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문장으로 글을 여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을 꼽으라면 '병원'이다. 물론 가고싶어 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겠지만(있을까?), 병원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과 공포때문에 병원에 가야 할때가 됐음에도 '꾹' 참고 마는 경우가 있다. 오래된 책이지만 인상적인 통찰력을 보여준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나서는 병원과 의사, 의학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지 않았나 싶다. 병원중에서도 더 가기 싫은 곳을 꼽는다면 '치과'.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렸을때의 기억때문일 게다. 그 나이때 삶이 팍팍했던 많은 어머니들처럼 우리 엄마도 산후조리라는 걸 제대로 해보지 못한 탓에 다른 곳 보다 이가 성하질 못하셨다. 게다가 완치를 위해 들여야 하는 치료비도 만만치 않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기가 힘겨웠었다. 그러다가 정말 견디기가 힘드셨는지 늦게나마 치과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치료받으러 가시는 엄마손을 붙잡고 치과에 갔던 기억이 깊이 아로새겨졌던게 아닐까. '징~'하고 갈리는 둔탁한 기계음.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감히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상황은 내가 경험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주지 않았을까. 그런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내 안에 아로새겨져 있어 치과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가 치과를 내 발로 친히 걸어 방문을 하고야 말았으니, 며칠전부터 아파오던 오른쪽 어금니쪽의 잇몸 때문이다. 양치 할때 마다 피가 섞여나오기 시작하는 증상. 치과에 대한 공포탓에 왠만하면 꾹 참고 내 몸의 '자연치유능력'을 믿어보고자 했으나, 그런 나의 다짐을 무력화시키는 사건이 오고야 말았으니 바로 음식물을 씹을때 느껴지는 아픔이었다. 먹는 즐거움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마는 치통은 결국 나를 병원으로 인도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더이상 사태를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나는 부서장께 말씀을 드리고 오후시간을 도려내어 회사근처 새로생긴 병원을 찾아갔다. 치과와 결별한지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치과는 서울 한복판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병원 답게 깔끔하고 친절했다. 정말 잔뜩 긴장하고 바짝 엎드려 있던 나는 겉으로 보기에도 첨단같아 보이는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최신식 안마의자처럼 내 몸을 편하게 뉘여주는 의자에 앉아 속닥거리는 치위생사와 치과의사의 눈만 껌벅껌벅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인정하듯이 내 이와 잇몸이 최상급의 건강상태를 유지하지는 못했기에 내 입을 쩍 열어 보여주기가 내내 민망했지만, 그래도 아주 엉망은 아니라는 뉘앙스(친절의 표현인 듯한)의 위로아닌 위로에 다소 안심을 했다. 치석이 있고, 아마도 C2라고 칭하는 듯한 충치가 몇개 있고, 사랑니가 양 어금니에 수평으로 누워 잇몸아래 잠복하고 있다는 충격발언. 그 탓에 재수없으면 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발언뒤에 (다행이도)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얘기를 이어주었다.

잇몸의 염증은 (여차하면 돋아날 듯 큰일을 도모하고 있는) 사랑니가 오른쪽 어금니로 살짝 자리를 옮겨 그 사이에 틈이 생겨 발생한 거란다. 없는 줄만 알았던 사랑니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돋아나지 않기만을 바래야 하는 간절한 심정탓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랑니가 영어로는 wisdom teeth라고 한다)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항상 대비를 해야하는 심정이랄까. 그냥 평생토록 그 자리에 그대로 (태어나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사랑니에게는 가혹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생을 마감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담번에 들려 그 이미지 파일을 달라고 할 생각이다)

징후에 대한 충분한 설명, 시술에 대한 명확한 고지, 처방약에 대한 정확한 지식,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에 대한 '환자가 이해가능할 수준'의 설명, 환자의 질문에 대한 절대적으로 친절한 답변은 의사가 해야 하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지키지 않는지 한숨난다) 회사 근처 새로생긴 병원이 그나마 '화나게 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들어 내 이를 기꺼이 맡기기로 했다. 40여분간 돌을 깎아내는 듯한 치석제거작업을 끝내니 내 손에는 땀이 났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치석이 있었던 자리에 생긴 공간탓에 어색했지만 기분은 시원스러웠다. 3일치 약을 받아왔고, 1주일뒤에 다시 들러 체크를 받기로 했다.

3일이 지난 지금은 잇몸의 통증도 조금 가라앉고, 내 혀도 이전의 기억을 잊고 새로운 느낌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나치지 않은 수준으로 믿을 만한 치과의사에게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뢰가 쌓인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그 어떤 치료약보다 더 좋은 치료가 아닌가) 하루 하루 시간이 갈수록 내 몸의 자연치유능력은 줄어들테고, 내 몸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날아가버릴지 모르니, 준비라는 걸 해야한다는 생각. 정말 오랜만에 생긴 잇몸질환, 그리고 엑스레이 한장으로 알게된 '사랑니'의 존재. 그것들이 내몸에 대해, 나의 건강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난 30년간 해왔던 칫솔질의 버릇을 뜯어고치기로 했다. 대견하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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