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투썸플레이스, 2007, 가을
언제나처럼 '아메리카노, 시럽없이요'
건조하게 대답하면서 커피를 주문한다.
혀끝에 느껴지는 커피향이 어딘지 달콤하다.
이게 아닌데. 더 진했으면 좋겠는데.
씁쓸한 첫맛에 얼굴 찡그릴 정도로.
곱게 갈아놓은 원두를 한스푼 넣고 싶어진다.
텅스텐 불빛이 좋다.
오늘 해질녘 잠깐 사무실로 찾아들던 햇살 생각이 난다.
생각보다 커피가 괜찮다.
조금 뜨거운 커피 한모금.
입안을 감도는 커피향이 그런대로 입술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김정환의 늦가을노래 한구절을 읽는다.
살아남은 것들이여 부디
절규하라 계절이 다하는 어느 한숨의 끝까지
우리들 사랑노래는 속삭여지지 않는다
시인이 얘기하듯. 사랑노래는 속삭임이 아니라 절규이다.
늦가을, 10월의 마지막 날. 우린 살아남았기 때문에.
뜨거운 커피가 내 안에서 식어간다.
삼킨다. 삼켜버린다. 다 식지않은 커피 한모금. 그리고 해야할 말들까지.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커피잔을 두손으로 움켜쥐고 기다릴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장세용. 피아노연주곡. 이상기억.
기억하고싶어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기억하려해도 기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이건 어제듣던 노래이야기.
그저 이건 어제마신 커피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