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싫어하는, 몸이 굳어버린 직장인. 며칠전 1시간씩 뒤로 밀린 출근시간은 크진 않지만 소소한 변화를 주더라. 통근버스 대신 시내버스를 타면서 편안한 좌석은 꿈도 못꿀 처지가 되었고 그로 인한 체력적 소모는 꽤 큰 편이다. 진정한 만원버스에 제대로 걸리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밀리는 버스에서 느껴지는 옆사람의 뜨거운 채취. 요즘처럼 가을같지 않은 후덥한 날에는 정말 괴롭다. 밀어내고 싶지만 밀어낼 수 없는 존재의 한계(?)를 느낀다고 할까. 가끔 승객의 시사감각을 위해 쩌렁쩌렁하게 라디오를 틀어주시는 기사님들 때문에 내 MP3의 볼륨은 두스텝 높아졌다.

반대로 퇴근시간은 한시간 뒤로 밀렸다. 그 탓에 심리적 부담을 덜수 있는 임계시간, 즉 '과연 몇시에 퇴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도 주었다. (근데 이 이슈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보통은 허기가 느껴졌던 점심시간, 가볍게 빵 또는 김밥으로 때우는 아침이 한시간 뒤로 밀려 늘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한다. 일하기 싫거나 피곤하기라도 한 날이면 한시간 길어져버린 오후시간의 느린 시계를 원망하게도 됐다. 오후에 쓸수 있는 반차는 2시부터라 오후반차의 효용가치는 급하락했고, 대신 술먹고 뻗지 않는 한 써서는 안될 오전반차가 쓸만해졌다.

출근시간이 조정된다고 했을땐 똑같이 일어나 남는 한시간은 실용서적을 읽거나, 아침운동을 하거나, 신문을 훑어보거나, 손 놓은지 꽤 되어 이젠 5살때 기억처럼 희미해져버린 중국어 공부를 다시 해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달콤한 한 시간의 잠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게으름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한시간 잠이 주는 생활의 윤택함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아침시간의 한시간의 여유로 인해 깨어있는 밤시간이 늘어났다. 편안히 앉아서 TV도 보고, 글도 읽고, 틈틈히 쓰고, 시디를 잔뜩 늘어놓고 음악도 듣는다. 자기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손에 쥐고서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난 분명히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던거다. 방안 가득 들이차는 아침 햇살에 몸의 저항없이 눈이 떠지는 늘어짐이 그립다. 근대사회가 아니었던 시절에는 당연했을 것이 이젠 사치가 되어버렸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같은 여유있는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눈꺼풀을 올리고, 따뜻한 얼그레이 차한잔과 바삭한 쿠키를 입에 베어물고 천천히 일할 준비를 하는 '로망'이 우리들 직장인에게는 사치이자,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저 바쁘고, 피곤하고, 또 바쁘고, 또 피곤하다. 뭘 위해서 그렇게 바쁜건지 묻거나 고민하지 않고, '아침의 여유'는 손에 잡히지 않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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