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에 난징의 강간을 다 읽었다. 최근의 난독증세로 볼때 꽤 빠른 편이다. 일단은 읽기 편했고, 묘사된 사실들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이려니 싶다. 책을 집게된 이유는 물론 눈에 띄었기 때문에. 제목을 보고, 저자를 확인하고나서 '읽고싶었던 책'이었다는걸 알았다. 일본여행을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꺼내든 책으로는 다소 '까칠한' 선택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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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장이 쓴 책이다. 역사서라고 해야하지만, 사건을 경험한 작가의 생생한 르포인 듯이 행간에 분노와 슬픔이 묻어난다. 이 책이 저자가 2006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유라는 추측도 있다. 이 책이 그의 삶과 이 책을 본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특히 일본의 극우주의자에게는 더했으리라) 그녀의 죽음만으로도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을 발간하고 일본 우익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다고 한다. 심한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말이다.

책에서 아이리스 장이 인용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중에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도 많고, 또 소설도 있도 있다. 게다가 (하나 둘 생을 마감하고 있지만) 대학살을 경험했던 사람의 증언이 많이 수록되어있다. 근데,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저자가 얘기하듯이 누구나 홀로코스트를 알고, 안네프랑크를 기억하고 있지만 난징은 그렇지가 않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쪽에서는 (주로 2차세계대전 피해국) 몇몇 책이 출간되기도 한것 같은데, 이 책이 더 주목을 받았던건 아마도 영어로 쓰여졌기 때문일 거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알게된 건 참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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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과 책이 익숙했던 이유는 얼마전 MBC에서 했었던 난징관련 특집탓이었다. 물론 방영시간이 일요일 늦은 시간이었던 탓에 무차별 폭격하는 졸음앞에 무릎꿇었던 아픈 기억만 있지만, 첫회 아이리스 장의 죽음을 다뤘던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번역된 제목은 책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다소 '오독'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역자가 밝혔듯이 그 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1999년에 '난징 대학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으나, 이 책은 '난징의 강간'이라는 원제목에 충실하게 바꿔달았다.

'학살'도 그 무게가 만만치 않지만, 학살이 (국가 혹은 민족등의) 집단적 이익을 위한 계획되고, 의도된 행위라는 느낌을 준다면, 그에 비해 '강간'은 가해자(집단)의 비이성 뿐만 아니라 개별 인간의 비인격성까지 나타낸다는 점에서, 또한 피해자가 당한 비극을 보다 절실히 나타낸다는 점에서 적절하다. 난징의 강간은 잘통제된 집단의 비이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에 더해 개별인간의 통제불능 상태가 더해져 나타난 비극이라는 생각이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집단마취' 상태. 상부의 의도적 묵인속에서 이뤄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비극들. 그래서인지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보다 일본의 '난징의 강간'이 더 혐오스럽고,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좋은 느낌을 받았고, 교토나 나라를 둘러보며 일본이 꾸려왔던 침략 이전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가는 시점에 꺼내든 이 책. 예상은 했지만, 프롤로그부터 몇장 읽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때 그 일본인'에 대한 환멸이 튀어나왔다. 정말 얼마전 내가 돌아다니며 보았던 그 일본인들의 역사임에 분명한 '개같은' 사실들 앞에서 혼란과 배신을 느꼈다. 그들의 양면적인 모습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지, 그때 난징에 있었던 일본군의 의식구조는 어떠했기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의문을 넘어 분노가 새어나왔다. "도대체 홀로코스트는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괴로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일평생 연구한 한나 아렌트의 책을 뒤적이며 답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난징의 강간에 묘사된 사실들을 보면, 한편의 좀비영화와 뭐가 다른지 아연실색하게 된다.

사건의 원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분석이 책에 기술되어있었고,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특히나 중국군이 별다른 저항한번 하지 못하고 쉽게 난징을 내어준 것. 그로 인한 중국인에 대한 멸시가 학살의 한 원인이었다는 설명. 그 핏대세운 일본군의 눈에 중국인은 그저 개,돼지같이 대해도 무방한 존재였던 거다. 분명한 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군대라는 일방적 조직내에서 개별 군인에게 일종의 암묵적인 '학살면허'가 주어진 상태, 그리고 갈등하는 이들에게 거짓 정당성을 부여하고, 학살행위가 상부의 강압적 명령으로 전달될때 어느공간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전세계에 널려있는 학살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가까이는 광주까지...

"비단 일본군이기 때문은 아닐거다"라고 이해하려해도, 즉 전쟁상황에서 개별군인의 행동을 통제할만한 군기가 실종된 상태에서,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것이 하달되는 명령이라면...이라고 백번 이해한다하더라도 사실 난징의 강간을 묘사하는 많은 자료들을 보면 일본이라는 종족이 가진 폭력성, 집단성, 맹목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이 더 악랄할 수 있었던 이유, 이성이 마비된 것처럼 그런 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설명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행동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다.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기위해 과거를 알아야 하지만, 인간이 그런 반성능력이 과연 있는 것인지, 책을 덮으면서 많이 착잡해졌다. 다소 충격적일 수 있으나 그래도 그 치욕의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몇몇 링크를 걸어본다. 분명 실존했던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정도로 괴로울 수 있기 때문에 꺼려지는 역사. 그래도 잊지않고 계속 대면해야 하는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인간의 숙제이다.

난징의 강간 비디오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4920138942953644691
난징의 강간 자료 http://rapeofnanking.info/
난징의 강간 위키 http://en.wikipedia.org/wiki/Rape_of_n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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