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구입해두었던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을 꺼내들었다. 퇴근길에 몇편 읽었는데, 읽다가 더 읽지 못하고 다시 덮었다. 가슴 지릿하게 울리는 시 한편이 맘을 잡아끌더라. 그 울림에 내내 생각하면서 집에 왔다. 곱씹어 읽고, 다시 읽고, 버스 창밖을 보고, 덮어놓은 시집 표지를 바라보면서 집에 왔다.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슬며시 내리는 낙엽하나. 말없이 묻지 않고 그냥 있는 낙엽하나. 얼마나 고마울까. 외로워도 외롭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순간. 그런거다. 힘이 된다는 건. 뭐 대단한게 아니라 그저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거. 실은 그런 게 우리에겐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