶聲 主人忘歸客不發。
홀연히 강물위로 비파소리가 들려오니
나는 돌아오는 것을 잊고 객은 뱃길을 떠나지 못했다.

-尋聲暗問彈者誰 琵琶聲停欲語遲。
소리를 찾아 어림짐작으로 ‘비파타는 자가 누구인가’ 묻기를,
비파소리는 멎고 뭐라 말하려는 듯한데, 답이 참으로 더디다.

-移船相近遙相見 添酒回燈重開宴。
배를 옮겨 가까이 가서 이편에서 저편으로 서로 마주 만나
술을 더 하고 등을 밝혀 다시 잔치를 여니,

-千呼萬喚始出來 猶抱琵琶半遮面。
천호만환(천 번 만 번 불러)하여 비로소 나타났건만
여전히 비파를 품에 안고 얼굴을 반쯤 가리더라.

-轉軸撥絃三兩聲 未成曲調先有情。
비파의 축을 돌리고 줄을 튕기며 두 서너 소리
아직 곡조도 제대로 타지 않았건만 소리에 사연이 먼저 담겼더라.

-絃絃掩抑聲聲思 似訴平生不得志。
줄과 줄을 손가락으로 누르니 소리 마다 사연이 서려
평생 이루지 못한 정을 하소연 하는 듯하고,

-低眉信手續續彈 設盡心中無恨事。
이마를 숙이고 손길 따라 연이어 비파를 타니
심중의 무한한 사정을 모두 말하는 듯하다.

-輕?慢撚撥復挑 初爲霓裳後六?。
가볍게 눌렀다가 천천히 매만지고 다시 올려치며
처음엔 예상곡을 타더니 후에는 육요곡이로다.

-大絃??如急雨 小絃切切如私語。
대현은 조조(??)하여 그 소리가 세찬 소나기(急雨)와 같고
소현은 절절(切切)하여 속삭임 같도다.

-??切切錯雜彈 大珠小珠落玉盤。
조조(??)하고 절절(切切)하게 뒤섞여 타니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옥반에 떨어져 구르는 듯하고,

-閒關鶯語花底滑 幽咽泉流水下灘。
때로는 꽃 사이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날아가는 앵무새 같고
유열(幽咽)하는 샘(泉)의 물은 여울이 되어 흐르는 것 같다.

-水泉冷澁絃凝絶 凝絶不通聲暫歇。
물 줄기가 차게 얼어 붙은 듯 비파줄 또한 엉겨 소리가 끊어지니
얼어 붙은 듯 잠시 비파소리가 끊어져 이어지지 않았다.

-別有幽愁暗恨生 此時無聲勝有聲。
소리가 끊어진 순간 깊은 시름과 맺힌 한이 슬픔이 되어 전해져 오는가?
정적의 순간 소리 없음이 소리 있음 보다 오히려 낫구나.

-銀甁乍破水漿? 鐵騎突出刀?明。
그 순간 은병(銀甁)이 갑자기 깨어져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듯
철기(鐵騎)가 갑자기 나타나 칼과 창이 부딪혀 울리듯 곡이 급전하여 바뀌더라.

-曲終抽撥當心劃 四絃一聲如裂帛。
곡이 끝나매 발(撥)을 빼고 비파를 가슴에 안고 줄을 그어대니
네 줄이 일시에 울려 마치 비단 찢는 소리와 같더라.

-東船西舫?無言 惟見江心秋月白。
동쪽의 배도 서쪽의 배도 초연히 말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데
오직 강물 속에 가을 달 만이 창백하게 비치는구나.

-沈吟收撥揷絃中 整頓衣裳起?容。
침울한 표정으로 발(撥)을 거두어 줄 가운데 꽂고
옷차림을 정돈하고 일어서 얼굴을 가다듬었다.

-自言本是京城女 家在蝦?陵下主。
스스로 말하기를, 본시 경성(京城)의 여자로,
집은 하마릉(蝦?陵) 근처에 있어 거기에 살았는데,

-十三學得琵琶成 名屬敎坊第一部。
13세에 비파를 배워 훌륭히 이루어 경지에 이르렀고
이름이 교방(敎坊) 제 1부에 속했다네.

-曲罷常敎善才服 ?成每被秋娘妬。
곡을 마칠 때 마다 선재를 감복케 했고 곱게 단장을 하면
언제나 추랑의 투기를 받았었지.

-五陵年少爭纏頭 一曲紅?不知數。
오릉의 소년들이 다투어 선물을 머리에 둘러주고
한 곡을 켤 때마다 붉은 비단을 수도 없이 받았고,

-鈿頭銀?擊節碎 血色羅裙飜酒?。
청패(靑貝)로 장식한 은빗(鈿頭銀?)은 장단을 맞추느라(擊節) 깨어졌고
피 같이 붉은 비단 바지는 술을 엎질러 젖었었더라.

-今年歡笑復明年 秋月春風等閒度。
올해도 즐겁게 웃고 명년을 또 그렇게 맞으니
추월 춘풍 세월을 걱정 없이 등한하게 지내었는데,

-弟走從軍阿姨死 暮去朝來顔色故。
동생은 군대를 가고
양모는 죽고 그렇게 세월이 가는 동안 얼굴이 늙어갔네.

-門前冷落鞍馬稀 老大嫁作商人婦。
북적이던 문전은 몰락하여 손님도 드물어지고
마침내 늙어서 시집가 상인의 아내가 되었는데,

-商人重利輕別離 前月浮梁買茶去。
상인은 돈벌이만 중히 여기고 아내와의 이별은 가볍게 생각하여
지난 달에 부량으로 차(茶)를 사러 갔으니,

-去來江口守空船 ?船明月江水寒。
강가를 서성거리며 빈 배를 지킬제
밝은 달은 배를 맴돌고 강물은 차갑기만 하여라.

-夜深忽夢少年事 夢啼粧淚紅?干。
밤이 깊어 홀연히 어린 시절의 꿈을 꾸니
꿈에 울어 화장한 연지가 녹은 붉은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네.

-我聞琵琶已歎息 又聞此語重??。
나는 비파소리를 듣고 이미 탄식하였는데
또 이말을 듣고 거듭 탄식하네.

-同是天涯淪落人 相逢何必曾相識。
우리는 모두 고향을 멀리 떠나온 불쌍한 사람들일진데
이 같은 만남이 어찌 일찌기 서로 만나 안 사람들 뿐이라고 할 수 있으랴.

-我從去年辭帝京 謫居臥病心陽城。
나는 작년 제경을 떠나온 후,
심양성에서 병들어 누운 몸.

-?陽地僻無音樂 終歲不聞絲竹聲。
심양은 벽지라 음악이 없으니
해(歲)가 다하도록 거문고(絲) 피리(竹) 소리를 듣지 못했노라.

-住近?江地低濕 黃蘆苦竹?宅生。
분강 가까이 사는데 땅은 낮고 습하여 
황로와 고죽이 집 주위를 무성하게 둘러서 있으니,

-其間旦暮聞何物 杜鵑啼血猿哀鳴。
그 가운데서 아침(旦) 저녁(暮)으로 무슨 소리를 들었으랴!
두견새 피 토하는 듯한 울음 소리와, 원숭이의 슬픈 울음 소리뿐.

-春江花朝秋月夜 往往取酒還獨傾。
강의 꽃 피는 아침 달 뜨는 가을밤에
자주 술을 들고 돌아와 혼자 술잔을 기울였노라.

-豈無山歌與忖笛 嘔啞??難爲廳。
어찌 나무꾼의 노래와 촌동의 피리소리가 없었으랴 마는
가락이 맞지 않고 조잡하여 듣기 거북하였다.

-今夜聞君琵琶語 如廳仙樂耳暫明。
오늘 저녁 그대의 비파소리를 들으니
마치 신선의 음악을 듣는 것 같아서 순간 귀가 번쩍 틔었노라.

-莫辭更坐彈一曲 爲君飜作琵琶行。
다시금 앉아 한 곡조 더 타기를 사양하지 말라!
그대를 위하여 ‘비파행(琵琶行)을 지으리라.

-感我此言良久立 ?坐促絃絃轉急。
나의 말에 감동하여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앉아 급히 줄을 튕기니 곡조가 점점 급해지고,

-?凄不似向前聲 滿座聞之皆掩泣。
전 보다 더욱 더 슬프고 처절한 비파소리에
자리에 앉은 모든 이가 얼굴을 가리고 소리없이 울었노라.

-就中泣下誰最多 江州司馬靑衫濕。
그 중에서도 누가 가장 많이 울었는고 하면
강주 사마인 백낙천(백거이) 나 자신의 푸른 적삼이 제일 많이 젖었다.


전문은 (默昊堂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꼭 들러 읽어보는게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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