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홈페이지(네이버가 마이홈 서비스를 닫아버려 로컬에 고이 모셔져 있다)는 지금처럼 서버 베이스의 호스팅이 아니라 단순히 htm파일을 브라우징해주는 형태로 운영했기 때문에 게시판은 무료 계정을 제공하던 게시판을 사용했었다. 군웅할거였던 그 시절 그래도 유명했던 게시판이 별탈 없이 안정적으로 서비스해주던 크레이지웹보드 (Crazywww2000 이라는 제품명)였다.
그 게시판을 1999년도 여름 홈페이지를 열때부터 "게시판 겸 방명록"으로 사용했었다. 홈페이지를 2002년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문을 닫고 나서도 그 게시판은 그대로 놔두었다. 특별했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던 그 기간 동안의 아름다운 기억이 깊이 새겨져 있어, 섣불리 손대기 힘들었다. 비단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내 홈페이지를 들려주었던 사람들의 글들, 흔적들, 그 글에 열심히 답글을 달던 내 시간들, 추억들이 존재하는 곳이었기 때문에...가끔씩, 그 시절의 사람들, 글들이 생각나 그 게시판을 혼자 몰래 클릭해보고 읽어보기도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노브레이크라는 회사가 소유했던 크레이지웹보드가 킴스랩(아마 맞을거다)으로 넘어가면서 무료 게시판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정기간동안 제공하던 데이터백업서비스를 통해서 db파일을 부랴부랴 다운받아두긴했는데, 그 상실감이 꽤 컸다. 웹 공간 어디쯤에 존재하던 내 게시판이 3MB가 채 되지 않은 파일 한조각으로 두 손에 쥐어질때의 느낌이란. 3년 남짓 울며, 웃으며 뒤적이던 그 공간의 움츠러든 무게감이 무척이나 서러웠던것 같다. 게다가 이 파일 하나를 다시 웹으로 컨버전해서 올려둘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다는 까닭도 있었을게다. (사실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 게시판에 대한 이런 느낌은 별스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내 공간을 장식해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이라면 이해할거라 믿는다. 공간이란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기억하는 것이기에.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진 그 글들을 작성시간별로 리스팅 해서 보게 되었을때의 느낌이란 어린시절 살던 옛집을 더듬는 것 같은 아릿함과 비슷했다. 찬찬히 처음부터 더듬어 보면서, 글을 하나하나씩 읽어가면서, 많은 기억들이 다시 살아왔다. '아, 그 시절, 그랬었지' '이런 생각들을 나누었구나'. '참, 이런 글을 왜 적어두었을까' 고이고이 보관해두었던 메일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과방에 놓여져있던 두툼한 잡기장을 손에 쥔 느낌.
기억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다. 우연히 먼지를 걷어내고 들춰보다가 그 순간 내 안으로 미친듯이 들이치는 빗물같은 것. 다시 띄운 그 게시판의 1000개 남짓한 글 앞에서 난 고스란히 기억의 비를 맞고 있다. 소중한 조각들. 그때 그 공간에 글을 남겨주었던 사람들에게 메일 한통씩 보내고 싶어졌다. 고마웠노라고, 행복했었노라고. 혹시나 우연히 그 분들이 내 블로그에 들려 그때 했던 이야기들로 잠시 잠깐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짝 그 게시판을 여기에 놓아둔다. 부끄럽기도 하고, 지금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글들도 있지만 괜찮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흔적이 이렇게 기록되어 남는다는 것. 디지털의 미덕이랄까. 시간이 나면 그때 게시판에 써두었던 글들을 다듬어 이 블로그에 옮겨두고 싶다.
http://silentsea.pe.kr/zeroboard/zboard.php?id=zero4
덧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별도 포스팅으로 크레이지웹보드 -> 제로보드4로 컨버전 하는 방법을 나름 자세하게 적어보았다. (http://www.silentsea.pe.kr/175)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