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시로 느끼고 싶어졌다. 가을이 내 곁에서 가고 있는데 내가 느끼는 가을이 멀리있는 것 같아, 주변에 있는 가을시들을 꺼내어 읽었다. 읽다가 그래 가을이 그랬지, 맞아 가을이야 생각하며, 내 안으로 가을을 넣어두고 싶어졌다. 시네이드 오코너의 음악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가을시를 꺼내어 본다.
시를 쓰고 싶어졌다. 참 오랜만의 기분이다. 시를 쓰고 싶다니 얼마만일까 먼지 묻어있는 오래된 노트를 꺼내 끄적여봤다. 그런데 시한줄에 내 마음 담아두는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건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가을을 내 노트 안에 그려넣으려다. 가을이 너무 크게 다가왔으니까 그걸로 족하다. 가을에 떠날수 없다면 가을시로 마음을 달래볼 일이다. 나의 가을에 대해 소리없이 내 곁을 흘러가는 가을에 대해 한번쯤 마음 열어 느껴볼 일이다.
아, 이 가을에도 어디로 떠나야 하는 사람아 기어이 오래도록 지우지 못할 뒷모습만 왜 그립게 하는가
가을시편 中
누군가에게 그리운 존재가 되어 뒷모습 보이며 어디론가 떠나도 좋을 일이다. 가을에는, 나라면 그 뒷모습에, 너에게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다려달라는, 마음의 조각하나 남겨두고 싶다. 이 가을 사랑하고 싶다. 내 뒷모습을 애처로이 바라봐줄 혹은 기다려줄 한 사람에게,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예쁜 시하나 건네어 주고 싶다. 이 글이 시가 될 수 있다면 너에게 주고 싶다. 그러기엔 가을은 너무 차분하다.
푸르른 하늘과 플라타너스 넓은 낙엽들. 마주치는 사람도 없이 긴 골목길에 아, 벌써 가을입니다.
가을의 길목 中
아, 그래 벌써 가을이다.
가을시편 - 고운기
가슴에 남아 미처 하지 못한 말 있거든 이제 다음 계절로 넘기자 지금은 한 해를 갈무리하기에 해는 저렇게 빨리 져 갈 길을 재촉하지 않니 찬란했던 봄날과 뜨거운 여름을 밟고 온 우리들 생채기가 더러는 아물었으니 되새겨 깊이 삶의 의미도 다져야지 행여 사람답지 못하게 굴었던 못난 일 있거든 그것도 웃으며 기억 속의 한 켠에 접어두자 해 저문 들판에 서성이기보다 우리들 삶의 연장을 챙겨들고 아직은 따뜻한 온기가 살아 숨쉬는 마을로 가 흙 묻은 옷을 벗어 털고 쉴 자리를 청하자 그래서 가을 해는 저리 짧아만 가고 노을은 저토록 붉게만 타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 이른 곳 어디라도 그 자리에 행장을 풀어 긴 밤도 그냥 잠으로만 보내지 말고 다시 올 봄을 기다리기로 하자 아, 이 가을에도 어디로 떠나야 하는 사람아 기어이 오래도록 지우지 못할 뒷모습만 왜 그립게 하는가
가을의 길목 - 김평엽
가을입니다. 하늘이 참 푸릅니다. 살갗에 부딪는 바람과 촉촉한 낙엽이 좋습니다. 지나치는 사람의 깊은 눈길이 좋습니다. 선술집에 들릅니다. '황진이'를 시켜 조용히 가을을 마십니다. 가을 향기가 마음에 찰랑거립니다. 단풍이 뺨을 물들입니다. 혼자여서 좋습니다. 외로워 좋습니다. 낙서처럼 길을 걸으며 노래를 읊조립니다. 그저 좋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푸르른 하늘과 플라타너스 넓은 낙엽들. 마주치는 사람도 없이 긴 골목길에 아, 벌써 가을입니다.
가을노래 - 이해인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깊어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이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있는 친구가 보고싶고
죄없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나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없이 강이 흐르게 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시간 아껴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때마다 한 웅큼의 시들을 쏟아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가고 가을은 깊어가네
가을엔 서해로 가자 - 전종채
가을엔 해넘이가 아름다운 서해로 가자
거기 저무는 뒷모습이 고운 해를 순한 눈으로 보자.
오늘 가장 찬란한 빛을 뿌린 태양도 자기 빛을 거두어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돌아가나니
가을엔 저무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서해의 해넘이를 보자.
오늘 절정의 높이로 돋았어도 고도를 낮추고 지는 풀꽃 한 송이와도 눈을 맞추나니
걸음을 멈춘 순례자의 눈으로 석양의 시를 읽노라면 세상 덧칠로 지워놓은 노을보다 고운 삶의 바탕색이 떠오른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지는 영원한 귀향 길에 가난한 모습으로 서보자. 가을엔 ..
가을에는 - 박제영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