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추가) 음악을 Cat Stevens의 Sad Lisa에서 오지은의 '화'로 변경. 그냥 슬픈것 보다는 분노가 적절하다는 생각에...그리고, 어제 만행을 저지른 업체에서 전화를 받았다. 알바생이 오버한거라는 얘기. 그냥 넘어가지 않을테다. (불끈!)
저녁 6시 무렵에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번호가 아닌 모르는 유선번호길래 대출이나 카드발급, 말도안되는 이벤트 전화겠거니 짐작하고 받자마자 끊을 준비를 했다. 한숨 한번 쉬면서 귀찮다는 듯 '여보세요'하고 퉁명스런 소리를 내뱉었는데, 상대방이 대뜸 '야! 오랜만이다. 나 홍아무개야. 기억하지?'라는 뜬금없는 인사를 했다. 순간 번쩍하면서 '아. 누구였더라. 기억못하면 서운해할텐데' 생각하면서 희미해지다 못해 아예 흔적조차 없는 그 녀석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고등학교 같은반 친구들 이름을 열거하면서 나한테 연락하며 지내냐고 묻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생소했지만,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고 같은 대학을 다닌 동창이었다. 그 녀석은 재수를 해서 한학번 차이가 나던 터라 가끔 학교에서 보면 아는 척을 하긴 했다. 당연히 그 이후로는 연락한번 없었고, 그럴 필요도 전혀 느낄 수 없는 '안다는 느낌'만 있는 녀석이었다. 근데 뜬금없이 연락이라니. 그것도 핸드폰 번호로. 당연히 무슨 부탁전화겠거니 순간 씁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연락해준게 고맙고, 내가 이렇게 생각할거 뻔히 알면서 어렵게 전화해준게 짠해져서 나름대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무슨일이야? 용건먼저 말해봐"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기에 안부도 묻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고,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조심스레 "요즘 무슨일 하니? 무슨일 있어?" 하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제서야 말하기 시작했다. 하는 일이 경제일간지에서 일하는데, 요즘에 부수확장 때문에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는 안들어도 뻔한 일. 그럼 그렇지. 그나마도 남아있던 반가움도 사그라 들었다.
한달에 만2천원이고 1년만 보면 자동으로 없어지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 30부는 채워야 하는데 이제 15부밖에 못했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해댔다. 간만에 전화해서 이런말 꺼내는게 쉽지는 않을 터라 술사면 구독할게라면서 농담을 하고 주소를 불러줬다. 그 회사면 나 일하는 데서 멀지 않으니까 연락다시 꼭 하라고 얘기도 했다. '짜식은 간만에 연락해서는...' 핀잔도 좀 주고 그랬다. 그래도 안그래도 힘들텐데, 친구랍시고 이런 얘기꺼내는 너는 오죽 괴롭겠냐 싶어서...그리고 휘청거릴 정도로 큰돈도 아니기에 그냥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녀석, 고생하는구나. 저런 전화하지 않아도 되는 내 상황이 새삼 고마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나니 뭔가 느낌이 좋질 않았다. 친구들 이름을 열거하는 것도 그렇고, 사원부수확장의 압박이 있더라도, 나를 떠올릴 정도로 내가 그 녀석의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그 녀석이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얼버무리던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조심스러웠지만, 녀석이 받으면 그냥 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남아있는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받지 않았다. 받으면 "이렇게 다시 확인전화해서 너무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끝내 받지 않았다.
그 신문사 주간지 담당파트에 전화를 걸어서 따지듯이 사정얘기를 했더니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줬다. 남겨진 핸드폰 번호와 국번이 같은 번호였다. 돌려준 전화로 다시 물었더니 너무 화내지는 마시라며 이름과 주소를 말하면 접수카드를 제외해준다고 하더라.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이 번호가 그쪽에서 관리하는 번호냐고 묻자 확인 해줄수 없으니 내일 아무개 과장에게 전화하라면서 번호를 알려줬다.
결국 그런거였다. 젠장. 너무 바보같았다. 주간지야 배달되도 안보고 돈 안내면 그만이지만 상황이 너무 기분 나빴다. 악질적인 스팸전화 시나리오에 보기좋게 속아 넘어가버렸다. 사기였다. 연락 뜸한 친구에 대한 미안함, 그래 인간이 가지는 연민, 옅은 정을 이용해서 이런 짓을 하는 인간들에게 화가났다. 그냥 너무 씁쓸했다. 아, 이렇게 당하는 거구나. 튀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내일 그쪽 담당자에게 전화해볼 생각이지만 이 상황 자체가 상한 음식을 삼킨 것처럼 불쾌했다.
세상이 갑자기 참 무서워졌다. 속이기 위해, 주간지 하나 더 팔려고 치졸한 연극을 하는 그 사람들이 무서웠다. 더 참기 힘들만큼 화가 났던 건, 전화를 걸었던 그 인간이 '홍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어 내 이름을 대고 똑같은 사기를 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친구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나쁜 놈들.
그냥 그랬다는거다. 뭐, 별별 일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게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남에게 이런 느낌을 주면서 살아선 안되는거 아닐까 싶다. 알량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자존심'이라는게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자신없다. 더 파렴치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떳떳하게 잘 사는게 한국사회이니 뭐. 그냥, 앞으로 눈에 쌍심지켜고 의심부터하는 생활태도를 기르는 수 밖에 없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