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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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세번째 라틴아메리카 여행기를 읽고 있다. 책 이름은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 책 제목처럼 쿠바, 페루, 칠레, 멕시코를 여행하며 적은 글이라서인지 낭만적인 느낌이 많이 들지만, 내용은 저자의 내공탓인지 세세하고 깊다.
한권의 책에서 다루기에는 소재가 방대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읽으며 관심이 가는 부분에서는 더 깊게 다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같은 라틴아메리카 초보자에게는 적절한 입문서임에는 틀림없다. 책이 쓰여질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이 묘사되어있어서 그런지 생생하게 다가온다.
서구보다 더 서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왜곡된 것이었는지 조금씩 느끼고 있다. 서구를 향한 맹목적인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함께 연대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가진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시선은 서구사회가 아시아를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책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으며 '칠레'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커졌다. 책상 한켠에 다음에 읽어야할 책으로 '칠레 현대사'라고 적어두었다. 그저 한국과 최초의 FTA를 체결한 나라, 싸고 질좋은 와인이 유명한 나라 정도로 알고있었던 칠레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가보고 싶다.
네루다라는 걸출한 시인과 아옌데라는 위대한 대통령을 가진 칠레. 1970년 9월 4일의 선거혁명을 통해 우리보다 먼저 민주정부를 구성한 나라. (물론 군사쿠데타라는 역풍을 맞았지만) 군사쿠데타에 맞서 항복과 국외망명을 포기하고, 칠레 민중에 대한 책임감으로 칠레만세를 외치며 총을 든 아옌데. 그는 최후에 쿠데타에 맞서 민중봉기를 일으키라는 주변의 충고를 더이상 칠레 인민이 피를 흘리게 할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올해가 대선인데 느끼는게 참 많다.(씁쓸하다)
여기에 그가 죽는 순간 남긴 라디오 연설을 일부 옮겨본다. 쿠데타에 저항하며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칠레 인민을 위해 남긴 연설문. 읽을때마다 전율이 느껴지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지도자를 가진 칠레가 무척이나 부럽다. 연설음성 출처 (프리스티님 블로그 http://freesty811.egloos.com/1468826)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칠레 산티아고, 1973년 9월11일,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역사는 반복된다. 통시적으로 그러하기도 하고, 공시적으로도 그러하다. 칠레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고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지배자를 위해 쓰여지는 역사를 조금만 기울여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수 있음을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서 배운다.
독재자 피노체트는 (비록 단죄되진 않은채 한짓에 비해서는 천수를 누렸지만) 얼마전 사망했고, 그리고 얼마후 칠레와 멀리 떨어져있는 한국에서는 독재시절 최악의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인혁당사건'이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아옌데는 칠레인들에게 끊임없는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고, 빅토르 하라의 노래는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성급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반복되지만 아주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빅토르 하라의 대표곡이라는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를 유튜브에서 찾았다. 그도 아옌데의 승리를 위해 노래했지만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다. 이 노래를 들으니 생뚱맞게 김광석의 '외사랑'이 생각난다. 참 좋아했었는데. 가슴아픈 서정이라고 해야할까. 언젠가 배낭메고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들으며, 네루다의 시집 옆에 끼고, 아옌데의 묘지앞에 꽃한송이 던져놓고 올지도 모르겠다.
Te recuerdo Amanda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
빅토르 하라
Te recuerdo Amanda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
la calle mojada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corriendo a la fabrica
비 온 거리를
donde trabajaba Manuel.
달려가던 너를
La sonrisa ancha
활짝 핀 미소에
la lluvia en el pelo
머리카락은 비에 젖었지만
no importaba nada
문제될 건 없었지
ibas a encontrarte con el,
넌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어,
con el, con el, con el
그를, 그를, 그를.
son cinco minutos
그를 만난 건 오 분간이었지만
la vida es eterna
그 오 분 동안
en cinco minutos
삶은 영원한 것.
suena la sirena
일터로 돌아가라는 사이렌이 울리고,
de vuelta al trabajo
그를 만나고 걸어가던
y tu caminando
넌 모든 것을
lo iluminas todo
밝히고 있었지.
los cinco minutos
오 분의 시간은
te hacen florecer.
너를 꽃피게 하네
Te recuerdo Amanda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
la calle mojada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corriendo a la fabrica
비온 거리를
donde trabajaba Manuel.
달려가던 너를
La sonrisa ancha
활짝 핀 미소에 머리칼은
la lluvia en el pelo
비에 젖었지만
no importaba nada
문제될 건 없었지.
ibas a encontrarte con el
넌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어,
con el, con el, con el
그를, 그를, 그를.
que partio a la sierra
그는 산맥으로 떠났어
que nunca hizo dano
그는 결코 어떤 해도 입히지 않았어
que partio a la sierra
그는 산맥으로 떠났어
y en cinco minutos
그리고 단 오 분만에
quedo destrozado
그는 산산조각 나버렸지.
suena la sirena
일터로 돌아가라는 사이렌이 울리네.
de vuela al trabajo
많은 이들이
muchos no volvieron
돌아오지 않았고
tampoco Manuel.
마누엘 역시 마찬가지야.
Te recuero Amanda
너를 기억해, 아만다여
la calle mojada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corriendo a la fabrica
비 온 거리를
donde trabajaba Manuel.
달려가던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