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집에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 본가가 김포라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자유로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 3차선으로 진입을 했는데, 그만 앞차가 추돌사고를 냈고, 미처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내 차도 그 앞차의 뒷범퍼를 치고 말았다. 정확히는 3중추돌사고였고, 나는 가장 후미였다. 차를 몬지 5년이 넘었는데,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본격' 사고는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대개 이런 경우 책임소재의 우위에 서기 위해 다들 '목잡고 쓰러지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다들 보험에 가입되어있어서인지 '저질스런' 행동없이 일은 마무리 되었다.
다친사람이 없이 차만 파손된 사고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들 그만하길 다행이니 액땜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으나 와닿진 않았다.) 3중추돌에서 앞차가 먼저 제일 앞차를 들이받았고, 그 이후에 내가 앞차를 받았기 때문에 책임소재는 명확했다. 내가 앞차의 뒷범퍼에 대한 대물책임 및 앞차 운전자의 대인책임의 50%를 진다고 한다. 보험처리를 할 것이라 당장의 금전지출은 없지만 차후에 보험료 할증의 부담은 지게될 것 같다.
9만원 압류를 해제하고 지인에게 획득한 96년식 크레도스는 본네트 절반이 구겨지고 라디에이터도 파손되었다. 대강의 견적만 100만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여 바로 '폐차' 판정을 내렸다. 3년간 굳은일 도맡아했던 그 녀석의 최후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조금 아팠다. 파손된 처참한 모습을 볼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차를 견인하고 차 안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면서 몇몇 추억의 부스러기들이 눈에 띄어 그랬으리라. 차안에 굴러다니던 찍지 않은 필름 두통을 발견하고는 많지 않은 그 녀석과의 여행의 기억때문에 맘이 좀 짠했다. 내 부주의 탓이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다.
사고라는게 다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앞차가 너무 급작스레 다가온다고 느낀 순간부터 앞차 뒷범퍼에 추돌하기까지 그 몇초가 꽤 느린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고맙게도 옆자리 효진이가 그나마 무던한 성격이라 그 흔한 '비명'도 없는 무미건조한 장면이었는데 나에겐 앞차의 빨간색 백라이트의 쇄도가 꽤 공격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찰나의 장면이 프레임으로 분절되어 한 컷씩 꽤 긴 러닝타임이 되어버린 느낌. 그 장면을 떠올리며 더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원인과 과정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거다. 목숨이라는 것이 이런식으로 허망하게 가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죽기전 살아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 (그걸 증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믿기힘들었던) 그 말이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사고를 마무리 하면서 당분간은 차없이 지내볼 생각이다. 불편함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힘들지 않을것 같다. 내 눈에 맺힌 빨간색 백라이트의 쇄도. 좀 잦아들면, 다시 차를 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