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삶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에어컨이 아니면 늦은밤을 견디기 힘든 그 여름에,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서울 거리 한켠에서 아저씨는, 녹슨 철제통 안에 팍팍한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찬바람이 곁을 스치는 겨울밤이었다면 통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반갑고 따스해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여름으로 향해가는 더운 서울거리에서 고구마를 굽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은 물없이 먹는 군고구마처럼 막막하고, 답답해보였다.


Pentax KM, Kodak Gold 100, 50.4, 2007/5



"몇.개.나 팔릴까?"

씁쓸한 생각이 스쳐갔지만, 썰렁하게 그 길가에 서 있는 그 아저씨도 왜 그걸 모르겠는가. 두꺼운 골판지에 군고구마 2000원을 써내려간 심정은 어떠할까. 어쩌면 타오르는 통안의 불빛은 아저씨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절박함에 지난 겨울 쓰던 군고구마통을 꺼내 나왔을지도 모를일이다. 삶은 위대하다. 아니 삶은 눈물겹도록 강하다. 더운 여름 달궈진 통에 군고구마를 구워야 하는 이유, 내가 매일아침 힘겨운 눈을 비비며 본능처럼 버스에 올라타는 이유, 꿈은 잊혀지는 것이고 현실은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걷는 이유, 다 삶에 대한 맹목때문이 아니겠는가. 삶은 위대하다.

아저씨의 모습을 멀찍이 사진에 담으면서 "너무 푸근해보여서요"라는 말을 건넸는데, 돌아와 다시 보니 이런 생각만 든다. 천지인의 '청계천 8가'의 가사가 떠오른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네 삶을 위하여"

PS : 공감가는 이야기인 김대리의 직딩일기를 같이 붙여본다. 사람들은 참 다른 삶을 살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있는지도 모르겠다.



11월 22일-CD·DVD 수집에 목숨거는 시시한 내 청춘

30년 가까이 살면서 사유재산을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장난감, 내 옷, 내 여자 등. 대부분 부모의 것이거나,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 뿐이었다. 어쨌거나 돈을 벌게 되면서 DVD와 CD를 미친듯이 사모았다. 월급통장은 부모님께 맡겼으니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이제내 방 한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저 DVD와 CD들을 볼때면 나는 풍성해진다. 그래도 내가 지옥같은 사무노동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들을 찾는다.

대학때 소설을 써보겠다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는데 일주일 후 나는 미련없이 취업원서를 넣고 양복을 맞추러 다녔다. 28년간의 꿈을 단칼에 베어버린채, 나는 복제된 스미스 요원이 되어 ‘그저 회사원’으로 대한민국 일반 남성들의 삶속으로 섞여 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학대를 하듯 CD와 DVD를 사 모은다. 결국, 그저 그런 월급쟁이가 되어 무언가를 끝없이 사모으는 짓은, 허다한 소부르주아로 제 인생을 마감하는 게 전부일 뿐이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언제나 덜 불행한 길들만 택했다. 시시한 청춘이다. 대한민국 스미스 요원들에게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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