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때였었어 86년 여름. 그해는 온나라가 스포츠의 열기속에서 난리법석을 피던 해였지. 한참 월드컵이 계속되고 있었고, 88올림픽의 전초전이라던 아시안 게임도 86년이었지. 하지만 그런 스포츠 이벤트의 기억이 그 해 86년을 내 삶 속에 깊게 박히게 한 건 아니야. 물론 전혀 무관한 건 아니지만, 상처의 기억은 다른데 있었지.
그때 다른 어른들처럼 매일밤을 밤세워가며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곤 했어. 멕시코에서 하는 축구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려면 날을 새야했지. 그날 맞아. 그날밤에는 한국 對 아르헨티나전 축구경기가 있었어. 모두들 기대 안하고 봤겠지만 '우리 선수들'을 되내이며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던 아버지. 그날 밤 아버지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어. 난 잠을 자고 있었지. 그 당시 나에게 축구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게다가 잠을 줄여가며 볼 이유도 크지 않았거든. 한데 갑자기 아버지의 박수소리가 들렸어. 몽롱한 상태에서 갑자기 펑하는 소리처럼 엄청난 크기로 들렸지. 새벽 3시정도였던 것 같아. 박창선이라는 한국선수가 감격적인 골을 터트렸던 순간. 난 텔레비전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속에서 다시 잠을 청하지 못했지. 그날 아침. 몽롱한 아침을 맞이하던 그 날이 내 상처의 날이야.
ⓒ 월간축구
우리집에 그 당시 씻는 곳은 따로 없었어. 부엌과 씻는 곳이 절묘하게 조합된 시멘트 칙칙한 그 공간. 한 순간도 마를 겨를 없이 물을 머금고 있던 그 시멘트 바닥. 이 좁은 공간에서 항상 아침이면 어머니는 도시락을 준비하셨지. 그래도 따스했어. 아침마다 피어오르던 연기. 그 고소한 냄새. 난 그 냄새를 맡으며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내키지않는 양치질을 하곤 했지. 내 주변으로 튀는 물방울을 조심하면서, 어머니가 항상 '고양이 세수'라고 핀잔을 주던 세수를 했어. 단칸방에 반짝이는 타일깔린 화장실은 이상하지 않겠니? 그래 그것 때문이었어 잠이 부족한 몽롱한 아침. 남들처럼 욕실과 부엌이 따로 없었던 내 어린시절. 그 서글픔이 문제였어.
어머니는 아침마다 찌그러진 큰 냄비에 내의를 삶았었어. 그 당시 나는 날이면 날마다 뛰어놀기에 바빴고, 공놀이다. 다방구다 각종 놀이에 여념이 없었던 때였어. 그 옷에서 묻어나는 찌든때가 어련했겠니? 그 지겨운 얼룩은 끓는 물에서만 풀렸거든. 그날도 어머니는 다 삶아진 그 냄비를 한쪽 구석에 놓아두셨었나봐. 밥이 끓던 냄비만큼이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어. 그 빨래에서는. 너무 졸렸어.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머릿속에는 뿌옇게 간밤의 골 장면만이 아른거렸지. 잠만이 간절했던 난 아무것도 몰랐어 내 뒤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도 보지 못했어. 끓는 빨래가 놓이던 그 자리. 절대 닿을 수 없는 그 자리.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가까울 줄은 정말 몰랐어.
양치질을 시작하려고 했던걸 기억해. 분명히 럭키치약을 듬뿍 발라 입안에 쳐넣던 걸 기억해. 너무나 선명히 난 분명히 양치질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스스르 잠이 들었나봐. 나도 모르게 졸아버린 거지. 잠시 후에 눈을 떴어.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눈을 떴지. 이미 몸은 기울고 있었지만, 그리고 어느 순간 쓰러진다 싶었는데 그 이후는 잘 기억 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오른팔은 뜨거운 내의로 덮여있었어. 팔팔끓던 아직은 식지 않은 그 내의로 말이야. 뜨거웠냐구? 그런 육체적인 느낌은 없었어. 그냥 멍한 느낌. 아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고. 막연한 두려움만 느껴졌었지. 그 이후는 정확치 않아.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더구나 쓰러진 내 주변에서 어머니는 나보다 더 큰 눈물을 흘리고 계셨거든.
좁던 우리집의 아침이 사방으로 튕기기 시작했어. 모든 일상의 과정들은 그날 아침 정지해버렸고. 식구들은 반갑지않은 우연을 감내하지 못해 당황했지. 내 팔에는 계속 차가운 것들이 지나갔고, 우리집 전화는 불이났어. 한참이 지났을까? 난 정말 드물게도 택시를 탔어. 우습지? 내 팔의 아픔보다 택시란 걸 타게 됐다는 놀라움이 더 컸는지 몰라. 어린 마음에. 그 날 아침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석이란걸 했어. 어머니는 9시도 안된 시각 닫힌 병원문을 강제로 열어 날 밀어 넣었지. 아마 그 막무가네의 행동들은 아무도 감당하지 못했을거야. 자식이라는 존재를 위해 행해지는 어머니의 행동들은. 한 나절을 낯선 포르말린 냄새 속에서 멍하니 앉아있었지. 응급조치를 했는데도 내 팔에는 뭔가가 보글보글 끓는 것 같았고. 따가워 죽을 것 같았는데도 난 내 팔을 볼 용기가 없었어. 왜냐구? 나에게는 오른팔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거든.
아련하게 생각 나. 어머니의 날카로운 비명 뒤에 들리던 속 깊은 울음소리. 우당탕 소리에 뒤이어 터져나오던 서러운 울음. 내 팔보다 더 뜨겁게 타는 얼굴로 스스로를 탓하던 그 무섭던 학대. 모든 원인이 자신이라며 울부짓는 어머니의 모습. 어린 자식이 겪을 고통보다 백배는 아픈 울음을 토해내셨어. 물론 그 울음은 온전히 자신에게로 향했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텐데도 어머니는...
그 날 아침은 계란말이가 반찬이었었나봐. 항상 아침에 씻기 전에 난 아침 반찬을 확인하곤 했는데, 그 날은 정신이 없어서인지 보지 못했거든. 열지않은 병원문을 두드려 울며 날 맡기고 다시 돌아와 아침을 준비하셨나봐. 내키진 않았지만 챙겨야할 자식이 나만 있던 건 아니었거든. 몇년 뒤, 어머니 앞에서 버릇없이 굴 때 누나가 조용히 말했어. '넌 엄마한테 그러면 안된다' 무슨 말이냐구 왜 그러냐구 반문하니까 말해줬지. 그 날 병원에 나를 두고 돌아와 아침상을 준비하시며 그렇게 서럽게 우셨다고... 스스로를 탓했는지 세상을 탓했는지 그리도 구슬프게 우셨다고. 그런 어머니 앞에서 그러면 못쓴다고 누나가 말했지. 결국에는 내 탓이었는데. 정말 어머니는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86년의 여름은 지독히도 더웠어. 조금만 땀이 나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붕대와 엉키어서 계속 도지기만 했지. 하필 여름이었을까? 낫기 힘든 여름이었을까? 언젠가 친구들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어. 갑자기 반창고가 떨어지면서 붕대가 스스르 풀리기 시작했지. 아직은 벌겋던 내 팔. 친구들은 그걸 보고 아무말도 안 했지만 난 알아. 그 표정들을 보면 알아. 큰 상처였어. 그 일이 있고나서 매일같이 혼자 남아 하교길에 남은 한손으로 겨우겨우 붕대를 붙잡고 오곤했어. 붕대가 벗겨지면 드러나는 내 피부의 낯설음이 싫어서 난 아이들이 다 가고 나면 혼자 집에 오곤했어. 아무도 모를거야 그때 내가 걷던 길이 왜 그리도 길었는지.
내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어머니는 곱게 붕대를 풀어주셨어. 어머니 앞에서는 떳떳하게 내 팔을 보일 수 있었지. 그러면 어머니는 똑같은 팔을 보면서도 많이 나았구나 하면서 웃어주곤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 어머니의 여름도 길었다는 걸. 길고도 아픈 여름이었다는 걸. 그때는 작았던 손으로 힘겹게 붕대를 잡고 돌아오는 날 어머니는 알고 있었어. 그때 내가 느끼던 감정들을 어머니는 더 잘 알고 있었어. 엉거주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모습은 아프게 어머니의 가슴을 찔렀을 거야. 내가 느낀 내 팔의 아픔보다 더 깊게 찔렀을거야. 이제는 조용히 생각할 수 있어. 이제는 다 아물어 흔적을 찾으려면 한참을 바라봐야하는 내 팔. 만만치 않는 세월에 조금씩 아물어간 상처를 보면 힘들었던 그해의 여름이 생각 나.
말해줄까 내 상처의 기억을, 그 아물지 않던 팔도 아니야. 덥던 여름에 생채기 난 상처 사이로 지겹게 흐르던 땀방울도 아니야. 그런 것들, 그 아픔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아. 떠올리려면 한참을 생각해야 해. 아직도 가끔씩 떠올라 깊은 한숨짓게 만드는 상처가 있어. 때때로 어긋 날 때마다 조용히 떠올라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억은 따로 있어. 어머니의 눈물, 그 여름날 어머니가 뜨겁게 쏟던 눈물. 쓰러진 내 옆에서 어머니가 소리내어 되내던 '다 내탓'이라는 목소리. 너무나 아픈 목소리. 그날 아침의 따스한 계란말이. 풍족하진 않지만 소박한 밥상에 올리려던 그 계란말이. 나한테는 그게 상처야 사라지지 않는 깊은 상처야.
1999.2.6. 노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