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ep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던건 고등학교 2학년때 인가 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치던 친구놈의 악보를 통해서였다. 제목이 Creep이길래 그 당시에 인기있던 T.L.C의 크립이냐구 바보같은 질문을 했던 나였다. 어찌나 깔깔대면서 무시의 썩소를 날리던지... 차근히 설명해주고 들려주었으면 좋으련만, 열어놓은 악보를 '탁' 닫아버렸다.

바로 찾아들어보고 싶었지만 그 녀석의 썩소에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다. (나도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응?) 그러다가 배철수 아저씨 방송에서 이미 명곡 반열에 올랐다는 Creep을 듣게 됐다. 발표된지 얼마되지 않아 명곡이라는 이름을 얻은 노래. 어떤 노래일까. 이미 그 당시 모던락 차트를 석권하고 있던 노래. 처음 들으면서 '딩~'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을 느꼈다. 그 노래가 너무나 좋았다.

그 후로 Creep은 듣고 싶어서 들었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라디오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고 (라디오헤드 스스로가 말했듯이) 크립의 존재감으로 인해 다른 곡들이 묻혀버리는 불행한 사태까지 야기될 정도로 노래는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크립이 싫을 때도 있었다. '시클로'라는 영화에 삽입되면서 영화음악의 외피를 입은 뒤였을거다. 쉴새없이 들리면서 그 노래의 첫 느낌이 바래졌다고 할까. 이미 난 이들의 2집 Bends에 매료되어 있었고, 심지어 PabloHoney를 들을때는 크립을 건너뛸 때도 있었다. 그 좋은 노래를 말이다.


그러다가 누나가 선물이랍시고 받아온 앨범이 이들의 'My Iron Lung' 앨범이었다. 그 안에는 보물처럼 숨겨진 크립이 숨쉬고 있었다. 어쿠스틱 버전의 Creep. 정말 보물이었다. 내가 처음 듣고 좋아했던 그 크립의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고 할까. 어쿠스틱 기타 하나에 목소리를 실어 내지르던 신선함. 그래서인지 더 잘 배어나왔던 이들의 패배감, 허무의 정서. 아름다운 허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터질듯 Run, Run, Run을 외치는 톰요크. 그리고 조금은 불안정하게 들리는 목소리...이게 크립이었다.


Tracklist:
1. "My Iron Lung" – 4:36
2. "The Trickster" – 4:40
3. "Lewis (Mistreated)" – 3:19
4. "Punchdrunk Lovesick Singalong" – 4:40
5. "Permanent Daylight" – 2:48
6. "Lozenge of Love" – 2:16
7. "You Never Wash Up After Yourself" – 1:44
8. "Creep (Acoustic)" – 4:19


이 노래를 다시 듣는다. 오늘 2집 Bends에 수록되어있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Fake plastic tree를 듣다가 이 노래 이야기를 했다. 많이 듣던 그 '크립'말고 담백하고 기타 한 대로 부른 매력적인 '크립'이 또 있노라고...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듣던 '거짓 플라스틱나무'. 주변 소리가 새어 들어올까 한쪽 귀를 막고 들었다. 들으면서 나른하다는 말을 계속 했다. 정말 그랬다. 이들의 목소리와 연주는 어딘가 사람의 진을 빠지게 한다. 주저 앉을 만큼의 허무가 아니라 실컷 허무하고 외로운 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허무다. 그래서 이들의 토해냄은 나에게 진실하게 들린다.

버스에 올라 몸을 의자에 기대고 눈 감고 계속 노래를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컴퓨터에 시디를 넣고 이 노래를 계속 들었다. 그 울림에 취해서 앉아있다가 'My iron lung'을 꺼내 어쿠스틱 크립을 들으니까 맘이 떨린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오늘 하루 이 노래와 함께 마무리 하고 싶다. 기타의 탁한 울림이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다.

잊어버릴까 조마조마하며 기억해야할 것이 있는 날은 행복하다. 9월로 향해가는 마지막 주말은 그래서 행복한 하루다. 여름은 너무나 많은 기억들을 담아놓았다. 오늘 듣는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So Fucking Special' 이다.

추신) 요즘 음악관련 포스트가 많은것 같다. 티스토리로 옮기고나서 확~ 넓어진 공간때문인지, 좋은 음악들로 이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까닭. 아참, 아래 애니메이션 못보셨다면 꼭 보시길.





Creep (acoustic) - Radiohead

When you were here before,
couldn't look you in the eye.
You're just like an angel,
your skin makes me cry.
You float like a feather,
in a beautiful world
I wish I was special,
you're so fucking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I don't care if it hurts,
I want to have control.
I want a perfect body,
I want a perfect soul.
I want you to notice,
when I'm not around.
You're so fucking special,
I wish I was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She's running out the door,
she's running,
she run, run, run, run, run.

Whatever makes you happy,
whatever you want.
You're so fucking special,
I wish I was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I don't belong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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