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심하고 덜 가다듬어진 이야기. 첫부분이 다시 끝에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펄프픽션 처럼)인 탓에 영화에 몰입하기에도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마이클 클레이튼이 뒷처리 전문인 탓인지 모르나 겉만 말쑥할 뿐 잘빠진 벤츠 세단은 '빌린 차'이고, 그는 동생이 저질러놓은 돈을 갚기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말쑥한 정장을 빼입고, 냉철하게 사건을 분석하여, 숨이 꽉막히는 법정에서 황홀한 변론을 이어가도 모자랄 조지 클루니를 데리고 이 영화는 갈팡질팡한다. 아서는 "진실이 주는 스트레스"로 고민하다가 마주친 뉴욕 한복판에서 바게뜨빵을 한아름 들고 친구 마이클과 이야기 한다. 살인을 사주하는 유노스의 카렌은 극도의 긴장으로 겨드랑이에 찬 땀을 닦아내는가 하면, 사건이 터지면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조바심내고 어쩔줄 모른다. 영화의 캐릭터들, 현실같다. 다들 멋지게 꾸며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핵심은 유노스사의 비리를 둘러싼 긴박한 법정 투쟁이 아니다. 그와는 조금 멀찍이 비켜서 있다. 그렇다고 에린 브로코비치같은 거대독점기업의 횡포를 고발하고 배상을 이끌어내는 통쾌한 사회정의 실현과도 거리가 있다. 나에겐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 역설의 해답은 당연히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마이클 클레이튼이 가지고 있다.
2007년 최고의 엔딩씬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롱테이크로 이어진 마지막 엔딩씬을 보라. (간만에 캡처를 해봤다. 버퍼링의 압박이 있겠지만, 큰소스를 올렸다. 음성씽크가 조금 어긋난듯...) 우리들 그렇지 않은가? 끝까지 고민하고, 안절부절하고, 평범하고, 힘들어하고, 그렇지만 옳은일을 했다는 자신감은 남아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막막하고, 택시에 올라타서도 수많은 생각들로 복잡해하는 그런 삶, 그리고 그런 인간.
영화는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 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인상적인 엔딩씬은 영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삶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화면을 가득채우는 마이클 클레이튼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멍해졌다.

말쑥한 정장을 빼입고, 냉철하게 사건을 분석하여, 숨이 꽉막히는 법정에서 황홀한 변론을 이어가도 모자랄 조지 클루니를 데리고 이 영화는 갈팡질팡한다. 아서는 "진실이 주는 스트레스"로 고민하다가 마주친 뉴욕 한복판에서 바게뜨빵을 한아름 들고 친구 마이클과 이야기 한다. 살인을 사주하는 유노스의 카렌은 극도의 긴장으로 겨드랑이에 찬 땀을 닦아내는가 하면, 사건이 터지면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조바심내고 어쩔줄 모른다. 영화의 캐릭터들, 현실같다. 다들 멋지게 꾸며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핵심은 유노스사의 비리를 둘러싼 긴박한 법정 투쟁이 아니다. 그와는 조금 멀찍이 비켜서 있다. 그렇다고 에린 브로코비치같은 거대독점기업의 횡포를 고발하고 배상을 이끌어내는 통쾌한 사회정의 실현과도 거리가 있다. 나에겐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 역설의 해답은 당연히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마이클 클레이튼이 가지고 있다.
2007년 최고의 엔딩씬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롱테이크로 이어진 마지막 엔딩씬을 보라. (간만에 캡처를 해봤다. 버퍼링의 압박이 있겠지만, 큰소스를 올렸다. 음성씽크가 조금 어긋난듯...) 우리들 그렇지 않은가? 끝까지 고민하고, 안절부절하고, 평범하고, 힘들어하고, 그렇지만 옳은일을 했다는 자신감은 남아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막막하고, 택시에 올라타서도 수많은 생각들로 복잡해하는 그런 삶, 그리고 그런 인간.
영화는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 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인상적인 엔딩씬은 영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삶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화면을 가득채우는 마이클 클레이튼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