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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시린콧날 2006. 12. 6. 08:04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추운 아침, 잔뜩 옷깃을 여미며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출근후 책상위에 인스턴트 커피한잔을 올려놓고, 시한편 읽어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삶을 다하지 못하고 사라진 기형도.
사랑에 대해 아프지만 날카로운 그의 말이
이 시를 읽을때마다 주변을 떠도는 것만 같다.

2006.12.06