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창고

되돌릴 수 없는 삶, 박하사탕 다시보기

시린콧날 2007. 1. 22. 18:18

난 영화를 볼 때 소위 말하는 대박이라는 영화를 기피하는 편이다. 바보 같은 편견인지 모르지만 '나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은밀한, 독특한 감정의 경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에 대한 내 감정이 젖어들기 전에 다가오는 선입견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태도는 독서법에서나 음악감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니아적인 폐쇄성은 아니다. 또 내 감상법이 깊이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피상적인 이해를 경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의 느낌들이 녹아있는 나만의 것일 수 밖에 없는 책과 음악이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는 순간, 어느 정도의 감상변화를 나에게 요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미 우리사회에는 나만의 것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상품이든 문화든 널리 알려지고 소비되는게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박하사탕을 다시 봤다. 신문에서 보이는 영화기자들의 평가도 칭찬일색, 또 들리는 관객들의 반응도 기대이상...게다가 극장을 잡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가 오직 작품성으로 극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소문...이정도 되면 난 선입견의 안테나를 곧게 세운다. 그 '문화적 생산장려' 뒤에서 실망하는 적이 많았다는 실존적인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그 언론매체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느낌, 아주 바보 같지만 그 느낌 때문이었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이창동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설경구 등이었다. 그 중에 내 느낌이 닿은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적 장치였다.

우리의 삶은 흘러가기만 한다. 거기에 반대명제는 있을 수 없다. 생체시계처럼 인간의 상대적인 인식 차이로 속도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의 반대편에 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얘기하고 싶은 곳은 우주적 차원의 시공간이 아니고 바로 지구, 그리고 나와 너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때문에, 그 시간과 더불어 삶과 죽음이라는 궤적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번쯤 그 반대를 꿈꾸고, 삶 속에서 그 시간의 저편, 우리가 지나온 그 시간들을 추억하고 기억해낸다. 어쩌면 아프게 어쩌면 빙그레 웃음지으며 자신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설경구를 알게해준 이 영화가 나에겐 설경구 최고의 영화라고 하면 그는 서운해 할까?

이 박하사탕은 그 인간의 꿈과 기억을 다분히 영화적인 편집으로 우리 앞에 다시 되살려 놓는다. 그 무당굿 같은 스크린 앞에서 마음 편하게 앉아 한 사람의 망가진 삶, 고통 속에 흘러간 시간의 궤적을 마치 깨어진 조각을 이어 맞추듯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려 놓는다. 하지만 창조된 김영호의 인생을 보면서 결코 내가 편할 수 없었던 이유, 그의 절규하는 표정과 쓴웃음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그 영화적 현실이 내 삶의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저주했던 시간의 흐름이 내 앞에도 어느새 쉼없이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하사탕의 시간역행구조는 결코 역행이 아니다. 김영호 그 자신도 70년대 소풍 길에서 되내었듯이 '어디서 본 것 같은' 순환,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하사탕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당연한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나 이제 돌아갈래' 돌아갈 그의 과거는 과거가 아닌 흐르는 현재일뿐이다.

박하사탕의 영화구조는 철저히 역행구조를 따라가며 성립하는 인과관계의 역전이다.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호의 삶을 하나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 삶이 어째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왜 그가 그런 얼굴로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살기 전에는 난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호의 삶에서 난 눈을 떼지 못했다. 난 그 삶의 궤적을 내 스스로 유추해보며 그가 겪어야 했던 사실들을 떠올렸다. 그런 내 속의 과정들이 이뤄지고 있을 때 영호의 삶은 나의 것이 된다. 그런 추측의 과정에는 내가 살아온 삶, 내가 보아온 삶들이 진하게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모습을 이해할 수 없듯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어렵고 불투명한 것이며 그 과거모습이 나에게 주는 이미지는 나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 다리를 절다. 스스로 설 수 없는 현실속에서

99년 봄 옛사랑 순임의 병실을 나서며 그는 다리를 절며 걷는다. 죽음의 문 앞에서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보기 원했던 옛사랑, 그 앞에서 박하사탕 한 병을 내어놓고 그는 울음을 터트린다. 그 울음이 그녀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없는 자신의 모습때문인지, 그토록 사랑했지만 아픈 과거로 인해 외면해야 했던 현실에 대한 울음이었는지, 자신을 잊지 않은 순임에 대한 고마움에서였는지, 이제는 죽을 그녀의 삶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를 찾아온 옛사랑의 남편에게 총을 겨두던 영호가 따라나선 그 길에서는 상큼한 박하향 보다는 군화발에 밟힌 탁한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그가 하나하나 모으던 하지만 그 모으는 시간이 무색하게 깨어져 버린 박하사탕이 고스란히 모아져 그녀앞에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결국 자신앞의 현실, 삶 속에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다시 다리를 절고 만다.

순임의 마지막을 보러가는 길에 그는 박하사탕 한 웅큼을 산다. 군화발에 짖밟힌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었던 걸까?

87년 군산의 어느 여인숙에서 첫사랑이 되어주겠다는 여인과 옥탑방에 누워 그는 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그녀의 울먹이는 채근 앞에서 그는 순임의 이름만을 되내일뿐이다. 외롭지 않은 밤을 구걸하기 위한 그의 수작을 그는 그 순간 깊이 반성하지 않았을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의 첫사랑, 그 아픈 기억을 이해해주겠다는 그녀 앞에서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미 더러워진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한다. 다음날 아침, 눈부시도록 시린 아침에 결국 또 그는 다리를 절고 만다. 그는 그날 밤 그 방에서 순임 아닌 순임 앞에서 눈물로 용서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럴 수 없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 울음과 눈물로 깨어난 아침 다시 닥치게 되는 너무도 다른 굴레 같은 현실속에서 그는 다리를 절 수밖에 없다. 결국 또 하나의 기다림을 옆에 두고 그는 떠나게 된다. 그의 사랑의 일그러진 모양새처럼 다시 생활로 돌아가는 그의 곁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진 붉은 피를 토해내는 한 사람이 있다.

그도 묵묵히 그 시절을 살아낸 것이다. 영호 또한 그 시대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걸 부정할 수 있을까?


84년 가을 영호는 이발소 그림처럼 아니 그보다 더 훨씬 추하게 걸려있는 전두환의 사진 앞에서 사람을 짓밟고 두들긴다. 그 사진의 모습, 전두환이라는 문자이미지가 주는 고정된 사실, 뼈아픈 역사는 그의 내리치는 주먹 속에서 나타났다. 난 그의 폭력, 눈물을 내보이는 폭력을 그 속에 내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단지 외부적 폭력,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는 폭력적 현실속에서 배워간 것일 뿐이다. 그의 내면은 내가 믿기에는 순수하다. 그가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었던 건 인간적 연민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바보 같은 소리일까?

그가 삶을 피해 조그만 경찰서로 기어들어간 후에 그는 순임의 방문을 받는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극도의 공포가 배어있는 똥냄새가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할수록 그 아픔의 골은 더 깊어간다. 그 때묻은 손으로 순임을 맞을 수 없었던 영호는 홍자의 몸을 더듬으며 자신의 변한 삶을 증명하려하고 그 속의 괴로움을 꾹 누르며 순임을 떠나보낸다.

자전거, 사진기, 박하사탕 이창동감독이 배열해놓은 소품들은 때론 영화적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이들의 기차역에서의 이별장면은 스르르 움직이는 열차를 사이에 두고 애틋하게 손흔드는 장면이 없다. 단지 받을 수 없는 선물을 다시 돌려주는 무덤덤한 장면이 있을 뿐이다. 영호는 자신의 더러운 손으로 순임이 주는 순수함의 선물을 받을 수가 없다. 그 이별의 뒤에서 영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리를 절고 만다. 그녀가 돌아갈 열차의 반대편을 향해 걸으며, 그 악독한, 그 비열한 현실의 공간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그는 제대로 걸어갈 수가 없다. 삶의 무게 때문에 그는 다리를 전다.

여기까지도 난 무언가 본질적인 원인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영호를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했다. 아직도 왜 그가 경찰이 되었는지, 왜 먼길을 돌아온 순임을 그 더러운 손을 씻지 못하고 보낼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눌러왔던 삶의 아픔을 그는 '구령조정 3회실시' 속에서 얘기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우로 정렬' '군기' 속에서 난 점점 영호의 삶의 시원으로, 그가 그렇게 다시 돌아가서 다시 살아내고 싶었던 그 처음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삶은 내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정해진 운명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 그렇게 가슴을 쳤다.

80년 5월 그 시간의 이름만으로도 난 가슴이 무거워졌다. 난 그 몇 단어로서 거만하게도 그 날의 영호의 삶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랬구나...영호의 삶이 결국 그때부터 어긋나고 있었구나...난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영호의 삶은 정확히 한국 현대사를 대변한다. 아니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만을 대변한다. 이 좁은 땅에 태어나게 되면 짊어지게 되는 원죄, 그 조여듬을 그도 이고 살았던 것이다. 결국 그때부터 였던 것이다. 순임의 면회도 휘파람과 조롱 속의 트럭 안에서 확인하게 되고 그 전에 이미 그는 하나의 지탱하는 끈이었던 박하사탕을 긴급출동소리와 함께 떨어뜨리고 만다. 영호는 광주에 있었다. 그 광주에서 그는 내내 다리를 절고 있다. 아니 걸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자신의 모습도 '워커에 물이 차서 못 걷겠다'는 말로 대신한다. 스스로의 아픔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억압되어있었고, 개인은 간간히 들리는 총소리처럼 허무하게 스러져갈 뿐이다. 나의 아픔도, 슬픔도 내뱉을 수 없고, 그걸 확인할 수도 없이 살아야 하는 삶, 아니 지금의 삶, 도대체 변한 것은 무엇일까? 영호의 삶이 시간을 거슬러가면 갈수록 그의 삶은 점점 지금의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그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무서웠다. 영호는 설 수가 없었다. 뛰어만 가는 사람들 속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주저앉음이 한 생명의 이어짐을 끊어놓고 그 부딪힘 후에 그의 삶도 휘어갔음은 분명하다. 그를 비추는 수만개의 플래시는 모든 책임을 그에게 묻고 그 속에서 그는 영원히 되돌아가지 못한 그 아이를 안고 '지나가야지...'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아님 우리들에게...

사랑하는 것이 죄스러웠을 시절,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불안하고 안타깝다.

79년 가을 영호는 다시 소풍장소에 선다. 거기서 들리는 '나 어떡해'를 들으며 난 2시간전 영화가 시작하면서 뜬금없이 불러 제끼던 영호의 '나 어떡해'를 다시 떠올렸다. 그 속 깊은 울음을 다시 생각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살아온 삶에 대한 무력감. 그는 정말 '나 어떡해'라고 외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는 싱그럽기만한 그 장소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는 '언젠가 와봤었다'는 말을 하고 결국 나에게는 이 시점에서 영화적 시간이 결코 거슬러 간 것이 아니라 똑바로 진행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지나 그 자리에 다시 선 것이다. 그가 죽었던 그 장소에, 아름다울 것 같던 사랑의 옆에서...이제는 더 이상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칠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것이다. 이제 영호는 어떻해 해야할까? 그를 덮치던 기차에 몸을 실어 갈 곳이 더 이상은 없는데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눈물, 스크린 가득 보이는 눈물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수없이 다리를 절게 될 그 힘겨운 삶을 피할 수 없이 여기까지 와 버린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 몇가지 아이러니들

박하사탕에는 잘 짜여진 세세한 상징과 단초들이 많다. 이창동 감독의 고민이 그대로 배어있는 이런 사건들은 굵은 줄거리만큼이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 뒤에 쓴 아픔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하나하나의 장면이 박하사탕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홍자는 영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그게 홍자가 영호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항상 휙휙 지나치는 영호에게 홍자가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건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자전거다. 그런데 어찌보면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는 그 장면이 나에게는 아이러니 하게도 슬프게 느껴졌다. 그건 하나의 비극이다. 난 94년 홍자의 불륜을 떠올렸다. 홍자는 그때도 배우는 것으로 자신의 관심을 표현했었다. 그건 영호가 아니고 운전강사였고 그 대상도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였다. 하지만 영호가 순임과의 어긋난 사랑에 대한 보상으로 홍자를 선택했던 것 처럼 94년 홍자는 영호와의 어긋난 삶에 대한 보상으로 불륜을 택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영호와의 삶에 대한 아픔의 표시였을지도 모른다.

자전거는 몇몇 씬에서 변주되지만 이 씬의 자전거가 가장 낭만적이다. 갑갑한 영화속에서 그나마 숨을 틔어주는 장면중의 하나


운전기사와의 불륜이 들키고 난 뒤에 새로 장만한 집들이에서 홍자는 음식을 먹기전에 기도를 하자고 한다. 그때 극장에서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었다. 단순히 극성스런 신도로 읽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여편네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홍자는 84년 그 여관방의 기도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현재의 삐걱거리는 삶의 원인을 그때 기도를 하던 그곳으로 홍자는 생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영호가 홍자를 받아들이는 빨간 불켜진 여관방에서 홍자는 기도를 했다. 불안한 사랑에 대한 단 하나의 믿음으로 그녀는 기도를 했을 것이고, 또 그렇기에 더 삶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의 삶이 깨어져 버린 94년, 그녀는 절망을 대신해서 기도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울 수밖에 없다. 잔인한 삶의 편린들이다. 너무도 정확하게 그려진 삶의 모습이다.

영호는 여직원과의 섹스가 끝나고 한 음식점에서 누군지 모를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 사람의 아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개 흉내를 내면서 그들은 만나게 되는데, 어쩐지 심상치가 않다. 그들은 화장실에서 다시 만난다. 그 남자는 꺼리는 눈빛을 보낸다. 분명 그들은 편치 않은 관계임에 틀림없다. 거기서 영호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던진다. 도대체 무얼까? 87년 영호는 그 남자를 취조하고 있다. 너무도 유명한 고문경찰은 영호이고 그 남자는 학생운동 가담자를 불라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있다. 그 이후는 명백하다. 왜 94년 그 남자는 영호를 꺼렸고, 또 영호는 왜 '삶은 아름답다'는 말을 던졌는지? 왜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었는지? 그때의 기억은 누구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박하사탕이 그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도 박하사탕은 지금의 박하사탕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박하사탕이 얘기 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은 쉽게 건져올릴 수 없는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 난 87년 그 취조실 안에서 또 그들이 짜장면을 먹는 모습 속에서 임철우의 '붉은 방'을 생각했다. 고문 받는자, 고문하는자의 각각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소설이었는데 난 그 소설을 읽고서 우리 역사가 단순히 한사람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가?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살아야만 했던 자의 슬픔' 아직도 현재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그 문제들, 같은 역사를 통과해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워진 그 질곡의 역사가 쉽게 제거될 수 없는 것임을 박하사탕을 보면서 또 느낄 수 있었다.

□ 영화적 표현에 대해서

난 박하사탕을 보면서 야속한게 한가지 있었다. 정말 그 상황에 빠져 울음이 나올 것 만 같았는데,그래서 한번쯤은 깊게 잠겨서 울고 싶기도 했는데, 감독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영화내내 난 펴즐을 풀듯이 머릿 속으로 가슴속으로 영호의 삶을 재구성 해야했고, 그나마 호흡이 긴 장면에서도 이전에 펼쳐진 내용들을 떠올려야 했다. 해야 할 말이 많았는지, 아니면 관객이 슬픔, 기쁨등의 감정으로 영호의 삶을 색칠하지 않기를 바랬는지 모르지만 정말 여지없이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었고, 그 뒤에 기차는 항상 또다른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해갔다.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밀도있게 다루고 있음에도 감독은 철저히 감정을 숨긴다. 단지 보여줄 뿐이고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 시간을 거스른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과관계가 명백한 서사구조에서는 아무래도 관객의 감정 이입이 손쉬울 테니까 그만큼 감독은 영호 삶에 대한 지극히 객관적인 이해를 요구하고 있었다. 거기에 대한 판단, 울음과 웃음의 몫은 관객이 영화를 본뒤에 이뤄지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계속 반복되어지는 기차 장면은 어딘가 부자연 스러워 보였고 인위적인 단절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차의 메타포가 장면 전환, 세월의 거스름의 이미지로 사용된 것 뿐만 아니라 영화적 사건들의 배경 혹은 이미지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건과 기차길의 장면은 너무도 이질적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에게는 낭만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렇게 감정을 방해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거꾸로 가기는 했지만 그 화면의 철길 또 뷰유하는 듯이 울려펴지던 음악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이것도 일종의 대비의 역할이었다면 할말없지만, 같은 기차의 메타포를 사용하려 했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한다. 영화 처음에 나오던 강렬한 기차의 이미지는 단 한번이었다.

스크린으로 문소리를 마주했을때 그녀가 지금처럼 알려진 배우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끝장면의 '나 어떡해'를 다시 떠올린다. 영호가 지금 그토록 가슴 아프게 부를 수 밖에 없었던 그 노래가 순임과의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던 그때의 그 노래라는 걸 영호는 알고 있었다. 가리봉 동창회 자리에 그녀가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자신의 처지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던 그 소중한 사진기를 단돈 4만원에 팔아버려야 했던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가 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병실의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자신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던 그때의 그녀를 겹쳐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순임을 보고 돌아와 다시 처음 그 자리에 서서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들꽃을 꺾어주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녀가 싸던 천개의 박하사탕중에 하나를 건네는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이미 팔아버린 사진기를 생각하며 다시 사각의 손가락사이로 그녀를 그려넣을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결국 그는 또다시 '언제 와본 것 같아. 익숙해'라고 말할텐데, 또 그 질곡의 삶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 될텐데 그는 똑바로 서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박하사탕'을 하루에 천개를 싸야했던 순임이 박하사탕을 결국 좋아하게 되었을까? 오랜만에 너무도 가슴 아프고 슬픈 영화를 보고난 후에 잠들지 못하는 밤에 내게 남아있는 의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