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한해의 끝자락을 그냥 쉬이 넘겨버리기는 쉽지않다. 2008년을 돌이켜보고 무슨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았나를 생각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부산스런 사무실 풍경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침 출근길 졸다가 눈을 들어 보니 보신각 앞에는 무대가 마련되어있었다. 각 방송국의 차량들도 떼지어 늘어서 있었다. 쌀쌀한 날씨, 그리 기쁠일 없는 날들 탓인지 그 무대가 더 어색해보였다. 몇시간 후면 그 무대위를 장식할 억지웃음의 모습들이 생각나 씁쓸했다.
한해를 접으면서 몇가지 돌아본다. 그나마 좋았던 일 몇가지. 운동을 시작한지 딱 1년이 되었다. 한해동안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꾸준한 운동이 될거다. 온갖 귀차니즘과 업무압박을 이겨내고 단조롭기 그지 없는 트레드밀을 뛰고있는 내가 사실 대견하다. 연초보다 5kg정도 감량을 한것 같다. 일부러 감량한건 아닌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저녁식사를 줄이다보니 자연히 몸무게가 가벼워졌다. 몸이 튼튼해진걸 느낀다.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블로그. 올해 이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기하급수적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어울릴만큼. 글도 꾸준하게 적었고, 이웃들의 블로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남긴것 같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힘이 되었다. 글의 치유 효과를 믿는다. 적는 것, 읽는 것이 하루하루를 사는데 힘이 되었다. 이곳 저곳 사이트나 카페를 돌아다니다, 이제는 RSS리더를 붙들고 짬나는 시간에 읽어내고 있다. 대부분의 정보, 대부분의 이야기를 그곳을 통해 얻는다. 그런 네트웍이 정보를 얻고, 삶을 공유하는 새롭고 중요한 채널이 될 것같다. 그건 2009년에도 변함이 없을테고. 작은 가능성을 본다.
음악을 많이 들었다. 찾아들었다는 말이 어울리는 게 몇년만일까. 공연을 보고 싶다, 음반을 사고 싶다는 간절함이 강해진 건 이례적이었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생각만이었지만)을 했다. 퇴근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본 '음악학원'의 기타레슨을 가슴떨리며 지켜본 것도. 3년전 드럼스틱을 쥐고 타이어를 치던 그 마음이 다시 찾아왔다. 아직 뭘 한건 아니지만, 이 맘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내년쯤에는 기타학원을 다닐지도 모르겠다. 밴드를 하는 직장인들이 참 부러웠던 한해였다.
여튼, 그랬다. 생각해보니 좋은 일을 찾기가 힘드네. 지난 일요일 채널을 돌리다가 KBS에서 하는 영상실록을 멍하니 봤다. 촛불이후의 KBS라 사건의 선택과 논조가 그닥 맘에 들진 않더라. 너무도 빨리 잊어버린 한해 일들을 몇가지 추려서 보여주는데, 2008년은 이상스럽게도 좋았던 일이 없었다. 있다면 올림픽과 김연아. 그것도 그저 기쁜일이지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일은 아닐터. '아니, 이렇게 좋은 일이 없을수가 있나' 새삼스러울 정도로 2008년은 그랬던 것 같다. 나쁜 기억이 더 오래가는 법이라 그런건가 싶다가도 돌이켜보면 절대적으로 2008년은 나에게 잿빛이다.
올 2월에 지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난 2008년이 싫어. 시작부터 맘에 안들어.' 정말, 그랬다. 올 2월 설 연휴를 앞뒤로 회사일이 너무도 힘겨웠다. 심각하게 내 현재위치를 고민할 정도로 힘겨운 날들. '뭐하고 있니'라고 숱하게 반문할 정도로 힘에 부쳤다. 개인적인 일들 때문만이 아니라 작년 대선. 올해 총선. 신문 열어보기가 겁날 정도로 날선 이슈들은 '한국에서 사는 것'에 대해 심한 회의를 주었다. 2008년의 정치지형은 한국 사회를 더 암울하게 만들어놓을 것이 분명해보인다. 당장 우리삶에 직접적인 파급을 주기 보다는 은근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거다. 2008년은 분명히 그 시작으로 기억되겠지.
그래도 살자.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사는 거니까. 김현이 행복한 책읽기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자살은 비겁한 거라고. 삶과의 지독한 싸움을 포기한 거니까. 사는건 지독한거다.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이고. 그런걸 나이 들면서 점점 무겁게 느낀다. 다들 내년에도 잘 살아내시길. 이 글을 읽는 저 건너의 사람들이 있어 올해 그래도 따뜻했다는 말은 2008년 끝자락에 남기고 싶다. 고마웠습니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