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평전을 읽고있다. 사둔건 꽤 오래되었지만, 읽은지는 며칠되지 않는다. 사실 아껴읽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정확할 거다. 미술, 초현실주의, 아프리카여행등 브레송 인생의 가치관 형성기는 조금 더디 지나갔다. (수려한 그의 인맥은 부럽기만 했다.) 그러나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시절의 이야기는 읽는데 설레기까지 한다. 그 부분을 읽다가 눈에 띄는 이야기가 있어 스크랩해봤다.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사진의 거장. 브레송의 사진작가로서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진은 과연 어떤 것일까. 무엇이 그를 사진작가로 인도했을까. 평전에는 사진이 삽입되어있지 않아 호기심을 누를 길이 없어 찾아본 사진. 마틴 문카치가 찍은 탕가니카 호수로 뛰어드는 아이들. 흑백으로 표현된 강렬한 에너지가 가슴 가득 들어온다. 뜨거운 아프리카의 대지와 호수가 느껴지는 사진. 꿈틀대는 삶의 역동이 녹아있다. 이 한장이 브레송에게는 잊지못할 '결정적 순간'이었던 것이다.

피에르 아슐린이 그려놓은 브레송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가 그토록 찍고자 했던 사진이 어떤 것이었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진이란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일이란 사실" 그에게 사진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한 장의 사진을 도저히 잊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생각은 그 사진을 처음 봤을대도 그렇지만 나중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애는 그 이전과 그 이후로 갈릴 정도이다. 그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기막힌 조형미로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것은 오로지 이 사진 한장뿐이다.

이 사진은 1929년과 1930년 사이에 찍은 것으로, 잡지 '포토그라피 Photographies'에 수록되었다. 사진작가는 마틴 문카치였다. 처음엔 스포츠 사진을 찍다가 장거리 르포사진작가가 된 인물이다. 그는 자기가 가진 철학을 몇 마디 말로 요약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현상을 1천분의 1초 동안 포착한다. 바로 이것이 르포 사진의 원칙이다. 1천분의 1초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이미 본 것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르포의 실천적 측면이다."


Martin Munkacsi, Boys running into the surf at Lake Tanganyika, ca. 1930, © Joan Munkacsi, Courtesy of Ullstein Bild



문제의 사진은 흑인 청소년 세 명이 탕가니카 호수 속으로 뛰어드는 광경을 뒤에서 포착한 것이다. 이 사진은 카르티에 브레송이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만큼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가 밤마다 꿈에서 만나는 아프리카가 담겨 있고, 초현실주의자들에 따르면 은밀하게 무의식에 잔뿌리를 뻗고 있다는 깊디깊은 바닷물이 재현돼 있고, 실루엣과 모래 언덕과 파도 거품이 자아내는 발군의 구도를 갖췄고, 움직임과 젊음, 에너지, 속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삶, 바로 삶 그 자체가 약동하는 사진이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 사진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평생토록 한순간도 잊지 않는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란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일이란 사실을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유일하게 영향을 주었던 사진이다. 거기엔 강렬함과 솔직함, 환희, 경이가 담겨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눈이 부실 정도이다. 형식의 완벽함, 삶의 의미, 남다른 전율감.....나는 어떻게 이런 사진을 기계로 찍을 수 있었을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누가 내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뭘 하고 있어, 이 게으름뱅이!'"


Blind Woman, New York, photograph by Paul Strand, 1916. This photograph appeared in Camera Work in 1917. Copyright 1971, Aperture Foundation, Inc., Paul Strand Archive



한 사진작가가 본의 아니게 다른 사진작가의 길을 인도해준 셈이었다. 사진 한 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했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이 사진을 대하고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워커 에반스는 폴 스트랜드의 '여자 맹인 Blind Woman'을 보고서 했다. 나중에 가서 수많은 사진의 거장들이 카르티에 브레송의 이러저러한 사진들을 놓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에르 아슐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평전 p110~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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