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한지도 5년이 되어가는데 올해처럼 한국사에 여러페이지를 장식할 사건들을 쉼없이 마주하는 시절은 처음인듯 하다. 대선,총선,남대문,촛불... 이렇게까지 번져버릴줄 몰랐던 5월의 청계광장. 그곳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다소 발랄한 발걸음으로 참여했었다. 6월에는 파김치가 되어 돌아가는 퇴근길. 도저히 외면할 길 없어, 몇번 시청에 들러 촛불을 들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나보다 더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내와 같이 가기도 하고, 6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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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청계광장에서



작년말 그리도 '당선될까봐 잠이 안오던' 인물이 우려의 목소리를 조롱하듯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부터 나에게 2008년은 그리 기분좋은 한해는 아니었다. 이건 정치적인 입장에 입각한 선택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인물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도 아니다. 대안부재가 결국은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진 투표 결과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만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도 알수가 없는 두루뭉실한 '경제'라는 프로파겐다, 혹은 지역적 기반, 반노무현이라는 정서에 기대 한표를 행사하는 국민 대다수의 선택행위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총선.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 계급적인 이해관계, 경제적 이익, 사회적 가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건강한 정당이 전무한 상태에서 총선의 결과가 민의의 대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정당이 성숙해지고 각 구성원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참담하게도 한나라당 + 친박연대 + 자유선진당 이렇게 3각 극우 트라이앵글에 몰리는 의석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대의제 정당정치가 가능하긴 하겠는가라는 체념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과한 시점이라는 것도 더욱 절망스러웠다.

총선이 끝나고, 결국 내각은 아래를 향하긴 커녕 높은 자들을 향해 들어섰다. 국민의 생존권 건강권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은 대선과 총선으로 이어지는 '레짐의 변화'의 최악을 보여주는 사태가 되고 말았다. 시민은 정부를 상태로 고치고 바꾸라고 외치는데, 이를 받아줄 수 있는 그리고 그 목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부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리적 힘이 충돌하는게 아닌가.

최근에 최장집 교수는 (평소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론대로) 현재의 촛불시위를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작금의 촛불집회는 대의제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제는 갈등해결을 위해 대의민주주의를 어떻게 강화할지를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촛불집회를 정부 안정성을 위협한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보수적 관점’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운동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측면만을 강조하는 ‘이상주의적 관점’ 역시 제도정치에 대해 비판적이기에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일보 기사 참조)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생각은 다분히 '이상적이다'. 그 점에서 최교수의 촛불집회에 대한 진단은 틀렸다. 촛불을 거두고 이제는 국회에 맡겨야 할 때라거나, 등원론을 부추기는 목소리도 매한가지다. 왜냐하면 촛불시위는 대의제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된 '대의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를까, 그래서 다시 대의 민주주의를 형성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지형을 유지한 채 대의제 민주주의의 회복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도 않고 해결이 될 수도 없다.

촛불이 지속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그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정치지형이 민의가 정책으로 표출되지 않고 왜곡되고 무시되며, 언론 또한 그런 목소리를 정확히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는 현실. 그에 대한 분노가 촛불이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시위는 더 거세게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변혁을 이끌어 낼 수 있을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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