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럽지만은 않은 마츠코의 일생

드디어,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시작된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봤다. 영어제목은 Memories Of Matsuko로 얌전한데, 우리나라 영화의 영어제목도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어이없이 짓는 경우가 많은 걸로 봐서는 '혐오스럽다'는 제목이 정확하고 적절한 것 같다. 일어를 잘 모르지만 한글로 옮긴 제목도 원 의미와 일치하는 듯 하다. 근데 영어제목의 Memories 앞에 적절한 형용사를 첨가해도 괜찮았을 듯 한데, 왜 얌전한 제목으로 영작을 해놓았는지 의문스럽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의 느낌은 한 여자의 일생을 얼마나 혐오스럽게 그렸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다소 '변태적인' 일본영화에 대한 기억이 있는 탓에, 그리고 살짝 훑어본 시놉을 보고서는 "그럼 그렇지"라는 지레짐작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영화를 다보고 나서 종합해본 표면적인 이야기 구조야 "정말 있을 수 있을까"라는 자조 섞인 한숨이 들 정도로 파괴적이고 괴팍하긴 했다.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불행한 여자의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뭘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영화를 통해 감독은 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이 영화까지 포함해서 단 두 편의 필모그래피가 전부인 테츠야 감독. 보진 않았지만 소문만 들었던 '불량공주 모모코'라는 영화가 전작인 걸로 봐선, 그리고 어리지도 않은 50이 다되어가는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파격'으로 비춰볼 때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빗나간 해석이라는 지적을 각오하고 답해본다면,
그래도 내 나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가 어떤 철학적인 심각함이나 삶에 대한 끈질긴 성찰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하나 마츠코를 통해 그녀가 살아온 일본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목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사회'나 '현실'은 빠져있고, 오직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그리고 그녀가 혐오스러운 삶을 살게 된 원인도 그녀가 처한 상황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품'때문이다.

우발적? 살해, 이 일로 그녀는 8년간의 복역생활을 하게된다.
영화 속에서 마츠코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살아만 간다. 배신당하고, 얻어맞고, 사랑을 주고, 받진 못하고, 결국 아주 늦게 "이제 더 이상 내 삶에 아무도 들여놓지 않을거야"라는 다짐을 하며 혐오스럽게 죽어간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을 주기만 하는 '하나님'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에게 받는 걸로 삶을 평가되지 않고 남에게 주었던 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말, 그래서 온갖 핍박을 받고 죽어가는 그녀의 마지막을 곱씹어 봐야한다는게 이 영화의 일종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조금 억지스럽고, 엷은 결론이긴 하다.

마츠코 삶의 첫번째, 그리고 다섯번째의 남자인 '류' 그를 위해 마츠코는 모든것을 바치지만 류는 사랑받는 것이 두려워 그녀를 버린다...
오히려 내가 이 영화에서 받은 인상은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인 풍성함과 화려함에 있다.
첫번째는 영화 스크린에서 표현하고자 한 비주얼적인 시도와 그와 완벽히 어울리는 오디오의 앙상블이다. 그간 보았던 일본영화와는 다르게 화려한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이 영화의 색채감은 화려하다 못해 탄성을 자아낼 지경이다. 시종일관 실사의 느낌을 보여주지 않는 색채는 상황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화해간다. 화면 구성을 위해서 감독이 얼마나 짱구를 굴려야 했는지 느낌이 온다.

화면이 밋밋하다는 일본영화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린 장면들

마츠코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강변, 같은 장소라도 분위기에 따라 색감을 달리 사용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
잘짜여진 화면, 적절히 사용된 컴퓨터그래픽(특히 후반부 마츠코가 쌓아둔 쓰레기더미가 까마귀로 날아가는 장면은 훌륭했다), 영화전반에서 반복되지만 화면의 에너지에 따라 적절히 변주를 거듭하는 음악은 그 자체로 극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영화의 느낌을 준다. 어쩌면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 불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등장인물들도 디테일이 풍성한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독특함과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래도 마츠코를 제외하고는 다들 단선적인 느낌이다)
영화는 두시간 가량 이어지는데 한 여자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주다 보니 다소 길게 느껴진다. 한 여자의 일생을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함께 경험하다 보니 압축되어 보여져야 할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백하건데 영화를 보면서 마츠코의 영화적인 인생이 지나칠 정도로 너무 괴로워서 감독에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당황할때마다 나오는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영화를 보고나면 애잔한 느낌을 받게된다
하지만 보면 웃음이 나와야 할 나오는 마츠코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슬퍼보이는 건 , 그리고 류의 출소를 기다리다가 심하게 얻어맞고 눈밭에 쓰려져 내뱉는 "왜"라는 한마디가 가슴을 울리는 건, 그리고 아무도 없는 그래서 혼자여야만 하는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다녀왔습니다"를 되뇌는 그녀의 독백은 어쩌면 나도 한번쯤은 경험해본 것일지 모른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야메카와 테츠야가 죽기전에 남긴 글.
누군들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의미없는 삶에 지쳐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보는 것. 이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럽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의 현실과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마츠코의 일생은 '혐오스럽지만은 않은' 일생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혐오스러울때가 있었던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우리 모두의 삶처럼 말이다.
그 분이 고모처럼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사람에게 힘을 주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지만 자신은 늘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지고 고독하고 패션도 너무나 촌스럽고
그런...철저하게 바보스러운 사람이라면
나는 그 하나님을...믿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 카와지리 쇼 (조카)의 독백
"굽히고 펴서 별님을 잡자
굽히고 까치발로 하늘에 다다르자
조그맣게 둥글려서 바람과 이야기하자
화알짝 팔을 벌려 해님을 쬐어요
굽히고 펴서 별님을 잡자
굽히고 까치발로 하늘에 다다르자
모두모두 안녕 내일 다시 만나자
굽히고 펴다 배가 고파지면 집으로 가자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자"
"어서 와"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