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을 사면서 별 고민없이 투번들 셋을 구입했었다. 표준줌과 망원렌즈인데 나에겐 버겁고 더없이 훌륭한 렌즈이지만 최소조리개 3.5수준의 어두운 렌즈인 탓에 실내에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밝은 단렌즈가 눈에 자꾸만 아른거려 장터도 기웃거려보고 삼성에서 35.2 렌즈가 나왔을때는 구매 직전까지 가기를 서너번 했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아직 장비에 눈돌릴때가 아니라며, 허벅지 꼬집기라는 고전적인 욕망억제술로  자기최면을 걸었다.

얕디 얕은 심도표현, 실내에서 부담없이 찍을 수 있는 단.렌.즈. 그렇다, 간절히 원하면 얻는 거 아닌가?

몇달전부터 카메라 사고나서 조카 백일이다, 명절이다 카메라 들고 설치는 내가 눈에 들어오셨나보다. 오래된거라 쓰지도 못할거라며 관심있으면 장농에 넣어둔 카메라 가져가라고 며칠전에 말씀하셨다. 마침 기억이 나서 들린 나에게 건네주신 카메라는 팬탁스의 KM카메라와 딸려있는 50mm 표준 줌렌즈였다. 펜탁스 마운트 카메라인 GX-10을 가진 나는 그 카메라에 새겨진 '아사히 펜탁스'를 확인하자마나 소리를 질렀다.

행.복.그.자.체.

쓰지 않는 수동카메라라고 하셨을때는 니콘이나 캐논일 거라며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게 펜탁스 카메라일 줄이야. 손에 든 펜탁스 카메라를 보고서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최소조리개가 1.4인 탓에 이런 표현까지 가능하다. 저녁 먹으며 한컷.


관리도 잘 되어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렌즈며 카메라를 깨끗이 닦고 조심스레 렌즈를 꺼내 GX-10에 마운트 해보았다. 유격도 없이 잘 끼워졌다. 뭐니뭐니 해도 테스트 샷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바디를 M모드로 맞추고 MF모드로 변경했다. 그리고 조리개도 수동조절하는 렌즈라 조리개링을 1.4로 맞추고 감도 400으로 변경. 숨을 죽이고 초점링을 서서히 돌려가며 셔터를 눌렀다. 결과는 대만족. 바디에 디지털미리보기를 할 수 있어 노출맞추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한장한장 내 손의 조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 AF렌즈와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렌즈의 색감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맘에 들었고, 평소 연습해보고 싶었던 심도를 확인해보기 위해 내 방 책장을 테스트 삼아 몇장 찍어보았다. 조리개 수치는 1.4아니면 2.0정도로 한스탑 줄였을 것이다. 초점은 사진을 보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주변부의 흐려짐이 번들과는 차원이 다른 얕은 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리개 1.4



조리개 2.8


별다른 광원없이도 1/50정도의 셔터스피드로 무리없이 실내에서 촬영이 가능했다. 매뉴얼 포커스라는 단점과 노출 계산이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 조차 불편하지 않고 행복해지는 걸 보면 점점 사진찍는게 내 삶의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건 아닌가 한다.

또하나의 즐거움은 수동필름카메라를 갖게된 것이다. 펜탁스 KM기종인데, 완전수동필름카메라이다. 셔터, 조리개, 포커스, 필름감기를 모두 촬영전에 해주어야 한장의 사진이 가능하다. 세월의 때가 묻어있지만 앞으로 많이 사랑해주고 싶다. 이 놈의 몸안에 집안에 남아있는 필름을 넣어주고 한두컷 찍어보았다. 당연히 36장의 필름이 다 돌아가야 결과물을 확인해볼 수 있겠지. 그래서인지 한장한장 누르는 느낌이 신중하고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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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의 질감, 완전 기계식의 아날로그가 날 사로잡는다. 이 놈으로 내 삶을 담아볼거다.


드디어 나도 1:1바디를 소유하게 되었다. 또 갖고싶었던 필름카메라까지. 필름을 감고 눌러보는 둔탁한 셔터의 느낌. 대학때 이후로 참 오랜만에 해본 필름 넣기. 드르륵 거리는 필름의 느낌이 참 좋다. 당분간 사진찍으러 갈때 두 놈 모두 들고 다닐테다. 디지털로 충분히 찍어보고 최적의 설정으로 한장한장, 눌러야지. 벌써부터 내가 찍은 필름을 보고 싶은 조바심이 난다.

뜻하지 않게 삶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너무 흥분한 탓인지 글이 정말 두서가 없다.
"그리도 좋냐"라고 묻는다면 대답할거다. "너무 좋아 죽겠다"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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