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창고

삼청동, 순례기...part 2

시린콧날 2007. 2. 11. 05:46
Scene #4.
삼청동 골목을 누비면서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삼청동 골목의 간판은 서울거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간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간판이 정작 드러내고자 하는 가게의 이름들도 꽤 색다른 매력을 준다. 지금은 가게가 커지면서 예전의 매력을 잃어버렸지만, '눈나무집'(雪木軒)을 몇년전 처음 찾아갔을때 느꼈던 분위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난삽하기 이를데 없는 서울 번화가의 간판들을 싹 쓸어버리고 삼청동의 간판들로 채워버리고픈 생각마저 들 정도로 삼청동의 간판들은 눈여겨 볼 만한 가치가 있다.

GX-10, 50-200, ISO800, f/4, 1/60


GX-10, 50-200, ISO800, f/4.5, 1/6


GX-10, 50-200, ISO800, f/4.5, 1/160

Scene #5.
삼청동 골목에는 노점이 많지 않다. 도로의 폭이 너무 좁아서 노점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서 이기도 하겠고, 노점이 장사될 만큼의 사람수가 아직은 안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또다른 이유는 이 거리와 어울릴만한 아이템을 아직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삼청동 거리에서 '종로노점'을 떠올린다는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도 골목 어귀어귀 주차된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이상의 번잡스러움은 삼청동 그 좁은 골목이 견뎌낼수가 없을것 같다.

사진기를 들고 길을 걷다가 자연스레 한 노점에 시선이 머물렀는데, 그중에서도 독특한 전등하나가 내 맘에 들어왔다. 실타래 같은 각양각색의 구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곱고, 단아했다. 원색임에도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빛. 눈이 다 편안해졌다. 이 전등을 찍으면서 난 GX-10이 너무도 좋아졌다. 이 놈이 표현해내는 색의 재현이 놀랄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어쩌면 더 생생하게 잡아내는 녀석. 역시 아직도 나에게는 버거운 녀석이다.

GX-10, 50-200, ISO800, f/4.5, 1/25


GX-10, 50-200, ISO800, f/4.5, 1/20


GX-10, 50-200, ISO800, f/4.5, 1/20


Scene #6.
더 오래 머무르면서 차분히 찍고 싶었지만, 시간은 너무 늦어버렸고 바람의 끝은 매서워졌다. 무엇보다 오랜 걸음으로 발이 뻐근하고, 무척이나 허기가 졌다. 사실 오늘의 순례가 서울역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난 여기 적어둔 것보다 훨씬 많은 길을 걸었던 셈이다. 무얼 먹을까 하다가, 혼자 음식을 먹기에는 삼청동은 어울리지 않는 다는 생각에 맘을 접었다. 결정적으로 수와레에서 와인에 스파게티를 먹는 사람들을 창밖에서 보고 있자니 그 썰렁함이란. 그래서 그냥 사진기들고 입구에서 주방장과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근데, 그리 반겨주진 않더라.

GX-10, 50-200, ISO800, f/4.5, 1/13


삼청동 주변에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거의가 폐쇄적인 느낌이다. 많은 상점들이 길가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것에 비해 말이다. 이곳에서 좀더 많은 그림들, 조각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돈벌이는 안되겠지만. 삼청동 골목중에 진품은 아니지만 붓냄새 나는 그림을 유리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창가에 붙어서서 사진을 찍어대도 손사래를 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랜시간 감상해도 뭐라하지 않을 것 같다. 그중에 모딜리아니와 고흐의 모작이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되어있는데, 어쩐지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삼청동과 어울리는 느낌이다. 왜냐고는 묻지마라. 고흐모다는 모딜리아니가 모던한 느낌이라 그런가.

GX-10, 50-200, ISO800, f/4.5, 1/40


아직 삼청동을 다 본것은 아니지만, 더이상은 힘들듯 하여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삼청동은 렌즈로 훑고 지나간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지켜봐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거리이다. 점점 변해가는 삼청동의 모습을 시간별로 담아낸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고, 그곳이 그렇게 변해가기를 조용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