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포근해지지 않는 바람부는 날씨탓에 감기에 걸렸다. 물을 마셔도 개운해지지 않는 부은 목. 침을 삼켜도 먹기싫은 음식이 목에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요 며칠 맑은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꺼내든 장필순 앨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때" 톡 건드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떨림이 느껴진다. 노래를 들으며 그녀 이름을 한 단어씩 또박또박 발음하면 마지막 음절이 그녀 목소리를 닮아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를 곱게 씻어주는 가사들. 맑고 깨끗하다.

그녀 필체를 본 적이 있다. 테잎이 다 늘어질 정도로 들었던 어떤날 2집. 결국에는 다시 산 킹레코드반 시디에는 어떤날의 음악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글씨가 놓여있었다. 참 착하게 만든 시디. 아름다운 어떤날의 노래 가사들이 예쁜 손글씨로 적혀있었다. 속지 끝에서였나, 그 글씨들이 장필순이 쓴거라는 걸 알고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녀 글씨는 신기하게도 그녀 목소리를 닮아있었다. 그래서 그 시디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글씨.


5집을 시작하면 나오는 첫곡 '첫사랑'의 감성은 이 앨범을 듣는 내내 잔향처럼 음을 감싸고 돌아 나간다. 시간이 빨리가는 그 시절 그 사랑. 들으면서 아주 짫은 기억이었다 해도 눈감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걸로 되지않나. 첫사랑의 떨림을 조동익의 베이스가 따스하게 감싸고 있어 참 포근하다.

5번째곡 '풍선'을 들어본다.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그녀 목소리가 그려놓는 원색. 눈감고 듣는다. 허스키하게 저며놓은 목소리. 두둥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풍선. 풍선을 불어보자. 아무에게도 보일수 없었던 눈물, 추억도 날려보자는 목소리. 알싸한 뒷맛. 약간 거칠고 솔직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험한 여행길, 지팡이가 부러지는 순간엔 그냥 앉아서 풍선을 불어보자는 그녀 목소리. 이 노래가 쉼이 된다.


풍선 (조동익 작사작곡)

풍선을 불어보자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아무에게도 얘기 못했던 슬픔 그 슬픔도 함께
풍선을 날려보자 외로운 하늘 가득히
한번도 고백하지 못했던 사랑 그 사랑도 함께
밑빠진 물독에 땀 흘려 물을 채우던 그 허무한 날들 생각하지 말아요
험한 이 여행길 하나 뿐인 그대 지팡이가 부러졌을 땐 그냥 거기에 앉아
풍선을 불어보자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눈물 그 눈물도 함께 라라라
풍선을 날려보자 외로운 하늘 가득히
그대의 아름다웠던 추억 그 추억도 함께 라라라



12곡을 차분히 듣는다. 그저 노래 잘부르는 여가수가 아니라, 여성 포크록 아티스트로서의 위상을 자리매김하게 한 5집. 이 앨범은 그저 노래 잘 부르는 가수에 머물지않고 그녀 자신을 다시 획득하게 한 앨범이다. 그래서인지 보다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있었을거다.

주말 출근을 앞두고 있지만, 그래도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날이 풀리면 봄날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가버리겠지. 봄, 가을날 같은 좋은 것들은 언제나 휙휙 지나가지 않았던가. 계절, 추억, 사랑. 돌아서던 모든 것은 아프고 짠하다. 그 뒷풍경을 차분히 그려놓는 그녀 목소리는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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