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울리히 벡 외 (새물결,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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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점점 황량해져 가는데, 사람들은 사랑이 깨졌을 때조차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다란 희망을 사랑에 걸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온갖 개인적 배신이 난무하는 불쾌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번엔 모든 것이 나아질 거야"라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측면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헤어진 두 사람 모두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각자를 개인화시켜준다. 우스꽝스럽고 진부하고 희비극적이며 때로는 비극적이기까지 한, 온갖 복잡한 문제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 이 모든 것 ... 이 책은 바로 이것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쩌면 단지 사람들이 다른 문제로 눈을 돌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랑', 혼갖 기대와 좌절에 짓눌려 버린 이 '사랑'이야말로 전통이 해체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새로운 삶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희망, 배신, 갈망, 질투로 나타날 수도 있다. 독일인들처럼 심각한 국민들까지도 괴롭히고 있는 이 모든 중독들 말이다. 사랑이 혼란에 빠져있는 것이야 말로 현 상황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中 24쪽-25쪽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지음


지하철에서 이 책을 뽑아들었다...빌린건 일주일정도 됐지만...첫장을 넘기는 곳이 사람 그득한 지하철 1호선이라는 점은 조금 아이러니 하다...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사랑은 지독하고, 그렇지만 지독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무엇'이다...아직 첫부분도 채 읽지 못해서 뭐라 말한다는 것이 무리있는 것을 인정하지만...이건 나의 오랜 버릇중의 하나이다...한권의 책속에서 저자가 오직 변함없는 일관된 생각으로 쓰는 것은 아니듯이 (물론 저자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더더구나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따라가면서 달라지는 내 생각의 결을 떠보는 것도 의미는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항상 오독의 위험을 지니고 있고 또 매번 그래왔지만...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사실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책을 읽어본적은 없다)와 그의 아내가 함께 쓴 이 책은 어디선가 한번쯤 보았을 '통속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다...이건 그들의 의도였을 것이라 짐작한다...어쩌면 내가 끄적거린 시한줄, 글 한조각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우습게 박혀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이건 그들이 이 책이 지극히 사회학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을 피하고 적어도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다른 분위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풍부한 인용구들도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낭만'처럼 사랑에 대한 내밀한 분석은 아닐것 같다...(감상적인 측면은 아니라는 것이다...그걸 알았다면 이책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사랑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지침서도 아닐것이다...저자들은 분명 구조와 사회속에서 규정되어왔던 인간이 아니라 '개인화'라 이름지워진 사회적 변화속에서의 인간을 다루려 하는 것 같다...하지만 그들이 사랑은 다루는 방식은 기존의 도덕, 윤리, 종교의 성스런 영역이 아니라 사랑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개인적인 영역으로 전이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이즈음의 혼란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사랑에 대한 혼란은 그러한 사회적 변화 맥락속에서 개인에게 감당하기 힘들게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 아닐까...

내가 앞부분을 조금 읽고 끄적이는 이유는 '벡' 부부가 우리가 흔히 사랑에 기대려하고, 사랑의 영역에서만큼은 모든 사회적 권력관계, 경제적 생산관계, 계급질서를 배제하고 '고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앞의 인용글에서 보듯이 우리는 사랑에 항상 희망을 품고 깨어진 사랑 앞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해결책으로 떠올린다...우리는 삶속에서 늘 부딫히고 겪게 되는 사랑의 문제들은 온존히 나와 너라는 대인관계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결혼은 사랑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적어도 (아주 절박하게) 사랑은 언제나 순수하다고 믿고자 한다...그래서 늘 사랑은 '지독하게도 혼란스럽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데 있음에도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감추고자 하기 때문이다...왜냐면 사랑은 이 각박하고 황량한 사회속에서 우리가 돌아가야할 그리고 위안을 얻어야할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믿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사랑의 혼란스러움을 다르게 바라보고자 하는 듯 하다...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성채처럼 굳건히 우리를 '저 푸른 초원위에서'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사회적 관계속에서 이미 규정되고 사회의 혼란함...인간의 관계 변화, 노동 환경 변화, 사회적 제도의 변화에 따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말이다...그래서 새롭게 변해가는 사랑의 관계, 사랑속에서의 관계를 '정상적인' 혼란으로 바라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써놓고 보니 너무 나간거 같다...이 쯤되면 거의 초절정 '오독'과 니맘대로의 '독해'를 버무려 놓은 것 같다...뭐 다 읽지도 않았는데 당연하겠지만...저자들은 기분 나쁘겠지...상관없다...어차피 책을 빌어 끄적이고 싶었을 뿐이니까...눈치 챘겠지만 책을 핑계로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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